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80. 아밀카레 폰키엘리의 '발렌사의 무어인'

정준극 2011. 7. 12. 21:45

발렌사의 무어인(I Mori di Valenza)

아밀카레 폰키엘리의 미완성 오페라

 

아밀카레 폰키엘리

 

'라 조콘다'(La Gioconda)로 유명한 아밀카레 폰키엘리(1834-1886)도 미완성 오페라를 남겼다. '발렌사의 무어인'(I Mori di Valenza)이라는 오페라이다. 발렌사(발렌시아)는 스페인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중세의 고도이다. 스페인과 무어인들 간의 갈등을 그린 내용이다. 폰키엘리는 '발렌사의 무어인'을 '라 조콘다'를 완성하기 직전인 1874-75년에 작곡을 추진했다. 당시 폰키엘리는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발렌사의 무어인'은 그로부터 40여년을 기다린 후에야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폰키엘리가 세상을 떠난지 18년만의 일이었다. 미완성의 '발렌사의 무어인'은 작곡가인 아르투로 카도레(Arturo Cadore: 1877-1929)가 완성하여 1914년 3월 17일 몬테 칼로의 팔레 갸르니에(Palais Garnier) 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하였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었다. '발렌사의 무어인'를 완성하는 데에는 폰키엘리를 대단히 숭모한 아르투로 카도레 뿐만 아니라 폰키엘리의 딸인 아니발레 폰키엘리(Annibale Ponchielli)의 기여도 다대하였다. 아르투로 카도레는 기본적으로 폰키엘리의 작곡 스타일을 이용하여 제4막과 전체 오케스트라의 스코어를 완성하였다. '발렌사의 무어인'의 원작은 프랑스의 유제느 스크리브의 희곡 Piquillo Alliaga(피퀴요 알리아가)이며 이를 기슬란조니(A. Ghislanzoni)가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었다.

          

발렌사에서 쫓겨나는 무어인들. 가브리엘 푸이그 로다 작.

 

'발렌사의 무어인'은 모나코의 몬테 칼로에서 초연을 가진 그 해 7월에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공연되어 찬사를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카니발 시즌에 크레모나(Cremona)에서 공연되어 갈채를 받았다. 크레모나는 폰키엘리가 태어난 마을인 파데르노 화솔라로(Paderno Fasolaro: 현재는 Paderno Ponchielli)에 인접한 도시로서 폰키엘리를 기념하는 오페라극장이 있다. '발렌사의 무어인'은 근년에 들어와서 1958년 크레모나에서 리바이발할 예정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시당국이 허가를 해주지 않아서 공연이 성사되지 못했다. '발렌사의 무어인'의 세팅은 마드리드와 발렌시아이며 시기는 17세기이다. 당시에는 상당수의 무어인들이 스페인에 살고 있었으며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것이 보장되던 때였다.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델라스카르(Delascar)는 무어족의 수장이며 엘레마(Elema)는 그의 아름다운 딸이다. 조반니 다귈라르(Giovanni d'Aquilar)는 스페인의 기사로서 델라스카르의 오랜 친구이다. 페르난도(Fernando)는 젊은 귀족으로서 엘레마를 사랑한다. 카르미네(Carmine)는 엘레마와 친구가 된 여인으로 나중에 페르난도와 결혼한다. 이밖에 스페인의 왕(필립), 무어족들을 스페인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레르마(Lerma)공작등이 출연한다.

 

엘레마의 역할을 맡아 찬사를 받은 소프라노 버지니아 체아니(Virginia Zeani)

 

