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의 장르

오페라의 장르 - 4

정준극 2011. 3. 29. 15:27

 

장르   내용  대표적 첫 작품  대표적 작품  마지막 작품  대표적 작곡가
 Melodrama(이)  19세기에는 오페라를 일컫는 일반적인 명칭. 현재는 멜로적인 내용의 특정 오페라를 지칭        
 Melodrama serio(이)  Opera seria의 다른 명칭        
 Musikdrama(독)  바그너의 후기 오페라와 관련된 용어. 바그너 이후의 작곡가들도 사용한 명칭    Tiefland(1903), Salome(1905), Der Golem(달베르: 1926)    달베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Opera(프)  원래는 이탈리아어의 작품이라는 의미. 18세기에는 일반적인 장르의 오페라 작품을 지칭. 19-20세기에는 오페라 코믹과는 별도로 프랑스 리릭 무대작품을 말함. 주로 파리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을  말함.    Nais(1749), Ferdinand Cortez(1809), Moise et Pharaon(1827), Les vepres siciliennes(1855), Romeo et Juliette(1867)    그레트리, 스폰티니, 로시니, 베르디, 구노
 Opera-ballet(프)  일반적인 오페라(Tragedie en musique)에 비하여 댄스가 더 많이 포함된 작품. 통상적으로 서막과 여러편의 각 장면(앙트레)로 구성.  L'Europe galante(1697)  Les elemens(1721), Les Indes galates(1735), Les fetes d'Hebe(1739)    데투셰(Destouches), 라모(Rameau)
 Opera ballo(이) 19세기의 이탈리아 그랜드 오페라를 말함     Il Guarany(1870), Aida(1871), La Gioconda(1876)    고메스(Gomes), 베르디, 폰키엘리
 Opera buffa(이)  18-19세기 코믹 오페라의 주요 장르. 1730년대에 나폴리에서 시작. 베니스에서 활발히 공연. 극작가/대본가인 골도니(Goldoni)의 영향 지대. 일반적으로 3막. 전통적인 오페라 세리아에 대화체의 지방 사투리 사용.    La Cilla(미켈란젤로 화지올리: 1706)  Li zite 'nglaera(1722), Il filosofo di campagna(갈루피: 1754), La buona figliuola(1760), Le nozze di Figaro(1786), Il barbiere di Siviglia(1816), Don Pasquale(1843)  Crispino e la comare(1850)  빈치(Vinci), 갈루피, 두니(Duni), 피치니, 사키니, 살리에리, 모차르트, 로시니
 Opera bouffe(프). 복수형은 operas bouffes  풍자, 독설, 익살 등이 표현된 오페레타의 한 장르. 오펜바흐의 작품이 대표적. 파리의 Theatre des Bouffes-Parisiens에서 주로 공연된 작품들.  Orphee aux enfers(1858)  La belle Helene(1864), La Grande-Duchesse de Gerolstein(1867), La Perichole(1868)  Les mamelles de Tiresias(1947)  오펜바흐, 에르베(Herve), 르코크(Lecocq)
 Opera bouffon(프)  18세기에 프랑스에서 공연된 오페라 부파를 말함. 대체로 이탈리아 원어를 사용. Opera comique와 혼돈하지 말도록.    Le roi Theodore a Venise(파이시엘로: 1786)    
 Opera comique(프)  '코믹 오페라'와 같은 의미. 아리아가 있고 대화체(간혹 레시타티브)로 구성. 주로 파리의 오페라 코믹극장에서 공연된 작품들. 희극적인 내용과 비극적인 내용을 포함. 전통적으로 18세기 Comedies en vaudevilles에서 발전함. 20세기에는 여러 형태로 지속  Telemaque(장-클로드 기예: 1715)  Le troqueurs(1753), La dame blanche(1825), Carmen(1875), Lakme(1883)    필리도르(Philidor), 몬시니(Monsigny), 그레트리, 부엘듀, 오버
 Opera comuque en vaudeville(프)  Comedie en vaudeville의 다른 명칭        
 Opera feerie(프)  18-19세기에 동화에 기본을 둔 오페라 장르. 간혹 마법적인 내용이 연관.      Zemire et Azor(1771), Cendrillon(1810), La belle au bois dormant(1825)    카라파(Carafa), 이수아르(Isouard)
 Opera lyrique(프)  '리릭 오페라'를 말함. 18-19세기의 그랜드 오페라보다는 규모가 적은 오페라. 그러나 오페라 코믹에서 처럼 대화체는 거의 없음.        구노, 토마, 마스네
 Opera semiseria(이)  '중간적으로 심각한 오페라'라는 의미. 19세기의 코미디적인 내용이 포함된 작품. 그러나 오페라 부파와는 달리 비애감이 있으며 목가적인 경우도 있음. 전통적으로 Basso buffo 역할이 등장함.  Carmilla(파에르: 1799)  La gazza ladra(1817), Linda di Chamounix(1842)  Violetta(메르카단테: 1853)  파에르, 로시니, 도니제티
 Opera seria(이). 복수형은 Opere serie  '심각한 오페라'라는 의미. 18세기에 주류를 이루었던 스타일. 프랑스를 제외한 전 유럽에서 유행함. 주로 메타스타시오의 고대역사가 주제.궁정이나 귀족들이 후원하여 공연. 간혹 카스트라티가 주역을 맡음.    Griselda(1721), Cleofide(하쎄: 1731), Ariodante(1735), Alceste(1767), La clemenza di Toto(1791)    스칼라티, 비발디, 하쎄, 헨델, 글룩, 모차르트
 Opera tragedie(프)  Tragedie en musique의 다른 명칭        
 Operetta(이, 영)  '작은 오페라'라는 의미. 1860년대에 런던에서 공연된 오펜바흐의 오페라 부프를 영어로 번역한 것. 영국 오페레타를 쓴 프레데릭 클레이와 길버트-설리반은 유럽에서의 오페레타와 구별하기 위해 자기들의 작품을 코믹 오페라 또는 사보이 오페라(Savoy opera)라고 부름.  Cox and Box(1866)  Princess Toto(1876), Rip van Winkle(1882), Maughty Marietta(1910), Monsieur Beaucaire(1919), The Student Prince(1924), The Vagabond King(1925)  Candide(1956)  설리반, 허버트, 롬버그, 프리믈(Friml), 레오나드 번슈타인
 Operette(프)  프랑스 오페레타를 말함. 19세기 중반 오페라 코믹에서 발전된 가벼운 음악과 내용의 오페라 장르를 말함. 주로 오펜바흐의 작품. 오펜바흐의 작품은 Opera bouffes라고도 알려져 있음  L'ours et le pacha(에르베: 1842)  Madame Papillon(오펜바흐: 1855), Les mousquetaires au couvent(1880), Les p'tites Michu(1897), Ciboulette(1923)    에르베, 오펜바흐, 바르니(Varney), 메싸제르(Messager), 한(Hahn) 
 Operette bouffe(프)   프랑스 오페레타에 속한 장르  

