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의 장르

오페라의 장르 - 5

정준극 2011. 3. 29. 16:05

 

장르   내용  대표적 첫 작품  대표적 작품  마지막 작품  대표적 작곡가

 Operette vaudeville(프)

또는 Vaudeville operette

 프랑스 오페레타에 속한 장르  L'our et le pacha(에르베: 1842)  Mam'zelle Nitouche(1883)    에르베, 빅토르 로저(Victor Roger)
 Operette(독)  독일의 오페레타. 19-20세기에 비엔나에서 특히 유행한 장르. 오펜바흐의 영향을 받아 베를린, 부다페스트 등 독일어 사용지역에서 발전  Das Pensionat(주페: 1860)  Die Fledermaus(요한 슈트라우스: 1874), die lustige Witwe(1905), Das Land des Lachelns(1929)  Fruhjahrsparade(로베르트 슈톨츠: 1964)  요한 슈트라우스2세, 프란츠 레하르, 오스카 슈트라우스
 Pasticcio(이) '파이' 또는 '잡탕'이라는 뜻. 18세기 런던에서 유행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작품들    Thomyris(페푸슈, 보노치니, 스칼라티, 가스파리니, 일비노니: 1707), 무치오 스체볼라(1721), 아이반호(1826)    헨델, 비발디
 Piece lyrique(프)  Opera lyrique의 다른 명칭        
 Pastorale heroique(프)  Ballet-heroique(Opera-ballet)의 한 형태. 보통 비유적인 서막과 3막으로 구성. 주로 목가적인 주제  Acis et Galatee(1686)  Isse(1697), Zais(1748), Nais(1749)    장-밥티스트 륄리, 라모
 Posse(독)  Posse mit Gesang(노래를 곁들인 포쎄)의 다른 명칭        
 Posse mit Gesang(독)  '노래가 곁들인 익살극'이란 의미. 18세기말-19세기 초, 비엔나와 베를린, 함부르크 등지에서 인기를 얻었던 오락극. 징슈필과 흡사하지만 액션이 더 많고 노래부분이 적음. 20세기에 와서 발터 콜로(Walter Kollo)등이 부흥시킴.    Der Alpenkonig und der Menschenfeind(라이문트: 1828) Filmzauber(1912)    크로이처, 뮐러, 슈베르트, 발터 콜로
 Possenspiel(독)  Posse mit Gesang의 초기명칭        
 Rappresenta-zione sacra(이)  Azione sacra의 다른 명칭        
 Romantische Oper(독)  19세기초, 프랑스의 오페라 코믹에서 발전한 독일 오페라의 장르. 숲, 초자연, 전래민속등 독일적인 주제 사용. 대화체가 포함되었으나 바그너에 와서 사용하지 않음.  Der Freischutz(베버: 1821)  Hans Heiling(마르슈너: 1833), Undine(1845), Tannhauser(1845)  Lohengrin(1850)  베버, 마르슈너, 로르칭, 바그너
 Sainete(스페인)  '익살'이라는 의미. 17-18세기에 유행한 코믹 오페라의 장르. 이탈리아의 인터메쪼와 비슷한 형태. 대규모 작품과 함께 공연. 19세기에는 Genero chico와 같은 뜻으로 사용.  Il mago(1632)      파블로 에스테베(Pablo Esteve), 솔러(Soler), 안토니오 로살레스(Antonio Rosales)
 Sainete(스페인)  Sainete의 축소형        
 Savoy opera(영)  19세기 길버트-설리반 등의 작품이 런던의 사보이극장에서 공연되었으므로 붙인 명칭. 유럽 대륙의 오페레타 또는 코믹 오페라와 구별하기 위해 영국에서 사용한 용어. 훗날 Musical theatre로 발전.  Trial by Jury(1875)  H.M.S. Pinafore(1878), The Pirates of Penzance(1880), The Mikadoo(1885), The Gondoliers(1889), Merrie England(1902)  A Princess of Kensington(1903)  설리반, 솔로몬, 저맨(German)
 Saynete(프)  스페인의 Sainete의 프랑스어. 19세기 스페인 스타일의 오페레트를 지칭함    La carance de l'amour(에르베: 1854), Le reve d'une nuit d'ete(1855), Le valet de coeur( 1875)    에르베, 오펜바흐, 플랑케트
 Schauspiel mit Gesang(독)  '노래를 곁들인 연극'이라는 뜻. 괴테가 그의 초기 대본에 붙인 용어. 그러나 괴테는 훗날 수정본에서는 징슈필이라고 붙임.  Erwin und Elmire(괴테: 1775)  Liebe nur begluckt(라이하르트: 1781), Die Teufels Muhle am Winerberg(뮐러: 1799)    
 Schuloper(독)  '학교 오페라'라는 의미. 20세기 초 학생들을 위해 만든 오페라를 말함.    Der Jasager(1930), Wir bauen eine Stadt(힌데미트: 1930)    쿠르트 봐일, 파울 힌데미트
 Semi-opera(영) 노래, 대화, 춤이 어울린 초기의 오페라. 1673-1710년간에 유행한 작품들.   The Tempest(베터튼: 1674)  Psyche(1675), King Arthur(1691), The Fairy-Queen(1692)    헨리 퍼셀
 Sepolcro(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고난을 주제로 삼은 Azione sacra        드라기(Draghi)
 Serenata(이). Serenades라고도 함.  원래는 '저녁의 노래'라는 의미. 주로 궁정에서 축하 행사가 있을 때 공연한 짧은 오페라. Azione teatrale와 유사함.    Acis and Galatea(1720), Parnaso confuso(글룩: 1765)    헨델, 글룩

