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299. 버질 톰슨의 '3막에서의 네 성자'

정준극 2011. 12. 1. 19:23

3막에서의 네 성자(Four Saints in Three Acts)

Virgil Thompson(버질 톰슨)의 4막 오페라

 

버질 톰슨(1896-1989)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작곡가인 버질 톰슨(Virgil Thompson: 1896-1989)의 오페라 '3막에서의 네 성자(聖者)'는 여러가지로 특이한 작품이다. 우선 실존했던 유명한 성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미국이나 영국의 성자가 아니라 스페인의 성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도 특이하다. 예수회를 창설한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Loyola)와 신비한 기적을 행하였던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성 테레사는 갈멜파 수녀로서 반종교개혁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런데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성테레사의 역할을 두명이 맡는다는 것이다. 테레사 1과 테레사 2이다. 테레사 2는 테레사 1의 또 다른 자아(혹은 분신: Alter ego)이다. 이밖에도 약 20명에 이르는 성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해설을 맡는 남녀 각 한사람씩을 설정했다. 콤페르(Compère)와 콤메르(Commère)이다. 글자그대로 해석하면 대부(代父), 대모(代母)이다.

 

예수회를 창시한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스페인에서는 Ignacio de Loyola: 1491-1556)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초연에서 출연자를 모두 흑인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스페인의 성자들이지만 모두 흑인이다. 그같은 관례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흑인 성악가들이 많은 미국에서는 당연히 모든 출연진이 캐스팅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백안들도 출연한다. 이 오페라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제목을 보면 마치 3막으로 구성된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4막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프롤로그도 별도로 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3막으로 끝나는 것처럼 되어 있다. 오페라 '3막에서의 네 성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오페라 베스트 10 중의 하나로 선정된 작품이다. 비록 유럽의 성자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미국적인 오페라로 간주되었다. 작곡가 버질 톰슨은 '어메리칸 사운드' 즉, 미국 특유의, 미국적인 소리를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미국적인 소리인지를 알고 싶으면 버질 톰슨의 오페라를 들어 보면 된다. 그리고 물론 '3막에서의 네 성자'는 버질 톰슨의 대표적인 오페라이다.

 

아빌라의 테레사 수녀(1515-1582). Saint Teresa of Jesus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본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서 거의 평생을 지낸 여류작가 겸 시인인 거트루드 슈타인(Gertrude Stein: 1874-1946)이 맡았다. 버질 톰슨의 또 다른 오페라인 '우리 모두의 어머니'(The Mother of Us All)의 대본도 거트루드 슈타인의 작품이다. '3막에서의 네 성자'는 1934년 2월 8일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에 있는 왜즈워스 아테네움(Wadsworth Atheneum)에서 초연되었다. '현대음악의 친구와 적 협회'(Society of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이라는 단체가 공연했다. 별 희한한 단체도 다 있다. 이어 며칠 후인 2월 20일에는 브로드웨이에서 오픈되었다. 말하자면 하트포드에서의 공연은 시장 공략을 위한 시제품 품평회라고 할수 있다. '3막에서의 네 성자'는 전통적인 오페라와는 사뭇 다른 형태의 작품이다. 거트루드 슈타인의 대본은 단순히 내레이션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단어의 사운드에 대한 친근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말이 무슨 말인가 하니 대사와 음악이 감칠 맛이 있을 정도로 착착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톰슨의 음악은 대사만큼 단순하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것이었다. 초연을 위해서는 흑인음악의 선구자라고 할수 있는 에바 제씨(Eva Jessye)가 흑인합창단을 지도하고 음악을 감독했다. 무대 디자인은 유명한 아티스트인 플로린 슈테트하이머(Florine Stettheimer)가 맡았다. 그는 커다란 셀로판지로 배경막을 삼았다. 의상도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성자들의 복장임에도 불구하고 컬러풀한 레이스, 실크, 타피터(호박단: Taffeta)를 사용했다. 그리고 가장 특이한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유럽(스페인)의 성자들을 모두 흑인으로 캐스팅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예술역사에 있어서 그런 경우는 처음이다.

 

'3막에서의 네 성자' 음반 커버. 흑인을 상징하는 듯한 검은 얼굴의 벌레들이 고치에서 탈바꿈하는 듯한 그림이다. 버질 톰슨이 음악을 맡은 1936년도 영화인 The Plow That Broke the Plains(들판을 못쓰게 만든 쟁기)의 음악도 소개되어 있다. '3막에서의 네 성자'는 버질 톰슨이 직접 지휘했으며 '들판을 못쓰게 만든 쟁기'는 스토코브스키가 지휘했다.

