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더 알기/오스트리아 세시기

오스트리아 세시기 - 1

정준극 2010. 12. 28. 12:43

오스트리아 세시기(歲時記) - 1

가톨릭 센스의 전통 축제 탐구

 

[시작하면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유럽 한쪽에 있는 먼 나라 오스트리아라고 하면 전통의상인 디른들(Dirndl)을 입은 여인들과 가죽바지(Lederhose)를 입은 남자들이 알프스의 산록에서 한가롭게 맥주를 마시면서 요들송을 부르던지 또는 담소나 하며 지내는 나라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오스트리아의 관광마피아들은 이러한 목가적인 풍경을 장사속의 로맨틱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하여 모차르트와 요한 슈트라우스와 클림트와 씨씨를 오스트라아를 대표하는 관광홍보대사들로 만들어 놓았다. 과거의 화려했던 제국의 영광을 되새기게 하는 데에는 이만한 인물들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오스트리아의 관광산업은 사실 이 네 사람의 탐미적인 인물들 때문에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직도 오스트리아의 곳곳에서는 전통적인 풍습이 살아 숨쉬고 있다. 각종 풍습과 축제와 이벤트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월 대보름에는 쥐불놀이를 하며 단오에는 그네를 타고 씨름을 하는 그런 풍습을 말한다. 오스트리아의 축제와 이벤트는 전통적으로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축제는 기독교가 유입되기 전의 이교도적인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 가톨릭 종교생활과 관련이 있다. 오스트리아는 비엔나에서 밖으로 조금만 나가기만 해도 목가적인 전원풍경이거나 또는 알프스의 장관이 펼쳐진다. 시골일수록 시골다운 풍습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오스트리아의 서쪽 지방은 바바리아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으며 동쪽 지방은 슬라브의 영향이 남아 있다. 어떤 풍습과 축제들이 있는지 월별로 살펴본다. 오스트리아 세시기이다.

 

우선 본 블로그의 방문자들에게 '축 성탄 하 2011년 신년'의 인사를 드리고자 한다. Gesegnete Weihnachten und ein Gutes Neues Jahr는 복된 성탄과 좋은 새해라는 뜻이다. 독일어에서 크리스마스는 봐이나흐트(Weihnacht)라고 한다. '성스러운 밤'이라는 뜻이다. 사진은 티롤지방의 산골 마을이다. 한 폭의 그림이다. 하기야 세계적으로 크리스마스에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바로 오스트리아가 원산지이나 알아 모셔야 할 것이다.

 

[1월]

오스트리아의 새해는 요란한 총소리로부터 시작한다. 이를 '노이야르스쉬쎈'(Neujahrsschiessen)이라고 부른다. '신년 총쏘기'라는 뜻이다. 참으로 신통하게도 새해를 맞이하면 오스트리아의 거의 전국에서는 마을마다 어느 틈엔가 소총부대가 등장하여 공터에 죽 늘어서서 한바탕 총을 쏘는 풍습이 있다. 다섯명도 좋고 열명도 좋다. 각자 나름대로의 유니폼을 입고 고물상도 겨우 받을까 말까 한 구닥다리 총을 들고 나와서 마을 광장이나 교회 앞, 또는 언덕 위에 올라가서 하늘에 대고 총을 쏜다. 악귀를 쫓아내려고 그러는것 같다. 혹시 시골에 휴가차 갔다가 새해를 맞이하여 모처럼 늦잠이라도 자려고 하는데 밖에서 탕탕하며 총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우우 몰려가더라도 놀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새해맞이 이벤트일 뿐이다. 소총부대는 어디서 등장한 것일까? 물론 마을 사람들이다. 마을의 무슨무슨 동호회 사람들이다. 다른 나라에도 있겠지만 오스트리아에는 거의 모든 마을마다 동호회(동아리)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 '술마시기 동호회'라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소총 쏘기 동호회'가 없을리가 없다. 이들이 집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옛날 17세기의 소총을 들고 나와서 탕탕 총을 쏘는 것이다. 아무튼 재미난 풍습이므로 기왕에 일찍 일어나서 구경하는 것도 건강에 좋다. 1월 1일을 베치르크쉬첸타그(Bezirkschützentag)라고 부르기도 한다. 베치르크는 우리 식으로 군(郡)이나 구(區)를 말하고 쉬첸타그는 사격의 날이라는 뜻이다.