 

파스토랄레 에로이크이면서 세레나타인 '아치스와 갈라테아'의 한 장면

 

- Mam'zelle Nitouche(맘첼레 니투셰)는 에르베(Hervé: 원래 이름은 Louis Auguste Florimong Ronger: 1825-1892)의 보데빌 오페레타이다. 대본은 앙리 메일락과 알베르 미요가 공동으로 완성했다. 이 오페라는 1883년 1월 26일 파리의 테아트르 데 바리에테(Theatre des Varietes)에서 초연되었다. 스토리는 19세기 프랑스의 어떤 지방이다. 젊은 수녀인 드니스 드 플라비니가 주인공이다. 드니스는 수녀원에서 자기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셀레스틴이 2중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셀레스틴은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셀레스틴은 애인인 코린느를 위해 비밀스럽게 대중 오페레타를 작곡한다. 셀BC레스틴의 자기의 오페레타가 초연되는 것을 보기 위해 도시로 몰래 들어간다. 드니스도 오페레타를 보기 위해 몰래 수녀원을 빠져나간다. 드니스는 수녀가 아니라 맘첼르 니투셰라는 이름으로 극장에 들어선다. 이곳에서 드니스는 핸섬한 젊은 군인인 페르디낭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가 드니스와 셀레스텐은 생각치도 않았는데 군대 병영까지 가게 된다. 그간 셀레스틴과 코린느의 옥신각신하는 사랑 다툼도 만만치 않게 일어난다. 결국 드니스-페르디낭, 셀레스틴-코린드가 해피엔딩을 맞는다. 이 오페라는 수녀가 수녀원을 빠져 나와 사랑을 하게 된다는 설정 때문에 논란이 많았었다.

 

