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197. 존 애덤스의 '꽃피는 나무'

정준극 2011. 7. 23. 20:59

꽃피는 나무(A Flowering Tree)

존 애덤스

제2의 '마술피리'

 

존 애덤스

   

2006년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였다. 비엔나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엔나 모차르트의 해 2006'(Wiener Mozartjahr 2006)을 개최하고 여러 행사를 펼쳤다. 그 중의 하나가 New Crowned Hope Festival(Neugekrönten Hoffnung Festival)이다. 이 페스티발의 명칭은 모차르트가 가입한 프리메이스의 비엔나 지부 중의 하나인 Zur neugekrönten Hoffnung 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활동할 당시에 비엔나에는 6개의 프리메이슨 지부가 있었다. 로마 가톨릭은 당시의 요셉 2세 황제에게 압력을 넣어 그들에게 귀찮은 존재인 프리메이슨의 비엔나 지부를 모두 폐쇄하여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요셉 2세 황제는 계몽주의적인 생각으로 여섯 개의 지부를 통폐합하여 세 개만을 남겨놓도록 했다. 그렇게 하여 1785년 생겨난 새로운 지부 중의 하나가 Zur neugekrönten Hoffnung 지부이다. 모차르트는 이 지부(Lodge)의 오프닝을 기념하여 Die Mauerfreude(메이슨의 환희)라는 칸타타를 작곡하였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라고 하는 Die Zauberflöte(마술피리) 역시 프리메이슨과 관련한 작품이다.

 

피터 셀라스

 

비엔나는 미국의 저명한 오페라 감독이며 대본가인 피터 셀라스(Peter Sellars)에게 모차르트 2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New Crowned Hope Festival 을 주관하여 줄것을 요청했다. 피터 셀라스는 평소에 깊은 인간애가 담긴 모차르트 작품에 감동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비엔나가 그에게 New Crowned Hope Festival 을 주관하여 줄것을 요청한 것은 일생일대의 영광이었다. 셀라스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현대음악 작곡가들에게 현대의 문화적, 지성적, 사회적 잇슈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셀라스의 생각은 '만일 모차르트가 현대를 살고 있다면 현대가 안고 있는 문화적, 지성적, 사회적 문제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라는데 관점을 둔 것이었다. 셀라스는 이에 대한 대답을 '비엔나 모차르트의 해 2006'에서 발표되는 콘서트, 오페라, 연극, 영화, 무용, 전시, 건축 등에서 찾아 보자고 한 것이다. 셀라스는 오래동안 함께 일 해온 현대음악 작곡가인 존 애덤스에게 비엔나의 New Crowned Hope Festival 에서 발표한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다.

 

흰 옷을 입은 구루의 주변에 학생들이 앉아 있다. 학생들은 내레이터가 오페라의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중공에 간 닉슨'(Nixon in China), '클링호퍼의 죽음'(The Death of Klinghoffer) 등 화제의 오페라를 작곡한바 있는 존 애덤스(John Adams: 1947-)는 인도에서 2천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래동화인 A Flowering Tree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니 그것이 2006년에 완성한 '꽃피는 나무'(A Flowering Tree)이다. 피터 셀라스가 존 애덤스에게 새로운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한 것은 물론 비엔나의 '모차르트 250주년 기념 행사'를 주관하는 곳으로부터였지만 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 런던의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er), 뉴욕의 링컨센터(Lincol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베를린 교향악단도 존 애덤스의 새로운 오페라 작곡의뢰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비엔나 무대. 오케스트라와 무대가 혼연일체 되어 있다. 무대에는 상징적으로 나무가 놓여 있다. 나무는 예로부터 신비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여겨져 온 것이다.

