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33. 필립포 마르케티의 '뤼 블라스'

정준극 2011. 6. 14. 18:59

뤼 블라스(Ruy Blas)

필립포 마르케티

 

빅토르 위고 원작의 연극에서 사라 베른하르트가 왕비로 출연했다.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의 필리포 마르케티(Filippo Marchetti: 1831-1902)가 작곡한 '뤼 블라스'(Ruy Blas: 또는 루이 블라스 또는 루이 블라)는 프랑스의 세계적 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위고의 '뤼 블라스'를 바탕으로 하여서는 오페라 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뮤지컬 등 여러 분야에서 스크린 작품, 또는 무대작품들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오페라로서 필리포 마르케티의 '뤼 블라스'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마르케티의 '뤼 블라스'는 카를로 도르메비유(Carlo d'Ormeville)가 대본을 썼으며 1869년 4월 3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되어 대인기를 끌었다. 프랑스의 쥘르 마스네가 1872년에 Don Cesar de Bazan(바잔의 돈 세자르)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 있지만 원작의 내용을 그나마 충실히 지킨 것은 마르케티의 오페라이다. 마르케티의 '뤼 블라스'는 마스네의 오페라보다 3년 전인 1869년 4월 3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중에서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의 영향을 받은 첫 케이스로 인정을 받은 작품이다. 뮤지컬로서는 영국의 윌렴 하워드 글로버(William Howard Glover: 1819-1875)가 작곡하여 1861년에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처음 공연한 '루이 블라스'가 있다. 또한 무대예술의 한 형태인 벌레스크(Burlesque)로서 만들어진 작품도 있다. 타이틀은 Ruy Blas and the Blase Roue로서 A. C. Torr 라는 사람과 Herbert Clark 이란 사람이 대본을 만들고 마이어 루츠(Meyer Lutz: 1829-1903)가 음악을 붙인 것이다. 1889년 영국 버밍햄에서 초연되었다. 한편, 베르디는 러시아 상트페터스부르의 제국극장으로부터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고 거절할수가 없어서 '루이 블라스'를 오페라로 만들 생각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내용이 너무나 진보적이므로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대신 '운명의 힘'을 작곡했다는 얘기는 잘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뤼 블라스 DVD

 

원작인 빅토르 위고의 '뤼 블라스'는 드라마의 장르상 Tragic drama에 속한다. 1939년 11월 8일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르네상스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사람들은 '뤼 블라스'가 빅토르 위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으로 꼽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연극 공연에서는 보통의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었다. 시기는 17세기이며 무대는 카를로스(샤를르) 2세 치하의 스페인이다. 주인공인 뤼 블라스(루이 블라스: 뤼 블라)는 시인으로서 귀족이 아닌 평민이다. 귀족인 돈 살루스토(Don Sallusto: Salluste)의 하인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어느 장인(마이스터) 아래에서 도제생활을 하다가 겨우 끝낸 사람이라는 설명도 있다. 아무튼 뤼 블라스는 우연히 왕비를 보고 그의 아름다움과 높은 기품에 감동을 받아 어느덧 감히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한편, 궁정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돈 살루스토는 왕비를 공연히 무례하게 대하는 바람에 왕비로부터 핀잔을 받는다. 그것을 모욕이라고 생각한 돈 살루스토는 왕비에게 앙갚음을 할 생각을 갖는다. 돈 살루스토는 원래부터 탐욕스럽고 사악한 인물이다. 돈 살루스토는 뤼 블라스가 왕비를 극진히 사모하고 있다는 눈치를 채고 뤼 블라스를 이용하여 왕비로부터 받은 모욕을 되갚아줄 계획을 꾸민다.

 

왕비와 뤼 블라스가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돈 살루스토는 뤼 블라스를 귀족으로 꾸민후 궁전으로 데리고 가서 여러 귀족들에게 소개한다. 뤼 블라스는 지성적이며 관대하고 예의바른 행동 때문에 왕궁에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끈다. 샤를르(카를로스)왕은 그런 뤼 블라스를 높이 평가하여 마침내 총리대신(수상)으로 임명한다. 총리대신이 된 뤼 블라스는 착실한 개혁정책을 추진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어느덧 그렇게도 오매불망하던 왕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이제 돈 살루스토는 왕비로부터 받은 모욕을 되갚아 줄 때가 된다. 돈 살루스토는 가면무도회가 진행되는 중에 뤼 블라스의 정체를 폭로한다. 돈 살루스토는 어찌하여 존귀한 왕비가 이같은 하찮은 평민을 애호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그동안 마음 속에 숨겨 두었던 복수의 칼날을 뽑아 든다. 왕비는 천박한 여인으로 전락된다. 뤼 블라스는 아름답고 착한 왕비가 자기 때문에 말 할수 없는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들은 감히 왕비에게 사심을 품은 뤼 블라스를 당장 투옥하고 처형해야 한다고 소리친다. 이에 뤼 블라스는 죽음으로서 왕비와 자기 자신의 결백을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뤼 블라스는 칼을 들어 돈 살루스토를 찌른후 독을 마시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뤼 블라스가 숨을 거둘 때에 왕비는 그가 마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뤼 블라스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왕비를 사랑한 뤼 블라스의 죄를 용서한다. 이것이 대체적인 스토리이다.