- Muzio Scevola(무치오 스체볼라: 무치우스 스키볼라라고도 함)는 이른바 Pasticcio에 속하 오페라이다. 로마제국의 영웅 가이우스 무치우스 스키볼라(Gaius Mucius Scaevola)에 대한 3막 오페라이다. 1막은 필리포 아마데이(Filippo Amadei: Filippo Mattei라고도 함)가, 2막은 조반니 바티스타 보논치니(Giovanni Battista Bononcini)가, 3막은 조지 프레데릭 헨델이 작곡했다. 이탈리아어 대본은 파올로 안토니오 롤리(Paoloo Antonio Rolli)가 완성했다. 여러 작곡가들이 합동하여 오페라를 작곡하는 경우는 18세기에 종종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런던에서는 그런 예가 거의 없었다. 아마 오페라 '무치오 스체볼라'가 처음일 것이다. 보논치니는 그가 1695-1710년간에 작곡한 두 편의 오페라에서 사용했던 음악의 상당부분을 2막의 음악에 사용하였다. 이 오페라는 1721년 4월 15일 런던의 왕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후 함부르크 등 몇몇 도시에서 공연되다가 어느 틈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가 1928년에 독일의 에쎈에서 리바이벌 되었다. 무치오 스체볼라의 스토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BC 508년, 로마와 클러시엄(Clusium)사이에 전쟁이 있었다. 클러시엄의 포르센나(Porsenna)왕은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포위하고 공성하였다. 용감한 무치우스(무치오)는 원로원의 승인을 받아 포르센나 왕을 암살하기 위해 적진으로 숨어 들어간다. 하지만 무치우스의 임무는 실패로 돌아갔다. 포르센나 왕의 시종을 포르센나 왕으로 착각하고서 죽였던 것이다. 무치우스는 즉시 체포되었다. 무치우스는 포르센나 왕의 앞에 끌려 나와 '나는 로마의 시민인 가이우스 무치우스이다. 나는 우리의 적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 우리 로마 시민들은 환난이 닥치면 고통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라고 외쳤다. 무치우스는 자기가 죽더라도 자기와 같은 로마 시민이 3백명이나 목숨을 버리고 포르센나 왕을 죽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치우스는 자기의 담대한 용맹을 보여주기 위해 훨훨 타오르는 불길 속에 손을 넣었다. 이로부터 무치우스의 가명(家名)이 스키볼라가 되었다. 그건 그렇고 젊은 무치우스의 용감한 행동에 충격을 받은 포르센나 왕은 무치우스를 풀어주고 로마로 돌려 보냈다. 이와 함께 로마에 왕의 사자를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이로써 로마는 평화를 얻게 되었다. 무치우스의 이야기가 실화인지 야담인지 또는 신화인지는 확실치 않다.

 

무치우스(무치오)가 불길 속에 손을 넣는 장면.

 

- Ivanhoe(아이반호)는 로시니가 작곡한 3막의 Pasticcio이다. 프랑스어 대본은 에밀 드샹(Emile Deshamps)과 가브리엘 귀스타브 드 와일리(Gabriel Gustave de Wailly)가 공동으로 썼다. 원작은 월터 스콧의 소설 '아이반호'이다. 이 오페라는 1826년 9월 15일 파리의 오데옹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아이반호의 스토리는 잘 알려진대로 사자왕 리챠드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영국에 없을 때 그의 동생인 존이 왕으로 행세하여 색슨족을 탄압할 때에 색슨의 기사인 아이반호가 리챠드 왕을 위해 존왕의 탄압에 분연히 항거한다는 내용이다. 아이반호는 색슨의 세드릭 공주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러는 중에 유태인 처녀 레일라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일이 있다. 아이반호는 존왕이 레일라를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고자 할 때에 챔피온을 자청하여 노르만 귀족과의 결투에서 승리하여 레일라를 구해준다.

 

