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동유럽

한스 크라사(Hans Krása)

정준극 2012. 2. 7. 06:39

한스 크라사(Hans Krása)

아우슈비츠에서 생을 마감한 체코의 작곡가

 

한스 크라사(1899-1944)

 

한스 크라사(Hans Krása)는 1899년 11월 30일 프라하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부유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아무런 걱정 없이 좋아하는 음악을 공부할수 있었다. 한스는 작곡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한스의 아버지는 아들 한스가 자기가 작곡한 작품이 어떤 것인지 들어볼수 있게 하기 위해서 소규모이지만 앙상블을 고용하여 집안에서 연주토록 했다. 그 정도로 아들 한스의 음악적 재능을 사랑하여서 도와주었다. 한스는 프라하에서 알렉산더 쳄린스키에게서 공부했다. 한스는 프라하에 있는 독일음악원에 다녔다. 한스는 독일음악원을 마치기 전에 이미 프라하의 신독일극장의 성악 코치를 맡아하였다. 그후 파리로 간 한스는 여러 음악인들과 교류를 가지며 안목을 넓혔다. 한스는 파리에서 특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존경하여서 그와 가깝게 지냈다. 한스는 1920년대에 프랑스에서 작품발표회를 가졌으며 저멀리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가서 연주회를 가진 일이 있다. 그때 이미 그의 작품들은 비엔나와 파리에서 출판되었다.

 

한스 크라사가 성악코치로 일했던 프라하의 신독일극장. 1888년에 신독일극장으로 오픈하였으나 1949-1989년까지는 스메타나극장이라고 불렀고 그 이후 현재에는 프라하국립오페라(Státní opera Praha)라고 부른다.

 

한스 크라사의 음악은 뛰어나게 아름답다. 연주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음악학자들 모두가 한스 크라사의 음악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스는 파리에서든 어디에서든 마치 보헤미안과 같은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스는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에 불행하게도 생을 마감하였으므로 더구나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그렇지만 한스는 예술적으로 신선한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한스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몇편의 가곡사이클, 오케스트라 작품, 피아노 곡, 교향곡, 현악4중주곡, 칸타타(Die Erde ist des Herrn: 이 세상은 주님의 것), 오페라(Verlobung in Traum: 꿈 속의 약혼), 하프시코드와 기타 악기들을 위한 실내악 작품들을 남겼다. 오페라 '꿈 속의 약혼'은 도스토예브스키의 동명소설을 기본으로 삼은 것이다. 한스가 가장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했던 것은 사실상 그가 프라하 근교의 테레진(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게토)에서 몇년을 지낼 때였다. 프라하에 있던 한스는 1942년에 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로 끌려 들어갔다.

 

1945년 5월 미군이 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를 해방하였다. 아이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한때 테레지엔슈타트에는 1만 5천명의 어린이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끌려가고 정작 미군이 해방하였을 때에는 3천8백명만이 남아 있었다. 테레지엔슈타트에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한스 크라사의 오페라 '브룬디바르'는 공연하기도 쉬웠고 아이들의 사랑을 크게 받았다.

 

그는 1938년에 프라하에서 어린이 오페라인 '브룬디바르'(Brundibar: 범블비)를 작곡하여 1942년 강제수용소로 들어가기 전까지 두번이나 공연을 가졌다. '브룬디바르'는 대단한 인기를 끌어서 테레지엔슈타트의 강제수용소 안에서 2년여 동안 무려 55회의 공연을 가질 정도였다. '브룬디바르'는 오페라의 장르에서 어린이오페라로 분류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뮤지컬로 분류하고 있다. '브룬디바르'는 마음씨 나쁜 브룬디바르가 병든 어머니에게 우유를 사다 드리려고 시장에서 노래를 불러 돈을 벌려고 하는 오누이를 구박하여 쫓아버렸기 때문에 동물들과 마을 어린이들이 합세하여 못된 오르간을 돌리는 브룬디바르를 시장에서 몰아내고 오누이가 노래를 부를수 있게 해 준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못된 브룬디바르는 히틀러를 상징하고 있고 오누이는 유태인, 마을 어린이들은 세계의 우방들을 의미한다. 한스는 1944년 10월 16일 테레지엔슈타트에 있던 다른 유태인 음악가들, 즉 빅토르 울만, 파벨 하스, 기에돈 클라인등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서 그날로 당장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최근 프라하에서 공연된 '브룬디바르'에서는 오르간 돌리는 브룬디바르를 유럽을 제패하려는 나폴레옹과 같은 탐욕스러운 인물로 그렸다. 이는 곧 히틀러를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