 La bonne d'enfant(1856),

M. Choufleur restera chez lui le(1861)

   오펜바흐


 

뮤직드라마인 '티프란트'의 한 장면

 

- Nais(나이스)는 장-필립 라모가 작곡한 3막의 오페라로서 장르별로 본다면 Pastorale heroique에 들어간다. 이 오페라는 1749년 4월 22일 파리의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대본은 루이 드 캬우사크(Louis de Cahusac)였다. '나이스'는 라모와 캬우사크의 네번째 협동작업이다. '나이스'는 Opera pour la Paix(평화를 위한 오페라)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왜냐하면 이 오페라는 라모가 오스트리아 왕위계승문제에 따른 전쟁이 종료되고 액스라 샤펠르(Aix-la-Chapelle)조약이 체결되어 평화가 온 것을 기념하여서 작곡했기 때문이다. 라모는 원래 타이틀을 Le triomphe de la paix(평화의 승리)라고 붙이고자 했으나 평화조약에 문제가 생기자 '나이스'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원래의 아이디어를 살리는 의미에서 Opera pour la Paix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라모의 또 다른 작품인 Hippolyte et Aricie(이폴리트와 아리시)에서 '나이스'의 음악을 여러 부분 빌려서 사용했다. 나이스는 물의 님프의 이름이다. 프랑스어에서는 물지렁이를 나이스라고 부른다. 오페라 '나이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해신 넵튠신은 물의 님프인 나이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넵튠은 나이스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인간으로 변형하여 나타난다. 그런데 넵튠은 마침 고린도에서 자기에게 헌정된 이스트미안 경기(Isthmian Game: 고대 그리스의 체육과 예술의 경연대회)에서 인간으로 변형하였다. 넵튠은 나이스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이스트미안 경기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고린도의 지배자인 텔레무스(Telemus)와 이스트미안 목자들의 지도자인 아스테리온(Asterion)이다. 눈먼 예언자인 티레시아스(Tiresias)는 텔레무스와 아스테리온에게 해신이 인간으로 변형하여 경기에 참가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텔레무스와 아스테리온은 넵튠과 경기를 벌이지만 신의 적수가 되지는 못한다. 텔레무스와 아스테리온이 전투를 준비하는 장면은 이 오페라의 클라이막스이다.