- Issé(이세)는 프랑스의 앙드레 카르디날 데투셰(Andre Cardinal Detouches)가 작곡한 Pastorale heroique의 장르에 속하는 오페라이다. 대본은 안투안 우다르 드 라 모트(Antoine Houdar de la Motte)가 썼다. 이 오페라는 1697년 10월 7일 파리의 퐁텐블로 궁전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초연을 가졌도 그해 12월 30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무대 초연을 가졌다. 데투셰는 1708년에 3막의 이 오페라를 5막의 그랜드 오페라 스타일로 수정하였다. 대성공이었다. 그후 이 오페라는 프랑스의 여러 궁전에서 여러차례 공연되었다. 1749년의 공연 때에는 마담 퐁파두가 직접 타이틀 롤을 맡아 노래했다. 스토리는 아폴로(아폴론)이 필레몬이라는 목동으로 변장하여 님프인 이쎄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 Filmzauber(필름차우버: 영화 마술)은 발터 콜로(Walter Kollo)와 빌리 브레드슈나이더(Willy Bredschneider)가 공동으로 작곡한 Posse mit Gesang(일종의 대중음악 드라마)이다. 독일어 대본은 루돌프 베르나우어(Rudolf Bernauer)와 루돌프 샨처(Rudolf Schanzer)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풍자와 독설로 구성된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져(무성영화) 1912년 10월 19일 베를린 극장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영어 버전은 '영화 속의 아가씨'(The Girl on the Film)으로 알베르트 치르마이(Albert Szirmai)라는 사람이 몇군데 음악을 추가한 것이다. 영어 버전은 1913년 런던에서 초연되었고 이어 뉴욕에서 상영되어 인기를 끌었다. 베를린에서 초연된 무성영화에는 당대의 여배우 리자 봐이제(Lisa Weise)와 성악가로서 나중에 배우가 된 오스카 사보(Oscar Sabo)가 출연했다. 이 영화는 2009년에 독일에서 리바이벌 작품으로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오페라의 배경은 베를린과 라이프치히 근교의 크뇌터리츠(Knötteritz)이며 시기는 1912년이다. 이야기는 나폴레옹 시대의 라이프치히 전투 당시에 크뇌터리츠에서 담배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사람의 딸(마리아 게스티쿨라타)과 나폴레옹과의 잠시적인 로맨스를 다룬 것이다.

 

- Comedy on the Bridge(다리 위의 코미디: 체코어로는 Veselohra na moste)는 보후슬라브 마르티누(Bohuslav Martinu)가 작곡한 단막의 오페라로서 체코어 대본은 작곡자 자신이 바클라브 클리츠페라의 코미디를 바탕으로 썼다. 초연은 1937년 3월 18일 프라하의 체코 라디오를 통하여서였다. 무대 초연은 1951년 5월 28일 뉴욕의 헌터(Hunter)대학교에서 있었다. 뉴욕에서의 공연에는 작곡자인 콜로가 직접 참석하였다. 뉴욕음악비평가협회는 이 오페라에 대하여 '최우수 신작 오페라'(Best new opera)상을 주었다. 마르티누는 이 오페라에 나오는 음악의 상당부분을 다시 편곡하여 실내악곡인 Little Suite로서 만들었다. 그리고 피아노곡으로도 편곡하였다.

 

이 오페라의 시기는 19세기이며 무대는 어떤 다리 위이다. 강 양쪽에는 사연을 알수 없는 전쟁으로 군인들이 대진하고 있다. 조세핀 포펠카(Josephine Popelka)는 얼마전 있었던 전투에서 오빠가 전사했다는 소리를 듣고 강건너편에 가서 오빠처럼 생긴 시신을 찾아서 매장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다리 저쪽의 군인들은 조세핀의 통행증을 보고 다리를 건너도록 통과시켜 주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저쪽 군대의 장교가 조세핀의 통행증을 압수하고 돌려주지 않았다. 조세핀은 자기 진영으로 건너가려 했지만 이 쪽의 군인들은 통행증이 없다는 이유로 통과를 시켜주지 않는다. 조세핀은 다리 위에 있을수 밖에 없다. 한편, 이쪽 마을에서 양조장을 경영하는 베드론(Bedron)이라는 사람은 볼 일이 있어서 다리를 건너 저쪽으로 가고자 했다. 이쪽 군인들은 베드론을 통과시켜 주었지만 저 쪽의 군인들은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 이제 조세핀과 베드론은 둘 다 다리 위에서 억류되어 있는 셈이 되었다. 두 사람이 다리 위에서 있는 모습을 본 조세핀의 약혼자인 조니(Johnny)가 조세핀이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한다. 베드론의 부인인 에바(Eva)도 조세핀과 베드론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문제를 삼는다.

