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멜레(Semele)
John Eccles(존 에클스)의 사후 200년 후에 첫 공연된 오페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멜레를 소재로 한 오페라는 여러 편이 있다. 아마 대표적인 것은 헨델의 '세멜레'일 것이다. 미국이 독립하던 해인 1774년에 런던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실은 그보다 약 40년 앞서서 프랑스의 마린 마레(Marin Marais)가 작곡한 '세멜레'(Sémélé)가 1709년에 파리의 팔레 로열에 있는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일이 있다. 또 하나의 '세멜레'를 들자면 영국의 존 에클스(John Eccles: 1668-1785)의 오페라가 있다. 존 에클스는 '세멜레'를 1707년에 작곡했지만 여러 사정이 있어서 그의 생전에는 공연되지 못하고 사후 200여년이 지난 1972년 4월 22일 런던의 세인트 존스(St Johns) 콘서트 홀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세멜레' 주제의 오페라는 이상 세편이며 내용은 서로 비슷하다. 존 에클스와 헨델의 '세멜레'는 모두 영국의 극작가인 윌렴 콘그레브(William Congreve: 1670-1729)의 희곡을 대본으로 삼은 것이다.
에클레스 버전의 '세멜레'의 한 장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멜레라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인지 살펴보자. 세멜레는 테베의 카드무스 왕과 하르모니아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이다. 하르모니아는 아프로디테와 아레스(Ares)의 딸이다. 아름다운 세멜레는 신중의 신인 제우스의 마음에 들어 제우스의 애인이 된다.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디오니서스가 태어난다. 디오니서스는 로마에서는 바커스라고 부르는 주신(酒神)이다. 디오니서스의 탄생으로 세상에는 포도주가 생기고 이어서 수많은 사건과 사연들이 일어나게 되니 따지고 보면 세멜레의 기여가 크다. 한편, 헤라(주노)는 남편 제우스가 세멜레와 바람을 피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세멜레가 임신한 것을 보고는 그제야 감을 잡는다. 헤라는 제우스와 세멜레에게 똑 같이 복수를 하기로 작정한다. 헤라는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여 세멜레를 찾아가서 '만일 제우스가 그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제우스에게 청하기를 그가 헤라를 방문할 때처럼 신중의 신으로서 모든 영광을 다 보이며 방문해 달라고 부탁하라'고 설득한다. 제우스가 헤라를 방문할 때에는 천둥과 번개와 함께 나타나므로 세멜레를 방문할 때에도 그렇게 나타나면 한낱 인간에 불과한 세멜레는 그 자리에서 번개에 타서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요청을 한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제발 헤라를 찾아갈 때처럼 나에게 올 때에도 그렇게 보이며 오소서'라고 간청한다. 제우스는 세멜레에게 부탁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바 있으므로 안 들어 줄수가 없는 입장이다. 결국 제우스는 세멜레를 찾아올 때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고 나타난다. 세멜레는 번개로 인하여 순식간에 불에 타서 재가 된다. 그러나 제우스가 달리 제우스인가! 제우스는 잿더미 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구출해서(정확히는 자궁을 되살려서) 태어날 때가 될때까지 자기의 다리에 실로 꾀매어 달고 다닌다. 암튼 그래서 나중에 디오니서스가 태어난다. 디오니서스는 어머니 세멜레의 자궁에서 태어났고 다시 아버지 제우스의 다리에서 태어났으므로 '두번 태어난 아이'라는 별명을 들었다. 디오니서스는 태어난후 이모인 이노(Ino)와 이모부인 아타무스(Athamus)의 손에 양육되지만 나중에는 님프들의 손에 자란다. 장성하여 청년이 된 디오니서스는 지하세계로 가서 어머니 세멜레를 구출해 내고 세멜레를 불사의 여신으로 만든다. 그로부터 세멜레는 타이오네(Thyone)라는 이름을 갖는다. 세멜레라는 말은 '땅'이라는 뜻이다.
