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어린이 오페라

'뱅'(Bang!)

정준극 2012. 2. 5. 06:16

'뱅'(Bang!)

 

우리는 총소리를 '탕탕탕...'이라고 하는데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뱅뱅뱅...'이라고 한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도 우리는 '쾅'이라고 하는데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뱅'이라고 한다. 아무튼 '뱅'(Bang)을 타이틀로 한 오페라가 있다. 어린이들보다는 청소년을 위한 오페라이다. 오페라의 내용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마법이나 왕자와 공주에 대한 것이 아니다. 1605년 영국에서 있었던 국왕살해음모에 대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무거운 스토리이다. 청소년을 위한 오페라라고 하니까 청소년들이 상당수 출연하는 오페라인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다. 다만, 트리니티(삼위일체) 남자고등학교를 위해 작곡한 것이므로 청소년오페라의 범주에 넣은 것이다. 트리니티고등학교는 런던 교외의 크로이던(Croydon)이란 곳에 있는 학교이다. 영국의 작곡가 존 러터(John Rutter: 1945-)는 트리니티고등학교의 합창부를 위해 이 오페라를 작곡했다. 대본은 데이빗 리챠드 그랜트(David Richard Grant)라는 사람이 썼다. 오페라 '뱅'은 1975년 3월 14일 크라이던의 페어필드 홀(Fairfield Hall)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건파우더 음모에 가담했던 자들을 색출하여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하고 있는 그림

 

1605년의 대사건을 '화약음모'(The Gunpowder Plot)이라고 부른다. 새로 국왕이 된 제임스1세가 가톨릭 교도들을 탄압하자 가톨릭 교도들은 의회가 모이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폭파코자 한다는 것이 오페라 '뱅'의 기둥 줄거리이다. 가톨릭 교도들이라고 하지만 실은 예수회 신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1975년의 초연에서는 해설을 예수회 신부라고 생각되는 어떤 사람이 맡았었다. '뱅'이라는 오페라는 영국에서는 교육목적으로 공연이 고려될지는 모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저 이런 오페라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만 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차제에 1605년도 '화약음모'에 대하여 설명코자 한다.

 

건파우더 음모 주모자들

 

오페라 '뱅'의 스토리를 전달하기 보다는 '뱅'의 주제인 '1605년 화약 음모'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역사공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우리가 영국 역사의 이런부분 저런부분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좋을듯 싶어서 소개하는 바이다. '1605 화약 음모'사건은 일단의 가톨릭 신자들이 영국왕 제임스 1세 겸 스코틀랜드왕 제임스 6세를 살해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음모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모두 체포되어 극형에 처해졌다. '화약 음모' 사건은 일명 '예수회 반역죄'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17세기 초까지만해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별개의 나라여서 국왕이 달랐다. 17세기가 시작되던 세기초에 잉글랜드의 여왕은 유명한 엘리자베스였고 스코틀랜드의 왕은 제임스 6세였다. 그러다가 1603년에 잉글랜드의 여왕인 엘리자베스가 세상을 떠나자 스코틀랜드 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왕까지 겸한다.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의 왕으로서 제임스 1세라고 불렀다. 스코틀랜드 왕인 제임스 6세는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의 아들이다. 메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라고도 불리는 여자이다. 메리 스튜어트는 여러 사정으로 당시 잉글랜드 여왕이던 엘리자베스에게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진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은 서로 사촌간이었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Maria Stuarda)는 바로 스코틀랜드 여왕으로서 잉글랜드 여왕인 엘리자베트에 의해 죽임을 당한 메리 스튜어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시 제임스 6세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제임스는 어머니 메리 여왕과 아버지 헨리 담리(Henry Damley) 사이에서 1566년에 태어났다. 메리 여왕과 헨리 담리의 결혼은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헨리 담리는 1567년(제임스가 태어난 다음 해) 1월, 글래스고에서 천연두에 걸렸다가 회복되던 중에 의문의 죽임을 당하였다. 그가 머물고 있던 집에 누가 비밀리에 설치한 화약이 폭발하는 바람에 죽었다. 메리 여왕과 메리가 가깝게 지내기 시작하던 보스웰 경이라는 사람이 폭발 사건의 주인공으로 의심을 받았다. 아무튼 메리는 그로부터 두달 후에 보스웰과 재혼하였다. 메리는 가톨릭이어서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의 옹호를 받고 있던 개신교도들이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결국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귀족들은 메리에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개신교 귀족들은 군대를 동원하여 메리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메리는 잉글랜드로 도망갔다.