 

마을학교의 교장이 등장한다. 그는 이쪽 군대의 라딘스키 대령이 낸 수수께끼를 풀고자 고심하고 있다. 수수께끼는 다음과 같다. 사슴 한 마리가 사방이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갇혔다. 사슴은 벽을 뛰어 넘을수도 없고 기어 올라갈수도 없다. 어떻게 도망갔느냐는 문제이다. 이 수수께끼는 조세핀과 베드론이 처한 입장과 비슷했다. 그런데 무대 뒤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조니와 에바는 조세핀과 베드론이 왜 다리 위에 서 있는지를 알고 화해한다. 전령이 나타나 전투는 이쪽의 승리로 끝났다고 전한다. 라딘스키 대령은 조세핀에게 조세핀이 매장한 사람은 오빠가 아니라 다른 군인이었다고 말해준다. 그러니까 조세핀의 오빠는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라딘스키 대령은 수수께끼의 해답을 밝힌다. 사슴은 도망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고 이쪽 군인들의 승리를 축하했다.

 

- Der Jasager(예스맨: The Yes Sayer: 긍정자: The Affirmer)는 쿠르트 봐일(Kurt Weil)이 작곡한 Schuloper(학교오페라)에 속하는 작품이다. 독일어 대본은 일본의 노(能) 드라마인 타니코(谷行)의 영어 번역본을 엘리자베트 하우프트만이 독일어로 다시 번역한 것을 베르톨트 브레헤트(Bertolt Brecht)가 만들었다. 브레헤트는 Der Jasager의 콤비 작품인 Der Neisager(He Said No: 부정자)의 대본도 썼지만 봐일은 이를 오페라로 만들지 않았다. 봐일은 Der Jasager를 Lehrstück(레르슈튀크)라고도 불렀다. Learning-play(배우는 연극)라는 의미이다. Der Jasager는 1930년 6월 30일 베를린의 '교회-학교음악아카데미'(Akademie fur Kirchen und Schulmusik) 학생들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후 3년동안 약 3백회의 공연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Jasager와 Neinsager는 연결된 내용이지만 결론은 정반대로 나온다. Der Jasager에서 소년은 병든 어머니의 약을 구하기 위해 험한 산을 넘어 도시로 간다. 이때 다른 학생들도 3명이 함께 간다. 도중에 소년은 큰 부상을 당한다. 학생들이 병든 소년을 데리고 험하고 위험한 산을 넘어 도시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생들은 소년이 산 속에서 외롭게 시간을 끌며 죽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소년을 도와주는 입장에서 소년을 계곡 아래로 던진다. 단, 관습에 의하면 그렇게 던지기 전에 소년에게 동의 여부를 묻는다. 소년을 학생들이 그를 계곡으로 던져도 좋으냐고 묻자 긍정을 한다. 그것이 납득할수 있는 사회관습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Neinsager에서는 스토리가 다르다. 소년은 관습에 따라 학생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거부한다. 상황이 바뀌었으므로 새로운 행동과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학생들은 소년을 메고 그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가기로 하고 결국 성공한다. 이 경우에 전통적인 관습이나 규율을 거부하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 브레헤트의 주장이다.

 

- Psyche(사이케)는 매튜 라크(Matthew Locke)가 쓴 5막의 Semi-opera의 장르에 속하는 작품이다. 대본은 토마스 섀드웰(Thomas Shadwell)이 썼으며 안무는 조반니 바티스타 드라기(Giovannii Battista Draghi)가 구성했다. 이 오페라는 1675년 2월 27일 런던의 도셋 가든(Dorset Garden)극장에서 듀크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안무는 프랑스의 댄스 마스터인 생안드레(Saint Andre)였다. 이 오페라는 실상 1671년 초연된 장-밥티스트 륄리의 Tragedie-ballet인 Psyche에 대체적인 바탕을 둔 것이다. 오페라는 Semi-opera에 속하는 최초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당히 많은 개별적인 스토리로 짜여져 있고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다. 작곡자인 라크는 이 오페라는 프랑스 오페라단의 영국방문을 기념하여 작곡했다고 한다. 프랑스 오페라단은 1674년 런던의 드러리 레인극장에서 Ariane(아리아느: Le mariage de Bacchus)를 공연하여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라크는 그 해에 The Tempest 라는 Semi-opera를 작곡했으나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래서 Psyche로서 성공을 거두고자 했다. Psyche의 무대는 웅장하여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공연이었으나 극장의 수입은 형편없었다고 한다. 반면 The Tempest는 관객을 별로 많지 않았지만 수익은 좋았었다고 한다. 이 오페라는 사이케와 큐피드의 사랑을 그린 내용으로 비너스, 프로세르피네, 피라크몬, 강의 신, 아폴로, 고승, 마르스, 팬, 브론테스, 플루토, 엔비, 바커스, 스테로페스, 님프들이 등장하는 호화 무대이다. 스토리는 대단히 복잡하여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있으면 무슨 내용인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인 '사이케와 큐피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이해하기가 쉽다.

