알베르토 프란케티(Alberto Franchetti)
오페라 게르마니아의 작곡가
1906년경의 알베르토 프란케티
알베르토 프란케티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오페라 중의 하나인 '토스카'를 작곡할뻔 했던 작곡가이다. 하지만 바뻐서 작곡을 맡기가 어렵다고 하자 대본이 푸치니에게 돌아갔다. 그리하여 푸치니의 명작 '토스카'가 탄생하였다. 프란케티는 10편의 오페라를 남겼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오페라극장의 레퍼토리로 올려지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의 오페라들은 프란케티라는 이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프란케티는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의 작품은 마이에르베르의 스타일을 닮은 웅대하고 조화를 이룬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프란케티를 '현대 이탈리아의 마이에르베르'라고까지 말하였다. 실제로 그의 대표작인 '크로스토포로 콜롬보' 또는 '게르마니아'를 보면 작품의 웅대함과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드높은 조화 등으로 감동에 휩싸이게 만든다. 그런데도 프란케티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가 유태계로서 마침 파치스트들이 반유태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시기에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프란케티는 1860년 토리노의 유태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 베니스에서 공부했고 이어 독일의 드레스덴과 뮌헨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뮌헨음악원에서는 유명한 요셉 라인버거(Joseph Rheinberger)에게서 사사했다. 프란케티가 오페라 작곡가로서 첫번째 성공한 작품은 1888년 아스라엘(Asrael)이었다. 그의 오페라 스타일은 바그너주의적인 것에 마이에르베르를 가미하였고 여기에 이탈리아 베리스모를 혼합한 것이다. 오페라 아스라엘은 그러한 모든 요소를 표현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작곡가로서 평생을 지내는 동안 '현대 이탈리아의 마이에르베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마이에르베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한편, 그는 '열정적인 드라마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교향적 기조에 대규모의 합창을 필요로하는 환상적 작품, 또는 낭만적 작품, 또는 대서사시적 작품에는 적합하다'는 평도 받았다. 어떤 평론가는 '그런 면에서 알베르토 프란케티에게는 라이발이 없다'고 말했다.
프란케티의 대표작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Christoforo Colombo: 1892)라고 하겠으나 가장 인기있는 작품은 '게르마니아'(Germania: 1901)이다. '게르마니아'는 제1차 대전까지 유럽의 여러 극장에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었다. 더구나 라 스칼라의 공연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에 엔리코 카루소가 출연한 것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엔리코 카루소의 초기 음반에는 '게르마니아'의 아리아가 두 곡이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때에 '게르마니아'는 프란케스티의 이름과 함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파치스트가 만든 1938년의 인종법 때문에 유태계인 프란케티의 작품은 연주회장에서 추방당해야 했다.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베니토 무솔리니에게 탄원서를 보내어 프란케티에게 관용을 베풀어 줄것을 간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게르마니아'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는 2006/07 시즌에 베를린의 도이치 오퍼가 리바이발하여 음반으로 남겼다. 이들 음반을 들어보면 프란케티의 오케스트레이션과 합창 안배가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교향적 스타일이 얼마나 극적인지를 알수 있다. 프란케티는 교향곡도 썼다. E 단조이다. 그는 1942년 이탈리아의 비아레지오(Viareggio)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였다. 아들 아르놀드(1911-1993)은 1949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작곡가로서 성공했다. 아르놀드는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에 뮌헨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르침을 받은바 있다. 그는 1946-48년간 이탈리아 지하 저항운동의 멤버였다.
베를린 도이체 오퍼가 취입한 오페라 '게르마니아' 커버
알베르토 프란케티의 오페라 작품은 다음과 같다.
● Asrael(아스라엘: 1888). 아스라엘은 죽음의 천사를 말함. ● Christoforo Colombo(크리스토포로 콜롬보: 1892). 대본은 루이지 일리카 ● Fior d'Aple(1894) ● Il signor di Pourceaugnac(푸르소냑의 신사: 1897) ● Germania(게르마니아: 1902). 루이지 일리카 대본 ● La figlia di Iorio(이오리오의 아가씨: 1906). 가브리엘레 다눈치오 대본 ● Notte di Legenda(레겐다의 밤: 1915) ● Giove a Pompei(1921). 움베르토 조르다노와 공동 작곡 ● Glauco(글라우코: 1922) ● Fiori del Brabante(1930)
'게르마니아'의 한 장면. 도이치오퍼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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