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베이스

핀랜드의 영광 마르티 탈벨라(Martti Talvela)

정준극 2011. 1. 5. 15:52

핀랜드의 영광 마르티 탈벨라(Martti Talvela)

 

마르티 탈벨라

 

마르티 탈벨라(1935-1989)는 핀랜드가 낳은 위대한 베이스이다. 핀랜드의 히이톨라(Hiitola)에서 태어난 그는 핀란드의 라티(Lahti)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1960년 헬싱키에서 리골레토의 스파라푸칠레로서 오페라에 데뷔하였다. 그는 키가 2미터 3센티나 되는 거구였다. 아마 역사상 가장 키가 큰 오페라 베이스일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권투선수가 되려고 운동을 했다. 원래 그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고 사범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졸업한후 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스웨덴에서 성악 공부를 하고 스톡홀름의 왕립오페라극장(오페란)에서 역할을 맡게되어 음악가의 길로 접어 들었다. 그리고 1962년부터는 베를린의 도이치 오퍼와 계약을 맺어 무대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1970년에는 당시 서베를린 당국이 그에게 오페라 성악가로서는 가장 큰 영광인 캄머쟁거의 타이틀을 수여하였다.

 

 

그는 1972년부터 79년까지 7년동안 핀랜드의 사본린나(Savonlinna) 오페라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이후 뉴욕으로 진출한 그는 메트로폴리탄에서 1974-87년 기간에 보리스 고두노프만 약 40회나 맡았다. 그는 바그너의 작품에도 계속하여 출연하였다. 그가 즐겨 맡았던 역할은 마크왕(트리스탄과 이졸데), 훈딩, 파솔트, 파프너, 하겐 등이었다. 특히 하겐에 대하여는 '더할수 없이 완벽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외에도 베이스로서 자라스트로(마술피리), 도세페이, 그레민 공자(유닌 오네긴), 필립1세(돈 카를로스), 종교재판관(돈 카를로스), 그리고 그의 경력의 후반기에는 이반 수자닌(글링카)으로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마지막으로 취입하고 음악계에서 은퇴하였다. 그때쯤해서 그는 병마와 싸우느라고 몸이 대단히 허약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겨울나그네'는 마음 속으로부터의 따듯함이 배어 있는 진정한 연주라는 평을 받았다.

 

 

그의 음성은 깊이가 있고 어두운 음색이었지만 성량이 매우 풍부하여 저음에서도 다른 베이스들 같으면 숨을 쉬어야만 했지만 그는 숨을 쉬지 않았다. 그렇다고 음성에서 풍요로움을 잃은 일은 없다. 그는 베이스로서 위엄이 있었다. 그리고 인자함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하겐이나 종교재판관 같은 악역을 맡았어도 심오하면서도 따듯한 인간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198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전의 8년동안 동부 핀랜드에서 농부로서 밭에 나가 일을 하며 지냈다. 그러는 중에도 간혹 오페라에 출연하였다. 실상, 그의 건강은 1975년부터 당뇨병 진단을 받은후 서서히 나빠지시 시작하였다. 게다가 중풍까지 겹쳤다. 1982년에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할 때에는 두 번이나 심장마비를 일으킨 일이 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는 위장 장애가 생겨서 음식을 먹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평소 거구의 든든한 모습이던 그는 몹시 수척하여 거의 몰라볼 정도가 되었다. 마르티 탈벨라는 1989년 동부 핀랜드의 농장에서 그의 딸의 결혼식을 거행하고 피로연을 할 때에 옆집 아주머니와 춤을 추다가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향년 54세라는 아까운 나이였다. 하지만 핀랜드 국민들에게 마르티 탈벨라라는 이름은 조국을 빛낸 영광의 이름이었다.

 

젊은 시절에 내놓은 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