 

메리가 잉글랜드로 도망가자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은 아직 1살 밖에 되지 않은 제임스를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삼았다. 물론 그로부터 섭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죽고 죽이는 권력다툼이 치열하게 일어났다. 제임스는 열 몇살 때에 납치되는 일까지 당한다. 무려 열 달동안 납치되어 지내다가 가까스로 탈출하는 영화와 같은 일도 경험한다. 그러다가 19세 때에는 반대파에 의해 다시 왕좌에서 쫓겨난다.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제임스는 의회 안에 자기의 세력을 구축하며 아울러 스코틀랜드 교회 내에서도 세력을 확장한다. 그러면서 잉글랜드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잉글랜드의 저 유명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제임스가 스코틀랜드의 왕이던 18세 때에 제임스의 어머니인 메리 여왕을 처형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누구냐는 것은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다.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인 앤 볼레인의 딸이다. '천일의 앤'이라고 하는 바로 그 앤이다. 헨리 8세가 첫번째 부인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을 하고 앤 볼레인과 결혼하기 위해 영국 교회가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여 오늘날 영국 성공회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으로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촌인 스코틀랜드의 메리를 처형키로 하자 당시 스코틀랜드의 왕이던 제임스는 그 사실을 수용였고 2년 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주선으로 덴마크의 안느 공주와 결혼까지 한다. 그리고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마침내 제임스는 잉글랜드의 왕까지 겸하게 된다. 제임스는 런던으로 자리를 옮겨와 살았다. 잉글랜드의 가톨릭 교도들은 엘리자베스의 뒤를 이어 또 다른 개신교 국왕이 들어서게 되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잉글랜드의 가톨릭 교도들은 제임스 왕이 누구든지 개신교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무거운 벌금을 부과한다는 법을 만들자 대단히 당황하는 한편 분노하였다.

 

1605년에 로버트 케이츠비(Robert Catesby)라는 사람이 주도한 일단의 가톨릭 교도들은 제임스 왕을 죽이고 제임스 왕에게 동조하는 의회 의원들도 되도록 많이 죽이자는 대담한 음모를 꾸몄다. 음모자들은 제임스를 죽이고 나서 그의 어린 딸인 엘리자베스(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니라 제임스의 딸 임)를 여왕으로 삼는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를 위해 로버트 케이츠비는 엘리자베스와 가톨릭 귀족과의 결혼도 주선할 생각이었다. 케이츠비는 1605년 11월 5일, 제임스 왕이 의회를 개원하기 위해 참석했을 때 회의장을 폭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케이츠비의 그룹은 우선 의사당 지하에 터널을 파기로 했다. 그러나 그룹에 가담한 어떤 멤버가 상원 회의실의 지하에 있는 포도주 창고를 임대하게 되어 터널을 파는 계획은 변경되었다. 음모에 가담한 사람들은 지하 포도주 창고에 화약통들을 가져다 놓고 상원이 개원되는 시간에 폭파시키기로 했다.

 

가담자 중에 토마스 트레샴 경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만일 상원 회의장이 폭파된다면 자기 처남인 몬트이글(Monteagle) 경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몰래 몬트이글 경에게 편지를 보내어 11월 5일의 상원 개원식에는 참석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몬트이글 경은 그 내용을 왕의 수석장관(오늘날의 총리대신)인 로버트 세실이라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어찌하면 좋을지를 의논하였다. 거시 하루 전날인 11월 4일의 일이었다. 세실은 즉시 의사당을 샅샅이 수색하여 상원 회의장 밑의 지하 포도주 저장고에서 36통의 화약을 발견하였고 또한 음모에 가담했던 사람으로서 화약을 지키고 있던 사람을 체포하였다. 그 다음의 얘기는 하나마나이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다. 음모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모두 체포되어 반역죄로서 끔찍하게 처형당했다는 것이다. 이상이 이른바 '1605년 화약 음모' 사건의 전말이다. 하지만 근자에 이르러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의 진상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왕의 수석 장관인 로버트 세실이 하나부터 끝까지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로베트 세실은 백성들이 가톨릭을 더욱 증오하도록 만들기 위해 가톨릭인 케이츠비를 협박하여 국왕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의사당을 폭파할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백성들은 가톨릭에 의한 음모가 발각되자 가톨릭을 더욱 증오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세실 수석장관이 발의한 가톨릭 탄압법이 통과되도록 지원키로 했다.

 

스코틀랜드왕 제임스 6세 겸 잉글랜드왕 제임스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