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르(Zaïre)이야기
모차르트-벨리니-로시니-르페브브르가 주제로 삼은 작품
자이르(Zaïre)는 볼테르(Voltaire: 1694-1778: Franois-Marie Arouet)가 1732년에 내놓은 희곡의 주인공 이름이다. 십자군 전쟁 당시의 사람이다. 아마 프랑스 출신인듯 싶다. 자이르는 아주 어릴 때에 예루살렘에서 무슬림들의 손에 들어가 터키의 술탄궁전에서 자란다.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한 자이르는 젊은 술탄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다가 어릴 때 잃었던 아버지와 오빠를 찾게 된다. 오빠 역시 술탄의 노예로 잡혀와 있었다. 젊은 술탄은 자이르가 기독교도인 노예를 사랑하는 줄 알고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여 자이르를 죽인다. 그러나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술탄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것이 자이르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이다. 자이르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작곡가들이 오페라의 주제로 삼았다. 벨리니가 대표적이다.
무슬림 복장을 한 아름다운 자이르. 콘트랄토 주세피나 그라씨.
볼테르에게는 자이르(Zaïre)이지만 벨리니에게는 자이라(Zaira)이다. 볼테르의 자이르는 자라(Zara)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Il Turco in Italia)에서는 자이다(Zaida)라는 집시여인으로 등장하며 모차르트의 징슈필에서는 자이데(Zaide)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프랑스의 작곡가인 샤를르 에두아르 르페브브르(Charles-Édouard Lefebvre: 1843-1917)도 '자이르'(Zaïre)라는 4막의 오페라를 작곡한바 있다. 역시 볼테르의 작품을 기본으로 삼은 오페라이다. 자이르, 또는 자라가 되었건 자이데가 되었건 유럽 사람들에게는 이들이 친숙한 이름이다. 스페인의 유명 의류업체인 자라(ZARA)도 실은 볼테르의 작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은 1971년부터 최근인 1997년까지 자이르공화국(République du Zaïre)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이름은 볼테르의 자이르와는 관련이 없다. 콩고어로 nzere(nzadi)라는 단어에서 따온 이름이다. '모든 강들을 집어삼킨 강'이라는 뜻일 뿐이다.
자이라의 한 장면
우선 원작인 볼테르의 '자이르'(Zaïre: Zara)의 내용부터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기독교도 노예인 자라와 네레스탄(Nerestan)은 터키의 술탄인 오스만(Osman)의 궁전에서 자랐다. 자라가 오스만의 궁전에 온 것은 아주 어릴 때였다. 자라가 기독교도라는 증거는 그가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 목걸이 뿐이다. 아주 어릴 때에 터키에 온 자라로서는 무슬림 신앙을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소년으로서 터키에 잡혀온 네레스탄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함께 잡혀온 노예들과 함께 기독교 신앙을 버리지 않고 지냈다. 연극의 막이 오르는 때로부터 2년전에 네레스탄은 술탄의 신임을 받아 프랑스에 갔다오게 된다. 터키에 포로로 잡혀있는 기독교도들의 몸값을 받아 그들을 석방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술탄은 네레스탄이 기독교 신앙을 버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가 명예를 위해 돌아올 것을 믿고 그를 프랑스로 보낸다.
자이라와 술탄. 그림
네레스탄이 프랑스로 떠난 후 세월은 흘러 자라는 점점 어여쁜 여인으로 성숙한다. 자라는 훌륭한 청년인 술탄 오스만을 사랑하게 된다. 그같은 자라의 마음은 보상을 받아서인지 오스만에게도 자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드디어 오스만이 정식으로 자라에게 청혼하여 왕비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한다. 자라는 행복하기만 하다.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바로 그날,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던 네레스탄이 돌아온다. 네레스탄은 10명의 기독교도의 몸값을 확보하고 돌아온 것이다. 네레스탄은 10명의 기독교도 중에 자라도 포함하여 줄것을 간청한다. 술탄 오스만은 자비심을 베풀어 10명 대신에 100명을 석방키로 한다. 그중에는 네레스탄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당연히 자라는 포함되지 않는다. 네레스탄은 자기가 노예로 계속 남아 있을 테니 자라를 석방하여 돌려 보내달라고 간청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네레스탄은 오스만이 자라를 절대로 석방하지 않겠다고 하자 크게 낙심한다. 또한 기독교도 포로들이 존경하는 나이 많은 루시냔(Lusignan)도 석방할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크게 실망한다. 루시냔은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세운 예루살렘왕의 후손이다. 이에 자라는 오스만에게 간청하여 드디어 루시냔을 석방한다는 허락을 받는다. 루시냔은 나레스탄 등의 무리와 함께 프랑스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오스만과 자이라. 이스탄불 오페라단 공연.
