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61. 생 생스의 '헨리 8세'

정준극 2011. 6. 30. 22:02

헨리8세(Henry VIII) - 앙리 세

카미유 생 상스

 

카미유 생 생스

 

16세기 영국 왕인 헨리8세(1491-1547)와 여섯 명의 왕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중에서도 두번째 왕비인 앤 벌린(Anne Boleyn: 1507-1536: 앤 볼레인)에 대한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앤 벌린의 딸이 엘이자베스 1세 여왕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헨리8세와 앤 벌린의 이야기를 주제로하여 오페라, 연극, 영화를 제작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헨리8세'이다. 오페라로서는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Anna Bolena)가 유명하지만 카미유 생 생의 '헨리8세'도 있다.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는 이탈리아의 이폴리토 핀데몬테(Ippolito Pindemonte)가 쓴 '엔리코8세'(Enrico VIII 또는 Anna Bolena)라는 극본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며 생 생의 '헨리8세'는 스페인의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Pedro Calderón de la Barca: 1600-1681)가 쓴 '영국교회의 분리'(El cisma en Inglaterra: The schism in England)라는 저서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이폴리토 핀데몬테와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헨리8세와 앤 벌린에 대한 스토리는 내용에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희곡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작품은 제목에서 볼수 있듯이 영국이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하여 성공회를 창설한 배경 스토리에 중점을 둔 것이다. 생 생의 오페라에서는 독실한 가톨릭 교도로서 헨리8세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캐서린(아라곤의 캐서린)이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는 영국이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생 생의 '헨리8세'는 앤 벌린보다 아라곤의 캐서린에 더 많은 비중을 둔 오페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영국교회의 분리)을 스페인 사람(칼데론)이 썼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시내에 있는 칼데론 데 라 바르카 기념상

 

생 생스의 오페라 '헨리8세'의 대본은 레옹스 데트로이야(Léonce Détroyat)와 아르망 실베스터(Armand Silvestre)가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영국교회의 분리'라는 작품을 바탕으로  공동으로 완성했다. 생 생은 '헨리8세'를 작곡 함에 있어서 당시의 상황들을 충실하게 반영하기 위해 영국의 중세 음악에 대하여 상당히 많은 연구를 했다. 생 생은 또한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민속적인 멜로디도 그의 스코어에 여러 차례 사용하였다. 르네상스 시기의 영국 작곡가인 윌렴 버드(William Byrd)의 멜로디도 사용하였다. 이런 멜로디들은 후기 르네상스와 초기 바로크 시기의 영국 음악을 집대성한 '피츠윌렴 버지날 북'(Fitzwilliam Virginal Book)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다. 생 생은 '헨리8세'를 그가 가장 정성을 들여 만든 작품으로 자부하였다.

 

생 생의 '헨리8세'를 프랑스 북부의 꽁삐에뉴에 있는 왕립극장(Théatre Impérial de Compiègne)에서 공연한 실황을 담은 비디오

 

'헨리8세'는 1883년 3월 5일 파리 오페라(Opéra de Paris)에서 초연되었다. 헨리8세 역할은 바리톤 장 라살르(Jean Lassalle)가 맡았고 앤 벌린 역할은 메조소프라노 알폰신 리샤르(Alphonsine Richard)가 맡았으며 아라곤의 캐서린은 소프라노 가브리엘르 크라우스(Gabrielle Krauss)가 맡았다. '헨리8세'는 초연이후 1919년까지 파리 오페라의 주요 레퍼토리로서 남아 있었다. '헨리8세'의 영국 초연은 파리 초연으로부터 6년 후인 1889년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였다. 최근의 리바이벌은 2002년 바르셀로나의 리체우에서였다.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 소프라노인 몽세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é)가 아라곤의 캐서린을 맡았으며 앤 벌린은 메조소프라노 노메다 카즐라우스(Nomeda Kazlaus)가 맡은 공연이었다. 오페라 '헨리8세'에서는 첫번째 부인인 캐서린의 역할이 두번째 부인인 앤 벌린보다 더 부각되어 있으며 또한 스페인대사인 돈 고메즈 데 페리아(Don Gomez de Feria: T)의 역할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스페인의 칼데론이 원작을 썼기 때문인것 같다. 그리고 돈 고메즈가 왕비가 되기 전의 앤 벌린을 크게 사모한다는 내용도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다. 이밖에 오페라 '헨리8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레이디 클레런스(Lady Clarence: S), 로마 교황의 특사인 캄페지오 추기경(Cardinal Campeggio: B), 노포크 공작(Le duc de Norfolk: B), 서리 백작(Le comte de Surrey: T), 볼레인가의 담당사제였다가 나중에 캔터베리 대주교에 임명된 크란머(Cranmer: B) 등이다.

