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바리톤

바리톤의 제왕 마티아 바티스티니

정준극 2011. 3. 31. 10:22

 

[바리톤의 제왕 마티아 바티스티니]

 

 마티아 바스티아니니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다행하게도 축음기가 발명되어 귀중한 성악가들의 음성이 레코딩될수 있었다. 특히 세계 최고의 도니제티와 베르디 바리톤들이 그들의 빛나는 음성을 남길수 있게 되어 오페라 역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바리톤의 제왕’이라고 하는 마티아 바티스티니(Mattia Battisniti), 바그너 바리톤의 진수를 보여준 주세페 카슈만(Giuseppe Kaschmann), 이밖에 주세페 캄파나리(Giuseppe Campanari), 안토니오 마기니-콜레티(Antonio Magini-Coletti), ‘팔리아치’에서 실비오를 처음으로 맡았던 마리오 안코나(Mario Ancona), 1899년에 메트로에 와서 1933년까지 메트로의 대표적 바리톤으로 활동했던 안토니오 스코티(Antonio Scotti) 등을 우선 생각할수 있다. 한편, 안토니오 피니-코르시(Antonio Pini-Corsi)는 1880년대부터 1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탈리아 부포 바리톤(코믹 바리톤)의 1인자로서 활동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훌륭한 바리톤으로는 장 라살레(Jean Lasalle)를 꼽지 않을수 없다. 가장 정통적인 성악교육을 받은 인물로서 모든 바리톤들의 모범이 되었다. 빅토 모렐(Victor Maurel)은 ‘오텔로’에서 이아고, 활슈타프, ‘팔리아치’에서 토니오의 이미지를 최초로 창조한 바리톤이다. 이들도 귀중한 레코드를 남겼다. 미국의 주도적 바리톤으로는 퀘이커 바리톤인 데이비드 비스팜(David Bispham)으로 1891-1903년간 뉴욕을 중심으로 대단한 활동을 했다.

 

'돈 조반니'의 마티아 바스티아니니


바리톤으로서 처음으로 솔로 음반을 낸 인물은 영국의 챨스 샌틀리경(Sir Charles Santley: 1834-1922)이다. 샌틀리는 1858년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으며 1890년대에 런던에서 크게 활약했다. 샤를르 구노는 ‘파우스트’에서 발렌타인의 아리아 ‘더욱 용감한 마음’을 샌틀리를 염두에 두고 작곡하였다. 베르디의 ‘돈 카를로’가 파리에서 초연될 때에 포사(Posa)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던 장-밥티스트 포레(Jean-Baptiste Faure: 1830-1914)도 잊지 못할 추억의 음반을 남겨 놓았다. 당대에 이탈리아 최고의 바리톤으로 포레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안토니오 코토니(Antonio Cotogni: 1831-1918)의 음성도 음반으로 남아 있어서 들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