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의 장르

오페라의 장르 - 2

정준극 2011. 3. 29. 09:50

 

장르   설명  대표적 첫 작품  대표적인 작품  마지막 작품  대표적 작곡가
 Commedia in musica(이)  오페라 부파의 다른 명칭         
 Commedia per musica(이)  오페라 부파의 다른 명칭    La pastorella nobile(1788)    
 Componimento da camera(이)  Azione teatrale의 다른 명칭        
 Componimento drammatico(이)  Azione teatrale의 다른 명칭        
 Componimento pastorale(이)  Azione teatrale의 다른 명칭    La danza(글룩: 1755)    글룩
 Conte lyrique(프)  Opera lyrique의 다름 명칭    Griselidis(마스네: 1901)    
 Divertimento giocoso(이)  Opera buffa의 다른 명칭        
 Dramatic opera  원래는 Semi-opera의 다름 명칭. 현재는 드라마틱한 오페라를 말함        
 Drame forain(프)  Comedie en vaudeville의 다른 명칭        
 Drame lyrique(프)  '리릭 드라마'라는 의미. 18세기에 사용된 용어. 19세기말 및 20세기 초에는 마스네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오페라 코믹을 설명하는 용어    Echo et Narcisse(1779), La marquise de Brinvilliers(1831), Werther(1892), Brisels(1897), Messidor(1897)    글룩, 샤브리에, 브루노(Bruneau)
 Drama bernesco(이)  Opera buffa의 다른 명칭        
 Dramma comico(이)  Opera buffa의 다른 명칭. 18-19세기. 19세기 중반부터는 레시타니브를 제외한 작품에 사용        
 Dramma comico per musica(이)  Dramma comico의 다른 명칭        
 Dramma di sentimento(이)  Opera semiseria의 다른 명칭        
 Dramma eroicomico(이)  '영웅적 코믹 드라마'라는 의미. 18세기말 영웅적 내용이 가미된 Opera buffa    Orland paladino(1782), Palmira, regina di Persia(1795)    하이든, 살리에리

 Dramma giocoso(이)

복수형은 Dramma giocosi

 '익살스런 드라마'라는 의미. 18세기 말에 Opera buffa로 발전. 심각하거나 비극적인 역할도 코믹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음.    La scuola de' gelosi(1778), La vera costanza(1779), Il viaggio a Reims(1825)    하이든, 모차르트, 살리에리, 사르티(Sarti), 로시니, 도니제티
 Dramma giocoso per musica(이)  Dramma giocoso의 원래 명칭        
 Dramma pastorale(이)  '목가적인 드라마'라는 의미. 18세기에 일부 오페라에 사용한 용어    Eumelio(Agazzari: 1606), La fede riconosciuta(Scarlatti: 1710)    사르티, 스칼라티(Scarlatti)

 Dramma per musica(이)

복수형은 Drammi per musica

 '음악을 위한 드라마'라는 의미. 또는 '음악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연극'이란 뜻. 19세기에는 Opera seria와 같은 의미로 사용.    Erismena(1656), Tito Manlio(1719), Paride ed Elena(1770), Idomeneo(1781), Otello(로시니: 1816)    스칼라티, 카발리(Cavalli), 비발디, 사르티, 글룩, 모차르트

 

드라마 페르 무지카인 '이도메네오'의 한 장면 (레아 울)

 

[참고자료]