 

라모의 오페라 '나이스'의 무대 스케치

 

- Fernand Cortez(페르난드 코르테즈: 또는 La conquete du Mexique: 멕시코 정복)는 갸스파레 스폰티니가 작곡한 3막의 오페라로서 대본은 에티엔느 드 주이(Etienne de Jouy)와 조셉-알폰스 데스메나르(Joseph-Alphonse d'Esmenard)가 공동으로 맡았으며 1809년 11월 28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는 원래 나폴레옹 황제의 스페인 침공을 지원하는 정치적 선전작품으로 구상되었다. 오페라에서 멕시코의 코르테즈는 나폴레옹을 의미하며 아즈텍 사원의 사제들은 스페인의 종교재판관을 의미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나폴레옹 황제가 스폰티니에게 직접 오페라의 작곡을 청탁했다고 하며 '페르난도 코르테즈'의 초연에는 나폴레옹 황제가 친히 참석했다고 한다. 얼마후 스페인에 대한 프랑스 군대의 영향력이 쇠퇴하게 되자 이 오페라에 대한 인기도 시들해 졌다. 1809년의 초연은 스펙터클한 무대장치로 일대 센세이션이었다. 예를 들어 무대에는 17필의 말이 등장할 정도였다. 대규모의 화려한 발레도 종전에는 볼수 없었던 것이었다. 스폰티니의 이 오페라는 그후 등장하는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앞길을 닦아 놓았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이 오페라를 크게 치하하였다.

 

갸스파레 스폰티니의 '페르난드 코르테즈'의 무대. 플로렌스

 

- Les elemens(요소들)은 프랑스의 앙드레 카르디날 데투셰(Andre Cardinal Destouches)와 미셀 리샤르 들라랑드(Michel Richard Delalands)가 공동으로 완성한 오페라-발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오페라의 다른 이름은 Ballet des elemens 이다. '요소들'은 프롤로그와 4개의 앙트레(막)로 구성되어 있다. 대본은 피에르-샤를르 로이(Pierre-Charles Roy)가 썼다. 이 오페라는 1721년 12월 31일 파리의 튈러리 궁전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11세의 루이 15세가 댄스 장면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하기야 18세기의 댄스라는 것은 비교적 동작이 간단하여 쉽게 출수 있는 것이고 요란하지 않으므로 기본적인 댄스를 배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출수 있는 것이다. 이 오페라는 고대 로마의 신들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 앙트레는 음악적으로 연관성이 없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 오페라에서 발레가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 Les fetes d'Hebe(에베의 축제)도 Opera-ballet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1739년 장-필립 라모가 작곡한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된 오페라이다. 대본은 안투안 고티에 드 몽도르즈(Antoine Gautier de Montdorge)가 몇 사람과 합작하여 만들었다. 1739년 5월 21일 파리의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는 Les talents lyriques(리릭 탈렌트)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에베로 하여금 파리에서 시와 음악과 댄스의 향연을 주선토록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알키우스(Alcaeus)와 사포(Sappho), 이피스(Iphise)와 전절적인 음악가 티르티우스(Tyrtaeus), 님프인 테르프시코어(Terpsichore) 댄스의 여신, 머큐리 등이 등장하는 대규모 작품이다. 에베(또는 헤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젊음의 여신으로서 제우스와 헤라의 딸이다.

 

영화 '헤라클레스의 전설'에서 에베(헤베). 헤베는 제우스와 헤라의 딸로서 헤라클레스와 결혼하였다.

                

- Li zite 'ngalera(노예선의 연인들)은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빈치(Leonard Vinci)가 작곡한 3막의 Commedia per musica이다. 대본은 베르나르도 사두메네(Bernardo Saddumene)로서 나폴리 사투리로서 적었다. 1722년 1월 3일 나폴리의 테아트로 데이 피오렌티니에서 초연되었다. 젊은 카를로는 새로운 연인을 찾아 오래전부터 사랑하는 사이였던 벨루치아를 버린다. 남자로 변장한 벨루치아는 카를로가 왜 마음이 변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뒤를 쫓는다. 그러는 중에 몇명의 시골 여인들이 잘생긴 벨루치아를 남자로 알고 사랑에 빠진다. 벨루치아의 아버지는 노예선의 선장인 페데리코이다. 페데리코는 카를로가 벨루치아를 멀리하였다는 얘기를 듣고 카를로를 노예선으로 끌고가 죽음에 이르도록 하겠다고 협박한다. 하지만 아직도 카를로를 사랑하고 있는 벨루치아가 겨우 페데리코를 설득하여 없던 일로 만든다. 벨루치아와 카를로는 화해하고 사랑을 되찾는다.

