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59. 앙리 몽땅 베르통등 12명 작곡가의 합작 '제왕들의 회의'

정준극 2011. 6. 29. 18:39

제왕들의 회의(Le congrès des rois) - The Congress of the Kings

앙리 몽땅 베르통 등 12명 작곡가의 합작

 

'제왕들의 회의' 캐리캐추어

 

세상에 수많은 오페라가 있지만 12명의 현역 작곡가들이 합작하여 하나의 오페라를 만들어낸 경우는 1794년 2월 26일 파리의 오페라 코믹극장에서 초연된 '제왕들의 회의'(Le congrès des rois)가 유일하다. 그것도 단 이틀만에 완성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며칠 더 걸리긴 했다. 이 오페라는 초연 이후 꼭  한차례 더 공연된 후 무대에서 사라졌다. 아무튼 이런 저런 점을 따져 볼때 '제왕들의 회의'는 몇가지 기록을 수립하였으므로 기네스 북에 오를만도 하다. '제왕들의 회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내용이다. 오페라의 장르로 보면 이 오페라는 '코미디 멜레 다리에테(Comédie mêlée d'ariettes:), 즉 짧은 아리아들이 혼합된 코미디'(comedy mixed with brief arias)이다. 18세기 중반 프랑스 오페라 코믹의 한 형태로서 이른바 '부퐁 논쟁'(Querelle des Bouffons)의 이후에 등장한 스타일이다. 가장 대표적인 '코미디 멜레 다리아테' 작품들은 글룩의 '예상치 못한 만남'(La rencontre imprévue), 앙드레 그레트리의 '제미르와 아조르'(Zémire et Azor), 피에르 안렉산드르 몽시니(Pierre-Alexandre Monsigny)의 '버려진 사람'(Le déserteur), 프랑수아 앙드레 다니캉 필리도르(François-André Danican Philidor)의 '톰 존스'(Tom Jones)등이다. '제왕들의 회의'의 대본은 안투안 프랑수아 에드(Antoine-François Ève)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드 마이요(De Maillot)가 썼다.

 

 

앙리 몽땅 베르통                                                 프레데릭 블라시우스            

 

'제왕들의 회의'는 프랑스 혁명당시 '공동안전위원회'(Comité du Salut public)가 작곡을 의뢰했다. 무엇이 그렇게도 급했던지 단 이틀의 기간을 주고 작곡토록 했다.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작곡가들이 총 동원되었다. 모두 비슷비슷한 연배들의 작곡가들이었다. ① 작곡가 겸 지휘자인 앙리 몽땅 베르통(Henri Montan Berton: 1767-1844)이 주관하였다. 앙리 몽땅 베르통의 아버지는 역시 작곡가 겸 지휘자인 피에르 몽땅 베르통이다. 이외의 참여자들은 바이올리니스트 겸 클라리넷 연주가 겸 지휘자 겸 작곡가인 ② 프레데릭 블라시우스(Frédéric Blasius: 1758-1829), 이탈리아 출신으로 파리에서 거의 모든 생애에 걸쳐 활동한 ③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 1760-1842), 오페라 코믹의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④ 니콜라스 달라이라크(Nicolas Dalayrac: 1753-1809), 뛰어난 플륫연주자로서 작곡가인 ⑤ 프랑수아 드비안느(François Devienne: 1759-1803), 원래는 발레 마스터였으나 작곡가로서도 활동한 ⑥ 프로스퍼 디디에 드샤예(Prosper-Didier Deshayes: -1815), 벨기에 출신으로 프랑스에 귀화한 ⑦ 앙드레 그레트리(André Grétry: 1741-1813),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⑧ 루이 에마누엘 쟈댕(Louis Emmanuel Jadin: 1768-1853),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작곡가인 ⑨ 로돌프 크로이처(Rodolphe Kreutzer: 1766-1817), 첼리스트이며 바리톤 겸 작곡가인 ⑩ 장 피에르 솔리에(Jean-Pierre Solié: 1755-1812), 프랑스 혁명시기에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서 프랑스 낭만주의 오페라의 효시인 ⑪ 에티앙 메울(Étienne Méhul: 1763-1817), 그리고 ⑫ 오페라 코미크 작곡가로 유명한 아르망 에마누엘 트리알(Armand-Emmanuel Trial: 아들)이다.