 

2002년 바르셀로나에서의 리바이벌 공연에서 헨리8세의 첫번째 부인인 아라곤의 캐서린 역을 맡은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

 

[제1막]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스페인 대사인 돈 고메즈는 오랜 친구인 노포크 공작에게 앤 벌린을 깊이 사모하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이런 사실은 캐서린 왕비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돈 고메즈는 앤 벌린도 자기에게 사랑을 고백한 편지를 보냈다고 말한다. 노포크 공작은 돈 고메즈에게 국왕(헨리)도 앤 벌린의 매력에 빠져 있는 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때 헨리가 버킹엄 공작을 처형토록 명령했다는 뉴스가 전달된다. 버킹검 공작은 캐서린 왕비와 밀회를 했다는 죄목을 뒤집어 쓰고 체포되었다. 잠시후 헨리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들어오는 기척이 들린다. 고메즈와 노포크 공작은 급히 몸을 숨긴다. 헨리는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중에 새로 캐서린 왕비의 시녀가 된 앤 벌린에 대하여 깊은 관심이 있다고 밝힌다. 이 말을 들은 고메즈는 친구 노포크 공작의 경고를 생각하여 크게 당황한다. 장면이 바뀌어 왕궁의 접견실이다. 헨리가 서리 백작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교황이 헨리의 이혼 청원을 승락하지 않을 것 같다는 내용의 얘기다. 캐서린 왕비가 들어와서 버킹엄 공작과는 아무런 사연도 없으므로 그를 사면해 달라고 간청한다. 헨리는 그같은 캐서린의 간청을 한마디로 거절한다. 캐서린은 근간에 헨리가 자기에게 너무 무관심하다고 불만을 털어 놓는다. 그러자 헨리는 캐서린과의 결혼이 처음부터 비도덕적이었음을 강조하고 이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라곤의 캐서린은 어릴 때에 정책적으로 헨리의 형과 정혼하였으며 얼마전에 영국에 와서 결혼하였으나 남편인 헨리의 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동생인 헨리와 결혼하였다.) 캐서린이 분노와 억울함으로 방을 나가자 이어 앤 벌린이 들어온다. 헨리는 앤 벌린에게 매우 집착하며 급기야는 앤 벌린을 펨브로우크 후작부인(Marchioness of Pembroke)으로 임명한다. 캐서린 왕비의 시녀라는 신분을 가진 앤 벌린으로서는 대단한 영광이었다. 밖에서는 처형당한 버킹엄 공작의 장례식을 알리는 장송곡이 들려온다. 앤 벌린은 장송곡 소리를 자기의 비극적인 숙명의 징조로 생각한다.

 

헨리8세

 

[제2막] 리치몬드 공원이다. 고메즈의 뒤를 이어 여러 명의 귀부인들을 대동한 앤이 등장한다. 이제 앤은 후작부인으로서 왕족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고메즈를 본 앤은 자기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하면서 접근한다. 그때 앤을 쫓아 이곳까지 온 헨리가 나타난다. 헨리는 앤에게 결혼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앤은 왕비로 만들어 주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헨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캐서린 왕비는 앤에게 무모하고 사악한 야망을 버리라고 하면서 크게 비난한다. 그러나 앤의 고집은 꺽을수가 없다. 앤은 헨리에게 캐서린 왕비 문제를 어서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헨리가 로마 교황청에 요청한 캐서린과의 이혼문제와 관련하여 교황청의 특사가 찾아온다. 교황청은 독실한 가톨릭인 캐서린 왕비의 편이다. 교황청 특사는 사안이 중대하므로 즉시 국왕을 만나기를 요청하지만 헨리는 일부러 특사의 접견을 미룬다. 그리고는 궁정의 모든 사람들에게 춤을 추고 연회를 즐기자고 제안한다. 궁정무도회가 화려하게 열린다.

 

헨리와 앤이 윈저 숲에서 사냥을 즐기고 있는 그림

 

[제3막] 헨리가 교황청 특사와 만난다. 교황청 특사는 영국의 국왕이라고 해도 교황에게 예속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교황의 뜻은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승락할수 없다는 것을 전한다. 왕권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헨리는 교황의 권위에 도전할 생각이다. 앤 벌린이 들어서자 헨리는 앤이 한편으로는 다른 남자와 사랑을 속삭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와의 결혼을 조건부로 숭락한데 대하여 크게 분노한다. 앤은 헨리가 약속만 지킨다면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헨리는 앤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이어 모든 신하들에게 이제로부터 영국은 로마 교황청과 단절하고 국왕이 수장이 되는 영국 교회(성공회)를 만들겠다고 선포한다.

 

영화 속의 앤 벌린(Natalie Portman)

 

[제4막] 새로 왕비가 된 앤 벌린의 거실이다. 노포크 공작과 서리 백작은 헨리가 앤 왕비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어서 걱정이라는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고메즈 대사가 폐위된 캐서린 왕비의 서한을 가지고 헨리를 만난다. 캐서린의 서한은 헨리가 교황의 뜻을 어기고 자기와의 이혼을 선언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며 또한 앤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수 있는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분노한 헨리는 앤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며 또한 고메즈 대사에게도 영국을 떠나라고 말한다. 장소는 바뀌어 캐서린의 방이다. 이제 죽어가고 있는 캐서린은 앤이 고메즈에게 보낸 편지를 불 속에 집어 넣는다.

 

케서린 왕비 역의 몽세라 카바예. 2002. 바르셀로나 리체우대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