 

- La gazza ladra(도둑까치: The Thieving Magpie)는 로시니의 2막 오페라로서 세미세리아 또는 멜로드라마의 장르에 속하는 작품이다. 대본은 조반니 게라르디니(Giovanni Gherardini)가 썼다. 원작은 루이 샤를르 케그니에즈(Louis Charles Caigniez)의  La pie voleuse(도둑까지)이다. 오페라 '도둑까치'는 오늘날 거의 공연되지 않고 있지만 서곡은 콘서트의 주요 레퍼토리로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특히 서곡에는 당시에는 처음 사용하는 스네어 드럼(드럼에 철사줄 등을 놓아 독특한 소리가 나도록 한 것)이 사용되고 있다. 로시니는 초스피드 작곡가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 재능 때문인지 로시니는 작곡을 의뢰받고도 마감시간까지 늑장을 부리는 재주가 있었다. '도둑까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작자는 공연 바로 전날까지도 서곡의 악보가 나오지 않자 로시니를 방에 가두어 놓고 피치를 올리도록 했다. 로시니는 악보를 완성하는 대로 창문 밖으로 휙 내던졌다. 그러면 창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보가가 악보를 받아서 그 자리에서 반듯하게 사보하여 제작자에게 전달해 주었다. '도둑까치'는 1817년 5월 31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로시니는 음악에 아쉬움이 있었는지 그후 몇 번에 걸쳐 오리지널 악보를 수정하였다. 1818년에 페사로에서 공연할 때, 1819년 나폴리의 폰도극장에서 공연할 때, 1820년 나폴리의 산 카를로극장에서 공연할 때, 그리고 1866년 파리에서 공연할 때에 각각 스코어를 수정하였다. 리카르도 찬도나이는 1941년에 페사로에서 '도둑까치'를 리바이발할 때에 자기 자신의 버전을 만들었다.

 

화브리치오(Fabrizio)의 하녀인 니네타(Ninetta)는 화브리치오의 아들로서 군인인 자네토(Gianetto)가 전쟁에서 돌아오는 대로 결혼하고 싶어한다. 니네타의 아버지인 빌라벨라(Villabella)도 군인으로서 전쟁에 나갔다. 하지만 빌라벨라는 식구들이 걱정이 되어 군대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탈영병이었다. 니네타는 그런 아버지를 숨겨주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니네타의 아버지는 마을 시장인 고타르도(Gottardo)의 눈에 띤다. 한편, 니네타는 아버지를 돕기 위한 모금을 위해 집에 있던 은수저 등을 행상인 이사코(Isacco)에게 판다. 그런데 우연히도 시장 집의 은수저가 도난 당했다. 행상인 이사코가 도둑의 의심을 받아 재판을 받는다. 이사코는 은수저를 니네타로부터 샀다고 증언한다. 니네타는 유죄판결을 받아 감옥에 갇힌다. 니네타는 사형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에 시장 집의 은수저를 훔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까치라는 것이 밝혀져 니네타는 석방이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네토와 행복한 앞날을 약속한다.

 

'도둑까치'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니네타가 기도하면서 부르는 Deh, tu reggi in tal memento이다. 소프라노 카바티나인 Di piacer mi balza cor와 테너 카바티나인 Vieni fra queste braccia도 유명하다. 그런데 Vieni fra questa braccia의 시작 가사는 벨리니의 '청교도'에서 아르투로와 엘비라의 듀엣을 위한 카발레타의 시작 가사와 똑 같아서 흥미롭다.

 

'도둑까치'의 한 장면

 

- La buona figliuola(마음씨 좋은 아가씨: 다른 제목은 La Cecchina이다)는 니콜로 피치니(Niccolo Piccini)의 3막 오페라 부파이다. 대본은 사무엘 리챠드슨의 소설 Pamela(파멜라)를 바탕으로 카를로 골도니가 썼다. 이 오페라는 피치니의 대표적인 성공작이다. 이 오페라는 1760년 2월 6일에 로마의 테아트로 델레 다메에서 초연되었다. 런던 공연은 1766년이었다. 피치니는 1761년에 La buona figliuola maritata(마음씨 착한 여인의 남편)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만든 일이 있다. La buona figliuola의 후편이다. 한편 게타노 라틸라(Gaetano Lattila)는 1766년에 La buona figliunola supposta vedova(마음씨 착한 과부 아가씨) 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피치니의 오페라와 거의 같은 내용이다. 이 오페라는 중국에서 무대에 올려진 최초의 유럽 오페라라고 한다. 청나라의 건륭제가 참석한 가운데 공연되었다고 한다.