[제1막] 발렌사에 있는 무어인들의 수장인 델라스카르의 집이다. 델라스카르가 마드리도로부터 온 편지를 읽는다. 그의 아들이 체포되어 곧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델라스카르의 아름다운 딸인 엘레마는 아버지에게 만일 국왕을 만날수만 있다면 오빠를 살릴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엘레마는 5년전 필립 왕이 발렌시아에서 그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장미정원에서 왕을 만난 일이 있다고 설명하고 그때 필립 왕이 자기를 어여삐 여겨서 나중에 무슨 일이든지 청탁할 것이 있어서 말하면 반드시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으며 그 증표로서 종이에 그런 내용을 써주기까지 했다고 설명한다. 델라스카르는 처음 듣는 얘기여서 놀라며 아들을 살릴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지만 아무리 스페인의 왕이라고 해도 로마교황에게 종속되어 있으므로 무슬림인 아들을 구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 유랑한 트럼펫 소리와 함께 왕족으로 노기사인 조반니 다귈라르가 찾아온다. 델라스카르의 오랜 친구이다. 다귈리아는 그의 딸 카르미네, 그리고 카르미네와 결혼키로 한 기사 페르단도(Fernando d'Alabayda)와 함께 마드리드로 가는 중에 델라스카르의 집에 잠시 들렸던 것이다. 델라스카르는 오랜 친구 다귈라르가 마드리드로 간다고 하니까 그에게 엘레마를 함께 데려가서 필립 왕에게 소개하여 달라고 간청한다. 다귈라르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한편, 페르난도는 엘레마를 보자마자 엘레마의 아름다움을 크게 사모하여 잠시나마 약혼녀인 카르미네의 존재를 잊는다. 엘레마와 카르미네는 역시 처음 만나지만 이들의 아버지들이 오랜 친구인 것처럼 금방 따듯한 친구가 된다. 1막은 일행이 마드리도를 향하여 떠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제2막] 엘레마는 필립 왕을 만나 탄원을 드릴 기회가 있을 때까지 마드리드에 있는 다귈라르의 아름다운 저택에 머문다. 엘레마는 웬일인지 페르난도에게 자꾸만 마음이 쏠린다. 엘레마는 발렌자에서 페르난도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사랑을 느낀 것을 생각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페르난도는 엘레마가 필립 왕을 만나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엘레마가 필립 왕의 정부인 줄로 생각한다. 페르난도는 엘레마를 만나 그럴리가 없다고 말하고 엘레마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도 치르겠다고 약속한다. 카르미네는 페르난도가 엘레마에게 대하는 행동을 보아 이제 그가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장면은 바뀌어 마드리드에 있는 부엔 리티로(Buen Ritiro) 정원이다. 사람들은 합창으로 필립 왕에게 새로운 정부(情婦)가 생겼다고 얘기한다. 엘레마를 말하는 것이다. 한편, 페르난도는 그가 지금 약혼녀인 카르미네 대신에 엘레마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죄책감이 사로잡힌다. 그때 필립 왕과 엘레마가 함께 등장한다. 필립 왕은 페르난도에게 카르미네의 안부를 묻지만 페르난도는 아무 말도 못하고 인사만 하고 자리를 뜬다. 엘레마는 필립 왕에게 오빠의 목숨을 살려 달라는 부탁은 하지 못하고 대신 무어인들을 위해 특별한 온정을 베풀어 달라고 청탁한다. 그러자 왕은 그렇게 하면 대가로 왕을 사랑하겠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엘레마는 만일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무어족 여인이 왕의 정부가 되었다고 조소하고 비난할 것이므로 왕의 제안을 거절한다. 잠시후 레르마 공작이 등장하여 왕에게 페르난도가 왕궁에서 무엄하게도 칼을 빼어들고 자기를 죽이고자 했다고 말한다. 왕궁에서는 왕의 명령으로 어느 누구도 칼을 빼어들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만일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왕이 페르난도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페르단도는 레르마 공작이 엘레마를 지칭하여 어떤 여인이 새롭게 왕의 정부가 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엘레마의 명예가 손상되었다고 생각하여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말한다. 왕은 페르난도의 행동을 인정하고 용서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자기인 것을 강조한다. 엘레마는 페르난도의 그런 지나친 행동이 부담스럽다.

 

[제3막] 홀로 있는 카르미네는 엘레마가 자기의 사랑인 페르난도를 빼앗아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잠시후 엘레마가 나타나자 카르미네는 엘레마에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친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카르미네가 나가고 엘레마가 혼자 있는다. 엘레마는 이 모든 일이 자기 때문에 빚어진 것임을 인식하고 자기가 떠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당장 내일이라도 페르난도와 카르미네가 서로 약속한대로 결혼하기를 바란다. 그때 페르난도가 들어와 엘레마에게 모든 것이 번민스러워서 내일이라도 스페인을 떠나 멀리 가겠다고 말한다. 엘레마가 그러면 카르미네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페르단도는 시간이 지나면 카르미네도 자기를 잊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엘레마는 페르난도에게 만일 페르난도가 카르미네를 떠난다면 아마 카르미네는 슬픔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르지 제발 자비로운 마음을 가져 달라고 간청한다. 페르난도는 그가 어쩔수 없이 엘레마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그렇기 때문에 멀리 떠나려 한다고 말한다. 페르난도의 고백을 들은 엘레마는 순간 감동하여 실은 자기도 페르난도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페르난도의 행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자 엘레마는 페르난도에게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내일이라도 카르미네와 결혼하라고 간청한다. 페르난도가 엘레마의 그런 간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그때 일단의 군중들이 어떤 무어인을 쫓아가며 그에게 야유와 비난을 퍼 붓는다. 페르난도가 칼을 빼어 들고 군중들을 쫓아버린다. 무어인은 엘레마의 아버지인 델라스카르였다. 아들의 안위와 엘레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마드리드에 올라왔다가 그런 봉변을 당한 것이다.

