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 기다리기(Waiting for Figaro)
모차르트의 미완성 오페라들을 독일의 한스 위커르트가 취합한 작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미완성 오페라 2편과 기존의 징슈필 1편을 종합하여 '피가로 기다리기'(Waiting for Figaro)라는 별도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 있다. 이들 오페라들이 앞으로 나올 '피가로의 결혼'을 예비하는 작품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 제목을 붙였다. 미완성 오페라 2편은 '카이로의 거위'(L'oca del Cairo: The Goose of Cairo: 1783)와 '속아 넘어간 신랑'(Lo sposo deluso: The Rivalry of Three Women for one Lover: 1784)이며 징슈필(Singspiel)은 '음악감독'(Der Schauspieldirektor: 1786)이다. 우선 이 세편의 짧은 오페라를 한데 묶은 사람은 독일의 작곡심리학자인 한스 위커트(Hans Ueckert: 1935-)이다. 다름슈타트 출신으로 최근까지 함부르크음악대학의 명예교수로 있었던 한스 위커트는 유명한 작곡가의 작품 중에서 분실된 것들, 또는 미완성인 것들을 연구하고 복원도 하는 전문가로서 특히 모차르트의 분실작품 및 미완성작품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다. 그는 뜻한바 있어서 모차르트의 두 편의 미완성오페라를 정리하고 여기에 징슈필 한편을 첨부하여 '피가로 기다리기'라는 타이틀의 작품을 내놓았다. 제목을 '피가로 기다리기'라고 한 것은 이 세편의 오페라(또는 징슈필)가 후에 등장할 '피가로의 결혼'을 예비하는 것들이라고 믿어서이다.
모차르트는 기록상 모두 22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학자에 따라서는 19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20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2편이라는 주장은 미완성인 작품이든, 또는 중도에 작곡을 포기한 작품이든 이들을 모두 통합하여 나온 숫자이다. 19편이라는 주장은 그 중에서 3편, 즉 '자이데'(Zaide), '속아 넘어간 신랑"(Lo sposo deluso), '카이로의 거위'(L'oca del Cairo)는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것이므로 이들을 제외하고 계산한 것이다. 20편이라는 주장은 이상 3편의 미완성 오페라 중에서 '자이데'(Zaide)는 어쩔수 없이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것이며 다른 2편은 의도적으로 작곡중에 포기한 것이므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중도에서 작곡을 포기한 2편만을 제외하면 20편이 된다는 얘기이다. 한편, Der Schauspieldirektor(음악감독 또는 연극흥행가: The Impressario)는 비록 단막이지만 완성된 작품이므로 미완성 또는 중도포기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카이로의 거위' '속아 넘어간 신랑' 음반. 필립스
한스 위커트는 모차르트의 미완성 오페라에서 분실된 파트는 모차르트의 스타일을 최대로 살려서 보충하고, 스케치만 해 놓은 파트는 보완하여 그런대로 완성해 놓았다. 대본은 고트리프 스테파니(Gottlieb Stephanie)와 지암바티스타 바레스코(Giambattista Varesco)가 만들어 놓은 오리지널을 최대로 살렸다. 그래서 만들어 놓은 것이 '피가로 기다리기'이다. 2006년 6월 모스크바에서 나름대로의 초연을 가졌다. 모차르트의 미완성 및 중도 포기 오페라에 대하여는 후대에 다른 사람들도 관심이 많았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서 활동했던 레코드 제작자 겸 피아니스트인 에릭 스미스(Erik Smith: 1931-2004)는 그 중의 하나이다. 그는 1991년에 모차르트 서거 250주년을 맞이하여 모차르트의 오페라 22편 전부를 필립스 레코드로 만드는 대작업을 수행하였다. 그때에 미완성인 오페라들도 보완하여 취입했다. 돌이켜 보면 미완성의 오페라를 완성코자 하는 노력은 사실상 모차르트의 부인이던 콘스탄체에 의해서도 추진되었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6년후인 1797년, '카이로의 거위'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하여 연주회 형식으로 공연을 주관한바 있다. 하지만 그건 옛날 일이고 그후로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가 근자에 들어와서 모차르트의 미완성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속아 넘어간 신랑'을 영국 옥스포드셔어에 있는 뱀턴(Bampton) 고전오페라단이 대본을 정리하여 공연하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1782년 7월 '후궁에서의 도주'(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가 대성공을 거두자(비록 요셉2세 황제가 '음표가 너무 많소, 친애하는 모차르트여'라고 말했지만) 또 다른 적당한 이탈리아어 대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궁정극장장인 오르시니 로젠버그(Orsini-Rosenberg)백작이 모차르트에게 새로운 '오페라 부파'의 작곡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그 즈음에 모차르트는 요셉2세 황제의 정책에 부응하여 독일어 오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모차르트는 카를로 골도니(Carlo Goldoni)의 Arlecchino servitore di due padroni(Servant of Two Masters: 두 주인의 하인)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오페라로 만들 생각을 했다. 