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58. 폴 뒤카스의 '아리안과 푸른수염'

정준극 2011. 6. 29. 12:41

아리안과 푸른수염(Ariane et Barbe-bleue) - Ariadne and Bluebeard(아리아드네와 푸른수염)

폴 뒤카스

 

폴 뒤카스

 

프랑스 브리타니 지방의 전설인 '푸른수염'(Barbe-bleue)를 소재로 한 오페라는 벨라 바르토크의 '푸른수염의 성'(Bluebeard's Castle), 자크 오펜바흐의 '푸른수염'(Barbe-bleue), 앙드레 그레트리의 '푸른수염 라울'(Raoul Barbe-bleue) 등이 있지만 프랑스의 폴 뒤카스(Paul Ducas: 1865-1935)가 작곡한 3막의 오페라도 있다. 프랑스어 대본은 상징주의 극본으로 유명한 모리스 매터링크(Maurice Maeterlinck)의 대본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였다. 뒤카는 1899년에 매터링크의 극본이 출판되자 이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원래 매터링크가 쓴 극본의 타이틀은 '아리안'(Ariane)이었다. 그는 이 극본을 노르웨이의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Edvard Grieg)에게 주어 오페라로 만들도록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리그가 여러 사정으로 포기하자 매터링크는 극본을 뒤카에게 주었다. 뒤카는 매터링크의 극본을 바탕으로 당장 작곡에 들어가 1906년에야 완성하였다. 오페라의 제목은 '아리안과 푸른수염'으로 정했다. 뒤카스의 '아리안과 푸른수염'은 1907년 5월 10일 파리의 오페라 코믹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후에는 어찌된 일인지 오늘날 까지 거의 공연되지 않고 있으나 뒤카스를 연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프랑스 인상주의 오페라에 대하여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리안과 푸른수염'이 좋은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아리안과 푸른수염'의 한 장면.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2008

 

'아리안과 푸른수염'은 종종 드빗시의 1902년도 오페라인 '플레아와 멜리상드'(Pelléas et Mélisande)와 비교된다. '플레아와 멜리상드'의 대본도 매터링크의 극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드빗시는 뒤카스가 '아리안과 푸른수염'의 작곡을 시작할 때에 이미 '플레아와 멜리상드'를 완성하였다. 뒤카스의 '아리안과 푸른수염'에 등장하는 푸른수염의 과거 다섯명의 부인들의 이름은 매터링크의 극본들에서 가져온 것이다. 셀리세트(Sélysette)는 '아그라뱅과 셀리세트'(Aglavaine et Sélysette: 1896)에서 가져온 이름이며 알라댕(Alladine)은 '알라댕과 팔로미드'(Alladine et Palomides: 1894)에서 가져온 것이고 이그랭(Ygraine)과 블랑제르(Bellangère)는 '틴타길르의 죽음'(La mort de Tintagiles: 1894)에서 가져온 것이며 멜리상드(Mélisande)는 물론 '플레아와 멜리상드'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아리안이란 이름은 크레타의 신화에 나오는 아리아드네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만, 뒤카의 '아리안과 푸른수염'에 나오는 아리안은 그리스 신화의 아리아드네와는 달리 괴수를 죽인 테세우스의 역할까지 담당한다. 그리하여 아리안은 테세우스가 인신수면의 괴수인 미노타우르(Minotaur)를 퇴치하고 아테네의 처녀들을 석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푸른수염에 억압당하고 있는 부인들을 해방시킨다.

 

푸른수염의 과거 부인들. 2008 프랑크푸르트. 현대적 연출

 