- La pastorella nobile(고귀한 양치기 소녀)는 피에트로 알레산드로 구글리엘미(Pietro Alessandro Guglielmi)가 작곡한 2막의 코메디아 페르 무지카이다. 이탈리아어 대본은 프란체스코 사베이로 지니(Francesco Saveiro Zini)가 썼다. 이 오페라는 1788년 4월 15일 나폴리의 테아트로 델 폰도(Teatro del Fondo)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타이틀 롤인 양치기 소녀 유릴라의 역할은 당대의 인기 소프라노인 이레네 토메오니(Irene Tomeoni)가 맡았다. 이 오페라는 구글리엘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나폴리에서의 성공 이후 런던, 파리, 마드리드, 드레스덴, 프라하에서 계속 공연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어떤 때는 L'erede di Belprato(벨프라토의 상속)이라는 타이틀로 공연되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Die Schöne auf dem Lande(시골의 아름다운 여인) 또는 Die adelische Schäferin(고귀한 양치기 소녀) 또는 Das adelige Landmädchen(고귀한 시골 아가씨)라는 타이틀로 공연되기도 했다. 비엔나에서는 1790년대에 가장 인기있는 오페라였다.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의 초연에서 피오르딜리지를 맡았던 아드리아나 페라레세(Adriana Ferrarese)와 역시 '여자는 다 그래'의 초연에서 구글리엘모를 맡았던 프란체스코 베누치(Francesco Benucci)가 이 오페라의 비엔나 초연에서 돈나 플로리다(Donna Florida)와 돈 폴리비오(Don Polibio)를 맡아 공전의 인기를 얻은바 있다. 그런데 당시 페라레세의 애인이었던 로렌조 다 폰테가 비엔나에서 '고귀한 양치기 소녀'의 대본을 독일어로 고치면서 돈나 플로리다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으로 만들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러다가 돈나 플로리다의 역할을 다른 사람이 맡게 되고부터는 구글리엘미의 오리지널 오페라 스토리에 맞게 원상복귀되었다고 한다. 이 오페라의 스토리를 요약하면 돈나 플로리다와 결혼키로 되어 있는 아스톨포(Astolpho) 후작이 우연히 양치는 소녀인 유릴라(Eurilla)를 만나고나서부터 유릴라를 사랑하지만 유릴라는 시장인 돈 폴리비오의 아들인 돈 칼로안드로(Don Calloandro)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며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 Griselidis(그리셀리디)는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된 콩트 리리크(Conte lyrique)로서 쥘르 마스네의 작품이다. 프랑스어 대본은 아르망 실베스트르(Armand Silvestre)와 유제느 모랑(Eugéne Morand)이 썼다. 이 오페라의 원작은 아르망 실베스트르와 유제느 모랑이 공동으로 완성한 희곡인 Griselidis이다. 그리셀리디스는 연극으로서 1891년 5월 15일 파리의 코메디 프랑세스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마스네가 오페라로 만든 그리셀리디스는 1901년 11월 20일 파리의 오페라 코믹에서 초연되었다. 타이틀 롤은 유명한 소프라노 루시앵 브레발(Lucienne Breval)이었다. 그리셀리디스는 초연이후 오페라 코믹에서 첫 6개월 동안 50회의 공연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오페라 '그리셀리디'는 마스네의 가장 성공작 중의 하나이지만 어쩐 일인지 1906년부터는 오페라 극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며 다시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후였다. 오페라 '그리셀리디'의 스토리는 14세기 프로방스에서 시작한다. 아름다운 양치는 여인 그리셀리디는 악마로부터 여러번에 걸쳐 유혹을 받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는다. 그리셀리디는후작인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며 나중에 악마는 추방당한다. 프롤로그에서 사냥을 나온 후작은 숲속에서 그리셀리디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압도당하여 청혼을 한다. 그리셀리디는 후작과 결혼한다. 그리셀리디를 좋아하는 목동 알렝은 낙심한다. 1막은 그로부터 4년 후이다. 그리셀리디는 아들을 낳았고 후작은 십자군 전쟁에 나간다. 악마는 혼자 집에 남아 있는 부인의 정절은 믿을수가 없다고 말한다. 후작은 그리셀리디가 그럴리 없다고 하며 악마와 내기를 한다. 후작은 내기의 징표로서 자기의 반지를 악마에게 준다. 그로부터 6개월후 악마는 노예상인으로 변장하여 그리셀리디를 찾아와 후작의 반지를 보여주며 후작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악마는 그리셀리디의 아들을 납치해 간다. 악마는 이번에는 노인으로 변하여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오는 후작에게 그리셀리디의 부정함을 말한다. 그러나 후작은 노인의 손가락에 자기가 준 반지가 있는 것을 보고 악마의 모든 간계를 파악한다. 후작은 그동안 그리셀리디가 겪은 고통을 위로하며 더욱 깊이 사랑한다.

