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 2
슈트라우스가 관료주의에 항거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라고 해도 나치의 서류작성에는 예외일수가 없었다. 어떤 문서를 작성하는데 직업과 관련하여 참고인 2명을 적으라는 항목이 있었다. 슈트라우스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리하르트 바그너의 두 사람 이름을 적어 넣었다.
슈트라우스가 나치에 반발하다
슈트라우스의 11번째 오페라인 '그림자 없는 여인'은 후기 호프만슈탈 시기의 시작을 기록하는 것이다. 슈트라우스는 호프만슈탈이 세상을 떠나자 슈테판 츠봐이크(Stefan Zweig)와 협동하기 시작하였다. 츠봐이크는 런던 주민으로서 오스트리아의 시민이었다. 때문에 당시 츠봐이크는 나치에 크게 종속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나치가 비아리안계는 모두 동일하게 취급하기 시작하자 그의 대본은 당국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1935년 6월 '그림자 없는 여인'이 드레스덴에서 초연될 때에 히틀러 자신이 참석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초연으로부터 며칠 전, 슈트라우스는 인쇄되기 전의 프로그램을 보다가 츠봐이크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신, 대본을 영국의 벤 존슨(Ben Jonson)으로부터 채택하였다고 되어 있었다. 화가 치민 슈트라우스는 프로그램의 적당한 곳에 슈테판 츠봐이크의 이름을 직접 적어 넣었다. 그러자 드레스덴 극장장이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슈트라우스는 극장장에게 '좋아요.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난 내일 떠날 테니 나 없이 마음대로 공연하시오'라고 소리쳤다. 극장장은 파면되었다. 히틀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슈트라우스와 나치의 관계는 어려운 길로 접어 들었다.
슈트라우스 오페라의 대본가인 슈테판 츠봐이크
버려진 아이
어떤 회의에서 어떤 사람이 레온하르트 환토(Leonhardt Fanto)의 선조에 대하여 의구심을 제기하였다. 모두들 환토가 유태계라고 주장하며 곤란한 표정들이었다. 환토는 슈트라우스의 여러 오페라 초연에서 무대장치를 맡아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환토는 슈트라우스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환토는 인종정책에 대한 뉘른베르크 법이 제정되고 유태인에 대한 포그럼이 추진되었어도 별다는 제제를 받지 않았다. 슈트라우스는 사람들에게 '환토는아주 일을 잘 처리했지요. 그 사람은 다른말 필요없이 자기가 버려진 아이, 즉 기아(棄兒)라고 주장했지요.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하더라구요.'라고 설명했다.
호터에 대한 찬사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오페라인 Friedenstag(평화의 날)은 30년 전쟁의 막바지에 포위를 당한 어떤 독일의 요새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 것이다. 이 오페라에서는 슈트라우스의 다른 오페라와는 달리 소프라노가 큰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다. 대신 요새 사령관인 베이스-바리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게 설정되어 있다. 젊은 한스 호터(Hans Hotter)가 사령관 역할을 맡았다. 1938년의 뮌헨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호터는 자기 능력 이상으로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1년후 비엔나 초연을 갖게 되었다. 역시 한스 호터가 사령관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호터는 공연을 하루 앞두고 심한 꽃가루 알레르기에 걸렸다. 도무지 소리를 내기가 어려웠다. 지휘자인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Krauss)는 호터에게 드레스 리허설 때에는 그저 움직이기만 하고 소리를 내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내일의 공연을 위해 목소리를 아끼라는 뜻이었다. 리허설이 끝나자 슈트라우스가 호터의 분장실을 찾아가서 '정말 대단한 소리였네. 너무 훌륭해!'하면서 찬사를 보냈다. 호터는 처음에 슈트라우스가 자기를 놀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선생님, 저는 연습 때에 한마디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슈트라우스는 '알아!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내일 당신이 부를 노래소리를 머리 속으로 들었다네'라고 대답했다.
세계적인 베이스-바리톤 한스 호터
파울리네가 나치에게 한마디 하다
슈트라우스와 결혼한 소프라노 파울리네는 하고 싶은 얘기는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좋게 말하면 솔직하고 어렵게 말하면 주책이 없다고나 할까! 1941년 슈트라우스 가족은 비엔나로 이사하게 되었다. 슈트라우스는 부인에게 '비엔나에 가면 나치의 간부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생활하게 될 것이니 제발 말 좀 주의해 주시오. 비엔나는 우리가 살던 가르미슈가 아니올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혹시 파울리네가 마음이 상했을 것 같아서 '베스비우스 화산은 폼페이에 있어야 제격이올시다'라고 말해주었다. 어느날 어떤 갈라 리셉션에서 파울리네는 어쩌다가 비엔나의 나치당 대표인 발두르 폰 쉬라흐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파울리네는 상대방이 서슬이 퍼런 쉬라흐라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혹시 제가 말을 함부로 하거니 실수를 하면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으라고 경고를 해 주세요'라며 혹시 말을 잘못하여 심기를 건드리더라도 양해하여 달라는 외교적인 언사를 건넸다. 그랬더니 쉬라흐가 '존경하는 부인! 그나저나 무슨 하실 얘기가 있습니까?'라고 궁금한 듯 물었다. 무슨 할 얘기가 있기 때문에 미리 방패막을 치는 것이라는 것쯤은 고위 당직자로서 대뜸 느끼는 일이었다.
독일 남부지방의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그러자 파울리네는 용기를 가지고 '사실은요, 만일 전쟁에 져서 대표님께서(쉬라흐가) 독일 본토로 도피하게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가르미슈로 오시라는 말을 하고 싶었답니다. 만일 오신다면 숨어 있을 곳을 마련해 드릴려구요...'라고 말했다. 독일의 패전을 염두에 둔 놀라운 발언이었다. 게다가 파울리네는 한술 더 떠서 '그런데 가르미슈로 오시게 된다면 쓰레기 같은 다른 사람들은 데려오지 마세요. 대표님은 쓰레기들과는 다르잖아요?'라고 덧붙였다. 쉬라흐로 말하자면 그도 한다하는 나치당대표였다.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주 친절하신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도움은 필요 없는 것 같군요'라고 말했다. 슈트라우스는 이런 고차원적인 대화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그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만 했다(땀방울은 독일어로 Schweissperlen, 즉 땀으로 만든 진주이다). 그러나 파울리네는 쉬라흐가 감사하다고 하니 의기양양하여 쓰레기 같은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파울리네 슈트라우스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말
1949년 여름, 슈트라우스가 85세를 맞이하는 해였다. 슈트라우스는 가르미슈의 자기 저택에서 병상에 누워있었다. 슈트라우스가 여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슈트라우스와 절친한 무대감독 루돌프 하르트만(Rudolf Hartmann)이 병문안을 왔다. 슈트라우스의 침상 옆에는 산소호흡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슈트라우스는 하르트만에게 '죽음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저 산소호흡기가 첫째 징표이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폭격을 당한 극장이야기, 복구작업에 대한 이야기, 새로운 성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슈트라우스가 힘들어서 더 이상 대화는 계속하지 못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슈트라우스가 Grüss' mir die Welt 라고 말하였다. 글자그대로 보면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시오'이지만 대체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나는 갑니다. 하지만 나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뜻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말이었다. 하르트만은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졸데가 트리스탄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독약을 준비하면서 말하는 대사이다. 원문을 보면,
Nun leb' wohl, Brängane!(잘 사세요 브랭가네)
Grüss' mir die Welt,(이 세상에 인사를 드립니다)
Grüsse mir Vater und Mutter! 이다.(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구스타브 클림트의 '키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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