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위대한 대본가

안토니오 기슬란초니(Antonio Ghislanzoni)

정준극 2012. 1. 10. 05:37

안토니오 기슬란초니

베르디의 오페라 대본 제공

'아이다' '운명의 힘' 등

 

안토니오 기슬란초니

 

안토니오 기슬란초니(Antonio Ghislanzoni: 1824-1893)는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 시인, 소설가, 대본가로서 베르디의 '아이다'의 대본, 그리고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의 수정본의 대본을 쓴 사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기슬란초니는 롬바르디의 레코(Lecco)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에 잠시 신학교에 다녔으나 성적이 부진하고 행동이 순종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하였다. 그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으나 얼마후 그것도 포기하고 바리톤으로서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였으며 이와 함께 타고난 문학적 소양을 개발키로 했다. 1848년이라고 하면 유럽의 각국에서 자유와 공화제에 대한 열망이 타오르고 있던 때였다. 기슬란초니는 마찌니(Mazzini)의 국수주의적 아이디어에 영향을 받아서 밀라노에서 공화제를 지지하는 신문들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국의 감시와 압박으로 결국은 스위스로 도피행각을 떠나지 않을수 없었다. 그후 잠시 로마로 여행을 갔을 때에도 공화제를 지지하다가 결국은 프랑스 경찰당국에 체포되어 코르시카 섬에 구금되었던 일도 있었다.

 

'운명의 힘'의 대본도 기슬란초니가 쓴 것이다.

 

기슬란초니는 1850년대 중반에 무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저널리즘에만 열정을 쏟았다. 특히 밀라노의 보헤미아 서클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탈리아 뮤지칼레'(Italia musicale)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밀라노음악지'(Gazzetta musicale di Milano)의 편집장을 지냈다. 그는 또한 음악잡지도 발간했다. 그는 그러한 일들을 하면서 아리고 보이토 등과 협동하였다. 기슬라초니는 1869년에 저널리즘에서 은퇴하고 고향인 롬바르디로 돌아가 원래의 재능대로 문학작품과 오페라의 대본을 쓰며 지냈다. 그는 여러편의 단편소설을 써서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면 Un suicidio a fior d'acqua (1864), Angioli nelle tenebre (1865), La contessa di Karolystria (1883), Abracadabra and Storia dell'avvenire (1884) 등이었다. 그는 또한 음악에세이들을 썼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Reminiscenze artistiche 였다. 기슬란초니는 평생에 약 85편의 오페라 대본을 썼다. 카탈라니를 위해서 '에드메아'(Edmea: 1866)를 썼으며 베르디의 '아이다'(1870), 고메스를 위해서 '포스카'(Fosca: 1873), '살바토르 로사'(Salvator Rosa: 1874)를 썼고 퐁키엘리를 위해서는 '리투아니'(I Lituani: 1874)를 썼다. 그리고 '운명의 힘'의 두번째 버전을 썼다. 기슬란초니는 1893년 향년 69세로 베르가모의 카프리노 베르가마스코에서 세상을 떠났다.

 

역사에 길이 남아 있는 '아이다'의 대본은 기슬란초니가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