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오페라 성악가 일화

[참고자료] 뉴욕 아카데미 오브 뮤직(Academy of Music)

정준극 2010. 10. 31. 23:00

[참고자료]

뉴욕 아카데미 오브 뮤직(Academy of Music)

미국 오페라의 영광의 뒤안길

 

아카데미 오브 뮤직은 뉴욕에 있었던 오페라 하우스이다. 맨하튼의 이스트 15번가와 어빙 플레이스(Irving Place)에 있었다. 4천석의 아카데미 오브 뮤직은 1854년 10월 2일 오픈되었다. 미국 오페라 활동의 초창기에 많은 기여를 했던 극장이다. 아카데미 오브 뮤직 극장은 약 30년을 서브한 후 메트(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등장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건물은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콘솔리데이티드 에드슨 회사(Consolidated Edison Co.: Con Ed Co)의 본사 빌딩이 들어섰다. 처음 아카데미 오브 뮤직이 문을 열었을 때에는 당시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극장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오페라 극장이 공장처럼 생겼고 건물내 디자인이라는 것도 흡족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너무 많은 좌석을 수용하다보니 좌석간의 간격이 좁아서 대단히 불편하여 결국은 실패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아카데미 오브 뮤직은 오랜 기간동안 뉴욕 오페라의 전당으로서, 그리고 상류층의 사교장소로서 높은 명성을 유지했던 곳이다. 사실상 아카데미 오브 뮤직 극장의 칸막이 좌석은 모두 뉴욕의 내노라하는 명문가나 부호들의 전유물이었다. 일반 시민들은 아카데미 오브 뮤직이 상류층의 전유물인 것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뉴욕의 신흥 부자들이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도 칸막이 좌석에서 우아하게 오페라를 구경하고 싶었다. 별도의 오페라 극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생긴 것이 애스터 오페라 하우스(Astor Opera House)였다. 에스터 오페라 하우스는 어찌보면 오늘날 메트의 전신이라고 할수 있다. 아무튼 메트가 등장하자 그나마 관록을 자랑하던 아카데미 오브 뮤직 극장은 1886년부터 오페라 공연을 중단하고 대신 보데빌을 공연하는 장소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1926년에 철거되어 그 자리에는 새로운 고층건물이 들어서게 되었으니 그것이 콘 에디 회사 건물이다.

 

1900년대 초반의 뉴욕 아카데미 오브 뮤직. 무슨 오페라극장이 이렇게 멋없이 공장처럼 생겼나?

 

아카데미 오브 뮤직은 미국 최초의 오페라 전용 극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미국 최초의 오페라 극장은 뉴욕의 이탈리아 오페라 하우스라고 할수 있다. 비엔나에서 활약하던 대본가인 로렌조 다 폰테(Lorenzo da Ponte)가 미국에 와서 1833년에 건설한 극장으로 뉴욕 오페라단의 본부로 사용되기도 한 건물이다. 다 폰테라고 하면 모차르트와 콤비로서  '휘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여자는 다 그래'의 대본을 쓴 사람이다. 다 폰테의 극장은 뉴욕 오페라단이 해산되는 바람에 고작 2개 시즌만 오페라를 공연하고 문을 닫았다. 그후 1847년에 앞서도 잠시 언급한 대로 애스터 플레이스(Astor Place)에 애스터 오페라 하우스가 건설되었다. 유태계인 이사이아 로저스(Isaiah Rogers)가 설계하였다. 그러나 애스터 오페라 하우스는 인근에 있었던 브로드웨이 극장의 극성팬들이 폭동에 가까운 난동을 벌이는 바람에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애스터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영국의 배우인 윌리엄 챨스 마크레디(William Charles Macready)가 공연을 하고 있었고 인근 브로드웨이의 보워리극장(Bowery Theater)에서는 미국의 배우인 에드윈 포레스트(Edwin Forrest)가 공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독한 라이벌이었다. 그런데 미국배우 포레스트의 극성팬들이 비싼 밥 먹고 별로 할 일들이 없어서인지 급기야는 마치 미국와 영국간의 자존심을 내건 듯 영국배우가 공연하고 있는 애스터 플레이스 극장을 공격하였다. 경찰이 동원되었으나 속수무책이어서 나중에는 군대가 동원되었다. 군인들이 폭도들에게 총격을 퍼부었다. 이 사건으로 23명이 죽고 100명 이상이 중상을 입었다. 미국 극장 역사상 가장 참혹한 폭동이었다. 얼마후 애스터 오페라 하우스 측은 내부 시설을 모두 철거하여 매각하였고 이어 건물도 매각하였다. 현재 그 건물은 머캔타일 도서관협회(Mercantile Library Association)의 도서실 및 회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애스터극장 폭동사건. 1849년. 경찰로도 역부족이어서 군대가 동원되어 겨우 폭동을 진정시켰다. 이 폭동으로 23명이 죽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했다. 참으로 미국산 소고기 먹고 할일도 없었던 모양이다.

