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델 카르멘(Maria del Carmen)
엔리크 그라나도스
엔리크 그라나도스
스페인의 엔리크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 1867-1916)만큼 특이한 삶을 산 작곡가도 없을 것이다. 그라나도스의 대표작인 스페인의 정취가 흠씬 배어 있는 '고야의 사람들'(Goyescas)이다. '고야의 사람들'은 1914년에 유럽에서 초연될 예정이었으나 1차 대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취소되었다. '고야의 사람들'은 1916년 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초연되었다. 그라나도스는 이 뉴욕의 초연에 특별초청을 받아 갔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튿날 그는 워싱턴으로 가서 백악관에서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의 앞에서 피아노로 편곡한 '고야의 사람들'을 연주하였다. 뉴욕의 극장측과 팬들은 그라나도스에게 얼마동안 뉴욕에 더 머물러 줄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제안을 뿌리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스페인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의 어느 관광단과 함께 배를 타고 영국의 리버풀을 통해 바르셀로나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했던지 그가 탄 여객선이 영국 해협에 왔을 때 독일 U 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아 배는 순식간에 불길속에 폭파되었고 그라나도스는 바다에 빠져 숨을 거두었다. 향년 48세였다. 스페인으로서는 불행한 날이었다. 그는 스페인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피아니스트였으며 작곡가였다.
마을에 돌아온 도밍고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마리아-하비에르-펜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분개하고 있다.
'고야의 사람들'은 그라나도스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그라나도스 자신은 '마리아 델 카르멘'을 가장 걸작으로 손꼽았다. '마리아 델 카르멘'의 오리지널 악보는 그가 뉴욕에서 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돌아 올때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있었다. 그가 탄 배가 독일 잠수함의 무차별 어뢰공격을 받아 침몰하였을 때 그의 가방도 함께 바다에 빠졌으나 천만다행으로 얼마후 수색작업에서 가방을 찾을수 있었다. 그리하여 '마리아 델 카르멘'의 스코어는 세상에 빛을 볼수 있게 되었다. 1939년 그라나도스의 아들이니 빅토르가 오리지널 악보를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겸 지휘자 겸 음악 매니저인 나타니엘 쉴크레트(Nathaniel Schilkret: 1889-1982)와 계약을 맺고 출판키로 했다. 그러나 그라나도스의 다른 가족들이 반대를 하는 바람에 미국에서 출판되지 못하고 스페인에서 출판되었다. 가족들은 '마리아 델 카르멘'의 오리지널 악보를 2009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도서관으로 이관하였다.
'마리아 델 카르멘'의 스페인어 대본은 카탈라니 출신의 저널리스트이며 작가인 호세 펠리우 이 코디나(José Feliú y Codina: 1845-1897)이 그가 1896년에 완성한 동명의 희곡을 기본으로 작성했다. '마리아 델 카르멘'은 그라나도스의 첫 성공작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늘날 '마리아 델 카르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다시 반복하여 말하지만 그라나도스는 '마리아 델 카르멘'를 그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간주하였다. '마리아 델 카르멘'의 초연은 1898년 11월 11일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데 파리쉬(Teatro de Parish)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스페인의 국왕인 알폰수 7세의 왕비인 마리아 크리스티나(Maria Cristina)는 마드리드의 초연을 관람한후 너무나 감동하여서 그라나도스에게 '카를로스 3세 십자훈장'을 수여하였다. '마리아 델 카르멘'은 초연 이래 이듬해 1월 9일까지 두달 동안 연속 공연될 정도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대본을 쓴 호세 펠리우 이 코디나는 그라나도스와 그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 전해인 1897년에 향년 52세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국왕 알폰소 7세의 왕비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오스트리아제국의 마리아 테레자의 딸이다). 그라나도스에게 최고 명예의 훈장을 수여하였다.
'마리아 델 카르멘'는 마드리드에서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지만 그라나도스의 고향인 카탈로니아에서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 카탈로니아의 초연은 1899년 5월 31일 바르셀로나의 테아트로 티볼리(Teatro Tivoli)에서였다. 당시 카탈로니아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코자 이른바 카탈로니아민족주의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 운동의 하나는 스페인어를 사용하지 말고 카탈로니아어를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마리아 델 카르멘'는 스페인어로 되어 있었다. 일부 카탈로니아 사람들은 그라나도스에 대하여 카탈로니아의 작곡가라면 카탈로니아어로 된 작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며 분개하였다. 그같은 여파로 '마리아 델 카르멘'은 카탈로니아에서 마드리드와 같은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 '마리아 델 카르멘'은 바르셀로나에서 11회의 공연을 가진후 막을 내렸다. 그후 '마리아 델 카르멘'은 발렌시아와 마드리드에서 간헐적으로 공연되다가 1900년 이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다만, 1935년에 바르셀로나의 그란 테아트레 델 리체우(Gran Teatre del Liceu)에서 당대의 소프라노 콘치타 바디아(Conchita Badia)가 타이틀 롤을 맡은 리바이벌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스페인에서 '마리아 델 카르멘'이 공연되었다는 마지막 기록은 1960년대 초반이었다.
