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베이스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코리언 연광철(Youn Kwangchul)

정준극 2011. 12. 15. 11:00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코리언 연광철(Youn Kwangchul)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인 비엔나 슈타츠오퍼에 한국 성악가들이 서너명이나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이름들이 슈타츠오퍼 앙상블 리스트에 엄연히 올라와 있음을 보면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다. 이제 한국의 성악가들도 비엔나 슈타츠오퍼에 당당히 진출하여 세계의 성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연광철을 본 블로그에 소개하는 바이다. 연광철의 지나온 길을 들어보면 과연 새마을 성공사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어떤 분은 연광철을 베이스라고 주장하지만 Wikipedia 에는 연광철을 바리톤으로 소개하고 있고 Classical Archives 에는 베이스-바리톤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그를 베이스로 분류토록 주장하므로 당분간 베이스의 범주에 넣고자 한다. 필자는 연광철을 만나 본 일도 없고 그의 오페라 공연을 본 일도 없다. 다만, TV에서인가 한번 정도 노래를 들어본 일은 있는 것 같다.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베이스-바리가 더 적당한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마도 그의 문하생 내지 제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를 베이스라고 강력 주장하고 있으므로 일단은 베이스의 카테고리에 두고자 한다. 세상에는 바리톤으로 있다가 베이스를 부르는 사람, 베이스였다가 바리톤의 역할을 맡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음도 부기하고 싶다]

 

연광철은 1960년 충청도 충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산골 두메에 살았기 때문에 12살 때까지 전기도 없는 집에서 살아야 했다. 어린 연광철은 산넘고 물건너 교회를 다녔다.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주위의 사람들은 연광철의 재능을 보고 음대에 들어가 전문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물론 집에서는 탐탁하게 여지기 않았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 무슨 성악가가 된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에서였다. 연광철은 청주대학교 음악학과에 진학할수 있었다. 아들만은 농사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배려 때문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오페라에 출연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국립오페라에서 무대에 올린 조르다노의 페도라(Fedora)에서 드 시리(de Seriex)를 맡은 것이었다. 이후 연광철은 한국에서 여러 오페라에 출연하여 무대의 경험을 높혔다. 연광철은 한국에서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베르디의 '두 사람의 포스카리',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등에 주역으로 출연하였다.

 

그후 그는 불가리아의 소피아음악원으로 건너가 1990-91년에 본격적인 오페라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1991-93년에는 베를린예술원에서 노장 헤르베르트 브라우어 교수에게서 레슨을 받았다. 한국에서 베를린으로 유학을 간 성악도들은 거의 모두 브라우어 교수의 레슨을 받을 만큼 유명한 교수였다. 1993년에 그는 파리에서 열린 국제플라치도 도밍고 성악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도밍고는 1995년에 서울에 와서 연주회를 가질 때에 연광철과 함께 갈라 콘서트를 가졌다.

 

연광철은 1993-94년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하였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자라스트로는 많은 박수를 받은 역할이었다. 1994에는 테아터 운터 덴 린덴에 있는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앙상블 멤버가 되었다. 슈타츠오퍼의 앙상블 멤버가 된다는 것은 성악가로서 이미 정상급에 올라섰다는 것과 같다. 연광철은 이곳에서 자라스트로를 비롯하여 아이다에서의 파라오, 휘델리오에서의 장관 등을 맡았다. 그는 오페라 이외에도 콘서트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함께 모차르트의 진혼곡,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의 솔리스트로서 활동했다. 바이로이트 데뷔는 1996년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야경꾼의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이후 비엔나 슈타츠오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 워싱턴의 국립오페라, 바르셀로나의 그란 테아트로 델 리시우 등에 끊임없이 출연하였다. 2009년 9월부터는 서울음대에서 후진들을 교육하게 되었다.

 

2012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파르지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