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어린이 오페라

어린이와 마법(L'enfant et les sortilèges)

정준극 2012. 2. 8. 08:50

어린이와 마법(L'enfant et les sortilèges) - Fantaisie lyrique en deux parties

The Child and the Spells - A Lyric Fantasy in Two Parts

모리스 라벨의 어린이 오페라

 

 

작곡가 모리스 라벨과 대본을 쓴 소설가 콜레트

                      

'어린이와 마법'은 어린이가 주인공인 1막 2파트짜리 오페라로서 프랑스의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이 작곡을 했고 여류 소설가 겸 연기자인 콜레트(Colette: 원명은 Sidonie-Gabrielle Colette: 1873-1954)가 대본을 썼다. 콜레트는 20여편의 소설을 썼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잘 아는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끈 Gigi(지지)이다. '어린이와 마법'은 라벨의 두번째 오페라이다. 첫번째는 성인용인 L'heure espagnole(스페인의 시계)이다. 당대의 인기 소설가인 콜레트는 1차 대전 기간 중에 파리오페라극장장인 자크 로셰로부터 아무 내용이라도 좋으니 동화발레를 위한 대본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콜레트는 단 8일간에 '어린이와 마법'의 대본을 완성했다. 그러면서 Divertissements pouur ma fille(나의 딸을 위한 디베르티스망)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작품이란 의미였다. 여러 작곡가들이 자기가 오페라로 작곡하겠다고 나섰으나 콜레트는 존경하는 라벨에게 의뢰하겠다고 말하고 1916년에 대본을 라벨에게 보냈다. 당시 라벨은 군인으로서 전선에 나가 있었다. 라벨은 콜레트로부터 원고를 받았지만 전선에서의 생활이 정신 없어서 원고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917년에 원고를 찾게 되어 읽어 보고는 작곡하겠다고 동의했다. 더구나 라벨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지만 아이들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의 작곡을 수락한 것이다. 그러나 작곡은 시간을 끌었다. 라벨이 겨우 완성한 것은 대본을 받은 때로부터 7년 후인 1924년이었다. '어린이와 마법'은 1917-1924년 기간동안 작곡되었고 1925년 몬테 칼로에서 거장 빅토르 데 사바타(Victor de Sabata)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공주가 어린이 때문에 고통을 당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어린이와 마법'이 선을 보이자 반응은 상반된 것이었다. 몬테 칼로에서의 반응은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파리에서의 공연은 비교적 냉담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작곡가이며 평론가인 앙드레 메사저는 르 피가로지를 통해서 라벨의 새로운 작품이 새로운 것이 없는 종전의 것의 모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뿔랑크를 비롯한 레직스(Groupe des Six) 멤버들은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아서 오네거는 '음악과 극장'이라는 잡지에서 '어린이와 마법'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전제하고 그중에서도 두마리 고양이의 듀엣은 뛰어난 음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고양이의 듀엣을 바그너의 사랑의 듀엣과 비유한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대본을 쓴 콜레트는 '어린이와 마법'의 작곡이 너무나 지연되고 있어서 공연되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록 7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공연되어서 기쁘기 한량없다고 말하면서 음악이 더할수 없이 훌륭하다고 찬사를 보냈다. 라벨은 자기의 음악적 스타일이 미국의 뮤지컬 코미디 스타일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와 마법'은 오페레타라고 불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벽지와 가구들도 모두 살아서 어린이에게 불평을 털어 놓는다.

 

'어린이와 마법'에 대한 내용은 본 블로그의 오페라 366편에 이미 소개되었으므로 중복을 피하고자 하지만 이 작품이 어린이 오페라로 분류되고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재탕코자 한다. 줄거리를 몇번이라도 다시 읽는 것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무대의 배경은 노르망디 지방이며 장소는 어느 오래된 시골집이다. 시기는 1917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어린이와 마법'은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파트는 어린이의 방이 무대이며 여기저기에 그 어린이가 부서트리고 망가트린 물건이나 가구들이 흩으러져 있고 이들이 어린이에 대하여 불평하는 소리로서 시작한다. 두번째 파트는 정원이다. 나무가 있고 동물들이 있으며 곤충들이 있는 곳이다. 이들도 모두 어린이의 손에 괴롭힘을 당한 것들이다. 공연시간은 45분이며 21곡의 노래가 나온다.

 

어린이가 정원에서 평소에 그가 괴롭혔던 대상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줄거리를 복습하는 셈 치고 다시 설명하겠지만 그 전에 출연진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어린이 오페라이지만 어린이는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인 어린이와 어머니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다만, 어린이는 메조소프라노가 남자 아이로 분장하여 나오며 어머니는 콘트랄토가 맡는다. 메조소프라노가 어린이 역할을 맡으므로 어린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린이가 아니라 일반 성악가로서 어린이처럼 분장한 사람이다. 작곡자인 라벨은 등장인물이 복잡하게 많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어느 역할은 한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아예 악보에 명시하여 놓았다. 이에 의하면, 벽난로의 불, 이야기 책에서 뜯겨진 공주, 나이팅게일은 같은 사람이 맡도록 했으며 키작은 노인과 개구리도 같은 사람이 맡도록 했고 어머니는 가수, 도자기 컵, 잠자리의 역할을 함께 맡도록 했다. 또한 베르제레 의자와 올빼미를 한 사람이 맡으며 암고양이와 다람쥐, 숫코양이와 할아버지의 고장난 시계를 같은 사람이 맡고 안락의자와 나무를 같은 사람이 맡도록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거의 모두 따로 배역을 맡아 출연하는 경향이다.