 

- Echo et Narcisse(에코와 나르시스)는 글룩이 작곡한 드라마 리릭크(Drama lyrique)이다. 글룩이 프랑스 무대를 위해 작곡한 여섯번째의 오페라이다. 대본은 루이 테오도르 폰 추디(Louis Theodor von Tschudi)가 맡았다. '에코와 나르시스'는 1779년 9월 24일 파리 오페라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실패였다. 겨우 12회의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글룩은 비엔나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다시는 파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룩은 비엔나에서 '에코와 나르시스'를 다시 수정하였으나 어쩐 일인지 그것도 겨우 9회의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글룩은 1781년에 세번째의 수정본을 내놓았다. 그나마 환영을 받았으나 자주 공연되지는 못했다. '에코와 나르시스'가 새롭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인 1987년이었다. 르네 야콥스(René Jakobs)가 글룩의 스코어를 상당히 수정하여 슈베칭겐 페스티발에 내놓아서였다. 사실상 르네 야콥스의 리바이벌 작품은 글룩의 오리지널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글룩의 오리지널 악보가 분실되었기 때문에 르네는 전혀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이며 다만 대본만은 오리지널의 것을 사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오페라의 기둥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님프인 에코를 나르시스가 사랑한다. 하지만 아폴로도 에코를 원하고 있다. 아폴로는 나르시스에세 마법을 걸어 물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큐피드가 나르시스의 마법을 풀어서 결국은 에코와 나르시스의 사랑이 결실을 맺도록 해준다.

 

- La marquise de Brinvilliers(브랭빌리에의 후작)은 특이하게도 9명의 작곡가가 협력하여 완성한 드라마 리릭(Drame Lyrique)이다. 1831년 10월 31일 파리 오페라 코믹의 살 벤타도르(Salle Ventadour)에서 초연되었다. 19세기 초반의 프랑스는 제국의 부흥과 함께 문화의 부흥도 일어났다. 오페라는 대관식, 결혼식, 왕자의 탄생, 세례식 등 제국의 여러 행사들을 위해 필요했다. 작곡가들은 짧은 기일 안에 당장 공연해야 할 오페라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러자니 몇명의 작곡가들이 합작하여 오페라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빈번했다. 1831년에 오페라 코믹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극장장인 에밀 루베르(Emile Lubbert)는 새로운 오페라를 성공시켜 난관을 극복코자 했다. 우선 유진 스크리브와 카스틸 블라즈(Castil Blaze)에게 부탁하여 대본을 만들었다. 이 대본을 9명의 작곡가에게 나누어 주고 작곡을 의뢰했다. 다니엘 오버, 데지레-알렉산드르 바통, 앙리 몽땅 베르통, 주세페 마르코 마리아 펠리체 블라니니, 프랑수아-아드리앵 부엘듀, 미셀 카라파, 루이지 케루비니, 페르디낭 에롤드, 페르디난도 파에르이었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브랭빌리에의 후작'이었다. '브랭빌리에의 후작'은 초연 이후 32회의 연속공연을 가졌다. 그다지 성공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만족할만했다. 그후 '브랭빌리에의 후작'은 1836년에 가서야 리바이벌 되었다. 그러나 고작 11회 공연이었다. 그후 더 이상 공연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오페라의 스토리는 브랭빌리에의 후작인 마리-마델레느-마르게리트 도브레이(Marie-Madeleine-Marguerite d'Aubray)에 대한 것이다. 17세기 루이14세 시절의 역사적인 인물로서 그로 인하여 상당수의 프랑스 귀족들이 살인사건과 사탄적인 활동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은 사건을 다룬 것이다.

 

- Briseis(브리세이스 또는 Les amants de Corinthe: 고린도의 연인들)은 엠마누엘 샤브리에가 작곡한 3막의 드라마 리릭이다. 대본은 괴테의 '고린도의 신부'(Die Braut von Korinth)를 바탕으로 에브라힘 마키엘(Ephraim Mikael)과 캐투유 멘데(Catulle Mendes)가 썼다. 멘데는 미카엘과 베르나르 라자레(Bernard Lazare)가 쓴 희곡인 La fiancee de Corinthe(고린도의 약혼자)를 보고 오페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를 샤브리에에게 보여주었다. 당시 샤브리에는 중풍과 매독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서 작곡은 별로 진척을 보지 못하여 겨우 1막을 완성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1막은 75분이나 걸리는 것이었다. 아무튼 1894년에 샤브리에는 뱅셍 댕디(Vincent d'Indy)에게 나머지 파트를 완성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댕디로서는 샤브리에의 스케치를 완벽한 음악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샤브리에가 완성한 1막은 1897년 1월 13일 샤브리에의 3주기 추모일에 파리에서 연주회 형식으로 초연되었다. 샤브리에의 가족들은 샤브리에가 스케치한 나머지를 드빗시, 에네스쿠, 라벨에게 완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샤브리에가 완성한 1막은 1899년 1월 14일 베를린의 노이에스 쾨니힐레스 오페른하우스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지휘했다. 샤브리에의 브리세이는 대단히 에로틱하고 유혹적인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짐작컨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훗날 살로메를 작곡하면서 샤브리에의 그러한 음악적 스타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골드마크의 오페라 '전쟁포로'(Die Kriegsgefangene: 1899)는 비록 내용은 다르지만 원래 브리세이스(Briseis)라는 타이틀을 붙이려고 했다. 브리세이스는 트로이전쟁 당시 소아시아  여왕의 이름이다. 호머의 일리아드에 의하면 아킬레스는 브리세이스를 사랑했으며 그로 인하여 아가메논과 다투게 되었다고 한다. 오페라 브리세이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가멤논에게 인도되는 브리세이스. 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 작품

