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세시기 - 9
[12월]
크리스마스 시장. 볼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1년을 마무리하는 12월에는 대강절(Advent: 강림절)과 크리스마스(Weihnacht)와 관련된 행사로 수놓아 진다. 잘츠캄머구트의 아우스제어란트(Ausseerland)에서는 1월의 글뢰클러처럼 아이들이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축복의 말을 전한다. 우상숭배 시절부터 전해내려오던 풍습이다. 11월 말부터는 오스트리아 전국에서 크리스마스 시장이 개설된다. 크리스마스 시장에는 눈이 오는 날이면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든다. 모여서 푼슈(Punsch)라는 음료수를 사서 마신다. 포도주를 뜨겁게 데운 것이다. 도수는 낮지만 알콜 기운이 확 돌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 제격인 음료수이다. 지방에 따라 이를 글뤼봐인(Glühwein), 즉 벌겋게 달군 포도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시장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품 등 공예품, 치즈와 소시지등 식품, 인형이나 의상등 전통물품들을 팔지만 형편없는 크리스마스 시장에서는 중국제 싸구려 물건들을 파는 경우가 있다. 시나몬(계피)가루를 뿌린 과자와 빵은 시즌에 맞는 음식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침트슈테르네(Zimtsterne)라는 시나몬 쿠키를 만들어 먹는다. 별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침트슈테르네라고 부른다. 하지만 5각형이 아니라 6각형이다. 침트(Zimt)는 계피를 말한다. 군밤(마로니)와 만델른(Mandeln: 알몬드) 군것도 인기가 있다.
비엔나 시청의 크리스마스 시장
12월 4일은 잔크트 바르바라(St Barbara: 성바바라)의 날이다. 잔크트 바르바라는 광부들의 수호성인이다. 하지만 오늘날 오스트리아에는 광부들이 거의 없어서 별로 오리지널 스타일로 축하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일부 남아 있는 광부들과 광산기념관의 직원들이 모여서 축하하기도 한다. 대학의 지질학과 학생들은 이날 대단치도 않은 파티를 연다. 오스트리아의 대학은 예로부터 광산이나 지질학과가 유명했다. 지질학과 학생들은 아마 자기들이 광부들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잔크트 바르바라 축제는 특별히 고려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런 날이 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족하다.
성바바라 축제의 행진에 참가한 어떤 어린이. 성바바라의 역할이다.
잠시, 성바르바라에 대하여 소개코자 한다. 성바르바라는 오늘날 터키의 이즈메트(Izmet)에서 부유한 상인인 디오스쿠로스의 딸로 태어났다. 바르바라의 아버지는 딸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멀리 여행을 떠날 때에는 딸을 창문이 두개밖에 없는 높은 탑에 가두었다. 아버지가 멀리 떠났다가 돌아오자 아버지는 탑에 창문이 또 하나 생긴 것을 알고 깜짝 놀랬다. 바르바라는 그동안 의사로 변장한 신부를 들어오게 하여 세례를 받고 삼위일체를 상징하기 위해 창을 하나 더 만들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크게 노하여 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딸을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바르바라는 지하감옥에 갈 때에 옷 속에 벚나무 가지를 하나 가지고 갔다. 바르바라는 지하감옥에서 자기가 마실 물을 마시지 않고 벚나무 가지에 물을 주었다. 바르바라를 처형하는 날, 벚나무 가지는 꽃을 활짝 피웠다. 이로부터 성바바라의 날인 12월 4일에 벚나무 가지를 꺾어서 집에 가져와 화병에 담아두고 물을 주며 크리스마스 때까지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풍습이 생겼다. 어떤 지방에서는 성바바라의 날에 체리를 넣고 만든 빵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다. 이를 클레첸브로트(Kletzenbrot)라고 부른다. 성바바라를 그린 성화를 보면 그가 벚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오늘날에도 잘츠부르크 지방에서는 성바바라의 날에 벚나무 가지를 꺾어 병에 넣어 기르는 풍습이 있다. 벚꽃이 크리스마스까지 피면 축복을 받은 것이며 새해에는 건강하게 지내게 된다고 한다. 성바바라가 광부들의 수호성인 것은 그가 지하감옥에서 지내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벚나무 꽃을 피게 했기 때문인듯 싶다.
바르바라가 아버지의 분노를 피하고 있다. 손에는 벚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루벤스 그림.
12월 5일은 크람푸스타그(Krampustag: 크람푸스의 날)이다. 독일어의 크람푸스라는 단어는 발톱이라는 뜻이다. 이날 젊은이들은 악마의 탈을 쓰고 모피 옷을 입으며 황소 꼬리를 붙이고 나뭇가지들을 들고 다니며 소란을 떤다. 동부 티롤, 잘츠부르크, 바바리아에서는 젊은이들이 페르흐텐(Perchten)으로 분장하여 행진한다. 이를 페르흐텐로이페(Perchtenläufe)라고 부른다. 페르흐텐은 이교도의 악귀로서 보기에 끔찍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퍼레이드는 장관이다. 가장 유명한 페르흐텐로이페는 잘츠부르크 북쪽 헨도르프(Henndorf)에서 열린다.
마을 청년들이 페르흐텐로이페를 위해 모여있다.