현대적 연출의 세멜레
'세멜레'의 스토리는 대충 이것으로 설명을 대신코자 하며 잠시 작곡자인 존 에클스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존 에클스는 166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1688년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숙종의 아버지인 현종이 왕으로 있던 기간이다. 현종은 효종의 아들로서 조선의 왕들 중에서 유일하게 청나라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건 그렇고, 다시 존 에클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존 에클스의 아버지는 역시 음악가로서 이름은 솔로몬 에클스였다. 존 에클스는 아직도 20대의 청년일 때에 왕의 개인음악교사가 되었으며 1700년에는 왕실악장이 되었다. 그만큼 재주가 있고 연줄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해에 그는 윌렴 콘그레브(William Congreve)의 마스크 대본인 '파리스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을 오페라로 작곡하는 경연대회에서 2등을 차지했다. 참고로 1등은 존 웰돈(John Weldon)이라는 사람이었다. 존 에클스는 극장음악을 만드는데 대단히 열심이었다. 그는 1690년대부터 극중음악(인시덴탈 뮤직)을 상당수 작곡하였다. 대표적인 것은 윌렴 콘그레브의 '사랑을 위한 사랑'(Love for Love),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의 '스페인의 수도승'(The Spanish Friar), 윌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Macbeth) 등이다. 그리고 헨리 퍼셀과 공동으로는 토마스 뒤르피(Thomas d'Urfey)의 '돈키호테'(Don Quixote)의 극중음악을 작곡했다.
존 에클스는 1693년부터 드러리 레인극장의 작곡가로 활약했다. 1695년에 드러리 레인극장의 배우들중 일부가 따로 떨어져나가서 그들만의 극단을 만들자 그들을 위해서도 음악을 작곡했다. 존 에클스는 앤여왕의 대관식을 위해 음악을 작곡했다. 또한 여러 노래도 작곡했다. 'I burn, I burn'이라는 노래는 유명한 배우겸 가수인 앤느 브레이스거들(Anne Bracegirdle)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말년에 그는 런던을 떠나 '테임스강변의 킹스턴'에서 살았다. 주로 낚시를 하며 소일했다. 그는 궁정음악가로서 무려 네명의 군주, 즉 윌렴 3세, 앤여왕, 조지 1세, 조지 2세를 위해 봉사하였으니 영국 역사상 그런 음악가는 없었다. 존 에클스의 초상화를 열심히 찾아보았으니 찾지 못하여 일단은 소개하지 못한다.
귀스타브 모로의 '주피터(제우스)와 세멜레'
또 다른 버전에 의하면 세멜레는 제우스 신전의 여사제였다. 어느날 세멜레가 제우스의 제단에서 황소를 도살하고 몸에 묻은 피를 씻기 위해 아소푸스(Asopus)강에서 수영을 하자 마침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하여 그 장소를 배회하다가 세멜레가 강에서 몸을 씻는 모습을 본다. 제우스는 세멜레를 사랑하게 된다. 이후 제우스는 비밀스럽게 세멜레를 찾아와 밀회를 한다. 하지만 세멜레는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신들의 왕인 제우스인줄을 모르고 있다.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는 얼마후 세멜레가 임신한 것을 보고 세멜레와 제우스의 관계를 알게 된다. 헤라는 노파로 모습을 바꾸어 세멜레를 만나 세멜레가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이 실은 제우스라고 말해준다. 세멜레가 헤라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자 헤라도 설마 제우스가 세멜레와 같은 평범한 인간을 사랑하겠느냐고 하며 은근히 세멜레의 마음 속에 의심의 씨를 심어 놓는다. 세멜레는 제우스가 또 찾아오자 그에게 반드시 들어주어야 할 부탁이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세멜레를 어떻게 해서든지 즐겁게 해 주고 싶은 제우스는 무슨 부탁이든지 들어주겠다며 스틱스(Styx) 강을 두고 맹세한다.
그러자 세멜레는 '당신이 만일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우스라면 신들의 왕으로서 모든 영광을 나타내보여 달라'고 부탁한다. 제우스는 세멜레에게 제발 그런 부탁만은 요청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지만 그럴수록 세멜레는 더 집요하게 무슨 부탁이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그렇게 해 달라고 주장한다. 제우스는 할수 없이 자기의 능력과 영광을 아주 조금만 보여주기로 한다. 그래서 아주 작은 번개와 아주 작은 천둥이 나타나게 한다. 인간은 어느 누구라고 번개와 천둥의 제우스를 바라볼수 없다. 그러다가는 번개불로 인하여 몸이 타서 재가 되기 때문이다. 세멜레도 결국 비록 아주 작은 번개에 의한 화염을 감당할수 없어서 타서 재가 된다. 제우스는 다만 세멜레의 뱃속에 있던 태어만을 구해낸다. 그리고 그 태아를 자기 다리 속에 꿰매어 넣는다. 몇달후 디오니서스가 태어난다. 디오니서스는 장성하여 지하세계에 있는 그의 어머니 세멜레를 구해낸다. 그리고 올림퍼스 산의 여신이 되도록 한다. 여신이 된 세멜레는 이름도 타이오네(Thyone)라고 바꾼다.
제우스와 세멜레의 사랑의 장면. 현대적 연출. 파리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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