 

이렇게 여러모로 특이하고 평상적이지 않지만 초연은 성공적이었으며 환영을 받았다. 물론 일부 평론가들은 상식을 벗어나는 캐스팅과 음악과 무대라고 하면서 비평했지만 관중들은 대체로 출연한 성악가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음악의 세계에 찬사를 보냈다. '3막에서의 네 성자'는 초연 이후 오라토리오 형식으로 연주되기도 했고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초연 이후 무대 공연이 다시 있었던 것은 약 20년 후인 1952년이었으며 그 후에는 1973년에 있었다. 1981년에는 뉴욕에서 버질 톰슨의 85회 생일을 축하하여서 연주회 형식의 공연이 있었다.

 

성 테레사 1, 성 테레사 2, 성 이그나티우스

 

'3막에서의 네 성자'의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성 이그나티우스(Bar), 성 테레사 1(S), 성 테레사 2(Cont), 이들의 추종자인 성 세틀멘트(St Settlement: Lyric S)와 성 샤베즈(St Chaves: T), 그리고 의식을 진행하는 콤페르(B)와 콤메르(MS)이다. 합창단은 성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성 사라(St Sarah: A), 성 스테픈(St Stephen: T), 성 플랜(St Plan: B), 성 잰(St Jan: B), 성 앤느(St Anne: S), 성 즈느비에브(S), 성 첼레스틴(St Celestine: A), 성 로렌스(St Lawrence: B), 성 세실리아(St Secilia: S), 성 앤스워스(St Answers: S), 성 플라시드(St Placide: B), 성 압살롬(Absalom: T), 성 유스타스(St Eustace: Bar), 성 빈센트(St Vincent: B), 성 필립(St Philip: B)이다. 이처럼 이 오페라에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성 세틀멘트(분쟁의 조정), 성 플롯(계획), 성 텐(10) 등 성자들도 등장한다. 콤페르와 콤메르라는 역할은 마치 그리스 연극에서 코러스와 같은 역할이다. 그런데 이들이 설명해주는 외형상의 내용은 관중들 각자가 짐작하는 내용과 다를수가 있기 때문에 혼란을 조성한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대본과 음악이 완성된 후 모리스 그러써(Maurice Grosser)라는 연출자가 연출목적으로 별도의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스토리의 일관성을 위해서였다. 

 

성자들의 피크닉을 표현한 춤

 

[프롤로그] 콤페르(대부)와 콤메르(대모), 그리고 성자들로 구성된 4중창단이 오페라의 내용을 소개한다. 이어 성 테레사 1과 성 이그나티우스가 소개된다. 그런 후에 아빌라대성당이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제1막] 성 테레사가 대성당의 문에서 반쯤 몸을 밖으로 내보이고 있다. 한쪽 발은 이 세상에 들어있고 다른 발은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성 테레사의 생애가 막연하나마 7개의 장면으로 소개된다. 성 테레사 2가 성 테레사 1 및 성 이그나티우스와 얘기를 나눈후 성 테레사 1과 함께 대성당의 계단을 내려와 다른 성자들과 합세한다. 이때 성 테레사 1의 신비한 종교적 체험을 설명해주는 몇개의 사진이 사용된다. [제2막] '바르셀로나가 아니라면 높은 산이어라'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성자들이 피크닉을 간다. 성 테레사 1과 성 테레사 2는 망원경으로 천국의 천성을 관찰한다. [제3막] '성 이그나티우스와 글자 그대로 둘 중에서 하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성 이그나티우스가 성령의 환상을 본다. 풀밭에는 비둘기들이 있고 하늘에는 까지가 있는 것을 본다. 스페인 무용 스타일의 발레가 공연된다. 콤페르와 콤메르는 제4막이 있어야 한다고 결정한다.

 

제3막에서는 스페인 스타일의 춤이 공연된다. 오리지널 공연에서는 흑인들만 춤을 추었으나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백인 무용수들도 등장했다.

 

[4막] '수녀들과 성자들이 다시모여 자기들이 어찌하여 머물기 위해 떠났는지 다시 공연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하늘에 함께 모여 있는 성자들은 이 세상에서 지낸 일들을 회상하며 '이것을 보면 나를 기억하라'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오페라를 처음 시작할 때에 부르던 노래의 멜로디와 같다. 콤페르가 '마지막 막이요'라고 발표한다. 다른 사람들은 '사실이요'라고 화답한다. 이로써 오페라가 끝난다. 작곡을 한 버질 톰슨은 오페라에 등장하는 성자들의 생활은 곧 우리 자신의 생활과 연관될수 있다고 말했다. 버질 톰슨은 그것은 우리들 선배들이 오늘날의 젊은 예술가, 자라나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활동의 지침을 주기 위해 우리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어떤 공연에서 성 이그나티우스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