     

존 애덤스가 인도의 전래민화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피터 셀라스의 영향이 컸다.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인 피터 셀라스는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서도 마지막에 작곡한 '마술피리', '티토의 자비', '진혼곡'에 대하여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비엔나의 페스티벌에 세계 각국의 현대 예술가들을 초청하였을 때 우선적으로 이들 세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만들어 줄것을 희망했다. 셀라스는 이같은 노력을 Next Vienna 라고 명명했다. 존 애덤스의 '꽃피는 나무'는 어느 면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흡사한 점이 있다. 두 오페라가 모두 전래의 민속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것도 그렇고 두 젊은이가 사랑의 힘을 발견하기까지 시련을 겪고 의식을 거쳐야 하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음악의 구성에 있어서 '꽃피는 나무'는 내레이터 1명, 테너 1명(왕자), 소프라노 1명(쿠무다)이 필요하다는 것이 '마술피리'의 구성과 다르다. 물론, '꽃피는 나무'에는 무용수들과 대규모 합창이 등장하기도 한다.

 

꽃나무로 변형된 쿠무다의 모습

 

'꽃피는 나무'는 2006년 11월 14일 비엔나 시내에 있는 박물관구역(MuseumsQuartier)의 홀에서 초연되었다. 라쎌 토마스(Russel Thomas)가 왕자를, 제시카 리베라(Jessica Rivera)가 쿠무다를 맡았다. 지휘는 작곡자인 존 애덤스가 직접 하였다. '꽃피는 나무'는 비엔나 초연 이후 베를린, 샌프란시스코, 런던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되었고 2008년 봄에는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서 공연되었으며 같은 해 여름에는 토쿄의 산토리 홀에서 공연되었다. 토쿄 공연에는 비엔나 초연당시의 캐스트가 모두 출연하였으며 피터 셀라스가 감독을 맡았다.

 

쿠무다역의 이미지를 창조한 제시카 리베라

    

오페라 '꽃피는 나무'에서는 배경이 대단히 간소하다. 공연은 캄캄한 무대로 시작된다. 흰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걸어나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는다. 마치 유령처럼 신비하게 보이는 사람이다. 인도의 구루(힌두교의 현자)인듯 싶다. 이어 오렌지색 옷을 걸친 젊은이들이 몰려나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의 주변에 앉는다. 구루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인 것을 알수 있다. 오프닝 아리아는 쿠무다라는 젊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내레이터는 이 오페라의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무대에 나오는 것을 소개한다. 생전에 가난이나 고생은 모르고 지낸 왕자와 그의 여동생이 나오고 , 이제는 늙고 힘이 없어서 허리가 반달처럼 휘어진 쿠무다의 어머니가 나오며 이어 아름다운 쿠무다와 그의 여동생이 나온다. 학생들 틈에 앉아 있던 쿠무다는 인도의 전통 춤을 추면서 무대의 가운데로 나온다. 쿠무다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기도하는 법과 웃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을 회상한다.

 

 

옛날 옛적에 인도 남부의 카르나카타(Karnakata)지방에 쿠무다(Kumudha)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쿠무다는 비록 집안이 가난하지만 마음씨는 착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쿠무다는 아버지가 일찍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어머니와 동생 하나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이제 늙고 병들어서 활동할 기력조차 없다. 그런데도 딸들을 키우기 위해 힘든 밭일을 한다. 쿠무다는 어머니가 힘든 일을 하는 것이 너무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워낙 집안이 가난하여 어찌할 방법이 없다. 쿠무다는 가난과 고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쿠무다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만일 내가 아름다운 하얀 꽃이 피는 나무가 된다면 그 꽃을 팔아서 어머니에게 드릴텐데'라는 노래를 부른다. 그러던 어느날 쿠무다는 명상 중에 자기에게 꽃나무로 변할수 있는 마법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쿠무다는 자기로부터 브라만(신성)을 발견한다. 쿠무다의 얼굴은 마치 시바의 여신처럼 밝아 진다. 쿠무다는 기도를 하여 꽃나무로 변한 후 아름답고 향기나는 꽃들을 동생이 따서 시장에 내다 팔도록 한다. 꽃나무에는 세상에서는 볼수 없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피어 있다. 마치 자스민처럼 하얀 꽃이다. 그리고 꽃을 다 따버린 나무는 다시 쿠무다로 변한다. 동생이 꽃을 가지고 시장에 가자 순식간에 비싼 돈을 받고 팔린다. 꽃을 산 사람들은 구루의 둘레에 있던 학생들이다. 동생은 꽃을 판 돈을 어머니에게 준다. 어머니가 어디서 난 돈이냐고 묻지만 쿠무다와 동생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얼마후 쿠무다는 다시 한번 꽃나무로 변하여 동생이 꽃을 따서 팔도록 한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이 나라의 왕자가 쿠무다가 의식을 행하며 꽃나무로 변하는 모습을 나무 뒤에 숨어서 보고는 놀란다. 뿐만 아니라 왕자는 쿠무다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긴다. 왕자는 쿠무다와 결혼하기로 작정한다. 왕궁으로 돌아온 왕자는 밤새도록 부왕을 설득하여 결국 쿠무다를 왕궁으로 데려와 결혼한다.