 

 

왕비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돈 살루스테가 왕비를 협박하고 있다.

 

마스네의 '바잔의 돈 세자르'는 위고의 '뤼 블라스'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아무래도 마르케티의 '뤼 블라스'와는 스토리에서 차이가 있다. '바잔의 돈 세자르'는 4막의 오페라 코믹으로서 아돌프 당느리(Adolphe d'Ennery), 장 앙리 뒤마누아(Jean Henri Dumanoir), 쥘르 샹트피(Jules Chantepie)가 공동으로 대본을 마련한 것이다. 1872년 11월 30일 파리의 오페라 코믹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바잔의 돈 세자르'는 마스네가 작곡한 최초의 장편 오페라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마스네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다. 마스네가 당대의 유명 작곡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된 작품은 1877년 '라호르의 왕'(Le roi de Lahore)였다. 1872년의 '바잔의 돈 세자르'는 기대한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오페라 코믹에서 13회 공연이 된후 더 이상 공연되지 않았다. 더구나 오페라 코믹의 살 파바르(Salle Favart)가 화재로 전소되자 보관하고 있던 '바잔의 돈 세자르'의 악보도 상당부분이 소실되었다. 마스네는 새로운 버전을 만들었고 이것은 1888년 제네바에서 공연되었다. '바잔의 돈 세자르'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위한 Servillana 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감옥에 갇힌 뤼 블라스(장 마레)

 

돈 세자르는 바잔의 백작이지만 가난하여 다른 귀족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라자리예(Lazarille)라는 아직 청년을 근위대의 못된 대위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결투를 한다. 라자리예는 오페라에서 메조소프라노가 맡는다. 왕명에 따르면 부활절의 전주인 성주간(Holy Week)에는 누구도 결투를 할수 없게 되어 있다. 성주간에 결투를 한 돈 세자르는 체포되어 총살형을 언도 받는다. 돈 세자르가 감옥에 갇혀 있는 중에 친구인 돈 호세 데 산타렘(Don Jose de Santarem)가 찾아온다. 돈 호세 데 산타렘은 왕비를 사랑하지만 왕비는 왕이 자기에게 성실하는 한 돈 호세 데 산타렘의 사랑을 받아 줄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샤를르2세 국왕은  마리타나라(Maritana)라는 거리의 가수를 우연히 보고 그를 사랑하게 되지만 마리타나의 신분이 낮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돈 호세로서는 왕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왕비에게는 성실치 않은 것이 되므로 왕비와의 사랑을 이룰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왕이 마리타나를 사랑할수 있으려면 마리타나를 귀족으로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곧 사형에 처해질 돈 세자르 대공과 마리타나가 결혼하게 되면 마리타나는 자동적으로 바잔 백작부인이 되는 것이므로 실제로 돈 세자르와 동거하지 않고서도 미망인이 되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 호세 데 산타렘은 마리타나에게 자세한 얘기는 해주지 않고 다만 어떤 사람과 형식적으로 결혼만 하면 부자로 만들어주고 신분도 백작부인이 된다고 얘기한다.

 

돈 살루스테가 뤼 블라스를 감언이설로 설득하고 있다.

 

돈 세자르는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감옥에서 마리타나와 간단한 결혼식을 올린다. 돈 호세는 젊은 군인 라자리예가 돈 세자르의 사형을 집행하는 대원으로 선발된 것을 알고 라자리예에게 가짜 탄환을 쏘도록 당부한다. 라자리예로서도 당연히 돈 세자르를 살리고 싶다. 잠시후 돈 호세는 마리타나를 왕궁으로 데려가서 백작부인으로서 궁정예의를 배우도록 한다. 돈 호세는 마리타나에게 방금 전 결혼식을 올린 남편은 잠시 귀양을 갔다고 곧 돌아올 것이라고 설명하며 안심시킨다. 왕궁에서 마리타나는 궁왕 샤를르를 만난다. 샤를르는 사랑하는 마리타나가 훌륭한 옷을 입고 시녀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왕궁에 있는 것을 깜짝 놀란다. 샤를르는 마리타나가 백작부인이라는 것을 알고 사랑해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리타나는 남편(돈 세자르)가 있기 때문에 왕을 사랑할수 없다고 말한다. 그때 돈 세자르가 갑자기 나타난다. 돈 세자르는 사형집행에 참여한 라자리예가 공포탄을 쏘는 바람에 살았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왕은 돈 세자르를 그라나다의 총독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왕비와 함께 자리를 뜬다. 사람들은 친구를 위해 애쓴 돈 호세를 높이 찬양한다.