 

브리세이스를 사랑하는 힐라스(Hylas: 헤라클레스의 아들)는 시리아에서 행운을 찾고자 했다. 그때 브리세이스는 병든 어머니인 타나스토(Thanasto)와 함께 살고 있었다. 힐라스는 에로스에게 브리세이스와의 사랑이 결실을 맺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결과, 브리세이스는 힐라스와 영원히 서로 사랑하자는 것을 아프로디테 앞에서 맹세하였다. 브리세이스의 어머니인 타나스토는 딸 브리세이스가 우상을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랬다. 전도자가 와서 타나스토를 위해 기도하자 타나스토는 딸 브리세이스가 '하나님의 신부'로서 영원히 처녀로 남게하겠다고 약속한다. 브리세이스는 어머니의 간청에 따라 전도자에게 순복하고 전도자를 따라 나선다. 브리세이스는 해안에서 세례를 받는다. 힐라스는 브리세이스에게 아프로디테 여신 앞에서 서약한 것을 잊지 말라고 간청한다. 브리세이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더 중요시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힐라스에게 무덤에서 함께 결혼식을 올리자고 말한다. 힐라스는 브리세이스가 건네는 죽음의 향기가 나는 꽃의 냄새를 맡고 브리세이스의 뒤를 따른다.

 

엠마뉴엘 샤브리에

 

- Missidor(미씨도르)는 알프레드 브루노(Alfred Bruneau)가 작곡한 4막의 드라마 리릭(Drame lyrique)이다. 프랑스어 대본은 에밀 졸라의 것이다. 이 오페라는 1897년 2월 19일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메씨도르라는 말은 프랑스 공화국 칼렌다에서 열번째 달을 말한다. 이 오페라는 처음에는 성공한듯 했으나 마침 초연 당시 발생한 저 유명한 드레이퍼스 사건(L'Affaires Dreyfus)의 영향을 받아 더 이상 대중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드레이퍼스 사건이란 1894년 유대인 출신의 포병 장교인 알프레드 드레이퍼스(Alfred Dreyfus: 1859-1935)가 군사기밀 누설죄로 불명예를 당하고 종신형을 받게 된 사건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1906년 무죄가 입증되어 명예 를 회복하였다. 브루노와 에밀 졸라는 드레이퍼스 사건의 재판 때에 드레이퍼스를 열렬히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프랑스 대중들은 브루너가 유태인을 후원한다고 하여 그로부터 상당 기간 동안 브루노의 작품을 배척하였다. 브루노와 에밀 졸라는 친구로서 작품활동에서도 많은 협동을 하였다. 오페라 메씨도르는 가장 대표적인 협동의 결과라고 할수 있다. 두 사람은 프랑스 오페라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이들의 시도를 프랑스의 베리스모라고 까지 말한다.

 

오페라 메씨도르의 무대는 프랑스 남서부 지방의 아리에즈(Ariege)이다. 욕심많은 농부 갸스파르(Gaspard)는 모든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수입원인 금광을 어찌어찌하여 자기 개인의 것으로 만든다. 그의 딸 엘렌(Helene)은 재주가 많고 부지런한 귀욤(Guillaume)과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런데 귀욤의 어머니인 베로니크는 갸스파르가 남편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며 고소한다. 갸스파르의 금광은 크게 손해를 보아 갸스파르는 하루아침에 가난하게 된다. 가난해지자 겸손해 진다. 그의 사촌인 마티아스가 실제 살인범으로 판명된다.

