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열정의 살로메 프란체스카 파타네(Francesca Patanè)

정준극 2012. 2. 18. 07:03

프란체스카 파타네(Francesca Patanè)

태어나기 전부터 노래를 부른 이탈리아의 소프라노

 

프란체스카 파타네

 

2006년 8월 로마의 테아트로 델로페라에서 프랑코 알파노의 걸작 오페라 '사쿤탈라의 전설'이 공연되었을 때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프란체스카 파타네는 가슴을 드러낸채 육감적인 모습으로 무대에 나와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듬해인 2007년 10월에는 역시 로마의 테아트로 델로페라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가 공연되었을 때 타이틀 롤을 맡은 프란체스카 파타네가 거의 누드로 출연하여 대단한 화제를 뿌렸다. 살로메의 공연은 파격적인 연출로서 논란이 되고 있는 조르지오 알베르타찌(Giorgio Albertazzi)가 연출을 맡은 것이었다. 아무튼 이후로 프란체스카 파타네에게는 컬트(Cult) 소프라노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프란체스카 파타네는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잘 알려진 소프라노이다. 그의 아버지가 유명한 지휘자인 주세페 파타네(Giuseppe Patanè)였기 때문이다. 주세페 파타네는 1989년 바바리아 국립오페라에서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지휘하는 중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 일로 인하여 주세페 파타네라는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 되었고 그의 유일한 딸인 프란체스카 파타네의 이름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프란체스카 파타네가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놀랍도록 관능적인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하고 있어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살로메에서의 프란체스카 파타네

 

프란체스카는 음악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소프라노였고 아버지는와 할아버지는 모두 지휘자였다. 프란체스카의 어머니는 프란체스카를 임신하여 8개월일 때 토스카를 불렀다. 그래서 프란체스카는 '태어나기 전부터 노래를 불렀다'고 말해왔다. 프란체스카의 어머니 리타(Rita)와 아버지가 만난 것은 극장에서였다. 그때 리타는 토스카를 맡았고 당시 아버지 주세페는 프롬프터였다. 그리고 프란체스카의 할아버지인 프랑코 파타네는 지휘를 했다. 극장에서 만난 리타와 주세페는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다. 리타는 첫 아이인 딸을 낳은후 무대에서 은퇴하고 후진들에게 레슨만 해주었다. 프란체스카는 둘째 딸이었다. 프란체스카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다. 집에서는 가끔씩 가족음악회가 열렸다. 아버지가 피아노를 치면 프란체스카는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프란체스카가 소프라노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프란체스카는 갑자기 노래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대신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카는 발레를 열심히 배웠다. 기계체조도 했다. 그가 소프라노로서 데뷔하기 전에는 모델을 했었던 것은 발레와 아크로바트를 연마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었다.

 

살로메. 로마

 

한동안 발레를 배우던 프란체스카는 또 다시 갑자기 배우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러더니 얼마후에는 로마에서 공연되는 '로엔그린'의 무대조수로 일했다. 그때 '로엔그린'의 지휘자는 아버지 주세페 파타네였다. 그러더니 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는 성악가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는 뉴욕으로 가서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모델 일을 한 것은 그때였다. 뉴욕에서 공부를 마친 그는 로마로 돌아와서 어머니로부터 1년 동안 마무리 레슨을 받았다. 이제 프란체스카는 오페라 성악가로서 무대에 등장할 준비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지금의 남편인 바리톤 마르코 칭가리(Marco Chingari)를 만나 데이트를 하다가 그만 결혼에 들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딸이 하나 태어났다. 타이스라는 이름이다.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를 생각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오페라에 데뷔하려던 프란체스카는 타이스를 위해 10년 동안 어머니로서의 역할만 했다.

 

나부코에서 아비가일. 디트로이트

 

1989년은 프란체스카에게 슬픈 해였다. 아버지 주세페 파타네가 57세로서 바바리아 국립극장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지휘하는 중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주세페 파타네가 로마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직후였다. 프란체스카는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오페라 무대에 서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그로부터 3년 동안 프란체스카는 여러 역할을 맡으면서 오페라 성악가로서의 경력을 다졌다. 그는 특히 어려운 역할에 도전하기를 좋아했다. 예를 들면 토스카, 운명의 힘, 맥베스, 투란도트 등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역들이 두려웠고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프란체스카는 가벼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리골레토에서 질다가 잘 아울렸었다. 그러나 질다와 같은 역할을 맡았을 때 목에 통증이 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세밀하게 받아 보았다. 결론은 투란도트에 맞는 성대를 가졌다는 것이었다. 이후 투란도트는 프란체스카의 대표적인 전시품이 되었다.

 

토스카

 

2002년에 독일의 에쎈에서 유니세프 갈라 콘서트가 있을 때 프란체스카는 미리암 가우치(Miriam Gauci)와 함께 '라 보엠'의 뮤제타 왈츠를 불렀다. 그로부터 미리암 가우치와 평생 친구가 되었다. 프란체스카는 라 조콘다를 부르고 싶어했다. 투란도트 다음으로 자기에게 적합한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비부인은 한사코 거절했다. 나비부인의 성격이 아니라 너무 과장된 표현이 싫어서였다. 프란체스카는 파격적인 무대 등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현대사회는 변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프란체스카 파타네의 성공 역할은 이탈로 몬테메찌의 '세 왕의 사랑'(L'amore Dei tre Re), 프랑코 알파노의 '사쿤탈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이다.

 

사쿤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