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슈트라우스 왕조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사용한 오페레타들

정준극 2012. 2. 18. 20:19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사용한 오페레타들

 

요한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오페레타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바탕으로 하여 다른 작곡가들이 편곡하거나 재작업을 한 오페레타들이 있다. 어떤 오페레타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으로 완전히 짜집기 한 것이지만 어떤 것들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 이외에도 다른 음악을 추가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파스티셰(Pastiche) 작품이다.


'인디고와 40인의 도적'. 테아터 안 데어 빈

 

● La reine Indigo(인디고 여왕)

'인디고 여왕'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첫 오페레타인 '인디고와 40인의 도적'을 프랑스 관객들을 위해 재편집하여 만든 오페레타이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18편의 오페레타/오페라를 완성했다. 여기에 2편의 미완성 작품도 있다. Die lustigen Weiber von Wien(비엔나의 유쾌한 아낙네들)과 Romulus(로물루스)이다. '비엔나의 유쾌한 아낙네들'은 1868년에 작곡을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했고 '로물루스'는 1871년에 작곡을 시작했으나 역시 완성하지 못했다. 요한 슈트라우스가 처음으로 완성된 오페레타를 내 놓은 것은 1871년으로 '인디고와 40인의 도적'(Indigo und die vierzig Räuber)이다. 비엔나의 빈강변극장(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되었다.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의 첫 오페레타이기 때문에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음악은 대환영을 받았으나 대본은 형편 없어서 외면을 당했다. 당시 빈강변극장의 극장장인 막시밀리안 슈타이너라는 사람이 한 번 대본을 써보겠다고 해서 거절하기도 무엇해서 그렇게 하라고 그랬더니 결과적으로 형편없는 대본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인디고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유명한 왈츠가 '천일야화'(Tausend und eine Nacht)이다. 파리의 요한 슈트라우스 팬들은 요한 슈트라우스가 비엔나에서 '인디고...'라는 오페레타를 만들어서 공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디고....'를 어서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인디고....'가 비엔나를 떠나 파리에 도착하기 까지는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인디고....'의 음악을 재편집할 필요가 있었고 더구나 대본은 완전히 손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파리의 르네상스 극장은 '인디고...'의 프랑스어 대본을 당시 인기 대본가인 아돌프 젬(Adolph Jaime)과 빅토 와일더(Victor Wilder)에게 완전 개작토록 의뢰했다. 음악도 크게 손을 보았는데 누구한테 그런 작업을 맡겼는지 기록이 없어서 알지 못한다. '인디고 여왕'의 수정본은 1875년 4월 27일 파리의 르네상스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인디고 여왕' 포스터

 

●La tzigane(집시 여인)

18세기에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비학자(秘學者: 오컬티스트)로서 알레산드로 디 칼리오스트로(Alessandro di Cagliostro: 1743-1795)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희대의 사기꾼이기도 했다. 유명한 마리 앙뚜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은 그가 연관된 것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그의 이야기를 담은 Cagliostro in Wien(비엔나의 칼리오스트로)라는 오페레타를 만들었다. 1875년 빈강변극장(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되었다. 3막의 코믹 오페레타이다. 음악은 그런대로 사랑을 받았으나 대본은 취약했다. 비엔나에서 요한 슈트라우스가 무슨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고 하면 우선적으로 수입하여 사용하던 파리의 사람들은 이번에도 '비엔나의 칼리오스트로'라는 오페레타가 만들어졌다고 하니까 수입을 서둘었다. 제목은 La tzigane(집시 여인)라고 바꾸었다. 프랑스어 대본은 빅토 와일더와 알프레드 들라쿠르(Alfred Delacour)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그리하여 1877년 10월 31일 파리의 르네상스 극장에서 초연을 가졌다. '집시 여인'에는 오페레타 '박쥐'의 음악도 여러 곡이 나온다. '집시 여인'도 '인디고 여왕'의 경우처럼 누가 편곡을 하고 가다듬었는지 기록이 없어서 알지 못한다.

 

'집시 여인' 포스터. 파리의 르네상스 극장


● Wiener Blut(비엔나 기질 - Viennese Blood, Viennese Spirit)