 

- Orlando paladino(올란도 팔라디노)는 하이든이 작곡한 3막의 오페라로서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Dramma eroicomico에 속한다. 이 오페라는 1782년 12월 6일 헝가리에 있는 에스터하자 대공의 궁전에서 초연되었다. 대본을 쓴 눈치아노 포르타(Nunziano Porta)는 카를로 프란체스코 바디니(Carlo Francesco Badini)가 쓴 Le pazzie d'Orlando(올란도의 광란)이라는 대본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 대본은 아리오스토(Ariosto)의 서사시엔 Orlando furioso(분노의 올란도)를 원작으로 삼은 것이다. 이 오페라는 하이든의 생존시 가장 인기있는 그의 오페라 작품이었다. 주요 등장인물은 마법사인 알치나(Alcina), 카타이 왕국의 여왕인 안젤리카, 안젤리카를 사랑하는 메도로, 양치는 처녀인 유릴라(Eurilla), 죽은자를 지하세계로 안내하는 카론테(Caronte: Charon), 목동인 리코네, 프랑스의 팔라딘인 올란도, 올란도의 시종인 파스쿠알레, 바바리아의 국왕인 로도몬테 등이다. 스토리의 결론은 안젤리카와 메도로가 더 이상 난관이 없이 서로 사랑하게 되며 한편 메도로의 시종인 파스쿠알레와 양치는 처녀인 유릴라도 맺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란도는 또 다시 새로운 모험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다. 팔라딘은 샬레마뉴 대제의 12 기사를 말한다.

 

하이든의 '올란도 팔라디노'의 한 장면

 

- Palmira, regina di Persia(페르시아의 공주 팔미라)는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작곡한 Dramma eroicomico이다. 전2막이며 대본은 조반니 데 가메라(Giovanni de Gamerra)이다. 이 오페라는 1795년 10월 14일 비엔나의 캐른트너토르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는 초연 이후 3년 동안 39회의 공연을 가질 만큼 인기를 끌었다. 특히 대규모의 웅장한 무대장치로서 인기를 끌었다. 살리에리는 이 오페라에서도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인 영웅적인 소재에 코믹한 내용을 첨가하여 인기를 끌었다. 시대는 고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황제 치하로서 아름다운 공주 팔미라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이집트 왕 알데라노(Alderano), 스키타이 왕 오론테(Oronte), 인도 왕 알치도로(Alcidoro)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리우스 황제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괴물을 처치하는 사람에게 팔미라를 결혼시킬 것이라고 약속한다.

 

안토니오 살리에리

 

- La scuola de' gelosi(질투학교)는 살리에리의 2막 Dramma giocoso이다. 대본은 카테리노 마쫄라(Caterino Mazzola)가 맡았다. 1778년 12월 27일 베니스의 테아트로 산 모이세(Teatro S Moise)에서 초연되었다. 1783년의 비엔나 공연에서는 블라시오 역할을 프란체스코 베누치가 맡았으며 낸시 스토레이스(Nancy Storace)가 백작부인 역할을 맡았다. 베누치와 스토레이스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초연에서 피가로와 백작부인의 이미지를 창조한 사람들이다. 이 오페라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유혹과질투 끝에 사랑을 쟁취한다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귀족, 평민, 노동자 계급의 사람들이다. 이 오페라에서 중위의 역할은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에서 돈 알폰소의 것과 흡사하다.

 

- La vera costanza(진정한 정절)하이든이 작곡한 Dramma giocoso이다. 이탈리아어 대본은 1776년 파스쿠알레 안포씨가 같은 제목으로 만든 오페라의 대본을 축소하여 사용하였다. 오리지널 대본은 프란체스코 푸티니가 대본을 썼다. 이 오페라는 1779년 4월 25일 에스터하지 궁전에서 초연되었다. 스토리는 어떤 정신 나가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주인공의 센티멘탈한 고민을 다룬 것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스코어는 1785년 하이든이 기억을 더듬어 다시 쓴 것이다. 하이든의 오리지널 스코어의 대부분은 초연 이후 분실되어 종적을 찾을수 없었다. 이 오페라는 1786년부터 1792년 사이에 비엔나를 비롯하여 브라티슬라바, 부다페스트, 브르노 등지에서 Der flatterhafte Liebhaber(변덕스러운 애인)라는 타이틀로 공연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1791년(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에는 파리에서 Laurette라는 타이틀로 처음 공연되었다.