 

콘칠리아의 후작은 하녀인 체키나(Cecchina)를 사랑한다. 이 사실을 알게된 후작의 여동생의 약혼자인 아르미도로(Armidoro)는 후작이 그런 낮은 신분의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문의 수치이므로 후작의 여동생과의 결혼을 없었던 일로 하자고 주장한다. 후작의 여동생인 루친다(Lucinda)는 훌륭한 신사인 아르미도로와 파혼하는 것이 걱정이 되어 오빠인 후작에게 제발 하녀인 체키나를 만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한편, 체키나는 체키나대로 고민꺼리가 많다. 우선 가난한 멘고토(Mengotto)이다. 멘고토는 체키나를 죽어라고 좋아하여서 잠시도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주 귀찮은 존재이다. 귀찮은 존재는 또 있다. 산드리나와 파올루키아이다. 기회만 있으면 체키나를 못살게 구는 여자들이다. 오페라는 엎치락 덮치락 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한다. 결론은 체키나가 독일의 남작의 딸이라는 것이 판명되는 것이다. 이로써 신분상의 문제로 후작과 결혼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졌다.

 

- Crispino e la comare(신기료장수와 요정)은 루이지 리치와 페데리코 리치(Federico Ricci)이다. 이탈리아어 대본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Francesco Maria PPiave)가 썼다. 초연은 1850년 2월 28일 베니스의 산베네데토극장이다. 이 오페라는 19세기에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이탈리아 순회오페라단의 미국공연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탈리아 순회오페라단은 대양주와 아시아의 몇몇 나라도 방문하여 공연을 가졌다. 예를 들어 인도의 캘커타 공연은 1867년에 있었으며 호주 공연은 1871년 멜본의 프린쎄스 극장에서 있었다. 스토리는 17세기 베니스가 무대이다. 신기료장수인 크리스피노는 아무리 일을 해도 도무지 생활이 펴지지 않고 있어서 한숨만 쉬고 있다. 이때 요정이 나타나 크리스피노를 도와 주겠다고 한다. 요정은 크리스피노에게 의술을 행하여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면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고 의학책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크리스피노는 책을 읽을 줄도 모른다. 요정은 크리스피노를 크게 도와주어 요한 의사가 되도록 만들어 준다. 크리스피노는 돈을 많이 벌었다. 하지만 재산을 쓸데 없이 낭비하기가 일수이며 더구나 조강지처를 구박하기 까지 한다. 이에 요정은 크리스피노를 단단히 꾸짖어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만든다. 크리스피노는 크게 뉘우치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 Princess Toto(토토 공주)는 윌렴 길버트와 그의 오랜 동료인 프레데릭 클레이(Frederick Clay)가 협동하여 만든 3막의 코믹 오페라이다. 길버트는 나중에 설리반과 콤비를 이루어 뮤지컬 오페레타를 만들어 사보이극장에서 공연했기 때문에 영국식 오페라(뮤지컬 또는 오페레타)를 사보이 오페라라고 부른다. '토토공주'의 초연은 1876년 6월 24일 노팅엄의 왕립극장에서 있었다. 길버트와 클레이는 오래동안 협동하여 오페라를 제작하여 왔다. '토토공주'는 이들의 공동협력 제4탄으로 마지막 협동작품이다. 길버트는 설리반이라는 위대한 작곡가를 만나 Trial by Jury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결론은 대성공이었다. 그후 길버트는 설리반과 함께 15년 동안 콤비가 되어 세계를 주름잡았다. '토토공주'에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재치있는 대사들이 점철되어 있지만 어쩐 일인지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래서인지 길버트는 '토토공주'에 대한 향후 10년간의 공연권을 클레이에게 팔았다. 이에 따라 1876년의 런던 초연을 주관한 것도 클레이 혼자였다. 클레이는 이어 미국 순회공연에 대하여도 모두를 관리하였다. '토토공주'의 출연진은 포르티코왕(베이스), 국무총리인 자페터(Zapeter: 베이스 바리톤), 왕의 시종장인 자미레크(Jamilek: 테너), 토토공주와 약혼한 카라멜 왕자(코믹 바리톤), 도로(Doro)왕자(테너), 토토공주(포르티코 왕의 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젤리(토토의 유모: 메조소프라노) 등이다. 스토리를 소개코자 하면 너무 길어서 지면상 생략코자 한다. 그래도 섭섭한 면이 있어서 '토토공주'는 본 블로그의 오페라 추가 편에 별도 소개코자 함.

