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이탈리아왕국의 마리

마리 호세 왕비의 마지막 가는 길

정준극 2011. 9. 9. 06:49

마리 호세 왕비의 마지막 가는 길

 

마리 호세의 공식 사진

          

이탈리에서는 왕정을 유지할 것인지 또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1946년 6월 2일에 시행되었다. 빅토르 엠마누엘 3세와 움베르토 2세는 국민의 대다수가 공화제를 열망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마리 호세는 왕정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10%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투표결과는 54% 대 46%로서 공화제를 찬성하는 측이 겨우 승리하였다.아무튼 국민투표의 결과에 따라 며칠 후인 6월 13일 움베르토 일가는 국외추방 당하였다. 움베르토와 마리 호세, 그리고 네 자녀들은 우선 스위스로 갔다가 다시 포르투갈로 발길을 옮겼다. 포르투갈은 마리 호세의 외할머니가 포르투갈의 공주였다는 것이 배경이었다. 포르투갈에 온 마리 호세는 여러 생각 끝에 남편 움베르토와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정식으로 이혼을 생각했지만 로마 가톨릭에서의 이혼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선은 별거키로 결정한 것이다. 움베르토와 마리 호세는 이탈리아 왕가의 사람들로서는 드믈게 로마 가톨릭 신앙에 돈독하였다. 과거에 보면 왕가의 사람들은 가톨릭 교회와의 알륵으로 사제기피증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추어보면 특이하다고 할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고 또한 나중에 사정이 좋아지면 합치게 될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기 때문에 이혼수속을 하지 않았다. 특히 움베르토는 언젠가는 이탈리아의 왕으로서 복귀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마리 호세는 네 자녀들을 데리고 스위스로 왔다. 움베르토는 포르투갈에 남아 있었다. 마리 호세는 스위스에서 남은 생애를 지냈다. 마리 호세는 포르투갈에서 움베르토와 헤어진후 생전에 그를 다시 만난 일은 없다.

 

프랑스 오뜨꽁비 수도원에서의 장례식

     

마리 호세는 막내딸 마리아 베아트리체가 결혼하여 멕시코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멕시코에 가서 손자들을 돌보며 지내기도 했다. 마리 호세는 1983년에 남편 움베르토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마리 호세는 2001년1월 27일 향년 94세로 제네바 인근의 토렉스(Thorex)에서 세상을 떠났다. 폐암때문이었다. 마리 호세는 프랑스의 오뜨꽁비(Hautecombie)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옆에는 움베르토 2세가 안장되어 있다.

 

프랑스 오뜨꽁비 수도원의 마리 호세와 움베르토 2세의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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