요셉2세가 독일어 오페라에 대하여 적극적이었지만 사실상 아무래도 당시에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유행이어서 모차르트로서도 독일어 오페라를 만들었을 때 그것이 성공을 거둔다고 장담을 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당시 비엔나에는 뛰어난 이탈리아 오페라 부포의 베이스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프란체스코 베누치(Francesco Benucci)와 프란체스코 부싸니(Francesco Bussani)였다. 베누치는 나중에 '피가로'와 '구글리엘로'(여자는 다 그래)의 이미지를 창조하였으며 부싸니는 '피가로'에서 바르톨로, '돈 조반니'에서 석상(콤멘다토레)와 마세토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1783년 5월,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탈리아 대본을 수백편 살펴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걱정이다'라고 썼다. 모차르트는 다 폰테라는 당대의 대본가와 합동으로 일을 하고 싶었지만 다 폰테는 이미 모차르트의 라이발 격인 살리에리와 계약을 맺고 있어서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모차르트는 차선으로 아버지에게 잘츠부르크에 있는 지암바티스타 바레스코와 연결해 줄것을 부탁했다. 모차르트는 바레스코가 쓴 Idomeneo의 대본으로 오페라를 만들었지만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여 흡족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접촉키로 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달후인 6월에 바레스코는 모차르트에게 대본 하나를 보냈다. L'oca del Cairo(카이로의 거위: L'Oie du Caire)였다. 모차르트는 대본을 읽고 마음에 들었으나 바레스코가 '극장 경험이 없고 오페라에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대본의 상당부분을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무튼 모차르트는 그후 두 세달 동안 시간이 나는 대로 작곡에 몰두하여 '카이로의 거위'의 전체 3막 중에서 1막에 나올 10곡 중에서 겨우 7곡을 완성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대본에 드라마틱한 요소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한가지는 높은 성탑에 갇혀 있는 두 여인이 노래를 부른다는 대목이다. 1막에서는 그런대로 들어줄수 있지만 2막에서도 성탑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무대효과로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막에서는 무대를 성탑 안으로 설정하여 두 여인이 자유스럽게 노래를 부르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다른 문제가 있었다. 거위에 대한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커다란 거위를 만들고 그 속에 숨어 있다가 나와서 여인들을 구출한다는 얘기는 '트로이의 목마'를 모방한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다른 바쁜 일도 있고 하여서 이듬해 2월에 '카이로의 거위'의 작곡을 포기했다. 처음에는 잠시 미루어 두었다가 다시 작곡할 생각이었으나 결국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았다. 그때까지 모차르트는 1막의 보컬 파트와 베이스 라인, 그리고 오케스트레이션을 거의 완성지만 바레스코는 다시는 '카이로의 거위'를 듣지 못했다.
1783년 10월에 모차르트가 '카이로의 거위'를 포기할 즈음에 그는 또 다른 대본을 손에 넣었다. 누가 대본을 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다 폰테가 쓰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다. Lo sposo deluso(속아 넘어간 신랑)이다. 1780년에 로마에서 공연된 치마로사의 Le donne rivali(라이발 여인)의 스토리를 채택한 것이다. '속아 넘어간'도 '카이로'와 마찬가지로 5명의 주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차르트는 대체로 7명의 주역을 선호하였다. 그런데 '속아 넘어간'에서는 치마로사의 오리지날과 마찬가지로 5명의 주역이 등장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부제인 La rivalita di tre donne per un solo amante(한 사람의 애인을 위한 세명의 라이발 여인)를 보면 이 오페라가 속고 속이는 코믹한 내용임을 알수 있다. 모차르트는 '속아 넘어간'에서도 당시의 인기 성악가들을 염두에 두고 곡을 작곡하였다. 부자이지만 미련한 보코니오는 프란체스코 베누치에게 적합한 역할이었고 여성혐오주의자와 같은 풀케리오(Pulcherio)는 프란체스코 부싸니(Francesco Bussani)가 적당했다. 부싸니는 모차르트의 작품에서 바르톨로, 안토니오, 석상(콤멘다토레), 마세토, 돈 알폰소 등을 맡았던 모차르트의 콤비였다. 그리고 귀부인인 유제니아는 영국에서 온 낸시 스토라체(Nancy Storace)가 최적이었다. 낸시 스토라체는 나중에 '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산나의 이미지를 창조하여 갈채를 받았다.
