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11. 한스 베르너 헨체의 '바싸리드'

정준극 2011. 5. 12. 12:05

바싸리드(The Bassarids) - Die Bassariden

한스 베르너 헨체

 

한스 베르너 헨체

 

전형적인 오페라와는 달리 교향곡처럼 작곡된 오페라이다. 단막이지만 고전음악의 전형인 4개의 악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악장은 교향곡처럼 제1악장 소타나, 제2악장 스케르조와 트리오, 제3악장 아다지오와 후가, 제4악장 파사칼리아(조용한 3박자의 춤곡)으로 형성되어 있다. 작곡자인 헨체는 오페라 '바싸리드'의 음악을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의 '마태 수난곡'과 '영국 조곡 D 단조'에서 인용했다고 말했다. 대본을 맡은 W.H. 오든(Auden)과 Chester Kallman(체스터 칼만)은 유리피데스의 바카에(The Bacchae)를 기본으로 하였으나 헨체의 오페라를 위해 내용의 상당부분을 오리지널과는 다르게 수정하였다. 오페라 '바싸리드'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이성과 감정의 분쟁을 표현한 것이다. 즉, 이성은 테베의 왕인 펜테우스로 대표되며 신인 디오니서스는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존재로서 대표된다. 원래의 대본은 영어로 되어 있으나 1966년 8월 6일 잘츠부르크에서의 초연은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미국에서의 초연은 잘츠부르크로부터 2년 후인 1968년 8월으로서 산타 페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공연되었다. 런던 초연은 다음달인 9월에 있었다. 두번째 런던 공연은 1974년 10월로서 그때에는 헨체 자신이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를 지휘하였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디오니서스의 난잡한 생활

 

작곡자인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 1926-)는 독일 베스트팔리아주 출신으로서 1953년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그가 독일을 떠난 이유는 좌파주의적인 정치성향이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도 독일 사회가 동성애에 대하여 관대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40년이 넘게 남성 파트너와 함께 살았다. 그는 막스주의자로서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호치민과 체 게바라를 위한 곡을 쓰기도 했다.

 

주요배역은 다음과 같다. 디오니소스(Dionysos: Dionysus: 음성과 나그네의 역할도 겸함: T), 펜테우스(Pentheus: 테베의 왕: Bar), 카드모스(Kadmos: Cadmus: 펜테우스의 조부, 테베의 설립자: B), 테이레시아스(Teiresias: Tiresias: 늙고 눈먼 예언자: T), 왕궁 근위대장(Bar), 아가우에(Agaue: Agave: 카드모스의 딸, 펜테우스의 어머니: MS), 안토노에(Antonoe: 카드모스의 여동생: S), 베로에(Beroe: 늙은 노예, 과거에 세멜레와 펜테우스의 유모: MS), 젊은 여인(아가우에 집안의 노예: 묵음), 어린이(젊은 여인의 딸: 묵음). 인터메쪼의 출연진: 칼리오페의 심판관들 - 비너스(MS), 프로세르피나(S), 칼리오페(T), 아도니스(Bar); 하인들, 음악가들, 바싸리드들(Maenads, Bacchantes), 테베의 시민들, 근위병들(합창)

 

오케스트라는 일부가 무대 위에 올라가서 연주토록 되어 있다. 4개의 혼(또는 트럼펫), 2개의 기타, 2개의 만돌린, 3개의 카우벨(소의 목에 거는 종)이다. 프롤로그에서는 디오니서스의 아드 리비툼(즉흥적인 대사)가 나오며 악기는 팀파니, 베이스 드럼, 비브라폰, 마림바, 하프, 피아노가 등장하여 여기에 테이프로 녹음된 소리까지 나온다.

