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위대한 대본가

외진 스크리브(Eugène Scribe)

정준극 2012. 1. 10. 05:16

외진 스크리브(Eugène Scribe)

19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극본가

마이에르베르의 '악마 로베르'등 대본 완성

 

외진 스크리브(Eugène Scribe)

 

오귀스탱 외진 스크리브(Augustin Eugène Scribe: 1791-1861)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극작가이며 오페라 대본가이다. 스크리브는 수많은 오페라와 코미디 연극의 대본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프앙스 극본의 표준 모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추후 100년 동안 수많은 작가들이 그의 극본을 모델로 삼아 스토리를 엮어갔다. 스크리브는 179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1791년은 비엔나에서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였다. 아버지는 비단상인이어서 비교적 어렵지 않은 생활을 했다. 스크리브는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법률가가 되는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타고난 글솜씨는 어쩔수가 없어서 대학에 다니면서 극본을 쓰기 시작하여 인기를 끌었다. 스크리브의 첫 작품은 Le Prétendu sans le savoir 였다. 1810년 익명으로 발표되어 버라이어티극장(Variétés)에서 공연되었다. 하지만 실패였다. 스크리브는 당시 저명한 극작가들과 손을 잡고 공동으로 극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1815년까지는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부엘듀의 '하얀 옷의 여인'의 대본은 외진 스크리브가 썼다.

 

스크리브의 주제는 현대를 살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부르조아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는 특히 중산층의 기호가 무엇인지를 알고 이들을 위한 극본을 쓰기 시작했다. 주로 코메디 보데빌을 위한 극본이었다. 그는 간혹 노래 가사도 만들었다. 스크리브는 스토리가 복잡하게 얽히지만 나중에는 명쾌하게 마무리 되는 내용의 극본을 썼다. 빅토르 위고의 주인공들에 비하면 주인공들의 깊이있는 개성, 사고방식, 사회적인 비평 등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의 극본은 현대를 사는 중산층 또는 부유층의 기호에 맞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극본은 부르조아층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스크리브의 첫 성공작인 Une Nuit de la garde nationale(국방군의 밤)이라는 것이었다. 1815년 하반기에 발표되었다. 그로부터 스크리브의 이름은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다만, 스크리브는 이후에도 다른 작가들과 합동하여 극본을 쓰는 일이 많았다. 대본을 쓸 때에는 분업이 잘 이루어지도록 했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스토리를 제공하고 다른 작가는 대사를 제공하며 또 다른 작가는 조크만을 제공하는 식으로 대본을 완성했다. 그러한 동업자들로서는 장 알이 뒤팽(Jean Henri Dupinh: 1787-1887), 제르맹 들라비뉴(Germain Delavigne), 들레스트르 뿌아르송(Delestre-Poirson), 멜레스비유(Melesville), 마르크 앙뚜안 마들레느 데소지에(Marc-Antoine Madeleine Desaugiers), 사비에르 생탱(Xavier Saintine) 등이 있다.

 

스크리브는 다작의 작가였다. 보데빌, 코미디, 비극, 오페라 등 나쁘게 말하여 닥치는 대로 대본을 썼다. 파리에 있는 김나스극장(Gymnase) 한 곳만을 위해서 1830년 이전까지 무려 150여편의 대본을 썼다. 오페라 대본과 관련하여서는 당시 활동했던 대부분 오페라 작곡가들을 위해 대본을 썼다. 스크리브는 특히 자코모 마이에르베르와 여러 경우에 공동으로 협력하였다. 이밖에 주세페 베르디, 빈센초 벨리니, 다니엘 오버, 프로멘탈 알레비, 프랑수아 아드리앙 부엘듀, 게타노 도니체티, 자코모 로시니의 오페라 대본을 제공했다. 그가 세상을 떠날 즈음에는 마이에르베르의 '아프리카의 여인'(L'Africaine)의 대본을 작성하고 있었다. 스크리브는 소설도 몇 편 썼다. 그리고 당대의 인기배우인 마드무아젤 마르스, 라헬 등을 위해서도 별도의 대본을 썼다.

 

마이에르베르의 '아프리카의 여인'의 대본은 스크리브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완성한 것이다.

 

스크리브의 대표적인 오페라 대본은 다음과 같다.

 

- 부엘듀의 '흰 옷을 입은 부인'(La dame blanche)) - 월터 스콧 원작

- 다니엘 오버의 '포르티치의 벙어리 아가씨'(La muette de Portici) - 제르맹 들라비뉴의 오리지널 대본의 수정본을 완성함

- 다니엘 오버의 '프라 디아볼로'(Fra Diavolo)

- 마이에르베르의 '악마 로베르'(Robert le Diable) - 카시미르 들라비뉴와 공동으로 작성.

- 마이에르베르의 '위그노'(Les Huguenots) - 에밀 드샹과 공동으로 작성.

- 프로멘탈 알레비의 '유태여인'(La Juive)

- 도니체티의 '돔 세바스티안'(Dom Sebastien)

- 베르디의 '시실리의 만종'(Les vepres siciliennes) - 도니체티의 미완성 오페라 '알바공작'(Le duc d'Albe)을 기본으로 하여 샤를르 뒤베이리어(Charles Dyveyrier)와 공동으로 작성. 도니체티의 Le duc d'Alba 는 1882년까지 공연되지 않았다.

 

베르디의 '시실리의 만종'의 대본은 외진 스크리브가 샤를르 뒤베리이러와 공동으로 작성한 것이다.

 

스크리브의 소설을 바탕으로 오페라의 대본을 만든 경우도 더러 있다.

 

- 1831년에 쓴 '묘약'(Le philtre)은 펠리체 로마니가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의 대본으로 채택하였다.

- 1831년에 쓴 발레 판토마임의 시나리오는 벨리니의 '몽유병자'(La sonnambula)의 대본으로 사용되었다.

- 1902년에 쓴 '아드리아나 르쿠브러'(Adriana Lecouvreur: Ernest Legouve와 공동으로 작성)는 아르투로 콜라우티(Arturo Colautti)가 프란체스코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러'의 대본으로 활용하였다.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러'의 대본은 스크리브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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