'피가로의 결혼'의 한 장면
'속아 넘어간 신랑'은 비록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이른바 부피씨마(Buffissima)의 성격을 지닌 작품으로 훌륭한 오페라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우선 내용이 재치있고 재미있기 때문에 비엔나 사람들이 좋아할 타입이었다. 그래서 모차르트가 왜 이 오페라의 작곡을 포기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마 '카이로의 거위'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어 대본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 폰테의 대본이라면 드라마틱한 요소가 충분하 반영되었을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대본이었기 때문에 그런 면이 부족했던 것이고 그래서 모차르트가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모차르트가 그 당시에 이미 다 폰테의 대본으로 보마르셰 원작의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에 대한 훌륭한 대본을 확보하고 작곡에 매진하면서도 간혹 다른 작품들을 썼다. 걸작인 피아노 협주곡 K482, K488, K491 등이다. 이와 함께 1786년 1월 18일부터 2월 3일 사이에 '음악감독'도 작곡했다. '음악감독'은 요셉2세 황제의 당부에 의해서 작곡했다. 요셉2세 황제는 비엔나를 방문하는 작센-테센의 알베르트 대공과 부인인 마리 크리스틴 대공녀(요셉 2세 황제의 여동생)를 환영하기 위해 독일어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고 몇 사람에게 부탁했다. 말하자면 오페라 경연이었다.
쇤브룬 궁전의 오랑제리. 오랑제리는 열대식물을 키우는 온실과 같은 곳이다.
알베르트 대공부부를 위한 환영공연은 2월 7일 쇤브룬 궁전의 오란제리 가설무대에서 있을 예정이었다. 모차르트는 고트리브 스테파니의 코믹 희곡인 '음악감독'을 징슈필 스타일로 작곡키로 작정했다. '음악감독'의 아이디어는 요셉 2세 황제 자신이 제공한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대본이 만들어졌다. 모차르트는 황실로부터 50 두카트의 작곡료도 받았다. 고트리브 스테파니는 얼마 전에 '후궁에서의 도주'의 대본을 썼기 때문에 모차르트로서는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2월 7일 저녁, 정작 환영공연은 살리에리의 Prima la musica poi le parole(음악 먼저, 대본 나중)이 무대에 올려졌다. 살리에리는 황실로부터 100 두카트를 받았다. 모차르트로서는 기분 나쁜 일이겠지만 그러나 '피가로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음악감독'의 내용은 무척 재미있는 것이어서 1791년 도메니코 치마로사가 L'impresario in augustie라는 타이틀의 오페라에 반영을 하였고 1845년에는 베를린의 배우 겸 극작가인 루이스 슈나이더(Louis Schneider)가 Mozart and Schikaneder 라는 타이틀로 다시 만들었다. 모차르트는 '음악감독'에서 겨우 5개의 노래를 작곡했다. 하지만 모두 재미있는 걸작들로서 모차르트의 성숙한 재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모차르트가 1783년 7월에 작곡에 들어갔다가 10월에 포기한 3막의 '카이로의 거위'의 미완성부분들은 나중에 여러 사람들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드는 등 완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에릭 스미스는 그 중의 하나이다. '카이로의 거위'는 비록 40분 정도밖에 않되는 짦은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하나의 단독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 '피가로의 결혼'을 향한 전조등과 같은 것이다. '카이로의 거위'는 약간 바람끼가 많은 아우레타와 한때 그의 골치꺼리였던 애인인 치치비오(Chichibio)가 서로 놀리는 듯한 듀엣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마치 '피가로의 결혼'이 수산나와 피가로의 듀엣으로 시작하는 것과 같다. 이외에도 '카이로의 거위'와 '피가로의 결혼'의 등장 인물, 또는 아리아와 듀엣 등은 서로 닮은 점이 많다. 한편, 치마로사의 I due baroni(두명의 남작)의 도입부도 '카이로의 거위'와 비슷한 점이 있다. '카이로의 거위'의 공연 역사도 흥미롭다. 1860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처음 연주되었다. 1867년에는 프랑스어 대본으로 파리에서 공연되었다. 이때 '속아 넘어간 신랑'의 아리아들과 또 다른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를 군데군데 추가하였다. 1870년에는 이탈리아어로서 런던의 드러리 레인(Drury Lane)왕립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그후 20세기에 들어서서 수많은 버전으로 만들어져 여러 곳에서 공연되었다. 그러다가 어찌된 일인지 무대로부터 잊혀져 있다고 거의 1백년이 지난 1991년에 이탈리아의 바티냐노(Batignano)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에릭 스미스의 버번은 2001년 브라질의 상파울로에서 공연되었고 1994년에는 영국의 뱀튼 고전오페라 축제에서 영어대본으로 모습을 보였다.