 

윌렴 아돌프 부게로의 작품인 '사이케'

 

- Les p'tites Michu(작은 미슈)는 앙드레 메싸저(Andre Messager)가 작곡한 3막의 프랑스 오페레트이다. 대본은 알베르 반루(Albert Vanloo)와 조르즈 뒤발(Georges Duval)이 맡았다. 메싸저는 1896년 파리에서 Le Chevalier d'Harmental(아르멘탈의 신사)가 실패로 끝나자 영국으로 건너가서 다시는 오페라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듬해에 반루와 뒤발로부터 Les p'tites Michu 에 대한 대본을 받자 생각을 달리했다. 그래서 즉시 오선지에 매달려서 3개월만에 Les p'tites Michu를 완성했다. 1897년 11월 16일 파리의 테아트르 데 부페 파리지앵에서 초연된 Les p'tites Michu는 대성공이었다. 이에 힘입은 메싸저는 1898년에 Veronique를 작곡하였다. Veronique는 메싸저의 가장 대표적인 오페레트이다. Les p'tites Michu의 비엔나 초연은 1899년 9월 16일 칼테아터에서였다. 역시 대성공이었다. 런던에서는 장기공연이 이루어졌다. 헨리 해밀튼이 영어 대본을 마련했다. 런던 초연은 1905년 4월 29일 댈리극장에서 있었다. 이후 연속 401회의 공연을 기록하였다. 파리에서의 공연이 연속 150회에 그친데 비하여 대단한 기록이었다. 브로드웨이 진출은 1907년에 이루어졌다. 이야기는 17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프(Ifs)후작부인이 아기를 출산하다가 불행하게도 숨을 거둔다. 후작은 정치적인 문제로 당국에 의해 체포된다. 후작은 체포되기 직전에 아기를 미슈 집에 맡기어 기르도록 했다. 후작은 미슈에게 상당한 돈을 주어 상점을 차려 아기를 기르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 마침 미슈의 집에는 똑 같은 나이의 딸이 있었다. 미슈는 두 아기를 목욕시키는 중에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었다. 목욕을 시키기 전에는 입고 있는 옷으로 구별하였지만 목욕탕 안에서는 그만 표시를 해놓지 않아 구별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Les p'tites Michu는 그로부터 일어나는 해프닝을 담은 오페레타이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렀다. 두 아기, 즉 서로가 쌍둥이인줄 알고 자란  블랑셰 마리(Blanche-Marie)와 마리 블랑셰(Marie-Blanche)는 이제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되었다. 미슈씨 상점의 점원인 아리스티드(Aristide)는 두 아가씨 중의 한 사람을 사랑하지만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 한편, 이프 후작은 모든 누명을 벗고 이제는 장군으로 승진하였다. 이프 후작은 딸이 미슈네 집에서 잘 자라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갸스통 리고(Gaston Rigaud) 중위를 사위로 삼겠다고 약속한다. 이프 장군은 사람을 보내어 딸을 데려오도록 한다. 그런데 갸스통은 알고보니 두 아가씨를 어릴 때부터 길러온 엄격한 가정교사 미스 헤르핀(Miss Herpin)의 조카이다. 두 아가씨는 미스 헤르핀을 찾아온 젊고 핸섬한 장교인 갸스통을 우연히 보고 둘 다 갸스통에게 매력을 느낀다. 한편, 이프 장군의 지시를 받고 장군의 딸을 데리러 갔던 시종은 두 아가씨 중에 누가 진짜 장군의 딸인지를 몰라 어쩔줄 모른다. 드디어 이프 장군이 두 아가씨를 만나지만 도무지 누가 진짜 딸인지 알 길이 없다. 두 아가씨를 데리고 기른 미슈도 모른다. 블랑셰 마리는 언니인 마리 블랑셰가 갸스통 중위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을 알고 언니를 위해 자기를 희생키로 한다. 그래서 언니인 마리 블랑셰가 진짜 이프 장군의 딸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마리 블랑셰와 갸스통이 약혼을 한다. 그런데 마리 블랑셰는 어쩐 일인지 양가집 규수로서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며 수를 놓는다든지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고 그저 시간만 있으며 미슈의 상점에 가서 장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니 마리 블랑셰는 동생인 블랑셰 마리가 갸스통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에게는 그런 상류층 귀족 자제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상점의 점원인 아리스티드에 결혼키로 한다. 드디어 두 아가씨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언니 마리 블랑셰는 동생인 블랑셰 마리에게 옛날 후작부인이 입었던 웨딩 드레스를 입도록 하여 결혼식장으로 들아가게 한다. 이프 장군은 블랑셰 마리를 보자마자 세상을 떠난 후작부인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정말 똑 같이 생겼다. 이프 장군은 블랑셰 마리가 진짜 딸인 것으로 확신한다.