 

필립 왕이 어떤 서류 한 장을 들고 들어온다. 레르마 공작과 그의 추종자들이 제출한 청원서이다. 무어인들을 모두 스페인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서류이다. 레르마 공작은 왕에게 어서 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왕은 무어인들을 살리자면 엘레마가 자기의 왕비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왕비의 민족을 추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왕은 카르미네가 엘레마의 친구이므로 이 문제를 카르미네가 도와 줄것으로 생각하여 카르미네를 불러 오도록 한다. 하지만 왕을 만난 카르미네는 왕의 심중은 헤아리지 못하고 대신 엘레마의 오빠가 감옥에 있으므로 사면하여 줄것을 요청한다. 이에 분노한 왕은 그 자리에서 레르마 공작이 청원한 문서에 서명한다. 무어인들을 스페인에서 추방한다는 왕의 칙령이 발표되자 무어인들의 수장인 델라스카르는 왕을 알현하고 그같은 칙령의 부당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왕은 이미 서명하여 반포했으므로 어쩔수 없다고 말한다. 왕은 또한 페르난도가 거리에서 칼을 빼어들고 왕의 병사들을 쫓아버린 것을 알고 페르난도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도록 한다. 

 

오늘날의 발렌사


[제4막] 왕의 칙령에 따라 무어인들이 마드리드를 떠나 항구도시인 발렌시아(발렌자)로 모여든다. 배를 타고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모로코로 가기 위해서이다. 무어인들은 지난 7백년간 자기들의 고향이었던 스페인을 떠나야 하는데 대하여 깊이 탄식하며 슬퍼한다. 델라스카르도 다른 무어인들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엘레마가 무어인들을 위해 필립 왕과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 무어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분노한다. 한편, 카르미네는 엘레마에게 자기와 페르난도가 곧 결혼하게 될것이라고 말한다. 왕은 페르난도가 카르미네와 결혼한다고 말하자 그를 석방한다. 왕과 엘레마만 남아 있자 왕은 엘레마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왕비가 되어 달라는 소리이다. 엘레마는 왕의 말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대신 사랑하는 페르난도가 카르미네와 결혼키로 확정되었음을 생각하며 착잡한 심정이다. 엘레마는 알라신에게 갈 길을 인도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왕이 나가고 엘레마가 혼자 있을 때 아버지인 델라스카르가 들어와 엘레마에게 왕이 자기만은 추방하지 않고 사면하였다고 말하고 이것이 왕에게 청원하여 이루어진 것이냐며 묻는다. 엘레마는 '알라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딸의 눈물을 보셨도다'라며 아버지 델라스카르가 추방되지 않게 되었음을 기뻐한다. 그러나어 델라스카르는 비록 왕의 사면이 있었지만 무어의 형제들과 운명을 함께 할 것이며 엘레마도 딸이므로 자기를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엘레마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엘레마는 아직도 자기가 왕과 결혼하는 것이 아버지와 무어인들을 위해 해야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사랑하는 페르난도와 멀리 떨어진다는 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드디어 엘레마는 델라스카르에게 아버지를 따르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격분한 델라스카르가 단검을 빼어 들어 엘레마를 찌른다.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들어온다. 엘레마가 페르난도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

 

음악적으로 '발렌사의 무어인'은 '라 조콘다'와 흡사한 점이 많다. 그렇다고 '발렌사의 무어인'을 '라 조콘다'와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다. '라 조콘다'는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위대한 걸작이다.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오페라 극장의 레퍼토리로서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작품이다. 다만, 이상하게도 프랑스와 북유럽(스웨덴 등)에서는 별로 공연된 이력이 없다. 두 오페라에서 가장 흡사한 점은 소프라노의 역할일 것이다. 라 조콘다와 엘레마 모두 자기를 희생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비교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에 바리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