모차르트는 '음악감독'이 초연된지 3개월 후인 5월에 비엔나의 궁정극장(Burgtheater)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초연을 가졌다. 대성공이었다. 모차르트 오페라의 금자탑을 이룩한 작품이었다. '피가로의 결혼'이 성공을 거둘수 있었던 것은 그 전에 마치 습작처럼 만들었다가 책장의 한쪽에 넣어 두었던 2편의 미완성 오페라와 '음악감독'이라는 징슈필의 덕분이다. 혹자는 '카이로의 거위'와 '속아 넘어간 신랑'이 '피가로'를 위한 희생물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피가로'의 앞길을 예비해 준 것이었다. 이제 '카이로의 거위'와 '속아 넘어간 신랑'의 줄거리를 간략하나마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세 작품이 만들어진 연도의 순서대로 소개를 하면 좋겠지만 이야기의 연결상 '음악감독' '속아 넘어간 신랑' '카이로의 거위' 순으로 소개코자 한다. 오페라 속의 오페라이다.
지금은 철거된 비엔나 부르크테아터 '피가로의 결혼'이 초연된 곳이다. 호프부르크 정문 옆에 있었다. 말타고 가는 사람들의 옆에 있는 건물이다. 왼편의 커다란 검은 건물이 호프부르크 궁전이다.
[음악감독] 이 오페라(징슈필)은 '속아 넘어간 신랑'(Lo sposo deluso: The Deluded Bridegroom)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잘츠부르크에 있는 어느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극장장 또는 흥행주)인 프랑크(Frank)는 곧 공연키로 되어 있는 '피가로의 결혼'의 악보가 도착하지 않아 리허설을 시작하지 못하여 걱정이다. 음악감독으로서 무엇보다도 급한 일은 오페라의 주요배역을 선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모차르트로부터 음악이 도착한다. 그런데 '피가로의 결혼'의 악보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속아 넘어간 신랑'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악보이다. 그때 왕년에는 이름을 떨쳤던 소프라노 마담 골든트릴(Madame Goldentrill: 오리지널에서는 마담 헤르츠)이 들어선다. 조감독인 에인젤(Angel)이 추천하여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이다. 뒤를 이어 미스 워블웰(Warblewell: 오리지널에서는 마드무아젤 질버클랑)이 들어온다. 음악감독이 직접 추천하여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이다. 두 사람은 오디션 악보를 보고 훌륭하게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서로 싫어하는 눈치가 역역하다. 성악가들은 '속아 넘어간 신랑'의 음악을 연습하기 시작한다. 오프닝 4중창에서 새로 오디션을 보았던 두 여자는 하녀 베티나(Bettina)의 역할을 함께 맡는다. 한편, 리허설 도중에 음악원 여학생인 라비나(Lavina)가 찾아온다. 프랑크가 역할을 주겠으니 오라고 해서 찾아온 것이다. 뛰어난 재능의 라비나에게는 유제니아의 역할이 주어진다. 여기에 새로 테너가 합세한다. 테너에게는 돈 아스드루발레(Don Asdrubale)의 역할이 주어진다. 라비나와 테너는 곧 좋아하는 사이가 된다. 이렇게 되자 출연진 서로간에 묘한 다툼이 일어난다.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속아 넘어간 신랑'에서 아리아를 네곡 이상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아리아를 줄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감독인 프랑크는 어찌할 줄을 몰라 딜렘마에 빠진다. 다행히 부감독이 사태를 진정시킨다. 모차르트가 보낸 악보 뭉치를 다시 살펴보던 프랑크는 '속아 넘어간 신랑' 이외에도 '카이로의 거위'라는 악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소프라노를 위한 세 곡의 아리아가 있고 테너를 위한 아리아도 있다. 그렇게 하여 모두들 아리아를 부를수 있게 되어 만족한다. 음악원 여학생인 소프라노와 새로 온 테너는 사랑의 듀엣을 연습한다면서 슬며시 손 잡고 무대 뒤로 사라진다.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음악감독인 프랑크(Frank)는 대상만 말하는 역할이다. 마친가지로 조감독인 에인젤(Angel)도 대사만 말하는 역할이다. 소프라노는 마담 골드트릴과 미스 워블웰, 그리고 음악원 여학생뿐이다. 테너는 한 사람으로서 돈 아스드루발레 역할을 맡는 사람이며 베이스(부포)도 한 사람이다.