- Erismena(에리스메나)는 프란체스코 카발리(Francesco Cavalli)가 작곡한 프롤로그와 3막의 Dramma per musica이다. 이탈리아어 대본은 아우렐리오 아우렐리(Aurelio Aureli)가 썼다. 이 오페라는 일찍이 1655년 12월 30일 베니스의 테아트로 산 아폴리나레(Teatro San Apollinare)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는 영어로 번역되어 영국에서 공연되었는데 아마 이탈리아 오페라가 처음으로 영국에 소개된 경우라고 볼수 있다. 에리스메나는 메디아의 왕 에리만테의 공주로서 여러 왕자들의 구혼을 받지만 그중에서 성실한 왕자를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 Tito Manilo(티토 마닐로)는 비발디의 3막 오페라(드라마 페르 무지카)이다. 대본은 마테오 노리스(Matteo Noris)가 썼다. 카발리는 비발디의 오리지널을 토대로 1670년에 수정본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그러므로 '티토 마닐로'는 비발디의 오리지널과 카발리의 수정본이 있다. 비발디는 이 오페라를 만투아 총독인 필립공(1671-1736)의 결혼식 축하용으로 작곡했다. 필립공의 결혼식은 1718년 크리스마스 날에 거행될 예정이었다. 비발디는 이 오페라를 결혼식에 맞추어 단 닷새만에 완성했다. 하지만 어떤 사정으로 결혼식은 열리지 못했다. 결국 비발디의 '티토 마닐로'는 1719년 카니발 시즌에 만투아의 테아트로 아르치두칼레에서 성공적으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는 로마의 집정관인 티투스 마닐리우스 토르쿠아투스와 라티움 지역과의 분쟁을 다룬 내용이다.

 

- Paride ed Elena(파리데와 엘레나: 파리스와 헬렌)은 글룩의 오페라로서 드라마 페르 무지카의 장르에 속한다. 이 오페라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알체스테'에 이어 글룩이 비엔나를 위해 작곡한 세 편의 이탈리아 개혁작품 중의 마지막에 해당한다. 대본은 이미 글룩의 두 편의 이탈리아 개혁작품의 대본을 썼던 라니에리 데 칼자비기(Ranieri de Calzabigi)가 썼다. 이 오페라는 파리데 왕자에 대한 심판, 그리고 파리데 왕자가 엘레나를 데리고 트로이로 도피한 사건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 오페라는 1770년 11월 3일 비엔나의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날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파티에 참석한다. 이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아레스는 잔치에 나타나 황금사과를 놓고 간다. 세 여신은 이 황금사과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다툰다. 결국 파리스 왕자의 선택에 맡기기로 결정한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만일 황금사과를 자기 것으로 선택하여 주면 권력과 부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아테나는 전쟁에서 영광과 명예를 제시한다.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파리스 왕자는 아프로디테를 황금사과의 소유자로 선택한다. 이로 인하여 파리스 왕자는 나중에 헤라와 아테나의 보복을 받아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다. 파리스 왕자는 에라스토(큐피드)의 주선에 의해 헬렌을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름다움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파리스 왕자는 헬렌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파리스 왕자는 그가 트로이를 떠나 스파리타에 온 것은 헬렌 왕비의 사랑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헬렌은 파리스 왕자에게 마음이 기운다. 이를 본 아테타가 두 사람에게 앞으로 비통함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사랑으로 엮어졌다.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은 파리스 왕자와 헬렌 왕비가 트로이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글룩의 '파리데와 엘레나'에는 아름다운 아리아들이 여러 편이나 나온다. 소개한다.

- O del mio dolce amor(오 나의 아름다운 사랑이여)

- Spiagge amate(사랑스러운 해안이여)

- Le belle imagini(아름다운 모습)

- Di te scordarmi, e vivere(그대를 용서하고 그대와 함께 살리)

 

트로이의 헬렌(엘레나)

 

 

'오페라 이야기 > 오페라의 장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페라의 장르 - 5  (0) 2011.03.29
오페라의 장르 - 4  (0) 2011.03.29
오페라의 장르 - 3  (0) 2011.03.29
오페라의 장르 - 1  (0) 2011.03.29
오페라의 장르 대탐험  (0) 2011.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