 

애스터 극장이 사라지자 뉴욕의 유지들은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됩니다!'라고 생각하여 새로운 오페라 극장을 짓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1852년에 유태계인 모제스 그린넬(Moses Grinnell)이란 사람이 신극장주식회사를 만들고 주식을 발행하여 당시로서는 거액인 1주당 1천불씩 팔아 20만불을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1854년 뉴욕의 유니온 스퀘어(Union Square)인근에 당당한 규모의 오페라 하우스를 완성하였으니 이것이 아카데미 오브 뮤직이었다.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4천석의 좌석을 가진 5층 건물이었다. 오디토리엄(객석)의 아래로부터 천정까지의 높이는 무려 24m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들에게는 역시 쉽게 드나들수 있는 장소가 못되었다. 뉴욕의 신흥 부유층을 위주로 한 것은 애스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오브 뮤직는 명문 반더빌츠(Vanderbilts), 에스터(Astor), 모건(Morgan) 가문 등이 주도하는 오페라 극장이었다.

 

1905년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브로드웨이와 39번가)

 

아카데미 오브 뮤직의 첫 오페라 시즌은 건물이 완성된 해인 1854년 10월 부터 12월까지 오픈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오페라단이 첫 시즌을 장식하였다. 로시니의 '세미라미데'와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무대에 올려졌고 벨리니의 '노르마'와 '몽유병자'(La Sonnambula)가 공연되었으며 도니제티의 '루크레지아 보르지아' '라 화보리타' '람메무어의 루치아'가 공연되어 대인기를 끌었다. 아카데미 오브 뮤직은 오페라만 공연한 것이 아니었다. 연극도 했다. 정당 전당대회를 비롯한 집회장소로서 사용되었으며 과학전람회를 비롯한 전시회장으로도 이용되었다. 자선무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유태인들의 축제 장소로서도 사용되었다. 1860년에는 당시 19세였던 영국 황태자 에드워드 알버트의 뉴욕방문 환영만찬과 무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아카데미 오브 뮤직 극장에서의 유태인 하누카 축제 장면

 

그러한 때에 1880년 브로드웨이와 39번가 사이에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가 등장하였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였다. 아카데미 오브 뮤직보다 두 배나 규모가 큰 건물이었다. 칸막이 좌석은 3층에 걸쳐 마련되었다. 뉴욕 신흥 부호들의 차지였다. 메트의 칸막이 좌석을 소유한다는 것은 부의 상징이었으며 엘리트라는 표시였다. 칸막이 좌석은 대를 이어 승계되었다. 메트가 문을 연지 6년후인 1886년, 우리나라에선 신학문의 요람인 배재학당이 문을 연 바로 그 해에 아카데미 오브 뮤직은 여러 사정으로 오페라 시즌을 취소하였다. 아카데미 오브 뮤직의 2년동안의 공백기간을 가진후 1888년 보데빌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보데빌은 말하자면 버라이어티 쇼나 마찬가지여서 콘서트도 있고 연극도 있으며 서커스도 있고 코미디도 있는 서민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가 아카데미 오브 뮤직은 1900년대 초반에 주로 노동조합 집회장소로 사용되었다. 그후 1926년 옆 건물인 타마니 홀(Tammany Hall)과 함께 철거되어 콘 에드 회사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아카데미 오브 뮤직의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자 이를 아쉽게 생각한 영화재벌인 윌리엄 폭스(Williiam Fox)가 이듬해에 바로 길건너에 아카데미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극장을 설립했다. 3천석 규모의 화려한 영화관이었다. 처음에는 영화를 상영하였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서는 록음악 연주회장이 되었고 1985년에는 팔리디엄(Palladium)이라는 나이트 클럽으로 변신했다. 그러다가 2001년에 뉴욕대학교가 매입하여 현재는 팔라디엄 레지덴스 홀(Palladium Residence Hall)로 사용하고 있다.

 

아카데미 오브 뮤직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콘 에드 회사 본사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