 

현대적 연출.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바싸리드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이나스(Maenad: Menad: 미내드)와 같은 말이다. 마이나스는 디오니서스(로마신화에서는 바커스)의 시녀이다. 이들을 바칸트(Baccante)라고 부른다. 바싸리드이건, 마이나스이건, 바칸트이건 이들은 모두 광란하는 여자들을 말한다. 초자연적인 세계에서 바싸리드는 님프의 범주에 들어간다. 바싸리드는 어린 디노니서스를 유모로서 길렀으며 디오니서스가 장성하자 그를 경배하는 여인들이 되었다. 헤르메스 신이 어린 디오니서스를 바싸리드에게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또 다른 신화에 의하면, 디오니서스의 어머니인 세멜레가 죽임을 당하자 어린 디오니서스는 이모들인 이노, 아가베, 아우토노에의 손에 길러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나중에 디오니서스의 신전에서 의식을 행하는 신녀로서 선발되었으며 다른 모든 마이나스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술도 잘 마시고 춤도 잘 추고 섹스 행위도 잘하는 여인들이 되었다. 어떤 자료에 보면 이들은 사냥을 좋아하는데 동물들을 잡아서 갈기갈기 찢는다고 하며 그런 동물들의 가죽을 벗겨 옷을 해 입고 지팡이를 들었는데 지팡이는 담장이 넝쿨 잎이나 포도나무 잎으로 감쌌고 지팡이의 끝에는 나뭇닢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에는 뱀을 마치 머리 장식처럼 얹어 놓았다고 한다. 바싸리드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바싸리스(Bassaris)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여우가죽을 뜻한다. 한마디로 바싸리드는 디오니서스(바커스)를 추종하는 마이나스 들을 의미한다.

 

1998년 독일 뷔스바덴에서의 공연 장면. 현대적 연출이다.

 

오페라의 배경은 고대 테베이다. 막이 오르기 전에 디오니서스가 나와 자기의 신성을 부인한 아게이브(아가베)와 테베의 여인들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오페라는 테베의 왕 카드무스가 아들인 펜테우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펜테우스는 디오니서스의 난잡하고 비이성적인 환락생활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심지어는 일부 사람들이 그런 디오니서스를 숭배하여서 함께 환락을 즐기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펜테우스는 테베로부터 그런 환락적인 숭배사상을 추방할 계획이다. 그 즈음에 어떤 이상한 사람이 테베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디오니서스의 광적인 환락을 선전하고 이를 따르도록 유혹한다. 디오니서스는 아무리 펜테우스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속 마음에는 비이성적이며 환락을 쫓는 생각이 들어 있다고 믿어서 그를 유혹하기 위해 변장하고 나타났던 것이다. 이제 펜테우스는 디오니서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여자로 변장하여 디오니서스가 환락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시테론산으로 향한다. 여자로 변장한 것은 더욱 쾌락적인 면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디오니서스의 마법은 테베 사람들 뿐만 아니라 펜테우스의 어머니인 아그레이브, 그리고 펜테우스의 여동생인 아우토노에까지 이른다. 마침내 디오니서스의 복수가 시작되어 펜테우스는 몸이 갈갈이 찢겨져 죽임을 당하여 테베는 폐허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그레이브는 아들의 잘라진 머리를 품에 안고 마치 아기를 어르는 듯 하고 있다. 황당한 스토리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간단히 줄거리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복잡한 스토리가 얽히고 설켜 있다. 공연시간이 중간에 휴식시간이 없이 2시간 15분이나 되는 것만 보아도 줄거리가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바싸리드(마이나스)의 모습. 동물을 잡아 죽이기를 좋아하며 머리에는 뱀을 관처럼 얹어 놓았고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으며 긴 지팡이는 포도나무 잎으로 장식하였다.

 

헨체의 오페라 '바싸리드'는 줄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이 의미를 갖는다. 말하자면 전후 독일의 현대음악을 알수 있는 작품이다. 그것은 마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듯한 것이었다.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의 갈등, 이성과 혼돈의 분규를 표현한 것이다. 펜테우스의 극도로 자제되고 엄정한 내면 세계는 디오니서스의 환락적이고 육체적인 개념으로 위협을 받으며 끝내는 정복 당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 오페라가 독재를 타파하고 자유를 쟁취한 승리라고 해석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디오니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