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위대한 대본가

휴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정준극 2012. 1. 10. 05:22

휴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콤비

'장미의 기사' '아라벨라' 등 대본 완성

 

휴고 폰 호프만슈탈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대본가, 시인, 극작가, 해설가, 수필가인 휴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는 비엔나의 제3구인 란트슈트라쎄에서 태어난 비엔나 토박이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휴고 라우렌츠 아우구스트 호프만 폰 호프만슈탈(Hugo Laurenz August Hofmann von Hofmannsthal)이다.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은행가였으며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귀족 집안의 출신이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는 유태인 상인으로서 오스트리아 황제로부터 폰 호프만슈탈이라는 귀족 호칭을 받았다. 그래서 휴고도 이름에 폰 호프만슈탈이라는 귀족 칭호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휴고 폰 호프만슈탈은 17세 때에 독일의 위대한 시인인 슈테판 게오르게(Stefan George)를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슈테판 게오르게가 발간하는 예술잡지인 Blätter für die Kunst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휴고는 비엔나에서 법률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1901년 비엔나대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작가로서의 생애를 걷기로 결심했다. 그는 유명한 시인 겸 수필가인 페터 알텐버그, 그리고 작가인 아르투르 슈니츨러와 함께 아방 갸르드를 지향하는 '융 빈'(Jung Wien: Young Vienna) 그룹의 멤버였다.

 

비엔나 3구 란트슈트라쎄의 라이스너슈트라쎄에 있는 휴고 폰 호프만슈탈의 생가

 

휴고 폰 호프만슈탈은 1900년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처음 만났다. 그후 휴고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위해 엘렉트라(1909), 장미의 기사(1911), 낙소스의 아리아드네(1912, 수정본 1916), 그림자 없는 부인(1919), 이집트의 헬렌(1927), 아라벨라(1933)의 대본을 썼다. 1912년에 휴고는 15세기 영국의 도덕극인 Everyman을 독일어 극본인 '예더만'(Jedermann)으로 만들었다. 핀랜드의 얀 시벨리우스는 이 연극의 막간음악을 작곡했다. 예더만은 전통적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오프닝 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는 것이다.

 

잘츠부르크 대성당(돔) 광장에서의 예더만 무대. 예더만은 전통적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오프닝 공연이다.

 

1차 대전 중에 휴고는 정부를 위해 일하였다. 주로 연설문과 전쟁을 지지하는 글들을 썼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문화적 전통을 강조하는 글을 썼다. 1차 대전이 끝나자 구제국은 막을 내렸다. 애국적이며 보수적인 휴고는 오스트리아 제국이 공화국이 되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후부터 휴고의 예술활동은 상대적으로 매우 활발해졌다. 1920년에 휴고는 동료인 막스 라인하르트와 함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창립하였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처음에는 연극을 위주로 진행되었으나 몇년후부터는 음악을 가미하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휴고와 막스 라인하르트의 연극적인 주도는 오늘날에도 전통을 이어 오고 있어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오프닝은 항상 예더만으로 시작하는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아라벨라'의 대본은 휴고 폰 호프만슈탈이 썼다.

          

1901년에 휴고는 비엔나의 은행가의 딸로서 유태인인 게르트루트(게트리) 슐레징거와 결혼하였다. 게트리 슐레징거는 휴고와 결혼하기 직전에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두 사람은 비엔나에서 머지 않은 로다운(Rodaun)에 정착하였다. 현재는 리징(Liesing)에 속한 지역이다. 두 사람은 세 자녀를 두었다. 1929년 7월 13일에 아들인 프란츠가 자살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에 휴고 자신은 로다운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휴고의 시신은 휴고의 요청에 따라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승 복장을 입혀서 장례를 치루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의 한 장면. 휴고 폰 호프만슈탈이 대본을 썼다.

 

극작가로서 휴고 폰 호프만슈탈은 다음과 같은 극본을 썼다.

Der Tor und der Tod (죽음과 죽음: 1891), Der Tod des Tizian (티치안의 죽음: 1901), Elektra (엘렉트라: 1904), Ödipus und die Sphinx (외디푸스와 스핑크스: 1906), Die Frau im Fenster (창가의 여인: 1909), Jedermann (누구든지: 1911), Der Schwierige (말없는 사람: 1921), Das Salzburger grosse Welttheater (잘츠부르크 대극장: 1922), Der Turm (탑: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