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순례교회

마리아 플라인 순례교회(Wallfahrtskirche Maria Plain) - 잘츠부르크

정준극 2010. 11. 9. 11:38

마리아 플라인 순례교회(Wallfahrtskirche Maria Plain) - 잘츠부르크

 

플라인버그에 있는 마리아 플라인 순례교회

 

마리아 플라인 순례교회는 잘츠부르크 동북쪽 베르그하임(Bergheim) 마을에 있는 플라인버그(Plainberg) 산에 있기 때문에 마리아 플라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플라이버그에 올라가면 잘츠부르크의 아름다운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래서 순례자들도 많지만 하이킹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교회 앞에는 커다란 보리수 나무가 있어서 봄날에 꽃향기를 날린다. 그래서인지 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많이 올린다. 잘츠부르크에는 대성당을 비롯하여 여러 교회가 있지만 플라인버그에 있는 마리아 플라인 교회가 순례교회로서 잘 알려져 있어서 잘츠부르크를 방문하는 신실한 가톨릭 신자들은 다른데는 구경하지 못해도 이 교회만은 찾아와서 기도한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에 살 때에 가족들과 함께 이 교회를 자주 찾아와서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혹자는 모차르트의 대관식미사곡(KV317)이 이 교회를 위해 작곡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 F 장조 미사곡(KV192)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마리아 플라인 순례교회는 모차르트와 인연이 있는 교회이다. 이 교회가 순례교회가 된 것은 역시 30년 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리아 플라인 순례교회의 겨울

 

바바리아 지방의 레겐(Regen)마을의 어떤 빵집에 성모와 아기예수를 그린 성화가 있었다. 30년 전쟁으로 이 빵집은 불에 탔지만 놀랍게도 성모와 아기예수를 그린 성화는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하였다. 얼마후 잘츠부르크 인근의 플라인버그에 영지를 갖게 된 아르굴라 폰 그리밍(Argula von Grimming) 이라는 사람이 이 성화를 플라인버그에 작은 예배처를 새로 짓고 그곳에 가져와 보관하였다. 그로부터 사람들이 플라인버그의 성화를 보고 기도하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리밍의 아들인 루돌프가 성화를 더욱 잘 보관하기 위해서 네쎌봥(Nesselwang)성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플라인버그의 예배처에 순례자들이 자꾸 찾아오므로 하는수 없이 복사본을 만들어 모셔놓았다. 그것이 오늘날 마리아 플라인 순례교회에 있는 성화이다. 순례자들이 무수히 찾아오자 잘츠부르크 대주교인 막스 간돌프(Max Gandolf)는 1671년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로 했다. 조반니 안토니오 다리오라는 건축가가 설계하여 1674년 8월 12일 봉헌했다. 오리지널 성화는 2년후인 1676년 잘츠부르크로 가져와 주교관에 보존하였다.

 

기적의 성모와 아기예수 그림. 작자 미상. 얼굴 둘레의 일곱개 별은 성모의 일곱가지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마리아 트로스트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웅장한 모습의 마리아 플라인 순례교회는 3층으로 되어 있는 것과 두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잘츠부르크 구시가지에 있는 대성당을 모델로 건설했다고 한다. 물론 마리아 플라인은 시골풍의 순례교회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보인다. 교회의 장식은 푸른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 도금되어 있는 조각으로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중앙제단에는 프란체스코 데 네베(Francesco de Neve)가 그린 성모승천화가 설치되어 있으며 양쪽 기둥에는 성자들의 기념상이 장엄하게 서있다. 기적의 성모와 아기예수 그림은 중앙 제단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회중석과 제단 사이에는 아름다운 철책이 놓여 있다. 거장 요한네스 토마스의 작품으로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걸작인 철책이다.

 

마리아 플라인 순례교회의 미사장면. 회중석과 제단 사이에 지극히 아름다운 철책이 있다.

 

원래의 목조 마리아 플라인 교회. 1710년에 세운 것이다. 아직도 잘 간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