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의 장르

오페라의 장르 - 6

정준극 2011. 3. 29. 16:37

 

장르   내용  대표적 첫 작품  대표적 작품  마지막 작품  대표적 작곡가
 Singspiel(독). 복수는 Singspiele. 징슈필  '노래 연극'이라는 뜻. 18-19세기에 활발하였음.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에서 기원하였으나 프랑스의 오페라 코믹에서도 영향을 받음. 대화체가 자주 나오며 민속적인 발라드와 아리아가 등장함. 원래 유랑극단이 공연. 주제는 주로 코믹하거나 로맨틱한 것이며 마법적인 내용도 있음. 독일의 '구원오페라'(Rescue opera)또는 '낭만적 오페라'로 발전함.  Die Teufel ist los(요한 게오르그 슈탄트후쓰: 1752)  Die verwandelten Weiber(1766), Die Jagd(1770), Die Entfuhrung aus dem Serail(1782), Abu Hassan(1811)    힐러, 모차르트, 베버
 Situations-posse(독). 시투아티온스 포세  Posse mit Gesang의 특별한 형태로서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삼음.        
 Songspiel(독). 종슈필  '노래 연극'이라는 의미. 징슈필의 개념을 새롭게 하기 위해 쿠르트 봐일이 창안    Mahagonny-Songspeil(1927)    쿠르트 봐일
 Spieloper(독). 슈필오퍼  '오페라 연극'이라는 의미. 징슈필에서 발전한 19세기의 가벼운 오페라 장르로서 오페라 코믹의 정도에는 미치지 않음. 대화체가 많음.    Zar und Zimmermann(1837), The Merry Wives of Windsor(1849)    로르칭, 니콜라이
 Syngespil(덴마크). 신게스필  징슈필의 덴마크 스타일. 18세기 후반에 유행.    Soliman den Anden(사르티: 1770), Holger Danske(1787)    사르티(Sarti), 슐츠, 쿤첸(Kunzen)
 Tonadilla(스페인). 토나디야  '작은 곡조'라는 의미. 18세기 축소적인 풍자 장르의 오페라. 이것으로부터 Sainete가 발전됨. 긴 작품의 중간에 공연    La mesonera y el arriero(루이스 미손: 1757)    안토니오 게레로, 루이스 미손(Luis Mison), 호세 팔로미노
 Tragedie(프)  Tragedie en musique를 말함        
 Tragedie en musique(프). 트라제디 앙 무지크  17-18세기 고전적 신화를 주제로 한 리릭 장르의 작품. 반드시 비극적일 필요는 없음. 일반적으로 5막으로 구성. 레시타티브 형태의 대화체가 많으며 아리아는 상대적으로 짧음(Petits airs). 춤과 합창이 곁들임.  Cadmus et Hermione(1673)  Medee(1693), Scylla et Glaucus(1746)    장-밥티스트 륄리, 마레(marais), 몽테클레어(Monteclair), 캄파라(Campara), 라모
 Tragedie lyrique(프). 트라제디 리리크  Tragedie en musique의 다른 명칭        
 Tragedie-opera(프). 트라제디 오페라  Tragedie en musique의 다른 명칭        
 Verismo(이). 베리스모  19세기 말, 20세기 초,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에 영향을 받은 오페라 운동. 이탈리아 후기낭만주의와 관련.  Cavalleria rusticana(1890)  I Pagliacci(1892), Tosca(1900)    레온카발로, 푸치니, 마스카니, 조르다노

 Volksmarchen(독). 폭스매르헨

 Marchenoper의 다른 명칭    Das Donauweibchen: 1798)    카우어(Kauer)
 Zarzuela(스페인). 사르수엘라