1907년 파리 오페라 코믹극장에서의 초연에는 아리안의 역할을 매터링크의 파트너인 조르제트 르블랑(Georgette Leblanc)이 맡아서 화제를 뿌렸다. 당대의 소프라노인 르블랑은 매터링크와 뒤카의 합작인 인상주의 오페라를 훌륭하게 소화하였다. 이듬해인 1908년 4월 2일에는 비엔나의 폭스오퍼(Volksoper)에서 초연되었다.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Alexander von Zemlinsky)가 지휘하였다. 이날 폭스오퍼(국민오페라극장)의 공연에는 아놀드 쇤버그(Arnold Schoenberg)와 그의 제자들인 알반 베르크(Alban Berg), 안톤 베베른(Anton Webern)도 객석에 있었다. 이들은 뒤카의 인상주의적 음악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1909년에는 브뤼셀에서, 1911년에는 뉴욕과 밀라노에서, 1912년에는 남미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913년에는 마드리드에서 공연되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영국 초연은 그보다 훨씬 후인 1937년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다. 그후 2차 대전 등의 영향으로 잊혀져 있다고 최근에 다시 빛을 보게된 것은 프랑크푸르트 오페라단이 2007-08년도 시즌에 새로운 감각의 연출로서 공연한 것이었다. 파리국립오페라는 '아리안과 푸른수염'의 토쿄 공연을 수행하였다. 2008년 7월 파리국립오페라의 토쿄공연은 이 오페라단의 첫 해외공연이었다. 2011년 6월에는 바르셀로나의 그란 테아트레 델 리체우가 새로운 제작을 초연하였다. 레코딩으로서는 1947년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NBC 교향악단의 연주가 있다. 주요 배역은 다음과 같다. 아리안(Ariane: S),  아리안의 유모(La courrice: Cont), 푸른수염(B), 셀리세트(Cont), 이그랭(S), 멜리상드(S), 블랑제르(S), 알라댕(Mime), 농부1 (B), 농부2(T), 농부3(B)이며 이밖에 농부들의 합창이 있다.

 

1907년 파리 오페라 코믹에서의 초연에서 아리안의 이미지를 창조했던 소프라노 조르제트 르블랑

 

[제1막] 푸른수염의 성에 있는 화려한 홀이다. 아리안은 푸른수염의 여섯번째 부인이 되어야 할 입장이다. 아리안과 유모가 푸른수염의 성에 도착한다. 아리안과 유모는 농부들의 환영을 받는다(무대 뒤에서의 합창). 농부들은 부인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푸른수염이 죽었다고 믿어서 아리안을 더욱 환영한다. 아리안은 농부들에게 '그는 내가 아름답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 나는 그의 비밀을 밝힐 것이다. 우선 그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이다. 명령이 분명하지 않으며 거절해야 한다. 다른 부인들은 그렇지 못하고 주저했다.'고 말한다.

 

푸른수염은 아리안에게 일곱개의 열쇠를 준바 있다. 각각 보물이 가득 들어 있는 방이다. 열쇠는 여섯개는 은으로 만들었고 나머지 하나는 황금으로 만든 것이다. 금열쇠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아리안은 일곱번째 문을 열고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리안과 유모는 은열쇠를 사용하여 첫번째 방부터 열어본다. 첫번째 방에는 번쩍이는 보물들이 가득 들어 있다. 두번째 문을 열자 사파이어가 쏟아져 나온다. 세번째 문을 열자 진주가 넘쳐 있다. 네번째 문을 열자 에메랄드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다섯번째 문을 열자 루비가 급류처럼 넘쳐 나온다. 여섯번째 문을 열자 커다란 다이아몬드들이 나온다. 여섯번째 방에는 일곱번째 방으로 가는 터널이 있다. 아리안은 유모가 말리는 것을 무시하고 황금 열쇠로 일곱번째 방의 문을 연다.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고 어둠 뿐이다. 멀리서부터 숨막히는 듯한 외침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지구의 심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와 같다. 질식할 것 같은 외침은 방문을 통하여 홀까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외침이 아니라 푸른수염의 과거 부인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Les cing filles d'Orlamonde(오를라몽드의 다섯 처녀)라는 민요풍의 노래이다.

 

유모는 놀랍고도 두려워서 문을 닫으려고 하지만 노래 소리가 점점 가까워오자 이상하게도 움직일 기운이 없어져서 문을 닫지 못한다. 노래가 끝날 즈음해서 푸른수염이 홀로 들어선다. 그는 아리안을 '너도 역시'라면서 비난한다. 푸른수염은 아리안이 지시를 듣지 않았으므로 모든 행복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푸른수염은 아리안의 팔을 잡아 끌고 일곱번째 방으로 향한다. 그때 성난 농부들이 창문을 부수고 들어와 푸른수염의 앞을 가로 막는다. 푸른수염은 칼을 빼어들고 농부들의 공격에 방어코자 한다. 아리안은 침착하게 농부들에게 '무엇을 원합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저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농부들이 할 말을 잊고 있을 때 아리안은 홀의 문을 닫는다.

