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손(Die glückliche Hand) - The Hand of Fate
아놀드 쇤버그(아르놀트 쇤베르크)
아놀드 쇤버그(Arnold Schoenberg: 1874-1951)라고 하면 작곡에서 12음 기법(12-tone compositions: dodecaphony compositions)을 도입한 인물, 제2비엔나학파(Zweite Wiener Schule: The Second Vienna School)를 선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비엔나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34년에 나치의 핍박을 피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시민이 되었고 로스안젤레스 근교의 브렌트우드 팍(Brentwood Park)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비엔나로 돌아와 현재 비엔나 남쪽의 중앙공동묘지에 있는 예술가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그는 12음 기법을 사용한 오페라의 작곡도 시도하여 모노드라마인 Erwartung(기다림: 기대)를 완성하였으나 Moses und Aron(모세와 아론)은 미완성으로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그가 오페라의 한 형태로서 '음악이 있는 드라마'(Drama mit Musik)라는 부제를 붙인 Die glückliche Hand를 남긴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Drama mit Musik 이라는 별도의 장르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Die glückliche Hand 라는 제목은 '행복한 손'이라고 번역할수 있지만 스토리를 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영어로는 The Hand of Fate 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임의로 '운명의 손'이라고 번역한다. '운명의 손'은 부인인 마틸데(Mathilde)와의 사생활적인 관계를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운명의 손' 음반 커버의 캐리캐추어
전체 4장으로 구성된 '운명의 손'은 1910-13년에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1년전에 완성한 Erwartung(기다림)처럼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오토 봐이닝거(Otto Weininger: 1880-1903)의 저서인 Geschlecht und Charakter (Sex and Character: 섹스와 캐릭터)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기다림'과는 달리 '운명의 손'의 대본은 쇤버그 자신이 썼다. ('기다림'의 대본은 오스트리아출신의 유태인 사회주의 작가이며 의사인 마리 파펜하임이 썼다.) '운명의 손'은 1924년 10월 24일 비엔나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를 통하여 쇤버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른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바리톤 1인과 2명의 마임 연기자(남자와 여자), 그리고 대사(臺詞)처럼 합창을 하는 6명의 여성과 6명의 남성이다. 합창단이 합창을 대사처럼 하는 것을 슈프레헤슈팀메(Sprechstimme)라고 부른다. 그건 그렇고 과연 쇤버그와 그의 부인 마틸데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리하르트 게르스틀이 그린 쇤버그의 가족
아놀드 쇤버그와 결혼한 마틸데(1877-1923)는 쇤버그와 절친한 친구인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Alexander von Zemlinsky: 1871-1942)의 여동생이다. 1900년대 초에 쇤버그와 쳄린스키는 비엔나에서 같은 건물에 살았다. 화가인 리하르트 게르스틀(Richard Gerstl: 1883-1908)은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비엔나의 음악회에 자주 참석하였으며 그러는 사이에 쇤버그와 쳄린스키를 비롯한 여러 음악가들과 친분을 갖게 되었다. 특히 쇤버그는 게르스틀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게르스틀이 비록 9살 아래이지만 예술의 동료로서 존경하였고 마찬가지로 게르스틀도 쇤버그를 대단히 존경하였다. 1907년, 게르스틀은 아예 쇤버그와 쳄린스키가 살고 있는 아파트(보눙)건물로 들어와 살았다. 한 건물에 살다보니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다. 게르스틀은 쇤버그와 그의 가족과 그의 친구들의 초상화를 자주 그렸다. 게르스틀은 쇤버그의 부인인 마틸데는 물론, 알반 베르크, 쳄린스키 등의 초상화도 그렸다. 게르스틀은 독일 표현주의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으며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에서처럼 파스텔을 사용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게르스틀과 마틸데는 무척 가까워 졌다. 마틸데는 게르스틀보다 6세 연상이었다.
리하르트 게르스틀 자화상
게르스틀이 쇤버그 가족이 살고 있는 건물에 들어와 지낸지 1년 후인 1908년 여름, 마침내 마틸데는 가족을 뒤에 두고 게르스틀과 함께 애정도피적인 여행을 떠났다. 그때 쇤버그는 아내 마틸데에게 헌정할 제2현악4중주곡을 작곡하고 있었다. 쇤버그는 또한 송 사이클집인 Das Buch der Hangenden Garten(공중정원서)에서 13번째 노래인 Du lehnest wider eine Silberwiede(은빛 버드나무에 기대어 있는 그대)를 작곡하였다. 쇤버그는 13이란 숫자에 대하여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마틸데가 가출한 기간에 작곡한 노래가 13번째의 노래였으니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몇달후 마틸데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쇤버그가 받은 심적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편, 마틸데가 가족에게로 돌아가자 게르스틀도 비참한 심경에 빠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동료나 친구들과도 만나지 않고 고독한 생활을 하였으며 이로써 작품 활동에도 큰 타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11월 4일, 게르스틀은 밤중에 자기 스튜디오에 들어가 마틸데로부터 받은 편지들, 자료들, 그림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불에 타지 않고 그나마 남은 것은 여덟 점의 그림뿐이었다. 그리고 그날밤, 게르스틀은 스튜디오에 있는 커다란 거울 앞에서 25세의 젊은 나이로 목 매달아 자살하였다. 마틸데의 가출, 게르스틀의 자살 등으로 깊은 충격을 받은 쇤버그는 마침내 이같은 사건을 토대로 '음악이 있는 드라마'(오페라)인 '운명의 손'을 작곡하였다.
마틸데와 딸 거트루트
음악이 있는 드라마인 '운명의 손'은 단막의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연시간은 약 20분이다. 공연시간이 짧기 때문에 각 장의 배경을 변경하는 것은 조명으로서 대체하였다. 이 드라마는 인간에게 닥치는 곤경은 사이클이 있어서 피하려고 해도 피할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드라마는 어떤 남자(솔리스트)가 자기의 뒤에 도사려 있는 괴물과 투쟁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역시 그 괴물과 투쟁하는 것으로 끝난다. 남자는 어떤 젊은 여자(마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그의 뒤에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어서 마치 불행을 예견하는 듯 하다. 남자의 그러한 사랑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어떤 옷을 잘 차려입은 신사(마임)에게 가기 위해 남자를 떠난다. 얼마후 여자가 돌아오자 남자는 여자를 용서하고 행복을 되찾는다. 그러나 여자는 다시 남자를 떠난다. 나중에 여자는 옷을 잘 차렵입은 신사와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된다. 남자 솔리스트는 여자에게 제발 함께 있어 달라고 간청하지만 여자는 들은체도 하지 않고 오히려 커다란 돌을 남자에게 던진다. 돌은 처음부터 남자의 뒤에 도사리고 있던 괴물로 변한다. 그리하여 드라마는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 오페라에서 남자의 대사는 극도로 축소되어 있다. 노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젊은 여인에 대한 사랑의 노래에서도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가, 영원히 함께 있고 싶다'가 전부이다. 6명의 여성과 6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합창은 남자가 손에 넣을수 없는 것을 바란다면서 남자를 비난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라고 경고한다.
'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 > 추가로 읽는 366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0. 빌헬름 킨츨의 '전도자' (0) | 2011.06.16 |
---|---|
139.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가면' (0) | 2011.06.16 |
137. 아놀드 쇤버그의 '오늘부터 내일까지' (0) | 2011.06.16 |
136. 볼프강 코른골트의 '헬리아네의 기적' (0) | 2011.06.15 |
135. 볼프강 코른골트의 '비올란타' (0) | 2011.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