 17세기부터 스페인에서 유행한 노래, 대화, 춤이 어울린 오페라. 쿠바와 필리핀에서는 지방의 전통적인 내용을 첨가

 La selva sin amor(로페 데 베가: 1627)  Dona Francisquita(1923), La dolorosa(1930), Lusia Fernanda(1932)    히달고, 바르비에리
 Zauberoper(독)  '마법 오페라'라는 뜻. 18-19세기초 비엔나를 중심으로 유행함. Zauberposse보다 형식적이고 무거움. 대화체가 다수 등장함.  Oberon, Konig der Elfen(브란치츠키: 1789)  Die Zauberflote(1791), Das Donauweibchen(1798)     카우어, 뮐러, 슈베르트, 모차르트
 Zauberposse(독)  Posse mit Gesang에 속한 특별 형태. 마법적인 내용에 중점을 둠.    Der Barometer-macher auf der Zauberinsel(뮐러: 1823)    뮐러
 Zeitoper(독)  '시대의 오페라'라는 의미. 1920-30년대에 나온 장르로서 현대적 세팅과 인물이 등장함. 대중음악도 인용함.    Jonny spielt auf(1927)    크레네크, 봐일, 힌데미트
 Zwischenspiel(독)  인터메쪼의 독일어 표현    Pimpinone(1725)    
           
           

 

스페인의 사르수엘라인 '루이자 페르난다'의 한 장면

 

- Die Jagd(사냥)은 독일의 작곡가 요한 아담 힐러가 작곡한 3막의 징슈필이다. 대본은 크리스티안 펠릭스 봐이쎄(Christian Felix Weisse)가 샤를르 콜레(Charles Colle)의 소설 L partie de chasse de Henri IV와 로버트 도드슬리(Robert Dodsley)의 소설 The King and the Miller of Mansfield를 바탕으로 썼다. 이 오페라는 1770년 1월 29일 봐이마르 슐로쓰테아터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오페라 '사냥'은 독일 징슈필의 초기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것이다. 괴테와 바그너도 힐러의 '사냥'을 대단히 찬양했다.

농부 미셸의 아들인 크리스텔의 약혼자인 핸헨(Hannchen)이 갑자기 실종되었다. 며칠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농부 미셰은 핸헨이 나타날 때까지 딸 뢰센(Roeschen)과 마을 청년 퇴펠(Toeffel)의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얼마후 핸헨이 돌아왔다. 슈메털링 백작에게 납치되었었다는 것이다. 모두들 무사히 돌아온데 대하여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때 갑자기 폭풍이 분다.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서 숨는다. 사냥을 나왔던 왕의 수행원들도 모두 대피한다. 왕은 폭풍을 피하여 농부 미셸의 집으로 피신한다. 하지만 자기가 누구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핸헨은 왕의 사냥 수행원 중의 한 사람이 자기를 납치했던 슈메털링 백작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왕은 신분을 밝히고 슈메털링 백작을 멀리 쫓아 버리며 미셸의 가족에서 후한 상을 내린다.

 

