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96. 다니엘 카탄의 '일 포스티노' - 우편배달부

정준극 2011. 7. 22. 17:34

일 포스티노(Il Postino) - 우편배달부(The Postman)

다니엘 카탄

 

다니엘 카탄

 

2011년 4월, 다니엘 카탄(Daniel Catán: 1949-2011)이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그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애석해 하였다. 1949년 멕시코에서 유태계로 태어난 다니엘 카탄은 서정적이며 낭만적 스타일의 작품들을 작곡한 작곡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오페라는 인긴의 음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비록 라틴 아메리카 출신이지만 드빗시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같은 관능적이고 화려한 음악을 창조하였고 푸치니와 같은 서정적인 멜로디를 만들어 냈다. 물론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리듬과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악기를 사용한 것도 간과할수는 없다. 그는 또한 이고르 스트라빈스카, 모리스 라벨, 알반 베르크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생전에 다섯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Florencia en el Amazonas 는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단, 로스안젤레스 오페라단, 시애틀 오페라단이 공동으로 의뢰한 것으로 미국의 주요 오페라단이 라틴 아메리타 출신에게 의뢰한 첫번째 오페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Florencia en el Amazonas 가 성공을 거두자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단은 계속하여 Salsipuedes 를 의뢰하였다. 마지막으로 완성한 오페라인 Il Postino 는 로스안젤레스 오페라단이 의뢰한 작품으로 2011년 초에 로스안젤레스, 비엔나,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Il Postino 의 세계 초연에는 카탄의 오랜 친구인 플라치도 도밍고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주역으로 출연하였다. 대본은 작곡가 자신이 썼다. 다니엘 카탄은 여섯번째 오페라인 Meet John Doe를 텍사스의 오스틴 오페라단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2009년부터 작곡을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다니엘 카탄의 마지막 작품인 Il Postino(우편배달부)는 1994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같은 타이틀의 영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1971년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Il Postino 는 네루다와 마리오라는 시골 우편배달부와의 우정을 다룬 것이다. 물론 주인공인 네루다는 실존 인물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다분히 픽션이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 성향의 네루다는 칠레에 민주정권이 들어서자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였지만 영화에서는 이탈리아 시실리 부근의 작은 섬으로 유배당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네루다의 원래 이름은 Neftali Ricardo Reyes Basoalto 이다. 그러나 체코의 유명한 시인인 Jan Neruda 의 이름을 따서 펜 네임을 네루다라고 붙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4년도 이탈리아 영화 Il Postino 에서 네루다 역은 Philippe Noiret(필립 누아레)가 맡았으며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Massimo Troisi(마씨모 트로이지), 마리오가 사랑하는 베이트리체는 Maria Grazia-Cucinotta(마리아 그라치아 쿠치노타)가 맡았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포스터. 마리오와 베아트리체

 

오페라 Il Postino(우편배달부)는 2010년 9월 23일 로스안젤레스 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로스안젤레스 오페라단의 2010/2011년도 시즌을 오픈하는 공연이었다. 2010년 여름에는 '니벨룽의 반지' 전편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편배달부'가 로스안젤레스 오페라 시즌의 벨(링)을 눌렀다고 말했다. 다니엘 카탄이 '우편배달부'를 작곡하였을 때에는 두 명의 세계적 테너를 염두에 두었었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플라치도 도밍고를 염두에 두고 작곡을 하였고 이탈리아 작은 섬의 우편배달부인 마리오는 롤란도 빌라존(Rollando Villazon)을 생각하고 작곡하였다. 그러나 빌라존은 초연의 무대에 서지 못하였다. 2009년에 후두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신 챨스 카스트로노보(Charles Castronovo)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플라치도 도밍고가 2011년 초에 무대에 섰을 때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네루다(플라치도 도밍고)와 마틸데

 

오페라의 무대는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1952년 지중해에 있는 어떤 작은 섬이다. 실제로 네루다는 1970년대에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였으나 오페라에서는 그보다 20년 전인 1950년대에 멀리 이탈리아 시실리의 북쪽에 있는 어떤 작은 섬으로 무대를 옮겨 놓았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로부터 추방 당하여 지중해의 이 작은 섬으로 강제로 오게 되었다. 섬에서의 생활은 단조롭지만 평화스러웠다. 마치 원시시대에 들어 온듯, 문명과 사상에 찌들지 않은 섬이었다. 네루다는 섬에서 부인 마틸데(Matilde)와 함께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고향인 칠레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마틸데와 네루다. 빈강변극장. 2010. 플라시도 도밍고와 크리스티나 다마스

  

섬주민들은 거의 모두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 대부분 어부들이다. 땅이 척박하여 농사도 제대로 지을수 없다. 섬 사람들은 그저 매일을 똑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단순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아름답다. 푸르른 바다와 은빛 찬란한 해변은 네루다에게 많은 시흥을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네루다는 이곳에서 언어에 자연을 그리면서 평화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리오 루오폴로(Mario Ruoppolo)는 나이 든 아버지와 둘이서 살고 있는 소박하고 단순한 청년이다. 어부인 아버지는 언제부터인가 말을 하지 않고 지내더니 이제는 완전히 말을 닫고 살고 있다. 마리오는 미국에 가는 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부가 될 생각은 없다.

