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동서음식의 교차로

잃어버린 레시페

정준극 2010. 12. 20. 21:53

잃어버린 레시페

 

'비너 퀴헤'(비엔나 요리)가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세기 초반, '비엔나 회의'가 열리던 때였다. 1814-15년의 2년 동안 유럽의 제왕들과 군주들이 비엔나에 모여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 판도를 결정하는 회의를 가졌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의 맹주 역할을 되찾고 싶었던 오스트리아는 메테르니히 수상을 앞세워 열국의 대표들을 매일이면 매일 파티와 무도회로 지새게 하여 회의를 유리하게 이끌어가고자 했다. 매일 파티를 열다보니 음식준비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으며 더구나 열국의 군주들을 위한 파티이므로 최고급의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주방장들은 어떤 요리가 훌륭했었는지를 기록으로 남겨 다음 파티에 참고가 되도록 했다. 아마 이때만큼 요리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연구된 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른바 '비너 퀴헤'가 공식화되었다. 카이저슈마른, 비너 슈니첼이 개발된 것도 이때였으며 수많은 달콤한 디저트가 꽃을 피운것도 이 때였다.

 

프란츠 요셉 황제가 즐겨 먹었던 타펠슈피츠. 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타펠슈피츠를 주문하여 먹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부익부가 있으면 빈익빈이 있기 마련이었으니 한편에서는 열국의 제왕들과 귀족들을 위한 음식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음식은 점점 더 사정이 나뻐지기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고기가 없어서 내장이나 먹어야 했다. 그래서 귀족들이 먹을수 없다고 하여 버리는 가축의 내장, 허파, 기도, 혈관으로 만든 음식이 생겨났다. 보이슐(Beuschl 또는 Beuschel)이란 음식은 대표적이다. 요즘에는 비엔나의 식당에서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전에는 서민음식으로서 꽤나 인기가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송아지의 허마나 심장을 야채와 함께 끓인 후 조물조물 잘라서 서브하는 음식이다. 소나 오리, 거위 등 가축의 간으로 만든 치즈인 레버케제(Leberkäse)도 이때에 생겨났다. 전설적이라고 까지 말할수 있는 비엔나 음식이었다.


비엔나 스타일의 보이슐. 점심 한끼 용으로 인기가 있다.

 

레버캐제. 식빵이나 파운드케이크처럼 생겼지만 치즈이다.


19세기에 꽃피운 '비너 퀴헤'가 그렇게도 유명했지만 그 중에서 상당부분은 오늘날 비엔나의 식당에서 거의 찾아볼수 없다. 말하자면 '잃어버린 레시페'가 되었다. 시골의 여관식당에서는 그나마 오랫동안 전통적인 '비너 퀴헤'를 구경할수 있었지만 그것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편하게 만들수 있는 식단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로 인하여 전통적인 음식이 더 이상 보존되지 못한 것이 큰 이유이다. 음식이란 것은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격변의 정세를 경험한 오스트리아로서 전통만 고집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또 하나 이유는 1차 대전 이후 제국에 속하여 있던 여러 민족들이 각각 독립해서 떨어져 나가자 비엔나 자체의 음식이라고 고집할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국의 시절에는 헝가리 음식이나 보헤미아의 음식이 모두 '비너 퀴헤'의 범주에 들어갔지만 이들 나라들이 독립을 하자 더 이상 헝가리 음식을 비엔나 음식이라고 주장할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지저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은 사라지고 대신 먹기에 편한 음식, 특히 건강식이 유행하게 되자 전통적인 음식들은 자연도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들어서서 전통 비너 퀴헤를 다시 발굴하여 발전시키자는 의견이 솟아나고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나슈맑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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