 

동물들이 어린이를 벌주려고 하고 있다.

 

[파트 1] 막이 오르면 어린이(L'enfant: MS)가 등장하여 공부하고 심부름하기 싫다고 불평한다(J'ai pas envie de faire ma page). 어머니(Maman: MS 또는 Cont)는 아이가 게으르고 버릇이 없다면서 나무란다. 어머니는 커다란 스커트를 입은 사람으로서 묘사되고 있다(Sognez, songez surtout au chagrin de Maman).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은 어린이는 화가 나서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부수고 가구들을 파손한다. 얼마후 어린이가 안락의자(Le Fauteuil: B)에 앉으려고 하자 안락의자는 저 멀리 자리를 옮겨서 앉지 못하게 한다. 어린이가 또 다시 루이15세 시대의 브르제르의자(La Bergere: MS)에 앉으려고 하자 브르제르 의자도 옆으로 슬며시 피해서 어린이가 앉지 못하게 한다. 두 의자는 열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춤을 춘다. 어린이는 방안에 있는 가구들이 모두 살아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놀란다. 모두 자기에게 불평을 터뜨리고 있다. 할아버지의 부러진 시계(Bar)가 가담하여 어린이가 시계추를 고장내서 걱정이라고 말한다. 검은색의 웨지우드 티폿(Le Theiere: T)과 도자기 찻잔(La Tasse chinoise: MS)은 어린이가 깨트려서 산산조각이 되어 바닥에 널려 있다. 티폿과 찻잔은 영어-중국어-프랑스어가 섞인 엉터리 노래를 부르며(Ah! Kek-ta fouhthu d'mon Kaoua) 춤을 춘다. 폭스트롯과 같은 춤이다. 이어서 벽난로의 불(Le Feu: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이 굴뚝에서 뛰어나오면서 목관악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이 집의 못된 아이 때문에 벽난로에서 제대로 지내지도 못한다는 내용이다.

 

수학책에서 나온 숫자들이 어린이를 비난하고 있다.

                     

벽지에 그려진 시골풍경에서 뜯겨져 나온 파트르(Le Patre: MS)와 파스투레유(La Pastourelle: S)들이 파이프와 드럼의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슬픈 춤을 춘다. 이들도 이 집의 아이가 벽지를 뜯어내는 등 못되게 굴어서 고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 책에 있다가 어린이가 뜯어내는 바람에 혼자가 된 아름다운 공주(La Princesse: S)도 슬픈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주의 이야기는 그치지를 않는다(Mais tu as deechire le livre, que va-t-il arriver de moi?). 수학책에 들어 있던 어떤 키가 작은 노인(Le Petit Vieillard: T)이 합세하여 어린이의 못된 성격을 탓한다. 사방에서 숫자들이 튀어나와 수학을 의미하는 키가 작은 노인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Quarte et quat' dix-huit. onze et six vingt-cinq). 이어서 암수 고양이(Le Chat: Bar-La Chatte: MS)가 나와서 어린이를 조롱하면서 말없이 춤을 춘다. Due miaule이다. 숫고양이는 검은 고양이이며 암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이다.

 

[파트 2] 어린이의 방은 정원으로 바뀐다. 고양이들이 어린이를 정원으로 인도한다. 밤이어서 그런지 정원에서는 낮에 들어보지 못한 소리들이 들린다. 곤충들의 소리, 개구리와 두꺼비의 소리,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 나이팅게일이 부르는 노래, 그리고 간혹 올빼미가 날카롭게 지르는 소리도 들린다. 여기에 있는 동물들과 나무들은 모두 어린이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것들이다. 나무(L'Abre: B)가 다른 나무들과 함께 어린이가 칼로 깎고 찔러서 생긴 상처에 대하여 얘기한다(Ma blessure...ma blessure...'. 잠자리(La Libellude: MS)한 마리가 어린이에게 잡힌 짝을 생각하며 슬픈 왈츠를 춘다. 나이팅게일(LKe Rossignol: S)이 잠자리의 노래를 이어 받아서 어린이로부터 고통을 당한 이야기를 노래로 부른다. 아름다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노래이다(Ou es tu? Je te cherche..'. 박쥐(La Chauve-souris: S)는 어린이가 남편을 잡아 갔기 때문에 집에 있는 아기들을 자기가 먹여 살려야 한다면서 걱정을 한다(Rends-la moi...tsk, tsk'). 어린이가 놓은 덫에 걸려 잡혀 있는 다람쥐(L'ecureuil: MS)는 분개한 음성으로 나무에 사는 개구리(La Rainette: T)에게 자기처럼 덫에 걸리지 말라고 경고한다(Qui, c'etait pour mes beaux yeux). 모든 동물들과 나무들이 어린이를 비난한다. 어린이는 어찌할줄 몰라한다. 어린이는 자기 혼자뿐인 것을 알고 '엄마-'(Maman)라고 소리치며 운다. 그러자 동물들이 어린이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아마 복수하기 위해서인것 같다. 동물들은 어린이를 이리저리 떼밀면서 한껏 놀리고 못살게 군다. 그러는 와중에 다람쥐 한마리가 다친다. 어린이는 다람쥐가 불쌍하여 상처를 정성껏 치료해 준다. 그런 후에 치쳐서 쓰러진다. 이 모습을 본 동물들과 나무들은 어린이가 본래는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물들은 어린이를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 어린이는 어머니에게 이제부터는 말도 잘듣고 게으름도 피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모든 사람들이 기뻐서 함께 노래를 부른다(Il est bon, l'Enfant, it est sage, bien s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