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오페라 성악가 일화

올리브 프렘스타드(Olive Fremstad)

정준극 2010. 11. 6. 21:09

올리브 프렘스타드(Olive Fremstad)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올리브 프렘스타드(1870-1957)는 화랄딘 제라, 어네스트 슈만-하인크 등과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던 디바이다. 프렘드스타드는 음반 취입을 크게 선호하지 않았다. 음반의 소리는 실제 소리를 재생한 것이므로 기계소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마담 올리브 프렘스타드 

 

위대한 요리사

프렘스타드는 위대한 디바였지만 성격은 걷잡을수 없는 것이어서 주위 사람들을 당혹케 만드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여자의 성격은 변덕스러운 것이고 음악하는 여자들의 성격은 더 변덕스러운 것이지만

프렘드스타드의 괴퍅한 성격은 진실로 알아 모셔야 하는 것이었다. 프렘스타드의 집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은 허구헌날 프렘드스타드의 까다롭고 괴퍅한 성격때문에 가장 골치를 앓았다. 어느날 요리사는 밤새 노력을 하여 프렘스타드가 좋아할 것같은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새로운 음식을 맛본 프렘스타드는 두 손을 높이 치켜올리며 '최고야 최고! 다음번에도 꼭 이 음식을 만들어 주어요!'라고 말했다. 며칠후 요리사는 지난번에 만들었던 것과 똑 같은 음식을 만들어 제공했다. 프렘드스타드는 한 입 먹어보더니 대단히 화를 내며 '무슨 음식이 이래? 이걸 나보고 먹으라는 거야? 당신 해고야, 해고!'라면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프렘스타드는 요리사를 해고하지 않았다. 요리사가 먼저 사표를 냈다.

 

살로메의 올리브 프렘스타드 

 

여비서 왓킨스의 연기

왓킨스는 프렘드스타드의 여비서이다. 프렘스타드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온갖 준비를 다 해주고 심부름을 한다. 오페라 공연에서 하나의 막이 끝날 때마다 왓킨스가 재빨리 무대에 나와서 프렘스타드의 분장을 고쳐주고 의상을 매만져주며 목에 뿌리는 스프레이와 목사탕 등을 준비해 준다. 그러면 프렘스타드는 단정한 모습으로 커튼콜에 나가서 인사를 한다. 왓킨스는 프렘스타드에게 있어서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다. 메트에서 공연할 때는 커튼이 여러개가 있어서 우선 안쪽에 있는 커튼이 내려지면 왓킨스가 무대로 들어가서 프렘스타드에게 필요한 조치를 해준다. 그런후에 바깥쪽 커튼이 올려지면 프렘스타드는 천연덕스럽게 커튼 앞으로 나가서 무대인사를 한다. 관중과 무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방공연에서는 다르다. 커튼이 하나밖에 없는 무대가 많다. 어느 지방도시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공연할 때의 일이었다. 유명한 리베스토트(Liebestod) 장면이 끝나고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시신 옆에 쓰러지자 커튼이 내려졌다. 왓킨스는 이곳의 무대도 메트와 같은줄로 착각했다. 커튼이 내려지자 재빨리 거울과 빗과 목스프레이 등을 챙겨가지고 무대에 쓰러져 있는 프렘스타드에게 달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커튼이 올라갔다. 왓킨스는 래그타임 시대에 거리를 거니는 여자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 왓킨스가 중세의 의상을 입은 많은 사람들 틈에 서 있게 되었다. 모두들 당황했다. 프렘스타드는 왓킨스에게 '나가란 말야, 어서 나가! 아이구!'(Raus! Raus! um Gotteswillen!)라고 작은 소리로 소리쳤다. 당황한 왓킨스는 무대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그만 트리스탄이 죽어 누어 있는 침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사람들은 재미있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이어서 이번에는 죽어 있던 트리스탄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고개를 쳐들고 일어섰다. 그 모습이 또 사람들을 웃겼다. 나중에 무대스태프들은 '이번 오페라에서는 왓킨스의 연기가 최고였어!'라며 입을 모았다.

 

이졸데 역의 올리브 프렘스타드

 

정복자 올리브

메트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던 프렘스타드가 뮌헨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출연하게 되었다. 뮌헨은 비록 바이로이트가 아니지만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초연된 곳이기 때문에 웬만한 성악가들은 뮌헨에서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공연에 긴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리브 프렘스타드는 별로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메트에서 하던 대로 이졸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였다. 그런데 프렘스타드는 공연 전날 점심에 식당에서 구운소시지(Bratwurst)를 먹고 배탈이 났다. 다행히 다음날에는 차도가 있어서 드레스 리허설에 참석할수 있었다. 그런데 무대에서 앞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얼굴에 상처가 나는 사고가 일어났다. 프렘스타드는 '이번 공연은 실패할 거야! 조짐이 아주 나뻐!'라며 매우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브랑게네 역의 마담 샤를르 카이어(Madame Sarah Charles Cahier: Mrs Morris Black)이 프렘스타드에게 '걱정하지 마시라, 오히려 대성공일것'이라고 안심시키며 정복자 윌리엄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정복자 윌리엄은 영국 땅에 처음 상륙하기 전날 배에서 먹은 음식이 이상해서 배탈이 났다. 그래서 상륙을 하루 늦출 생각까지 했으나 다행히 상태가 좋아져서 예정대로 상륙키로 했다. 그런데 윌리엄은 뭍에 내리지마자 앞으로 넘어졌다. 몸을 일으킨 윌리엄의 손에는 모래가 한웅큼 쥐어져 있었다. 윌리엄은 '보라, 영국의 흙이 내 손에 있도다!'라며 장병들을 안심시켰다. 마담 샤를르 카이어는 프렘드스타드에게 손을 보여달라고 청했다. 프렘드스타드의 손에는 무대의 먼지가 한웅큼 쥐어져 있었다. 마담 샤를르 카이어는 '무대를 정복하였군요!'라고 말해주었다. 프렘스타드의 뮌헨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그로부터 프렘스타드에게는 '정복자 올리브'라는 별명이 붙었다.

 

메조소프라노 마담 샤를르 카이어 

 

겁없는 성악 레슨

올리브 프렘스타드도 은퇴와 함께 다른 은퇴성악가들 처럼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프렘스타드는 매우 엄격한 스승이었다. 강한 훈련만이 좋은 성악가로 만든다고 믿었다. 레슨을 받는 과정 중의 하나는 피아노 아래에 놓여있는 빨간 비로도 상자를 열어보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그 상자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서 못견딜 지경이었다. 어떤 사람은 좋은 향수가 들어있어서 힘든 레슨을 받을 때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 또 어떤 사람은 박자를 맞추어주는 메트로놈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맛있는 과자가 들어 있어서 레슨을 마친후 하나씩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날 레슨을 하고 있던 프렘스타드는 빨간 비로도 상자를 꺼내어 학생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랬더니 학생은 아마 다른 학생들로부터 상자에 무엇이 들었는지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던지 '선생님, 저는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고 있어요! 정말 보고 싶지 않아요! 만일 그냥 보여주신다면 가버리겠어요!'라고 소리쳤다. 프렘스타드는 '나중에 상심하는 것보다 지금 실망하는 것이 나을텐데'라고 말했다. 상자 안에는소금에 절인 사람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아마 어떤 사형수의 머리인듯 싶다. 프렘스타드는 오페라 성악가가 되려면 겁이 없어야 하고 배짱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레슨 시간에 사람의 잘린 머리를 보여주었다.

 

발키레 역의 올리브 프렘스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