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위대한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

정준극 2012. 1. 10. 05:17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Francesco Maria Piave)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

 

베니스를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왕국'이 통치하던 시기에 태어난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1810-1876)는 베르디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통일을 염원한 애국자였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피아베는 역시 이탈리아의 통일을 염원하던 베르디와 콤비를 이루며 대본을 썼다. 베니스 출신의 피아베가 쓴 베르디의 오페라는 무려 10편에 이른다. 연대순으로 보면 에르나니(1844), 두 사람의 포스카리(1844), 아틸라(1846), 맥베스(1847), 해적(Il Corsaro: 1848), 슈티펠리오(1850), 리골레토(1851), 라 트라비아타(1853), 시몬 보카네그라(1857),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1862)이다. 피아베는 다른 작곡가들을 위해서도 대본을 썼다. 조반니 파치니를 위해서는 4편, 사베리오 메르카단테를 위해서는 최소 1편 이상, 심지어 마이클 발프(Michael Balfe)를 위해서도 대본을 썼다.

 

베르디의 '리골레토'.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의 대본이다.

                                       

피아베는 대본가일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였고 번역가였다. 그는 베니스의 라 훼니체 극장의 상주시인 겸 무대 매니저를 지냈고 나중에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같은 업무를 맡아했다. 피아베는 무대 매니저로서의 경험과 협상자로서의 재능으로 까다로운 베르디의 성미를 맞추어 가면서 순종하며 일을 했다. 그런 피아베에 대하여 베르디는 상당히 심하게 대하였다. 예를 들면 리골레토의 대본이 오스트리아 당국의 검열에 통과하지 못할것 같자 베르디는 피아베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니스를 전부 뒤집어 놓은 한이 있더라도 당신이 책임지고 검열을 통과하도록 하시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알수 있다. 그런 에피소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베는 진정으로 베르디의 평생친구로서 지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르디 선생이 사랑했던 사람'이라면서 피아베에게도 존경을 보냈다. 1848년, 오스트리아의 라데츠키 군대가 베니스에서 철수키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밀라노의 베르디는 이 기쁜 소식을 베니스에 있는 피아베에게 전하면서 '시민 피아베'에게라고 썼다. 이것만 보더라도 피아베의 애국적인 사상을 알수 있으며 베르디가 그런 피아베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피아베는 베르디의 걸작 '아이다'의 대본을 쓰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870년에 심장마비가 일어나 말도 하지 못하게 되고 팔다리가 불구가 되어 도저히 대본을 쓸수가 없었다. 베르디는 생활이 곤궁해진 피아베의 부인과 딸을 재정적으로 돌보아 주었다. 그리고 피아베가 밀라노에서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장례비용을 모두 부담하였다. 피아베는 시미테로 모뉴멘탈레(기념공동묘지: Cimitero Monumentale)에 안장되었다. 이 공동묘지에는 아리고 보이토, 알프레도 카탈라니, 아밀카레 폰키엘리, 테너 프랑코 코렐리,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그리고 베르디의 시신이 고향마을의 '음악가의 집'(Casa di Riposa per Musicisti)으로 영원히 안장되기 전 약 한달동안 안치되어 있던 곳이다.

 

피아베의 묘지가 있는 밀라노 기념공동묘지(시미테로 모뉴멘탈레) 입구

 

피아베가 쓴 대본을 연도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나중의 이름은 그 대본을 사용하여 오페라를 작곡한 작곡가이다.

 

- 1842: 알바공작(Il duca d'Alba: 조반니 파치니: Giovanni Pacini)

- 1844: 에르나니(Ernani: 베르디), 두 사람의 포스카리(I due Foscari: 베르디)

- 1845: 메디치의 로렌치노(Lorenzino de Medici: 파치니)

- 1846: 무르치나의 별(Estella di Murcia: 페데리코 리치), 아틸라(베르디)

- 1847: 그리셀다(Griselda: 페데리코 리치), 맥베스(베르디)

- 1848: 알란 카메론(Allam Cameron: 파치니),  해적(Il Corsaro: 베르디), 피안드레의 조반나(Giovanna di Fiandre: 카를로 보니포르티), 사라센의 여노예(La Schiava Saracena: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 1850: 슈티펠리오(베르디), 구두장이와 요정(Crispino e la comare: 루이지 리치와 페레디코 리치), 발루아의 엘리자베스(Elisabetta di Valois: 안토니오 부쫄라)

- 1851: 리골레토(베르디), 무리카의 신부(La Sposa di Murica: 카살리니)

- 1853: 옷자락(La Baschina: 드 리구오로), 라 트라비아타(베르디), 죄수(La Prigioniera: 본소니)

- 1854: 공작과 초상화(Pittore e Duca: 마이클 발프). 보르고냐의 마르게리타(Margherita di Borogogna: 페트로치니)

- 1856: 약혼자(I Fidanzati: 페리)

- 1857: 시몬 보카네그라(베르디), 비토레 피사니(페리)

- 1859: 마르게리타 라 멘디칸테(게타노 브라가)

- 1860: 비스케이 여인(La Biscaglina: 레비)

- 1861: 줄리엘모 셰익스피어(Guglielmo Shakespeare: 벤베누티)

- 1862: 모르밀레(Mormille: 게타노 브라가),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베르디), 리엔치(페리)

- 1865: 구이사 공작부인(La Guchessa di Guisa: 세라로), 레베카(피사니)

- 1867: 바몰의 베르타(Berta di Vamol: 파치니), 멘도자의 돈 디에고(Don Diege de Mendoza: 파치니)

- 1868: 라 트롬볼라(La Trombola: 카뇨니)

- 1872: 올레마(Olema: 페드로티)

 

'라 트라비아타'. 인바 물라와 롤란드 비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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