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의 장르

파스타치오(Pastaccio)

정준극 2011. 6. 3. 08:44

파스타치오(Pastaccio)가 뭐길래?

 

음악에 있어서 파스타치오 또는 파스티케(Pastiche)는 여러 사람의 음악으로 구성한 작품을 말한다. 오페라에서 특히 그러하다. 즉, 다른 작곡가의 작품 중에서 상당부분, 또는 일부분을 가져다가 사용하여 만든 작품을 말한다. 실제로 몇 사람이 협력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수가 있고 혹은 과거의 작품 중에서 필요한 음악을 가져다가 짜집기하여 작품을 만들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누가 작곡했는지 확실치 않은 음악을 정리하여 사용하는 것도 파스타치오라고 할수 있다. 예를 들면 전래음악이나 민속음악을 정리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파스타치오는 표절과는 차이가 있다. 더구나 근세에 이르기까지 지적소유원이라는 것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음악을 빌려서 자기의 작품에 사용하는 것은 큰 허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음악을 주제로 하여 변주곡 등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하나의 창작에 가까운 일이었다. 파스타치오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6세기이다. 원래는 파이를 만들 때 파스타와 고기를 섞어서 만든 것을 파스타치오라고 불렀다. 그 용어를 예술세계에 인용한 것이다.

 

조아키노 로시니

 

오페라에 있어서 파스타치오는 18세기에 성행하였다. 헨델도 자주 사용한 기법이었다. 예를 들면 헨델의 무치오 스케볼라(Muzio Scevola: 1721), 지오베 인 아르고(Giove in Argo: Jupiter in Argos: 1739)는 파스타치오의 전형이다. 자기의 오리지널 음악도 포함되지만 여기에 여러 사람의 음악에서 부분부분을 가져와 합성한 작품이다. 글룩과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도 파스타치오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만일 다른 사람의 아리아를 가져와서 자기의 작품에 사용할 경우, 반드시 오리지널대로 둘 필요는 없었다. 아리아를 변형하거나 가사를 바꾸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오페라뿐만 아니라 일반 기악곡에서도 파스타치오가 있다. 모차르트의 4편의 초기 피아노 협주곡은 거의 모두 그 시대에 활동했던 다른 작곡가의 키보드 음악을 빌려서 만든 것이다. 다만, 소년 모차르트는 키보드 솔로 파트에 오케스트라 파트를 추가하는 정도였다.

 

근세에 들어와서 로시니는 파스타치오 형식을 즐겨 사용하였다. 과거에 써 놓았던 오페라를 약간 손질하여 마치 새로운 오페라 처럼 내놓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파스타치오가 아니다. 다른 작곡가가 로시니의 음악을 빌려가서 자기의 음악과 합성하여 만든 작품이 파스타치오 작품이다. 로시니는 다른 작곡가가 로시니의 음악을 빌려 쓰겠다고 하면 두말하지 않고 허락하였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안토니오 파치니(Antonio Pacini)의 '아이반호'(Ivanhoe)와 루이 니더마이어(Louis Niedermeyer)의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이다. 1826년 9월 15일에 파리의 오데온에서 초연된 '아이반호'는 파치니가 로시니의 초기 오페라 여러 편에서 음악을 가져다가 합성하여 만든 작품이다. '로버트 브루스'는 루이 니더마이어가 로시니의 '호수의 여인'(La donna del lago), '첼미라'(Zelmira), '비안카와 팔리에로'(Bianca e Falliero), '토르발도와 도를리스카'(Torvaldo e Dorliska), '아르미다'(Armida)에서 멜로디를 가져와 편곡하여 만든 오페라이다. 1846년 12월 30일 파리오페라에서 초연되었다. 이 두 작품의 경우, 작곡자는 로시니+아무개로 표현하였다.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

조아키노 로시니와 루이 니더마이어가 음악을 맡았고 알퐁스 로이어(Alphonse Royer)와 귀스타브 바에즈(Gustave Vaez)가 대본을 맡은 3막의 파스타치오 오페라이다. 1846년 12월 30일 파리의 Theatre de l'Academie Royale de Musique(왕립음악원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원작은 원터 스콧의 History of Scotland(스코틀란드 역사)이다. 이 오페라의 음악은 니더마이어가 로시니로부터 승락을 받아 La donna del lago, Zelmira, Bianca e Falliero, Torvaldo e Dorliska, Armida의 음악을 부분적으로 가져다가 완성한 것이다. 이른바 파스타치오 오페라의 전형이다. 니더마이어는 레시타티브 파트를 주로 맡아 작곡했다.

 

1843년 신병 치료차 파리에 온 로시니를 레옹 피예(Leon Pillet)가 찾아왔다. 파리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이었다. 레옹 피예는 로시니에게 파리 오페라극장을 위해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고 청탁했다. 로시니는 건강 때문에 곤란하다고 하면서 피례의 청탁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1819년에 그가 작곡한 La donna del lago가 파리에서는 외면받았던 것을 상기하고 또 다른 오페라를 만들어 보았자 별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후 로시니는 볼로냐로 돌아왔다. 레옹 피예가 볼료나까지 찾아왔다. 이번에는 대본가인 귀스타브 바에즈와 작곡가인 루이 니더마이어와 함께 왔다. 결과는 로시니가 마지못해 오페라를 작곡키로 한 것이다. 로시니는 La donna del lago를 바탕으로하여 Robert Bruce를 만들었다. 음악은 주로 La donna del lago의 것을 사용하였지만 다른 오페라에서도 가져와서 사용했다. 로시니는 Robert Bruce의 완성에 직접 간여하였지만 1846년 12월 30일의 파리 초연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연말이어서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Robert Bruce는 대체적인 성공을 보았다. 하지만 엑또르 베를리오즈는 '잡탕 오페라'라고 하면서 비난을 금치 않았다.

 

로버트 브루스 기념우표.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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