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순례교회

마리아 드라이아이헨 교회(Basilika Maria Dreieichen) - 호른

정준극 2010. 11. 11. 17:48

마리아 드라이아이헨 교회(Basilika Maria Dreieichen) - 호른

 

마리아 드라이아이헨 순례교회(Credit: Harald Hartmann). 이런 비슷한 모습의 교회들은 오스트리아의 도처에 있다.

 

드라이아이헨이라는 말은 떡갈나무(영어의 Oak)에 가지가 세개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아이헤(Eiche)는 독일에 많이 있는 나무이다. 그래서 독일나무(Der Deutsche Baum)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이다. 마리아 드라이아이헨 순례교회는 니더외스터라이히 의 로젠부르크-몰트(Rosenburg-Mold) 지방의 호른 마을에 있다. 이 교회는 1957년에 교황청에 의해 특별교회(Basilika minor)로 승격되었다. 어떤 유래가 있을까? 살펴보니 다음과 같다.

 

마리아 드라이아이헨 순례교회의 역사 이야기를 그린 그림. 가운데 떡갈나무에 피에타상을 설치해 놓았다.

 

1656년쯤해서 호른에 살고 있는 모피장인인 마티아스 봐인버거(Mathias Weinberger)라는 사람이 호른에서 에겐부르크(Eggenburg)로 가는 길에 몰더버그(Molderberg)를 지날 때에 큰 가지가 세개 붙은 어떤 떡갈나무를 보고 '거참 신통하게 생겼다'라고 생각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마치 송진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베스퍼빌트(Vesperbild: 또는 Pieta: 십자가에서 세상을 떠난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성모의 상)가 있어서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떡갈나무에  새겨진 피에타를 보고 기도하며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빌었다. 여러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었으며 어떤 사람은 병고침을 얻기도 했다. 떡갈나무의 피에타는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나무에 불이 나서 피에타가 없어지자 당시 호른의 시장이던 세바스티안 프리드리히가 1679년 새로 목제 피에타를 크게 만들어 떡달나무에 설치해 놓았다. 이것 역시 영험이 있다는 소문이 났다. 그로부터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1700년에 로젠부르크-몰트 지방의 영주인 호요스(Hoyos)백작이 나무가 있던 자리에 작은 기도처를 세우고 목제 피에타를 모셔놓았다. 당시에는 그 기도처가 은자의 암자로서 이용되었다. 그후 1730년부터 3년에 걸쳐 석조 교회가 건립되었다. 교회로서의 면모가 이루어지자 인근 알텐부르크(Altenburg)수도원에 속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대부분 교회가 수도원의 보호를 받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호른의 알텐부르크 수도원

 

현재의 건물로 개축된 것은 1750년이었다. 알텐보르크 수도원장인 플라치두스 무흐(Placidus Much)라는 양반이 확장개축을 주도하였다. 당당한 알텐부르크 수도원의 교회로서 명함을 내밀려면 아무래도 장엄한 교회로 만드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782년에는 요셉2세 황제의 수도원 및 교회 정비 정책에 따라 폐쇄되었으나 몇년후 원대복귀되었고 계속 확장이 진척되었다. 본당 양편에 탑이 세워지고 돔과 같은 천정도 마련되었다. 벽감에는 마리아 드라이아이헨의 피에타가 있으며 양 옆으로는 베드로와 바울의 상이 세워졌다. 그 위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불꽃처럼 표현되어 있다. 교회 내부는 로코코 양식의 장식이 되어 있다.

 

마리아 드라이아이헨 순례교회의 중앙제단

 

중앙제단 뒤편에는 떡갈나무의 세가지중 두개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