- Abu Hassan(아부 하싼)은 칼 마리아 폰 베버가 작곡한 단막의 징슈필이다. 독일어 대본은 프란츠 히머(Franz Hiemer)가 '천일야화'에서 힌트를 얻어 썼다. 징슈필 '아부 하싼'은 1811년 6월 4일 뮌헨의 레지덴츠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런던 초연은 1835년 드러리 레인의 로열극장에서였다. 바그다드 칼리프의 총애를 받고 있는 아부 하싼은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아부 하싼은 자기가 죽으면 칼리프의 부인인 조바이데(Zobeide)로부터 위로금을 얻어 낼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내인 화티마(Fatima)를 보내어 자기가 죽었다고 보고토록 한다. 화티마는 조바이데로부터 금화 50개와 아름다운 옷감을 받는다. 화티마가 돌아오자 빚쟁이들이 몰려와 서로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아부 하싼이 가장 빚을 많이 진 사람은 오마르였다. 화티마는 오마르가 자기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을 알고 약간의 트릭을 써서 오마르가 모든 빚쟁이들을 대표해서 남편의 빚을 갚는 것으로 만들었다. 한편, 아부 하싼은 칼리프에게 자기 아내가 죽었다고 말하면 화티마가 받았던 만큼의 위로금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여 칼리프를 찾아가 아내 화티마가 죽었다고 보고한다. 얼마후 칼리프가 시종장인 메스루르(Mesrur)를 아부 하싼의 집에 보낸다. 화티마도 죽었다는데 과연 죽었는지, 화티마와 아부 하싼이 모두 죽었다면 누가 먼저 죽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메스루르가 보니 화티마가 긴의자에 죽은 듯 누워 있는데 그 옆에서 아부 하싼이 장례식 옷을 입고 슬퍼하는 모습이었다. 메스루르는 칼리프에게 돌아가 죽은 것은 화티마라고 보고한다. 한편, 조바이데는 그대로 아부 하싼의 집에 유모를 누가 죽었는지를 확인토록 한다. 유모가 보니 아부 하싼이 죽은듯 누워 있는데 그 옆에서 화티마가 슬피 울고 있다. 유모는 그대로 보고한다. 얼마후 칼리프가 신하들을 데리고 아부 하싼의 집에 당도하여 신하들에게 아부 하싼과 화티마 중에서 누가 먼저 죽었는지를 알아내면 금화 1천개를 주겠다고 발표한다. 이 소리를 들은 아부 하싼이 벌떡 일어나 칼리프의 발 아래 꿇어 엎드려 '폐하, 제가 먼저 죽었습니다.'라며 금화 1천개는 자기의 것이라고 말한다. 화티마도 곧장 일어나 자기가 먼저 죽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칼리프는 두 사람의 솔직함을 높이 평가하여 용서한다. 그리고 화티마의 마음을 얻으려고 빚을 대신 갚겠다고 했던 오마르는 명예스럽지 못하게 귀양을 간다.

 

'아부 하싼'의 한 장면. 요르단의 암만.

 

- Holger Danske(홀거 단스케)는 덴마크의 F.L. Kunzen(쿤젠)이 작곡한 징슈필로서 오베론 신화에 기본을 둔 대본은 옌수 바게센(Jens Baggesen)이 썼다. '홀거 단스케'는 덴마크 오페라의 최대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789년 3월 31일 초연을 했을 때에는 커다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당시 덴마크와 독일은 서로 견원지간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독일의 영향을 받은 징슈필을 만들어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국적인 덴마크의 지식층은 '홀거 단스케'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홀거 단스케'는 초연이후 몇차례의 공연을 더 가졌지만 곧이어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다가 1941년 코펜하겐의 로열극장에서 리바이발되었다. '홀거 단스케'가 초연된지 거의 150년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홀거 단스케'가 덴마크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작품으로 인식이 되어 크게 환영을 받았다. 독일의 덴마크 점령에 반발하는 처사였다. 홀거 단스케(또는 Ogier le Danois)는 덴마크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그는 덴마크 조프리왕의 아들로서 그의 아들이 샬레마뉴의 아들인 샬롯(Charlot)에게 살해 당하자 아들의 복수를 위해 샬롯을 죽이고 이어 샬레마뉴대제까지 거의 죽이려다가 실패한다. 그는 7년동안이나 샬레마뉴에게 대항하여 싸웠다. 그러다가 사라센이 침공을 하자 거국적인 입장에서 샬레마뉴와 화해를 하고 샬레마뉴의 군대에 들어가 사라센과 싸웠다. 홀거는 사라센과의 전투에서 마치 골리앗과 같은 거인 브레후스를 죽여 사라센 침입자들을 물리쳤다. 홀거 단스케는 2차 대전 중에 나치 독일군에 저항하는 최대의 지하조직이었다. 홀거 단스케는 겨울전쟁(Winer War: 1939년 11월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핀랜드의 편에 서서 소련에게 대항한 전쟁)의 참전용사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되었다. 홀거 단스케는 약 350명의 자원병으로 구성되어 2차 대전이 끝날 때자기 덴마크와 핀랜드를 중심으로 100회 이상의 사보타쥬를 주도했으며 반역자들을 색출하여 처형했다.