12월 6일은 성니콜라스 데이이다. 성니콜라스는 오스트리아판 산타클로스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날 성니콜라스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때처럼 아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선물을 주지 않는다. 오늘날 산타클로스는 너무 상업화되어서 어른들까지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이 생겼지만 원래 오스트리아에서는 전통적으로 크리스트킨트(Christkind)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크리스트킨트는 아기예수+ 천사처럼 분장한 아가씨나 어린이를 말한다. 이때 성니콜라스는 12월 6일에 주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진짜 성니콜라스이며 미국에서처럼 뚱뚱한 체구에 하얀 수염을 휘날리는 마음씨 좋게 보이는 노인네가 순록마차를 타고 나타나지는 않는다. 성니콜라스는 간혹 비서 겸 수종으로서 크람푸스를 데리고 나타난다. 크람푸스는 말 안들었던 아이들을 벌주는 역할이다. 마치 성니콜라스는 좋은 경찰(Good cop)이고 크람푸스는 나쁜 경찰(Bad cop)과 같다. 성니콜라스는 전통적으로 사과와 같은 과일, 너트, 사탕등 조그만 선물을 나누어 준다. 진짜 큰 선물은 크리스마스 날에 받기 때문이다.
크리스트킨트 역할을 하고 있는 어떤 아가씨. 오스트리아에서는 크리스트킨트가 선물을 나누어 준다고 믿는다.
12월 8일은 성모수태고지일(Maria Empfängnis)이다. 예전에는 은행이 휴무였으니 요즘엔 일부 상점만이 문을 닫는다. 크리스마스 쇼핑을 고려하여 은행이 쉬는 것을 금지했다. 아무튼 이날 쇼핑을 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온동리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사려고 상점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알프스 지방에서는 이날 사람들이 성모 성화나 상모상을 들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벌인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런 풍습을 거의 지키지 않고 있다.
비엔나 라트하우스 앞의 크리스마스 시장
대강절(Advent) 기간중에는 Adventskranz(아드벤트크란츠)라는 둥근 나뭇가지 장식을 문에 걸어 놓는 풍습이 있다. 아드벤트크란츠에는 일반적으로 네개의 양초를 걸어 놓고 1주일마다 한개씩 불을 붙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네개의 양초에 모두 불이 밝혀진다.
아드벤트크란츠. 촛불을 네개 놓고서 크리스마스 4주전부터 한개씩 불을 붙인다. 보통 테이블 위에 놓아둔다.
대강절 기간 동안에는 교회나 상점, 그리고 가정에서 아기 예수 탄생장면을 재현한 모형을 전시한다. 이를 크리페(Krippe)라고 하는데 아기 예수를 누였던 구유라는 뜻이다. 비엔나에서는 그라벤 한쪽에 있는 페터스키르헤(성베드로교회)의 크리펜 전시가 가장 규모가 크다. 어떤 교회에서는 대단히 규모가 큰 구유장면을 만들어 놓아 모두들 경배토록 하고 있다. 어떤 교회의 구유장면은 백년도 훨씬 넘은 것이어서 무척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구유장면을 모형으로 만든 크리페. 동방박사,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 천사...모두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12월 24일)가 크리스마스 날 보다도 더 중요하다. 이날 상점들은 대개 낮 열두시 쯤이면 문을 닫는다. 교회에서는 한 밤중의 미사가 진행되는데 이를 Christmette(크리스트메테)라고 부른다. 밤 미사라는 뜻이다. 미사는 대개 촛불을 든 성도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끝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지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 선물을 놓아둔다. 다른 나라에서는 12월 25일에 선물을 주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을 준다.
크리스트메테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로 가는 성도들(그림)
12월 25일과 박싱데이라고 하는 12월 26일은 오스트리아에서 공휴일이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공휴일을 기하여 대개 먼 곳에 있는 친척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많이 먹고 마시고 떠든다. 친척을 방문할 때에는 선물도 준비해 가는데 가만히 보면 별로 쓸데가 없는 물건들을 선물이라고 가져가서 준다. 박싱데이는 성스테판의 날이기도 하다.
페터스키르헤.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을 축소하여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과연! 내부의 장식은 대단히 화려하고 아름답다.
12월 31일, 즉 신년전야는 오스트리아에서 질베스터(Silvester)라고 부른다. 12월 31일이 성질베스터(St Sylvester)의 날이기 때문이다. 주로 파티를 열며 자정에는 불꽃놀이로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한다. 사람들은 왈츠를 추고 샴페인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너무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바람에 취해서 비틀 거리는 사람들도 많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는 망년회 파티와 관련된 내용이다. 오페레타 '박쥐'는 비엔나에서는 물론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12월 31일 밤에 공연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아무튼 어쩌다가 이날 오스트리아에 있게 된다면 한밤중에 불꽃놀이 소리로 시끄러운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들과 아랍 사람들이 무식하게 크게 떠드는 소리도 참아야 한다. 특히 잘츠부르크에서 그러하다. 이날 밖에 나가서 무얼 식사라도 하려면 미리 식당을 알아두고 예약을 하는 것이 필수이다.
장크트 질베스터(성실베스터) 교황이 용을 죽이고 용으로 인하여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고 있다. 장크트 질베스터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이 로마 황제로 있을 때 교황을 지냈다. 그가 죽은 자들을 부활시킨 기적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상징으로 삼게 되어 12월 31일을 잔크트 질베스터 축일로 정하였다고 한다. 장크트 질베스터가 교황으로 있을 때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려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이 채택되었으며 또한 1주일에 하루를 주일로 성수토록 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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