 

앙드레 메싸저. 이렇게 생긴 양반인데 음악만은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코믹하게 썼다.

 

- Ciboulette(시불레트: 라일락꽃과 비슷한 들꽃)은 레이날도 한(Reynaldo Hahn)이 작곡한 3막의 프랑스 오페레타이다. 대본은 로베르 드 플레(Robert de Flers)와 프랑시스 드 크루아세트(Francis de Croisset)가 공동으로 완성했다. 초연은 1923년 4월 7일 파리의 테아트르 데 바리에테(Theatre des Varietes)에서 있었다. 이 오페레타는 레이날도 한의 작품중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것이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프랑스 오페레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걸작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1867년 파리에서 일어난다. 뒤파르케(Duparquet)는 중매장이이다. 그는 시골 아가씨인 시불레트와 젊은 귀족으로서 한량인 안토닌을 엮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여러 난관을 거쳐 안토닌은 훌륭한 마음씨를 갖게 되어 시불레트와 영원히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 La bonne d'enfant(보모)는 자크 오펜바흐가 작곡한 단막의 오페레트 부프(Operette bouffe)이다. 대본은 유제느 베르시우(Eugene Bercioux)가 썼다. 1856년 10월 14일 파리의 테아트르 데 부페 파리지앵에서 초연되었다. 오펜바흐의 초기 오페레타는 규모가 적은 단막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프랑스법에 따르면 오페레타는 단막을 원칙으로 하며 3명 이상의 성악가가 출연하면 안되고 또한 노래를 부르지 않는 역할도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단, 그랜드 오페라는 예외였다. 그러다가 1858년에 이 법이 바뀌었다. 오펜바흐는 제대로된 오페레타를 작곡할수 있었다. '지옥의 오르페오'는 그 첫 작품이었다. 도로테(Dorothee)는 보모 노릇을 하기가 싫었다. 대신에 마나님이 없는 그 집 주인의 애인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사정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한편, 도로테에게는 2명의 구혼자가 있다. 하나는 소방수인 미투플라르(Mitouflard)이며 다른 하나는 굴뚝청소부인 가르가이유(Gargaillou)였다. 어느날 주인집 식구들이 외출을 한 사이에 소방수와 굴뚝청소부가 찾아와 도로테에게 온갖 방법으로 청혼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별별 해프닝이 다 일어난다. 결국 도로테는 왕립기병연대에서 트럼펫을 부는 브린 다모르(Brin d'Amour)라는 사람과 결혼키로 결정한다. 하지만 소방수와 굴뚝청소부에게 결혼식에 꼭 초대하겠다고 약속한다.