'음악감독'의 한 장면.
[속아 넘어간 신랑] 무대는 이탈리아 리보르노(Livorno) 부근의 어떤 마을이다. 유제니아와 돈 아스드루발레는 별것도 아닌 오해로 서로 다투다가 헤어진다. 얼마후 돈 아스드루발레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돈다. 유제니아는 보코니오라는 사람과 새로 혼담이 진행된다. 나이 많은 보코니오는 사람이 미련하지만 돈 많은 부자이다. 유제니오는 보코니오를 만나본 일은 없다. 오프닝 트리오에서 여성혐오증이 있는 풀케이로와 베티나, 그리고 보코니오의 친구라는 어떤 사람과 함께 보코니오의 결혼을 두고 놀린다. 세 사람은 유제니아가 예쁘고 젊지만 고집이 세고 사치스럽다며 결혼하면 고생이 많겠다고 놀린다. 보코니오의 친구라는 사람은 실은 죽었다고 알려진 돈 아스드루발레이다. 결혼 준비를 위해 보코니아의 집을 찾아간 유제니아는 마치 I due baroni에 나오는 라우라처럼 자기에 대한 환영이 소홀하다면서 불평을 털어 놓는다. 그런 유제니아를 보고 풀케리오가 노골적으로 조롱한다. 한편, 1막의 마지막에서 유제니아와 헤어진 돈 아스드루발레는 두 명의 여자가 사랑한다면서 따라 다니는 바람에 즐거운 비명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유제니아와 마주친다. 유제니아와 돈 아스드루발레는 순간 대단히 당황한다. 보코니오가 당황한 것은 물론이다. 결국 유제니아가 보코니오와 결혼하려던 것은 돈 아스드루발레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 밝혀진다. 보코니오는 감당하기 어려운 유제니아와 결혼하지 않아도 되어 기쁘다. 모두들 행복하다.
등장인물: 보코니오 파파렐리(Bocconio Papparelli: B)는 유제니아와 결혼키로 되어 있는 돈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고 미련하다. 젊고 아름다운 유제니아(Eugenia: S)는 로마에 살고 있는 귀족의 딸이다. 유제니아는 보코니오와 약혼하였지만 실은 돈 아스드루발레를 사랑한다. 돈 아스드루발레(Don Asdrubale: T)는 투스카니 출신의 장교이다. 베티나(Bettina: S)는 보코니오 파파렐리의 조카로서 유제니아의 친구이다. 베티나도 돈 아스드루발레를 사랑한다. 풀케이로(Pulcheiro: T)는 보코니오 파파렐리의 친구로서 어쩐 일인지 여성혐오증을 가지고 있다. 제르바시오(Gervasio: B)는 유제니아의 가정교사로서 메틸데를 사랑하고 있다. 메틸데(Metilde: S)는 베티나의 친구로서 뛰어난 재능의 비르투오소 소프라노이며 댄서이다. 메틸데도 은근히 돈 아스드루발레를 사랑하고 있다.