당대의 소프라노 콘치타 바디아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2002년, 스페인의 지휘자인 막스 브라가도-다르만(Max Bragado-Darman)이 '마리아 델 카르멘'을 새롭게 편곡하여 우선 발췌곡을 이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무르치아에서 열린 '국제청소년오케스트라음악제(Festival Internacional de Orquestas de Jovenes)에서 새롭게 선을 보임으로서 '마리아 델 카르멘'은 다시 한번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새롭게 편곡된 '마리아 델 카르멘'이 스페인 이외의 지역에서 풀 스코어로 처음 공연된 것은 2003년 아일랜드의 웩스포드 오페라 페스티벌(Wexford Opera Festival)기간 중에 로열극장(Theatre Royal)에서 였다. 웩스포드 공연은 편곡자인 막스 브라가도-다르만이 직접 지휘하였다.
스페인의 무르치아 지방, 시에라 델 몰리나 산
'마리아 델 카르멘'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스페인 버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비슷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마리아 델 카르멘'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마리아 델 카르멘'의 배경은 스페인의 서남쪽 지중해를 안고 있는 무리치아(Murcia)지방이다. 무리치아는 안달루시아와 발렌시아의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이야기는 무리치아의 어떤 마을에서 시작된다. 마리아(Maria del Carmen: S)와 그에게 청혼하는 두명의 남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른바 삼각관계가 스토리이다. 두명의 남자는 가난한 농부 펜초(Pencho: Bar)와 부유한 라이벌 하비에르(Javier: T)이다. 이밖에 하비에르의 아버지인 도밍고(Domingo: B-Bar), 마을의 의사인 돈 풀젠치오(Don Fulgencio: T), 마을의 연장자인 페푸소(Pepuso: Bar), 콘셉치온(Concepcion: MS), 푸엔산타(Fuensanta: S), 미갈로(Migalo: B), 안톤(Anton: T), 로케(Roque: Bar), 안드레스(Andres: T) 등이 출연한다.
마을을 떠난 펜초
시기는 19세기 말이며 장소는 무르치아주의 어느 시골 마을이다. 가난한 농부인 펜초와 마리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어느날 펜초는 부자인 하비에르와 농업용수 문제로 다투다가 하비에르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두려워서 알제리아로 도피한다. 경찰이 펜초를 현상범으로 수배한다. 펜초는 살인미수범으로서 체포되면 사형을 면치 못할 처지이다. 펜초는 마리아에게 잠시 숨어 있다가 평온해 지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나지만 기약은 없다. 마리아는 펜초가 다시 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상당한 하비에르를 정성껏 간호한다. 하비에르는 마리아의 성실한 간호로 건강해진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하비에르가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오페라는 펜초가 마을로 돌아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마리아가 하이베르와의 결혼을 약속한 것이다. 마리아는 만일 펜초가 돌아오면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하비에르와의 결혼을 결심했던 것이다. 펜초는 마리아가 자기 때문에 그런 희생을 한다는 것은 자기의 명예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항의 한다. 마을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펜초와 하비에르가 축제에서 드디어 만난다. 펜초와 하비에르는 결투로서 운명을 결정하는 것으로 합의한다.
하비에르의 아버지인 도밍고가 펜초에게 마리아를 잊고 떠나라고 당부한다.
결투의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마리아의 마음은 괴롭다. 자기 때문에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미칠것만 같다. 마리아의 마음 한 가운데에는 펜초가 자리 잡고 있다. 마리아는 아직도 펜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비에르에 대하여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가 펜초를 죽이는 것을 볼수는 없었다. 한편, 멀리 출타했던 하비에르의 아버지인 도밍고가 마을로 돌아온다. 도밍고는 사람들로부터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얘기를 듣는다. 도밍고는 펜초를 만나 마리아를 깨끗이 잊어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지만 펜초는 명예를 위해 죽음도 꺼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드디어 두 사람의 결투 시간이 다가온다. 비극이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그때 마을의 의사인 돈 풀젠치오가 급히 결투장을 찾아온다. 의사 돈 풀젠치오는 하비에르의 아버지인 도밍고에게 하비에르가 심한 결핵을 앓고 있기 때문에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밝힌다. 의사는 도밍고에게 하비에르를 고칠 어떤 방법도 없다고 덧붙여 말한다. 하비에르는 펜초와 결투를 한다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비에르는 펜초와 화해한다. 그리고 펜초에게 마리아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비에르는 마리아와 펜초가 멀리 도피할수 있도록 도와 준다.
하비에르는 괴로운 심정이지만 마리아의 행복을 위해 펜초가 멀리 도피할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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