 

- Naughty Marietta(말썽장이 마리에타)는 빅터 허버트(Victor Herbert)가 음악을 맡고 리다 존슨 영(Rida Johnson Young)이 대본을 맡은 2막의 오페레타이다. 1910년 10월 24일 뉴욕주의 시라큐스에서 초연되었고 브로드웨이에는 그해 11월 7일에 상륙하여 뉴욕극장에서 136회의 연속공연을 기록하였다. 이 오페라는 빅터 허버트의 대성공작이다. 무대는 1780년 뉴올리언스이다. 리챠드 워링턴 선장은 악명 높은 프랑스 해적선장을 체포하여 복면을 벗겨 신원을 밝히라는 사명을 부여 받았다. 해적선장은 자칭 Bras Prique 라는 사람으로서 복면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과연, 워링턴 선장은 브라 프리크를 체포하여 일단 감금하였다. 하지만 해적선장은 말썽장이로 유명한 마리에타 백작부인의 도움을 받아 유유히 탈출한다. 이 오페레타에는 많은 노래들이 등장한다. 아마 가장 유명한 노래는 Ah! Sweet Mystery of Life(달콤하고 신비한 인생)일 것이다. Naughty Marietta는 1935년 MGM 영화로 제작되었다. 당시 최고 인가의 여배우 자네트 맥도날드(Jeanette MacDonald)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1955년에는 TV용으로 제작되어 미국 전역에 생방송되었는데 유명한 패트리스 문젤(Patrice Munsel)이 타이틀 롤을 맡았고 상대역은 알프레드 드레이크(Alfred Drake)였다.

 

- Monsieur Beaucaire(무슈 보케어)는 앙드레 메싸저(Andre Messager)가 작곡한 3막의 로맨틱 오페라이다. 대본은 1900년도에 부스 타킹턴(Booth Tarkington)이 쓴 소설을 바탕으로 프레데릭 론스데일(Frederick Lonsdale)이 완성했다. 노래 가사의 상당부분은 아드리안 로쓰(Adrian Ross)의 산물이다. 이 오페라는 1919년 4월 7일 영국 버밍햄의 웨일스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런던 초연은 그해 4월 19일, 프린스 극장에서였다. '무슈 보케어'는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여 1919-20년 시즌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 초연은 마땅한 극장을 찾기가 어려워서 1925년 11월에 가서야 겨우 성사되었다. 그후 잠시 휴식을 취한후 파리 오페라 코믹의 정규 레퍼토리로 진입하게 된 것은 1954년이었다. 자크 잔센(Jacques Jansen)과 드니스 듀발(Denise Duval)이 주역으로 출연하였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노래는 I do not know, Red Rose, Philomel 등이다. 멋쟁이 이발사인 무슈 보케어는 어느날 윈터셋(Winterset) 공작이 도박판에서 속이는 것을 알아챘다. 이를 기화로 무슈 보케어는 윈터셋 공작에게 약간의 압력을 넣어 대가면무도회에 참석한다. 무슈 보케어는 무도회에서 자칭 샤르트르(Chartres)공작이라고 소개하여 아름다운 레이디 메리를 소개 받는다. 무슈 보케아는 가면무도회에서 인기집중이 된다. 스토리는 윈터셋 공작이 무슈 보케어의 신분을 탄로나게 만들려고 별별 노력을 다 기울이지만 무슈 보케어는 유유작작 엔조이한다는 내용이다. 상류사회에 대한 일종의 반항 및 경고라고나 할까?

 

무슈 보케어의 한 장면. 마리온 그린과 매기 타이트

 

- The Student Prince(학생왕자)는 시그문드 롬버그(Sigmund Romberg)의 오페레타로서 가사는 도로시 도넬리(Dorothy Donnelly)가 맡았다. 원작은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Wilhelm Meyer Foerster)의 희곡 Alt Heidelberg(알트 하이델베르크)이다. 롬버그의 오페레타는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롬버그의 다른 작품에 비하여 허세를 부린다든지 하는 면이 부족하며 오히려 원작에 충실한 편이다. 초연은 1924년 12월 2일 브로드웨이에서 있었다. '학생왕자'는 롬버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것이다. 초연 이후 연속 608회의 공연이 있었다. 이것은 1920년대에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장기간 공연된 쇼이다. 1920년대에 가장 인기를 끌었다는 Show Boat 도 통산 572회의 공연을 했을 뿐이었다. Drink! Drink! Drink!로 시작하는 '학생왕자'의 드링킹 송은 1924년에 가장 인기를 끈 노래였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정부는 금주법을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생왕자'에는 오페레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너 아리아를 자랑한다. 즉, Overhead the moon is beaming 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세레나데이다. 이 오페레타는1954년에 MGM이 영화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태자의 첫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노래는 마리오 란자가 불렀으며 칼 프란츠 왕자역의 에드먼드 퍼돔(Edmund Purdom)은 립싱크하였다. 이 오페레타는 매년 여름 열리는 하이델베르크 성 축제(Heidelberg Castle Festival)에서 공연되고 있다.

