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오르텐스 슈나이더(Hortense Schneider)

정준극 2011. 11. 11. 09:19

오르텐스 슈나이더(Hortense Schneider)

19세기 프랑스 오페레타의 위대한 스타

 

 

오르텐스 슈나이더(Hortense Catherine Scheider: 1833-1920)는 19세기 프랑스 오페레타의 위대한 스타였다. 특히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에서 여러 이미지를 창조한 뛰어난 소프라노였다. 하지만 그는 코라 펄(Cora Pearl) 또는 마리 뒤플레시스(Marie Duplessis)와 마찬가지로 고급창녀이기도 했다. 오페레타 스타이면서 파리 사교계의 유명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명성을 한때 하늘 높은 줄을 모를 정도였다. 1833년에 보르도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성악을 공부하여 1853년, 20세의 젊은 나이로 프랑스 서남부의 아겐(Agen)에서 도니체티의 오페라 '라 화보리타'의 이네스(Ines)로 오페라에 데뷔하였다. 청운의 뜻을 품고 파리로 올라온 슈나이더는 처음에 테아트르 데 바리에테(Théâtre des Variétés)에 접촉하였으나 극장장이 별로 필요없다고 하여 계약을 거절했다. 그러던중 우연히 오펜바흐의 눈에 띠게 되었다. 오펜바흐는 슈나이더를 당장 테아트르 데 부르 파리지엔느(Théâtre des Bouffes-Parisiens)로 초청하였다. 슈나이더는 이곳에서 1855년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Le violoneux 로서 데뷔하였다. 대단한 호평을 받은 슈나이더는 곧이어 '아름다운 엘렌'(La belle Hélène)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하였고 또한 '푸른 수염'(Barbe-bleue)에서 불로트 역을 창조하였다. 이어 '게롤슈타인 대공부인'(La Grande-Duchesse de Gérolstein)과 '페리콜'(La Périchole) 등의 초연에서도 타이틀 롤을 맡았다. 모두 대성공이었다. 슈나이더는 런던과 생페터스부르크에서도 오페라에 출연하여 환영을 받았다.

 

 

슈나이더는 뛰어난 미모와 재능으로서 수많은 숭배자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슈나이더는 프랑스 제2제국(1852-1870)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프랑스를 방문하는 왕족이나 귀족들도 파리에 와서는 슈나이더의 오페레타를 보고 가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다시피했다. 그때부터 슈나이더는 '라 스테더'(La Snédèr)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라 스네더는 영국의 에드워드 7세가 애지중지하는 정부 중의 하나였다. 애드워드 7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뒤를 이어 영국의 군주가 된 인물이다. 슈나이더는 1878년 무대에서 은퇴하였고 이후 40여년 동안 파리에서 지내다가 향년 87세로 1920년에 세상을 떠났다. 1950년도 마르셀 아샤르(Marcel Achard)의 영화인 La valse de Paris(파리의 왈츠)는 슈나이더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게롤슈타인 대공부인'에서의 오르텐스 슈나이더(라 스네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