 

홀거 단스케 기념상

 

- The Marriage(결혼)은 보후슬라브 마리티누가 작곡한 2막의 코믹 오페라이다. 대본은 니콜라이 고골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작곡자 자신이 썼다. 이 오페라는 1953년 NBC 방송을 통해 첫선을 보였으며 나중에 NBC방송은 NBC-TV 오페라극장에서 무대공연도 주선하였다. 그러나 일반극장에서 공연된 것은 1954년 3월 31일 함부르크 국립오페라에서가 처음이다. 그리고 수정본이 초연된 것은 1989년 9월 21일 독일 본(Bonn)극장에서 였으며 이때 우도 침머만이 지휘했다. 오페라의 무대는 19세기 생페터스부르크이다. 아가피야(Agafya)의 부모는 아가피야가 포드콜리오신(Podkolyosin)과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포드콜리오신은 생각이 다르다. 아가피야에게 별로 마음이 없다. 그런데 아가피야에게는 세명이나 되는 구혼자가 있다. 모두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에 아가피야의 아버지는 포드콜리오신을 적극 후보자로 추천한다. 이제 아가피야는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결혼식을 앞두고 포드콜리오신을 창문을 통해 도망간다.

 

- Man on the Moon(달나라에 간 사람)은 조나탄 도우브(Jonathan Dove)의 단막 텔레비전 오페라이다. 대본은 니콜라스 라이트(Nicholas Wright)가 썼다. 스토리는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나라에 발을 디딘 역사적인 사항에 대한 것이다. 아폴로 11호의 발사 준비과정, 달나라 착륙 등을 다루었다. 또한 달나라에 두번째로 발을 디딘 부즈 알드린(Buzz Aldrin)이 겪는 고통을 다루었다. 알드린은 부인 조앤과 이혼하였으며 달나라에 착륙했던 명성도 잠시뿐이었다. 이 오페라는 미국의 채널 4에서 2006년 12월 26일 첫 방영되었다. 이 오페라는 2007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있었던 Rose d'Or 페스티벌에서 오페라특별상을 받았다.

 

- Scylla et Glaucus(스킬라와 글라우쿠스)는 장 마리 르클레어가 작곡한 프롤로그와 5막의 Tragedie en musique의 장르에 속하는 오페라이다. 유진 달베르의 대본은 오비드의 Metamorphoses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오페라는 1746년 10월 4일 파리의 아카데미 로열 드 무지크(왕립음악원)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에는 수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비너스, 라무르(큐피드), 글라우쿠스(해신), 리카스(글라우쿠스의 친구), 스킬라(님프), 테미르(스킬라의 친구) 등이 등장한다. 마법녀인 시르세(Circe)는 해신인 글라우쿠스를 사랑한다. 글라우쿠스는 님프인 스킬라를 사랑한다. 시르세는 스킬라를 바위로 만든다. 바위가 된 스킬라의 모습은 메싸니 해협에 남아 있다.

 

스킬라와 글라우쿠스

 

- Cadmus et Hermione(카드무스와 헤르모니아)는 장 밥티스트 륄리가 작곡한 프롤로그와 전5막의 Trageide en musique의 장르에 속하는 오페라이다. 프랑스어 대본은 필립 퀴노(Philippe Quinault)가 썼다. 이 오페라는 1673년 4월 27일 파리의 Jeu de Bequet에서 초연되었다. 프롤로그는 루이14세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루이14세는 아폴로로 상징되었다. 아폴로가 델피의 파이톤을 죽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내용이다. 본막에서는 테베왕국을 수립한 카드무스(카드뮈)와 아름다운 헤르모니아(에르미온)의 사랑을 다룬 것이다. 헤르모니아는 비너스와 마르스(군신)의 딸이다. 기타 등장인물은 팔라스 아테나, 큐피드, 주노, 주피터 등이다.

