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순례교회

마리아 슈몰른(Maria Schmolln) 순례지 - 브라우나우 암 인

정준극 2010. 11. 15. 11:18

마리아 슈몰른(Maria Schmolln) 순례지 - 브라우나우 암 인

 

마리아 슈몰른 순례교회

 

오버외스터라이히의 인피어르텔(Innviertel) 지방에 마리아 슈몰른이라는 마을이 있다. 인피어르텔은 현재의 브라우나우 암 인(Braunau am Inn) 지방으로서 이곳은 사실상 히틀러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인피어르텔의 마리아 슈몰른 마을은 오스트리아에서도 이름난 순례지이다. 이곳의 마리아 슈몰른 순례교회에는 해마나 수많은 순례자들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마리아 성화가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고 있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1735년에 농부인 미하엘 프리봐써(Michael Priewasser)라는 사람이 집을 나가 소식을 모르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마을의 어떤 나무에 마리아 그림을 걸어 놓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런 내력을 알고 감동하여 성모화를 보면서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성모화에게 기도하였더니 병고침을 받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성모화는 점점 유명해졌다. 그리하여 1784년 그 자리에 작은 목조 예배처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예배처는 1810년 당국의 교회 및 수도원 정비정책에 따라 문을 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모화를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850년 비록 목조이지만 다시 예배처를 건설하고 그 안에 보관하였다. 그러나 예배처가 너무 좁아서 순례자들을 수용하는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마리아 슈몰른 순례교회의 은사의 채플

 

마을 사람들은 물질과 정성을 합하여 새로 큰 교회를 짓기로 결정했다. 공사는 1860년부터 시작되었다. 3년만에 새로운 교회가 완성되었다. 처음에 성모화를 나무에 걸어 놓은 때로부터 1백년 이상이 지난 때였다. 교회의 완성과 함께 마을의 이름도 마리아 슈몰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리아 슈몰른 마을은 처음에 바이에른 영주의 영지에 속하였으나 테센(Teschen)이 독립하자 인피어르텔(당시에는 인바이에른: Innbaiern)이라는 구역이 되었고 나폴레옹 전쟁 중에는 잠시동안이지만 다시 바이에른에 속하였다가 1814년 오베르외스터라이히 주에 속하게 되었다. 1938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후에는 '가우 오베르도나우'(Gau Oberdonau)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전쟁이 끝나자 다시 오베르외스터라이히 주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마리아 슈몰른 순례교회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승들이 남아서 관리하고 있지만 독립된 교구교회이다. 마리아 슈몰른 순례교회의 종탑은 유명하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49년에 설치되었는데 아름다운 소리로서 인근에 명성이 자자하다. 인근의 엥겔스첼에 있는 수도원과 교회는 아름다운 경치로서 이름이 높다.

 

마리아 슈몰른 순례교회의 중앙제단

마리아 슈몰른 순례교회 출입문

엥겔스첼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