 

현재 6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사람들이면 '황태자의 첫 사랑'(Student Prince)에 대하여 기억도 새롭겠지만 아마 젊은층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그리하여 스토리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독일에 있는 칼스버그 왕국의 칼 프란츠 왕자(소설 속의 인물임)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인 페르디난트 국왕으로부터 군대적인 교육을 받았다. 칼 프란츠는 요한나 공주(어떤 버전에는 마르가레트 공주)와 어릴 때 약혼하였다. 재정적으로 궁핍한 칼스버그 왕국은 독일에서도 부강한 왕실의 요한나 공주와 결혼함으로서 왕국의 경제를 회생시킬 속셈이다. 그러나 요한나 공주는 칼 프란츠가 인간적이 아니고 지나치게 군대적인데 대하여 실망하고 있다. 페르디난트 왕은 손자 칼 프란츠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보내어 군대 이외의 일반적인 교육을 받도록 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출신의 가정교사 독토르 엥겔과 충실한 시종 루츠(Lutz)가 동행하였다. 이들은 하이델베르크에서 루더(Ruder)의 여관에 숙소를 정한다. 칼 프란츠는 친구들을 사귀어 대학생으로서의 생활을 엔조이한다. 그러다가 여관집 주인의 조카인 카티(Kathie)와 사랑에 빠진다. 칼 프란츠와 카티는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사랑의 도피를 할 생각을 했다. 마침 그때 칼스버그 왕국의 페르디난트 왕이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칼 프란츠 왕자는 칼스버그 왕국으로 돌아갈수 밖에 없었다. 페르디난트 왕이 세상을 떠나고 칼 프란츠가 칼스버그 왕국의 새로운 왕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요한나 공주와의 결혼을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칼 프란츠의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카티에게 있었다.

 

오페레타 '학생왕자'의 한 장면

 

- The Vagabond King(떠돌이 왕)은 루돌프 프리믈(Rudolf Friml)의 1925년도 4막짜리 오페레타이다. 1901년도에 저스틴 맥카티(Justin McCarthy)가 쓴 로맨틱 연극인 If I Were King(내가 만일 왕이라면)을 바탕으로 브라이언 후커와 윌렴 포스트가 대본과 노래 가사를 만들었다.15세기의 유명한 시인이며 도둑인 프랑수아 빌롱(Francois Villon)에 대한스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것이다. 프랑수아 빌롱이 루이 11세의 사촌인 캐서린 드 보셀레스(Katherine De Vaucelles)의 사랑을 얻은 이야기, 하루동안의 왕이 되었던 이야기, 프랑스를 부르군디 공작의 침공으로부터 용감히 방어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초연은 1925년 9월 21일 뉴욕의 카지노 극장에서 있었으며 이후 연속 511회의 공연이 있었다. 런던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1927년 윈터 가든 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린 이래 연속 480회의 공연이 있었다.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브루군디공작의 군대가 파리를 포위하고 있다. 루이11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낮았다. 시인이며 허풍장이이고 도둑이며 파리 여인들의 애인 겸 부랑자들의 지도자인 빌롱은 어느날 루이11세의 사촌인 아름다운 캐서린 드 보셀레스 공주를 보자 단번에 사랑에 빠져 무명으로 공주에게 사랑의 시를 써서 보낸다. 캐서린 공주는 무명의 시인으로부터 받은 시를 읽고 감동하여 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찾아가기로 한다. 루이11세는 캐서린공주에게 청혼할 생각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공주가 어떤 무명의 시인에게 감동하여 찾아간다는 것이다. 루이11세는 도대체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변장을 하고 공주를 미행한다. 마침내 루이11세는 빌롱이 바로 그 사람인 것을 알아낸다. 그런데 빌롱은 루이11세가 있는 것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루이11세의 실정에 대하여 계속 풍자적으로 조롱을 한다. 이에 화가 치민 루이11세는 급기야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빌롱에게 국왕을 능멸한 것은 반역죄와 같은 것이니 처형을 받아야 마땅한데 다만 캐서린 공주에게서 깨끗이 손을 떼던지, 그렇지 않으면 국왕과 마찬가지의 권세를 지닌 총사령관의 직분을 단 24시간동안만 주겠으니 파리를 포위한 적군들을 물리치라고 명령했다. 루이11세는 빌롱에게 만일 적군을 물리치지 못한다면 당장 교수형에 처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빌롱은 국왕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파리의 부랑자들을 모두 모아 시민들과 함께 적군을 물리친다. 루이11세는 빌롱의 용기를 치하하며 그를 사형에 처하는 대신 캐서린과 멀리 떠나 살도록 한다.