 

'카드무스와 헤르모니아'의 한 장면

 

- Pimpinone(핌피노네)는 독일의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이 작곡한 코믹 오페라이다. 대본은 요한 필립 프래토리우스가 맡았다. '핌피노네'의 풀 타이틀은 Die Ungleiche Heirat zwischen Vespetta und Pimpinone(베스페타와 핌피노네의 어울리지 않는 결혼) 또는 Das herrsch-suechtige Camer Maegden(콧대 높은 하녀)이다. 3장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는 독일의 오페라 장르에서 Lustiges Zwischenspiel(코믹 인터메쪼)라고 분류되기도 한다. 초연은 1725년 9월 27일 함부르크의 테아터 암 갠제마르크트에서 있었다. 인터메쪼이므로 텔레만이 헨델의 오페라 Tamerlano를 편곡한 작품의 막간에 공연되었다. '핌피노네'는 대인기를 끌었다. 나중에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는 La serva padrone(하녀 마님)에 '핌피노네'의 플롯을 사용했다. 하녀인 베스페타는 나이 많은 홀아비 주인 영감인 핌피노네와 결혼해서 팔자를 고치고자 한다. 그래서 나긋나긋하고 고분고분하게 핌피노네의 비위를 맞춘다. 그러나 일단 결혼하자 베스페타는 대단히 잔소리가 많고 사사건건 참견하는 여편네가 된다. 핌피노네가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베스페타는 '작은 말벌'이라는 뜻이다.

 

핌피노네의 한 장면

 

- Owen Wingrave(오웬 윈그레이브)는 벤자민 브리튼의 2막짜리 텔리비전 오페라이다. 대본은 헨리 제임스의 단편을 마이패니 파이퍼(Myfanwy Piper)가 썼다. 브리튼은 1954년에 파이퍼와 함께 The Turn of the Screw(잘못 꼬인 일)를 작곡할 때부터 함께 일을 해왔으며 그때에 오웬 윈그레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966년에 BBC 텔리비전은 브리튼에게 새로운 오페라를 의뢰하였다. 그리하여 브리튼과 파이퍼는 1970년 8월에 오웬 윈그레이브를 완성하였다. 이 오페라는 1971년 5월 16일 BBC 2를 통하여 처음 방송되었다. 브리튼은 12음 기법과 음렬주의(시리얼리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 오페라의 음악도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작곡되었다. 특히 타악기의 사용이 두드러졌다. 브리튼은 월남전에 대한 대응으로서 그런 음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이 월남전에 참전하기 시작했었다. 오웬은 훈련병이지만 교관의 마음에 맞게 행동하지 못한다. 오웬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 되는 사람은 가족중 한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이상하게 죽었다. 그리고 현재의 가족들 모두 문제가 있다. 그나마 오웬을 이해한다는 케이트 줄리안도 오웬의 이상한 행동과 생각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다. 케이트는 오웬이 남자 답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한다. 오웬은 증조 할아버지가 비명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바로 그 으시시한 방의 침대에서 하루 밤을 지내기로 한다. 다음날 아침 오웬은 증조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하는 바로 그 소파에서 죽어 있었다. 별 이상한 오페라도 다 있다.

 

오웬 윈그레이브의 한 장면. 시카고 리릭 오페라.

 

 

'오페라 이야기 > 오페라의 장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메쪼(Intermezzo)  (0) 2012.10.13
파스타치오(Pastaccio)  (0) 2011.06.03
오페라의 장르 - 5  (0) 2011.03.29
오페라의 장르 - 4  (0) 2011.03.29
오페라의 장르 - 3  (0) 2011.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