루시냔은 자라의 십자가 목걸이를 보고 자라가 어릴 때 예루살렘에서 잃었던 딸인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네레스탄도 그의 몸에 있는 독특한 상처때문에 루시냔의 아들인 것이 밝혀진다. 네레스탄은 자라의 오빠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헤어졌던 아버지와 아들과 딸이 극적으로 만난다. 루시냔과 네레스탄은 자라가 오스만과 바로 그날 결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란다. 두 사람은 자라에게 결혼하기 전에 먼저 기독교도로서 세례를 받으라고 간청한다. 자라는 결국 아버지와 오빠의 설득을 받아들여 세례를 받기로 한다. 하지만 당분간은 비밀로 삼기로 한다. 자라는 오스만에게 결혼식을 하루만 연장해 달라고 부탁한다. 오스만은 자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의심한다. 네레스탄은 아버지 루시냔과 함께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라를 만나기 위해 은밀히 편지를 보내어 밤중에 만나자고 한다. 그 편지를 오스만이 가로챈다. 오스만은 자라와 네레스탄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생각하여 자라의 배신에 대하여 분노한다. 오스만은 자라가 네레스탄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서 마침 기다리고 있던 자라를 칼로 찔러 죽이고 이어 나타난 네레스탄을 체포한다. 오스만은 네레스탄과 루시냔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듣고 크게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오스만은 자책감을 참지 못하여 자라를 찔렀던 그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것이 볼테르의 '자이르'의 줄거리이다.
'자이라'가 초연된 파르마의 테아트로 레지오
빈센초 벨리니가 볼테르의 '자이르'에 감명을 받아 2막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Tragedia lirica, 즉 비극적 오페라이다. 대본은 당대의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가 썼다. 제목은 이탈리아 식으로 '자이라'(Zaira)라고 했다. '자이라'는 벨리니의 다섯번째 오페라로서 1829년 5월 16일 파르마의 테아트로 레지오(Teatro Regio di Parma)에서 초연되었다. 당시에는 Nuovo Teatro Ducale 라고 부르던 극장이었다. 벨리니는 그해 2월에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La straniera(낯선 여인)의 초연을 마친후 즉시 '자이라'의 작곡에 들어가 3개월만에 완성하였다. '자이라'는 파르마의 Nuove Teatro Ducale의 오프닝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자이라'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 벨리니는 Bianca e Gernando(1826), Il pirata(1827) 등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그것도 잠시뿐 '자이라'는 실패였다. 파르마는 전통적으로 로시니의 작품에 대하여 열광적이었으므로 벨리니의 작품을 상대적으로 환영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또한 대본을 맡은 로마니가 '자이라'의 대본을 겨우 30일만에 완성했기 때문에 대본이 어설퍼서 실패했다는 얘기도 있다. 벨리니는 나중에 '자이라'의 상당부분 음악을 이듬해 3월에 초연된 I Capuleti e i Montecchi(캬풀레티가와 몬테키가)에 사용했다.
오스만과 자이라
파르마에서의 실패 이후 '자이라'는 1836년에 플로렌스에서 한번 공연되었고 그후 140년간 잊혀져 있다가 1976년 카타니아의 테아트로 마씨모 벨리니(Teatro Massimo Bellini)에서 리바이벌되었다. 이때 소프라노 레나타 스코토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1990년 다시 공연되었을 때에는 소프라노 카티아 리키아렐리와 라몬 바르가스가 자이라와 네레스탄을 맡았다. 그후에는 독일 겔젠키르헨(Gelsenkirchen)의 Musiktheater im Revier(루스음악극장)에서 공연되었고 2009년에는 프랑스의 몽펠리에 라디오프랑스 축제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되었다. 오페라 '자이라'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볼테르의 원작에 비하여 이름들이 이탈리아식으로 바뀌어져 있다. 자이라(S)는 오로스마네(오스만)이 사랑하는 여인이다. 오로스마네(오스만: B)는 예루살렘의 술탄이다. 네레스타노(Nerestano: MS)는 자이라의 오빠이다. 로시냐노(Lusignano: 루시냔: B)는 자이라와 네레스타노의 아버지이다. 이밖에 코라스미노(Corasmino: T),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T), 화티마(Fatima: S), 멜레도르(Meledor: B)가 등장한다.
자이라역의 안나 스톨라르치크
'오페라 이야기 > 오페라 더 알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락의 왕’이 ‘리골레토’가 된 사연 (0) | 2012.01.03 |
---|---|
로시니의 파스티슈 오페라(Pastiche Opera) (0) | 2011.11.22 |
루치아와 줄리엣 (0) | 2011.09.24 |
두 명의 피가로(I due Figaro) (0) | 2011.09.10 |
'로미오와 줄리엣' 더 알기 (0) | 2011.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