 

- M. Choufleuri restera chez lui le...(컬리플라워씨가 집에 있을 것...)는 오펜바흐의 단막 오페라 부프(또는 오페레트)이다. 작곡에는 M. de St Remy(무슈 드 생 레미)라는 예명의 Duc de Morny(모르니 공작)이 협력하였다. 프랑스어 대본은 모르니 공작이 맡았다고 되어 있지만 지체 높은 분이 손수 썼을리는 만무하고 당대의 작곡가이며 대본가인 루도빅 알레비. 엑토르 조나탄 크레뮤, 그리고 모르니 공작의 비서인 에르네스트 레팽이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오페레트는 1861년 5월 31일 파리의 팔레 부르봉(Palais Bourbon)에서 초연되었다. 나폴레옹3세 황제가 직접 참관했다고 한다. 일반대중을 위한 첫 공연은 그해 9월 14일 파리의 테아트르 데 부프 파리지앵에서였다. 공연시간 1시간 정도의 이 오페레트는 아직도 오페라 극장의 레퍼토리로 유지되고 있는데 특히 아마추어 오페라단들이 마을의 문화회관 등에서 즐겨 공연한다. 음악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페레트의 시기는 1833년 1월이며 장소는 파리이다. 부동산으로 벼락부자가 된 무슈 슈플러리(M. Choufleuri)는 당연히 무식하고 천박하기가 그지없다. 그는 파리의 상류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상류층사람들을 초청하여 자기 저택에서 '음악의 밤'(Musical soiree)을 개최키로 한다. '음악의 밤' 행사에는 실제로 유명한 이탈리아 오페라 성악가들이 초청한다고 선전했다. 당대의 소프라노 앙리에트 손타그(Henriette Sontag), 테너 조반니 바티스타 루비니(Giovanni Battista Rubini), 바리톤 안토니오 탐부리니(Antonio Tamburini)가 참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 사람은 모두 마지막 순간에 호스트인 무슈 슈플러리의 천박함 때문에 몹시 기분이 상하여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유명 성악가들이 온다고 잔뜩 선전해 놓은 무슈 슈플러리로서는 큰 낭패였다. 한편, 무슈 슈플러리의 딸인 어네스틴(Ernestine)은 오케스트라의 젊고 핸섬한 바순 주자 겸 작곡가 겸 성악가인 크리소둘 베빌라스(Chrisdodule Babylas)와 전부터 남몰래 만나고 있었다. 어네스틴이 아버지에게 '음악의 밤'에 바순 주자로서는 반드시 베빌라스를 오라고 초청해야 하며 그 이유는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무슈 슈플러리는 그런 가난한 음악가는 어네스틴에게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거절한다. 그러자 어네스틴은 초청했던 성악가들이 오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되면 손님들이 실망할 것이므로 아이디어를 내어 자기 자신은 앙리에트 손타그로, 아버지인 무슈 슈플러리는 바리톤 안토니오 탐부리니로, 베빌라스는 테너 조반니 바티스타 루비니로 변장하여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한다. 무슈 슈플러리는 어쩔수 없이 승낙한다. 무슈 슈플러리는 바리톤이기 때문에 트리오에서 움파파 라고 곁소리만 넣어주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음정은 맞아야 했다. 세 사람의 노래를 들은 상류층 사람들은 훌륭한 이탈리아 오페라 성악가들의 멋진 노래라면서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무슈 슈플러리의 게으르고 무능한 하인이 어쩐 일인지 '음악의 밤'에서는 부지런히 충성을 다하는 척 하기 때문에 가짜 성악가들이 탄로날 뻔도 했지만 '음악의 밤' 행사는 무난히 끝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무슈 슈플러리는 인사 받기에 바뻤다. 무슈 슈플러리는 어네스틴과 베빌라스의 수고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한다. 베빌라스는 지참금으로 5만 프랑을 요구한다. 만일 지참금을 주지 않으면 '음악의 밤'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들이 모두 가짜라고 밝히겠다고 하며 그렇게 된다면 무슈 슈플러리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은근히 협박하였다. 어네스틴과 베빌라스가 부르는 Pedro possede une guitare(페드로가 기타를 가졌네)는 대단히 명랑한 곡이다.

 

'무슈 슈플러리가 집에 있네'의 한 장면. '음악의 밤'에 참석한 파리의 상류층 사람들이 이탈리아 오페라 성악가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 현대적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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