 

비엔나 무대

   

그런데 결혼식을 치룬후부터 왕자는 어쩐 일인지 말이 없고 기분이 가라 앉은 모습이다. 쿠무다는 결혼 후 며칠이나 왕자와 함께 지내지만 왕자는 쿠무다에게 말도 하지 않고 옆에 가까이 오려고도 하지 않는다. 실망한 쿠무다가 마침내 이유를 물으니 왕자는 쿠무다의 마법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제발 한번 보고 싶으니 꽃나무로 변해 달라고 간청한다. 부끄럽게 생각한 쿠무다가 왕자의 청을 거절하지만 계속되는 간청에 어쩔수 없이 승낙한다. 쿠무다가 꽃나무로 변하는 모습을 질투심 많은 왕자의 여동생이 엿본다. 다음날, 왕자가 외출한 사이에 공주는 쿠무다에게 친구들과 함께 보고 싶으니 꽃나무로 변해 보라고 요청한다. 쿠무다는 마지못해 의식을 행하며 꽃나무로 변한다. 그러자 공주는 재미없다고 하며 친구들과 함께 갑자기 꽃나무의 가지를 꺽고는 나간다. 쿠무다는 의식을 행하는 도중이어서 나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모습으로 남는다.

 

무희들의 춤

 

보기 흉한 모습이 된 쿠무다는 억지로 기어서 왕궁 밖으로 나간다. 지나가던 수도승들이 팔과 다리가 없는 쿠무다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서 함께 데리고 간다. 한편, 왕궁으로 돌아온 왕자는 쿠무다가 사라진 것을 보고 크게 걱정한다. 왕자는 자기의 오만함과 지나친 호기심 때문에 쿠무다를 쫓아버린 것으로 생각하여 후회한다. 왕자는 자기 자신을 벌하는 의미에서 스스로 거지가 되어 유랑하기로 결심한다. 왕자는 또한 죽는 날 까지 말을 하지 않고 지내기로 결심한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다. 거지가 된 왕자는 우연히 어떤 왕궁을 지나게 된다. 그 왕궁은 지금은 왕비가 된 공주의 왕궁이었다. 아무도 왕자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공주는 그래도 오빠인 왕자를 알아보고 왕궁으로 데려 와서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히며 아름다운 음식을 차려 준다. 하지만 왕자는 공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며칠후 왕비의 시녀들이 저자거리에서 팔다리가 없는 어떤 여자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다. 그 여자는 수도승들과 함께 먹을 것을 구걸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시녀들은 팔다리가 없는 그 여자를 왕궁으로 데려와 노래를 부르도록한다.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면 왕자가 다시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이다. 왕비는 그 여자가 쿠무다인 것은 알지 못하고 쿠무다를 목욕시키고 좋은 옷을 입혀 왕자에게 데려간다. 왕자와 쿠무다가 단 둘이 있게 되자 서로를 알아본다. 두 사람은 이제 모든 슬픔과 시련을 극복하고 만나게 된 것이다. 왕자가 물을 두 병이나 마시고 의식을 거행하자 쿠무다는 다시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왕자와 쿠무다의 기쁨은 한이 없다.

 

이 오페라에는 시바신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내용의 시가 여러번 나온다. 왕자가 쿠무다의 변형을 엿보면서 부르는 노래도 시바신을 찬양하는 기도문(Bhakti)의 하나이다. 인도의 전통 악기도 상당수가 등장한다.

 

나무의 생명력을 의미하는 그리스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