 

자전거를 타고 편지를 배달하는 마리오. LA Opera 

    

어느날 마을을 거닐던 마리오는 우편국에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가 붙어 있는 것을 본다. 글을 읽을줄 알고 자전가 한대만 있으면 우편배달부가 될수 있다고 적혀 있다. 마리오는 즉시 우편국으로 들어가 자기는 글을 읽을수도 있고 자전거도 있다고 얘기한다. 마리오는 단 한 사람뿐인 마을의 우편배달부가 된다. 그가 하는 일이란 매일 아침에 네루다씨에게 오는 편지를 전하는 것이다. 우편국장은 마리오에게 네루다씨는 바쁜 분이고 인민들을 위해 시를 쓰는 분이기 때문에 절대로 성가시게 굴지 말라고 당부한다. 마리오는 네루다씨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매일 아침 그에게 오는 여러 편지들을 산꼭대기에 있는 그의 집에 배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무관하였으나 차츰 시간이 지나자 네루다와 마리오는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간단한 대화는 점차 사물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시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한다.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삶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해변에 앉아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네루다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한다. 

    

두 사람의 우정은 점차 깊어진다. 두 사람의 우정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는 사이에 마리오는 사랑에 눈을 뜨게 되고 마을 처녀인 베아트리체 루소(Beatrice Russo)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에 대하여 아무런 경험도 없는 마리오는 그의 스승인 네루다에게 어떻게 하면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얻을수 있는지 자문을 구한다.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자기를 대신하여 베아트리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시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네루다는 이같은 마리오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고 대신 네루다로 하여금 직접 시를 쓰도록 도와준다. 그리하여 마리오는 스스로 시를 쓴다. 베아트리체를 한 마리의 나비에 비유하는 아름다운 시이다.

 


마리오와 베아트리체의 결혼식. 빈강변극장.

     

마리오와 베아트리체는 얼마후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네루다는 곧 고국으로 돌아가는 허락을 받았다고 밝힌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 진 셈이다. 네루다는 바라던 대로 고국으로 돌아갈수 있게 되고 마리오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체와 결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며칠후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겸손하게 작별을 고한다. 마리오와 베아트리체는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파블로 네루다의 이름을 따서 파블리토(Pablito)라고 짓기로 한다.

 

결혼식 파티에서

   

네루다가 부인 마틸데와 함께 칠레로 돌아간지도 몇 달이 지난다. 마리오에게는 아무런 소식도 없다. 마을 사람들은 과연 네루다가 자기들의 친구였는지 의아해 한다. 그런데 어느날 마리오에게 네루다로부터 그렇게 기다리던 편지가 온다. 그런데 네루다가 쓴 것이 아니라 그의 비서가 보낸 편지이다. 편지에는 그가 남기가 간 물건들을 정리해서 칠레로 보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마리오는 자기 자신을 실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리고는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블로 네루다가 과연 한때 자기의 친구였었는지 의문을 갖는다. 마리오는 네루다가 살던 집으로 가서 물건들을 정리한다. 그러다가 음성을 녹음하고 다시 틀어 볼수 있는 기계를 발견한다. 마리오는 섬의 소리를 모두 녹음해서 네루다에게 보내기로 작정한다. 마리오는 네루다가 섬의 소리를 듣고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마리오는 바람 소리, 바다의 파도 소리, 심지어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심장이 뛰는 소리까지 녹음한다. 마리오는 며칠동안 녹음에 전념한다. 삶의 원동력이 되는 소리들이다. 아름다운 시의 모티브가 되는 소리들이다.

 

네루다와 마리오의 우정은 점차 깊어간다.

   

마리오는 섬의 소리들을 녹음하면서 어느새 고향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마리오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섬의 소리와 삶의 아름다움을 마음 속 깊이 느낀다.마리오는 Canto a Pablo Neruda(파블로 네루다를 위한 노래)라는 시를 쓴다. 마리오의 시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얼마후에는 나폴리로부터 시낭송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마리오는 나폴리로 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주로 공산주의자들이 주관한 집회였다. 마리오가 연단에 올라가 시낭송을 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자기가 사람들을 위해 중요하며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마이크를 통해 마리오의 이름이 울려퍼지자 그는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연단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때 한쪽에서 소동이 일어나더니 삽시간에 전체적인 소동으로 번진다. 사람들은 폭도들처럼 변한다. 경찰이 출동한다. 총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쓰러진다. 여기에 마리오 루오폴로는 더 이상 없다.

 

바다를 배경으로 삼은 아름다운 작품. 네루다와 마리오. 영화

  

몇 해가 지난다. 이제 파블리토는 아장아장 걸어다닐 정도로 컸다. 네루다가 섬으로 돌아온다. 친구 마리오는 없다. 나폴리의 군중집회에 참석했다가 죽임을 당했다. 베아트리체는 마리오가 죽기 전에 섬의 소리를 녹음해 놓았다고 하면서 이제는 세상을 떠난 남편을 기념하는 물건이어서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리오가 죽었다는 얘기를 처음으로 듣는 네루다는 슬픔에 눈물이 고인다. 네루다는 다시 한번 해변으로 발길을 옮긴다. 오래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에 대한 기억이 파도에 쓸려 사라지는 것을 본다.

 

마리오가 해변에 앉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시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