[카이로의 거위] 나이 많은 돈 피포(Don Pippo)는 부인인 돈나 판테아(Donna Pantea)가 집을 나가서 소식이 없자 죽은 것으로 믿는다. 돈 피포는 자기에게 듣기 싫은 소리만 하고 말을 듣지 않는 딸 첼리도라(Celidora)와 딸의 친구인 라비나(Lavina)를 탑에 가둔다. 실상 돈 피포는 젊고 아름다운 라비나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라비나는 칼란드리노를 사모하고 있다. 그리고 첼리도라는 비온델로를 사랑하고 있다. 칼란드리노는 첼리도라에게 비온델로 대신에 리오네토(Lionetto)백작과 결혼하라고 강권한다. 서곡이 끝나고 오프닝에서 돈나 판테아의 하녀인 아우레타는 상인들과 돈을 지불하는 문제를 가지고 다툰다. 그러면서 자기는 요염한 재능을 뽐낸다. 아우레타를 사랑하는 집사장 치치비오는 그런 아우레타가 못마땅하다. 그런 아우레타는 이번에는 칼란드리노와 수작을 벌이며 포옹까지 한다. 이 모습을 본 치치비오는 속이 탄다. 아우레타가 질투하는 치치비오를 조롱한다. 한편, 첼리도라를 사랑하는 비온델로는 첼리도라의 아버지인 돈 피포와 내기를 한다. 성탑에 갇혀 있는 첼리도라를 구출한다면 결혼을 허락한다는 내기이다. 성탑은 높은 곳에 있기도 하지만 경비병들 때문에 접근조차 하기가 어렵다. 드디어 내기의 기한이 되는 마지막 밤이 온다. 돈 피포는 비온델로가 첼리도라를 절대로 구출하지 못할 것으로 믿어서 내기에 이겼다고 생각하여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아우레타와 치치비오도 첼리도라와 라비나를 구출하는 작전에 동참키로 한다. 비온델로는 큐피드와 비너스의 도움을 간청하며 내기에 진 돈 피포의 화난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린다. 여기까지가 1막의 내용이다.
미완성인 2막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은 것으로 믿었던 돈나 판테아가 배를 타고 도착한다. 카이로에서 온 상인으로 변장한 돈나 판테아는 기계장치가 되어 있는 거대한 거위를 끌고 온다. 카이로로부터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돈 피포는 변장한 돈나 판테아를 알아보지 못한다. 돈 피포는 거위의 웅장함을 보고 감탄한다. 돈나 판테나는 밤중에 거위를 성탑 아래의 성벽에 홀로 남겨두면 거위가 말을 한다고 얘기한다. 이 소리를 들은 돈 피포는 거위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성벽 아래에 아무도 접근하지 말고 놓아 두도록 한다. 실은 비온델로가 거위 안에 숨어 있다. 이렇게 하며 비온델로는 밤중에 성탑으로 올라가 두 여자를 구출한다. 돈나 판테아의 정체가 밝혀진다. 돈 피포는 살아 있는 부인을 두고 다른 젊은 여자와 결혼하려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첼리도라는 비온델로와 결합하며 라비나는 칼란드리노와 결합하고 아우레타는 치치비오와 결합한다. 모두 행복하다.
등장인물: 돈 피포(Don Pippo: B)는 스페인의 후작이다. 돈나 판테아(Donna Pantea: S)는 돈 피포의 부인으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첼리도라(Celidora: S)는 돈 피포의 딸이다. 라비나(Lavina: S)는 첼리도라의 친구이다. 첼리도라는 비온델로(Biondello: T)를 사랑하고 있다. 칼란드리노(Calandrino: T)는 돈나 판테아의 조카로서 라비나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치치비오(Chichibio: B)는 돈 피포의 집사장으로 아우레타를 사랑하고 있다. 아우레타(Auretta: S)는 첼리도라의 하녀이다.
세 편의 오페라를 연결하여 한 번에 공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성악가가 여러 역할을 맡는다. 다만, 음악감독인 프랑크만은 한 사람이다. 물론 프랑크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대사만을 말하는 역할이다.
음악감독 | 속아 넘어간 신랑 | 카이로의 거위 |
음악감독 프랑크(Frank) | ||
조감독 에인젤 | 여성혐오증이 있는 풀케이로 | 돈 피포의 조카로서 라비나를 사랑 하는 칼란드리노 |
한물간 소프라노인 마담 골든트릴 | 하녀 베티나 | 돈 피포의 딸인 첼리도라 |
새로운 소프라노인 미스 워블웰 | 소프라노 겸 댄서인 메틸데 | 첼리도라의 친구인 라비나 |
음악원 여학생 | 귀족가문의 유제니아 | 돈나 판테아의 하녀 아우레타 |
새로 등장한 테너 | 돈 아스드루발레 | 첼리도라를 사랑하는 비온델로 |
무대 매니저인 블러프 | 나이 많은 부자 보노키오 | 돈 피포 |
유제니아의 가정교사 제르바시오 | 돈 피포의 집사장인 치치비오 | |
지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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