 

떠돌이 왕(배가본드 킹)의 한 장면

 

- Les mousquetaires au couvent(수도원의 총사들)은 루이 바르네이(Louis Varney)가 작곡한 3막의 프랑스 오페레타이다. 대본은 생일레어(St Hilaire)와 듀퐁(Dupont)이 1835년에 쓴 L'habit ne fai pas le moine라는 타이틀의 보데빌 대본을 바탕으로 쥘르 프레벨(Jules Prevel)과 폴 페리어(Paul Ferrier)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이 오페레타는 바르네이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서 프랑스 레퍼토리에 계속 올라와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초연은 1880년 3월 16일 파리의 테아트르 데 부페 파리지앵(Theatre des Bouffest-Parisiens)에서 있었다. 그후 이 작품은 여러번의 수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가장 최근의 공연은 2001년 니스에서였다.

 

프랑스 오페레타 '수도원의 총사들'의 한 장면

 

- Zemire et Azor(제미르와 아조르)는 벨기에 출신의 작곡가인 앙드레 그레트리(Andre Gretry: 1741-1813)가 작곡한 4막의 오페라 코믹이다. 오페라의 장르에서는 Opera feerie, 즉 ‘동화오페라’에 속하지만 프랑스에서는 Comedie-ballet melee de chants et de danses(노래와 춤이 혼합된 코미디 발레)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어 대본은 장 프랑수아 마르몽텔(Jean Francois Marmontel)이 장-마리 르 프랭스 드 보몽(Jean-Marie Le Prince de Beaumont)의 희곡 La Belle et la bete(미녀와 야수)와 니벨 드 라 쇼쎄(Nivelle de La Chausse)의 Amour pour amour(사랑을 위한 사랑)를 바탕으로 완성했다. 이 오페라에는 소프라노가 새의 소리를 흉내 내는 유명한 콜로라루토 아리아인 La Fauvette가 나온다. ‘제미르와 아조르’는 1771년 11월 9일 파리 근교의 퐁텐블로 궁전에서 초연되었고 일반 초연은 그해 12월 16일 파리의 코메디 이탈리앵 극장에서였다. 이 오페라는 1821년까지 프랑스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며 공연되었다. 1774년에는 러시아의 생페터스부르크에서, 1778년에는 스웨덴의 드로트닝홀름 궁전극장에서, 1779년에는 런던의 왕립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앙드레 그레트리

 

상인 산더(Sander)와 하인 알리(Ali)는 폭퐁으로 배가 침몰하여 가까스로 육지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어떤 이상한 궁전이 있었다. 궁전 안에 들어갔더니 놀랄만한 연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준비되어 있는 음식을 마음껏 들었다. 호기심이 생긴 산더는 궁전의 장미정원을 구경하다가 딸 제미르가 생각나서 장미꽃 한 송이를 꺾는다. 그때 야수처럼 생긴 아조르가 나타난다. 궁전의 주인인 아조르는 산더에게 자기 소유의 장미를 꺾었으니 그 댓가로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며 다만, 산더가 세 딸 중에서 한 명을 설득하여 이곳으로 데려와 자기와 살도록 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산더가 근심 중에 딸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자 두 딸은 절대로 갈수 없다고 했지만 막내딸인 제미르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고 나선다. 하인 알리가 제미르를 안내하여 야수가 사는 궁전에 데려다 준다. 궁전에서 야수처럼 생긴 아조르를 본 제미르는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된다. 하지만 아조르가 제미르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주는 바람에 겨우 정신을 차린다. 그렇게 하여 제미르는 야수의 궁전에서 지내기 시작한다. 아조르는 제미르가 식구들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마법의 거울을 통하여 아버지와 언니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도 제미르는 집에 돌아가 식구들을 보고 싶어하자 아조르는 제미르에게 가족들이 보고 싶으면 집에 다녀와도 좋다고 하며 다만 반드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미르는 기쁜 마음으로 아조르와 약속을 하고 집에 돌아가 식구들을 만나서 지낸다. 얼마후 제미르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아조르의 궁전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궁전에 와서 보니 아조르가 무척 수척하여 있다. 아조르는 제미르가 자기를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낙담하다가 병에 걸린 것이다. 불쌍한 아조르의 모습을 본 제미르는 아조르를 붙잡고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하여 진정한 사랑을 찾은 아조르는 마법이 풀리면서 멋있는 왕자가 된다. 그리고 자기의 왕국을 제미르와 함께 다스리겠다고 선언한다.

 

그레트리의 오페라 '제미르와 아조르'의 비엔나 공연에서 제미르 역을 맡은 소프라노 알로이지아 베버.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와 결혼코자 했으나 알로이지아가 거절하고 또한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가 반대하여 이루지 못했다. 모차르트는 대신 알로이지아의 동생인 콘스탄체와 결혼하였다. 알로이지아는 나중에 배우 겸 화가인 요셉 랑게와 결혼하였다. 요셉 랑게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초상화를 그린 사람으로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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