 

뤼 블라스와 돈 세자르가 감옥에서 탈출한 후 돈 살루스테의 금고를 훔치고자 하고 있다.

 

이번에는 독일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활동한 마이어 루츠(Meyer Lutz)가 음악을 쓴 보데빌(또는 벌레스크) Ruy Blas and the Blase Roue의 스토리를 알아보자. 역시 원작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전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막] 스페인의 왕비는 행복하지 않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모두 자기를 위하는 것 같지만 혼자 있게 되면 어딘지 고독하여 견디기 힘들다. 더구나 왕과 사별한 이후로는 더욱 그러하다. 이날도 혼자 있게 된 왕비는 '꽃노래'를 부르며 쓸쓸함을 달래고 있다. 마침 순회연극단이 왕궁을 찾아온다. 배우인 루이 블라스와 돈 세자르가 극단의 주인공들이다. 시종장인 돈 살루스테(Don Salluste)는 높은 직위에 있지만 부패하고 사악한 인물이다. 그는 개인적인 이유로 왕비에게 한번 모욕을 주고 싶어한다. 돈 살루스테는 루이 블라스와 돈 세자르를 만나 여자로 변장하고 왕궁의 직원으로 취직하면 어떻겠느냐며 마치 큰 호의를 베푸는 듯 말한다. 두 사람은 그같은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하여 두 사람은 여장을 하고 왕비를 수종하는 하녀로 취직을 한다. 얼마후 돈 살루스테는 왕비가 남자하인들을 여자라고 속여서 몰래 데리고 있다며 비난한다. 왕비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루이 블라스와 돈 세자르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루이 블라스와 돈 세자레가 왕비의 하녀로 들어간다. 

 

[제2막] 루이 블라스와 돈 세자르는 감옥에 들어와 있지만 미지의 사람으로부터 환대를 받아 호화스러운 감옥살이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감옥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탈출한 생각을 한다. 결국 왕비의 묵인 아래 감옥에서 탈출한다. 루이 블라스와 돈 세자르는 돈 살루스테의 집에 침입하여 금고를 털기로 한다. 그런데 금고를 열고자 했더니 그 안에 돈 살루스테가 잘못하여 금고 안에 들어갔다가 금고 문이 닫히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갇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루이 블라스와 돈 세자르는 간신히 금고 문을 열고 돈 살루스테를 구출해 준다. 그런데 금고 안을 보니 거기에는 왕비의 보석들이 있는데 알고보니 돈 살루스테가 욕심을 부려 훔친 것이다. 그래서 돈 살루스테는 경찰에 체포된다.

 

[제3막] 왕궁의 정원이다. 루이 블라스는 잃어버린 왕비의 보석들을 찾아주어 왕비의 신임을 받는다. 게다가 그는 투우에서 용감하게 승리하여 결국 왕비의 사랑을 얻게 된다. 루이 블라스는 왕비와 결혼하여 왕이 된다. 돈 세자르는 돈 살루스테가 맡아하던 시종장의 직책을 물려 받는다.

 

프랑스의 장 마레와 다니엘 다류가 출연한 1947년도 영화 뤼 블라스의 한 장면

 

빅토르 위고의 '뤼 블라스가'가 다른 예술작품에는 어떻게 적용되어 있는지 대표적인 것만 알아보자.

- 멘델스존은 '뤼 블라스'를 읽고 나서 감동하여 '뤼 블라스 서곡과 합창'을 작곡했다. 작품번호 95번이다.

- 아일랜드의 배우이며 극작가인 에드먼드 팔코너(Edmund Falconer)는 1858년에 프랑스어 원작을 영어로 번역했다. '뤼 블라스'는 런던의 프린세스 극장에서 그해 말에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 영국의 극작가이며 시인인 윌렴 슈웬크 길버트 경(Sir William Schwenck Gilbert)은 '뤼 블라스'를 기본으로 벌레스크를 썼다. 그의 벌레스크는 1866년에 발간된 봐르네(Warne)의 크리스마스 연보(Christmas Annual)에 수록되어 있다.

- '뤼 블라스'가 본격 영화로 제작된 것은 1947년이다. 장 콕토가 쓴 대본을 사용했다. 유명한 배우 장 마레(Jean Marais)가 뤼 블라스의 역할을, 다니엘 다류가 왕비의 역할을 맡았다.

- 1971년도 영화는 La folie des grandeurs 라는 타이틀이다. 이브 몽탕이 출연하는 영화이다.

 

1971년도 영화 La folie des grandeurs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