 

  

루이지 케루비니                                              니콜라스 달라이라크  

 

그렇게 하여 완성한 오페라이지만 초연에서 별다른 환영을 받지 못했다. 우선 너무 길다는 코멘트였고 쿠플레(Couplet: 주제음악 사이의 음악 또는 한 쌍이 추는 발레)의 매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관중들은 '제왕들의 회의'를 보고 지루하게 느꼈다. 두번째 공연도 마찬가지로 야유를 받았다. 극장측은 더 이상 공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후 이 오페라는 파리혁명정부(Commune de Paris)의 위원장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반혁명 아이디어를 지지한 작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마리 앙뚜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스캔들'에 연루되었던 주세페 칼리오스트로(Giuseppe Cagliostro: 1743-1795)를 공화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시킨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였다. 전반적으로 귀족계급을 찬양하는 내용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결국 혁명정부의 경찰 당국은 이 오페라를 초연으로부터 한 달후인 3월에 공식적으로 공연금지하였다. 오늘날 이 오페라의 대본은 분실되어서 찾을수 없다. 다만, 앙리 몽땅 베르통이 피아노 스코어로 만든 것만이 남아 있어서 프랑스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에 보관되어 있다.

 

  

프랑수아 드비안느                                             앙드레 그레트리

 

'제왕들의 회의'의 줄거리는 프랑스의 분할을 놓고 프러시아 궁전에서 각국의 군주들이 모여 상상의 회의를 하는 것이다. 오페라에서 회의에 참가한 군주들은 영국, 프랑스, 나폴리, 사르디니아의 국왕들,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인 프란시스 1세(1768-1835), 영국 수상 윌렴 피트(William Pitt, the Younger: 1759-1806) 등 실존 인물들이다. 제정러시아의 캐서린2세 여제(Yekaterina II: 1729-1796)은 특사를 참석토록 했다. 그리고 문제의 주세페 칼리오스트로는 교황 비오 4세의 특사로서 참석했다. 오페라에서 칼리오스트로는 프랑스의 애국자로 나오며 다른 군주들을 교묘히 프랑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비밀공작을 한다. 그 방법으로서 칼리오스트로의 부인은 여섯 여인을 데리고와서 이들의 매력으로 회의에 참가한 각국의 군주들을 붙잡아 두고 각자 자기들의 경비로 이들 여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한다. 칼리오스트로는 대단히 공을 들인 혼령들의 쇼를 마련한다. 혼령들은  이성이 잘못을 이긴다는 내용의 프랑스의 혁명을 예견한다. 그러자 왕관들을 쓴 각국의 군주들은 두려워하지만 '이건 귀신들에 불과하다'라면서 서로 위로한다.

 

제왕들의 회의는 마지막 모임을 가지면서 프랑스를 지방별로 분할키로 결정한다. 그때 갑자기 대포소리가 들리며 일단의 프랑스 애국자들이 몰려와 회의가 열리고 있는 궁전으로 밀고 들어온다. 군주들을 놀라서 도망간다. 도망갔던 군주들은 혁명 시민(sans-culottes)로 가장하여 다시 나타나 '공화국 만세'(Vive La Republique!'를 외친후에 재빨리 사라진다. 프랑스의 시민들은 자유라는 나무를 심고 옛 왕조의 영화를 상징하는 횃불을 만들어 밝힌다. 그리고 시민들의 봉기를 찬양하는 노래와 춤을 춘다. 그리하여 독재는 사라진다는 스토리이다.

 

  

로돌프 크로이처                                             에티앙 메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