 

 

노이야르스쉬쎈(새해 총쏘기라는 뜻이다)

 

비엔나의 새해를 알리는 또 하나의 헤랄드는 신년음악회(노이야르스콘체르트: Neujahrskonzert)이다. 매년 1월 1일 오전 11시에 비엔나악우회의 황금홀에서 비엔나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음악회이다. 비엔나신년음악회의 실황은 전국(실제로는 세계 각국)으로 중계되기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물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셈이다. 비엔나신년음악회는 입장권을 구하기도 힘들고 게다가 엄청 비싸기 때문에 집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TV 중계를 보는 것이 훨씬 속편했다. 더구나 TV 로 보면 연주회장에서는 볼수 없는 슈타츠오퍼 발레단의 우아하고 경쾌한 왈츠나 폴카의 모습도 볼수 있어서 일석이조였다. 대개 쇤브룬 궁전이나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발레를 하는 씬이 비엔나악우회에서의 공연 도중 TV 로 중계된다. 그러나 얼마전부터는 입장권 구매에 따른 뒷말을 없애기 위해 콤퓨터에 의한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부자가 아닌더라도 신년음악회를 관람할수 있다.

 

비엔나 악우회에서의 비엔나신념음악회

 

1월 5일에는 글뢰클러(Glöckler) 라고 하는 풍습이 있다. 잘츠캄머구트 지방의 오랜 풍습이다. 중세 이전의 우상숭배 시기로부터 비롯하였다고 한다. 흰 옷을 입은 젊은 청년들이 머리에는 별 또는 반달 모양의 큰 물건을 뒤집어 쓰고 마을의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는 풍습이다. 허리와 무릎에는 방울을 달고 다니기 때문에 혹시라도 춤을 출 때에는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유쾌하게 들린다. 땅 속에 있는 씨앗과 자연의 정령들을 긴 동면에서 깨우는 행동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오스트리아의 거의 모든 시골에서 이같은 풍습이 있었지만 가톨릭 교회가 지나친 우상숭배 사상이라고 하여 금지했기 때문에 지금은 잘츠캄머구트 등 일부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튼 유쾌한 풍습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지신밟기 놀이를 보는 것 같다. 글뢰클러라는 말은 방울을 단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문덴의 글뢰클러 행진

 

1월 6일은 가톨릭의 예수공현 축일이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드린 날이다. 예수공연은 이방인들이 처음으로 아기 예수에게 경배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로부터 12일째 밤이다. 이날 하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마을의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면서 예수께서 태어나신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며 노래를 부르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축복의 말을 전한다. 그러면 집주인은 아이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어준다. 아이들은 돈을 모아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사용한다. 이 행사는 주로 교회의 유년대(Jungschar: 융사르)가 맡아 한다. 융샤르는 말하자면 보이스카웃과 같은 그룹이다.

 

교회 융샤르(유년대) 어린이들이 선생님들의 지도아래 가정방문을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1월 6일은 또한 라우내헤테(Raunächte)이기도 하다. 바바리아, 잘츠부르크, 동부 티롤, 잘츠캄머구트 지방에서는 밤중에 페르흐텐(Perchten) 들이 모여 한바탕 소란을 떤다. 풍요로운 농사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이 풍습은 2월 21일 태양의 변화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페르흐텐은 괴상한 짐승이나 마귀처럼 생긴 탈을 쓴 사람을 말한다. 말하자면 악귀를 물리치는 샤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페르흐텐의 모습을 한 청소년들이 밤중에 한바탕 소란을 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