 

바르셀로나 리체우극장. 2009. 갇혀 있는 부인들

 

[제2막] 푸른수염의 성의 지하 홀이다. 마치 동굴과 같다. 사방이 어둡다. 일곱번째 문이 닫혀진다. 아리안과 유모는 어두운 방안에서 어찌할 줄을 모른다. 유모가 램프에 불을 켜서 어둠을 밝힌다. 아리안은 푸른수염이 두렵지 않다. 잠시 후에 나타나서 구해줄것으로 믿는다. 아리안은 오히려 푸른수염을 걱정한다. 상처를 입었고 낙심하여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리안은 다른 부인들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모두들 넝마와 같은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모두 살아 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이다. 아리안은 그들을 부여잡고 해방시켜 주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 모두들 아무 말이 없는 중에 셀리세트가 '우리를 해방시켜 줄수는 없어요. 모두 움직일수가 없어요. 마치 몸을 벽에 못 박아 놓은 것 같아요. 더구나 여기서 나가는 일은 금지되어 있어요'라고 간신히 말한다. 아리안이 각자의 이름을 묻는다. 알라댕만 제외하고 모두 자기의 이름을 말한다. 알라댕은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

 

일곱번째 방에 있는 푸른수염의 부인들

 

천정에서 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램프가 꺼진다.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워진다. 그렇지만 아리안은 어디인지 가느다란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틈이 있는 것을 보고 손으로 이곳저곳을 더듬는다. 그것은 먼지와 검댕이에 찌든 스테인드 유리창이었다. 아리안은 돌맹이를 집어 들고 유리창을 향해 던진다. 유리창이 한장 한장 깨지면서 빛이 점점 강해진다. 마침내 환한 빛이 온 방안을 뒤 덮는다. 아리안이 창문 밖으로 나간다. 부인들도 따라온다. 바다의 철석이는 파도소리, 숲을 헤치는 바람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푸른 초원이 널려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침 마을에서 정오를 알리는 시계소리가 들린다. 아리안은 부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돌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깥 세상으로 나갈수 있다고 말한다.

 

아리안이 푸른수염을 묶은 밧줄을 끊어주고 있다. 포스터.

 

[제3막] 다시 푸른수염의 성의 화려한 홀이다. 푸른수염의 성은 마법으로 아무도 성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 아리안과 부인들은 자기들이 성 안의 화려한 홀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부인들은 아리안과 함께 있는 한 행복하다. 푸른수염은 보이지 않는다. 아리안은 얼마 후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해방될 것으로 믿는다. 아리안은 부인들에게 여섯 방에 있는 모든 보석으로 치장토록 한다. 유모가 들어와 푸른수염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말한다. 아리안과 부인들이 창문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니 푸른수염이 탄 마차가 농부들에게 습격을 받고 있다. 푸른수염의 시종은 농부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아리안은 농부들에게 제발 그를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지만 농부들의 귀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 농부들은 푸른수염을 밧줄로 묶은 후 성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농부들은 살해되었다고 생각한 부인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잠잠해 진다. 그러더니 푸른수염을 아리안에게 넘겨주며 마음대로 복수를 하라고 말한다. 아리안은 농부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이제 알아서 할것이니 제발 나가 달라고 부탁한다.  

 

아리안이 단검으로 푸른수염을 묶은 밧줄을 끊는다. 부인들이 달려와 푸른수염의 상처를 정성껏 보살펴 준다. 푸른수염이 아무 말도 없이 아리안을 바라본다. 아리안은 푸른수염에게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말하며 작별을 고한다. 푸른수염은 아리안을 막으려다가 손을 놓는다. 아리안은 다른 부인들에게 자기와 함께 떠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아리안은 '숲과 바다가 멀리서부터 우리를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파란 하늘에 새벽의 동이 터 옵니다. 희망이 가득찬 세상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함께 떠날 것을 권고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아리안은 유모와 함께 떠난다. 부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아무 말도 없다. 푸른수염이 그제야 기운을 차린듯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