요한 슈트라우스의 대표적인 왈츠 중의 하나가 '비엔나 기질'(Wiener Blut)이기 때문에 오페레타 '비엔나 기질'도 당연히 요한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그렇지 않다. 오페레타 '비엔나 기질'이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비엔나 기질'을 위시하여 그의 초기 왈츠들을 사용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해서 전체 음악도 요한 슈트라우스가 완성한 것은 아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오페레타 '비엔나 기질'의 첫 공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1899년 6월 3일 세상을 떠났고 '비엔나 기질'은 그해 10월 26일, 오늘날 2구 네스트로이플라츠에 있었던 칼극장(Carltheater)에서 초연되었다. 짐작컨대 요한 슈트라우스는 칼극장으로부터 왈츠 '비엔나 기질'을 바탕으로 하여 오페레타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상  발레곡인 '신데렐라'(Aschonbrödel)의 작곡에 여념이 없어서 친구인 아돌프 뮐러(Adolf Müller)에게 대신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98년의 일이다. 아돌프 뮐러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의중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예를 들면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음악도 첨가하여서 오페레타 '비엔나 기질'을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오페레타 '비엔나 기질'의 포스터에서는 아돌프 뮐러라는 이름을 찾아보기는 힘들고 대신 요한 슈트라우스의 이름만 크게 적혀 있다.


'비엔나 기질'의 한 장면

 

아돌프 뮐러가 주관하여 만든 신작 오페라 '비엔나 기질'은 요한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5개월 후에 초연되었다. 칼극장장인 프란츠 야우너(Franz Jauner: 1831-1900)가 제작을 담당했다. 야우너는 위대한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위주로 한 오페레타이기 때문에 대성공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돈을 무척 많이 들여서 제작을 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흥행에 저조했다. 초연 이후 겨우 30회의 공연이 있었을 뿐이었다. 저조의 주요 원인은 당시 시드니 존스(Sidney Jones)의 오페레타 The Geisha(게이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우너는 이듬해인 1900년 2월 23일 칼극장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권총자살하였다. '비엔나 기질' 때문에 파산해서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 빈강변극장(Theater an der Wien)이 '비엔나 기질'을 리바이벌했다. 대본도 고치고 음악도 수정했다. 사람들이 대단히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비엔나 기질'은 세계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되었다.

 

● Gräfin Pepi(페피 백작부인)

3막의 오페레타로서 Ernst Reiterer(에른스트 라이터러)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등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1902년에 초연되었다.

 

'페피 백작부인'. 체들라우 백작과 페피


● Tausend und eine Nacht(천일야화)

1906년 6월 15일 초연되었다. 빈강변극장(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되었다고 한다. 이 극장의 상임지휘자인 에른스트 라이터러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인디고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왈츠 '타우센트 운트 아이네 나하트'(천일야화)를 바탕으로 편집한 오페레타이다. 대본은 레오 슈타인(Leo Stein)과 칼 린다우(Karl Lindau)의 솜씨이다. 오페레타 '천일야화'에는 아라비아의 이국적인 발레가 자주 등장하여 눈요기를 시켜주고 있다.

 

'천일야화' 무대. 빈강변극장


● Reich Mädchen(부자 아가씨)

요한 슈트라우스의 1897년도 오페레타인 Der Göttin der Vernunft(이성의 여신)을 바탕으로 오스카르 페트라스(Oscar Fetras: 1854-1931)가 포푸리로서 만든 작품이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1909년 초연되었다.

 

● Der blaue Held(푸른 영웅)

3막의 오페레타로서 1912년 초연되었다. 누가 음악을 편곡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 Faschingshochzeit(카니발 웨딩)

카니발 웨딩은 카니발 기간중에 신랑과 신부의 역할을 바꾸어 결혼식을 올리는 여흥을 말한다. 그러니 별별 웃기는 일이 다 발생한다. 이 점에 착안하여 요셉 클라인(Josef Klein)이라는 작곡가가 오스카 프리드만(Oscar Friedmann) 프릿츠 룬처(Fritz Lunzer), 레오폴드 하이니슈(Leopold Heinisch)등과 협동하여 요한 슈트라우스의 초기 왈츠를 바탕으로 오페레타를 만들었다. 3막으로 1921년 초연되었다.

 

● Casanova(카사노바)

지금의 체코공화국 부드봐이스(Budweis) 출신인 랄프 베니츠키(Ralph Benatzky: 1889-1957)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들을 사용하여 만든 오페레타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사후 30여년이 지난 1928년 베를린의 대연극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비엔나 초연은 독일에서 나치가 한창 득세하던 1935년 10월 1일 비엔나의 폭스오퍼에서였다. 대본은 루돌프 샨츠(Rudolf Schanz)와 에른스트 벨리슈(Ernst Welisch)가 썼다. '카사노바'에 나오는 '수녀들의 합창'(Nonnenchor)은 유명하다.


'카사노바' 초연의 무대. 사진

 

● Walzer aus Wien(비엔나의 왈츠)

3막의 징슈필이다. 변호사로서 작곡가인 비엔나의 율리우스 비트너(Julius Bittner: 1874-1939)와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인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 1897-1957)가 공동으로 만든 파스티셰(Pastiche) 오페레타이다. 1930년에 비엔나에서 초연되었다.

 

'비엔나의 왈츠' 징슈필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