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슈트라우스 왕조

발레곡 '아센브뢰델'(Aschenbrödel)

정준극 2012. 10. 4. 19:44

아센브뢰델(Aschenbrödel)

요한 슈트라우스2세의 미완성 발레 작품

오스트리아 궁정발레단장인 작곡가 요제프 바이어가 완성

 

요한 슈트라우스의 발레곡인 '아센브뢰델'(신데렐라)

 

'아센브뢰델'(Aschenbrödel)은 신데렐라의 독일어식 이름이다. 글자그대로 보면 '재와 김'이다. 부엌에서 일하느라고 재를 뒤집어쓰고 김만 쪼이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아센브뢰델을 아센푸텔(Aschenputtel)이라고도 부른다. 남부지방의 방언이다. 푸텔(puttel)이란 단어는 사실 독일어에 없다. 학자들은 puttel 이란 단어가 '파낸다'라는 뜻의 buddeln으로부터 변형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아센푸텔은 '재를 파내는 사람'을 말한다는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20편 남짓의 오페레타를 남겼지만 발레곡은 '아센브뢰델'이 유일하다. 그러나 요한 슈트라우스는 '아센브뢰델'을 완성하지 못하고 1899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케스트라 파트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미완성의 오케스트라 파트는 오스트리아 궁정발레단장인 작곡가 요제프 바이어(Josef Bayer: 1852-1913)가 1900년에 완성하였다. 요한 슈트라우스에게 발레곡을 작곡하라고 권면하고 아이디어를 준 사람은 루돌프 로타르(Rudolf Lothar)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영향력있는 잡지인 '디 봐게'(Die Waage: 천칭)의 편집장이었다. 음악 및 무용 평론가로 유명한 에두아르드 한슬리크(Eduard Hanslick)도 요한 슈트라우스에게 발레곡을 써보라고 권면했다고 한다. 한슬리크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유일한 오페라인 '기사 파스만'(Ritter Pasman)의 3막에서 발레 음악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럴것이 아니라 풀 스코어의 발레곡을 써보라고 권면하였다고 한다. 슈트라우스는 마음 속으로 발레곡을 작곡하기로 작정하고 1898년 3월에 사람들과 만나서 새로운 발레곡의 내용은 어떤 것이 되어야 좋은지를 협의하였다. 모인 사람들은 에두아르드 한슬리크, 구스타브 말러, 음악애호가인 니콜라우스 둠바, 루돌프 로타르, 그리고 슈트라우스 자신이었다. 이들은 발레곡의 대본을 널리 공모키로 했다. 응모작의 심사는 이들이 맡기로 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발레곡 '아센브뢰델'을 완성한 요제프 바이어

 

그 결과 700편이 넘는 작품이 응모되었다. 위대한 슈트라우스 선생이 작곡하는 발레곡의 대본을 정하는 것이므로 너도나도 응모하였다. 심사결과 '아센브뢰델'이 당선되었다. 당선자는 잘츠부르크 출신인 A 콜만(Kollmann)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당선자가 나타나지 않아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를 알수가 없었다. 시상식에도 대리가 참석했다. 그러다보니 별별 루머가 나돌았다. 콜만이라는 이름은 가명이며 실은 프란츠 요셉 황제의 신하중의 한 사람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슈트라우스는 사실 '아센브뢰델'의 대본에 대하여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 변형된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선작으로 선정한 것이므로 그렇게 알고 곧바로 작곡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해 겨울까지는 1막의 음악을 완성하였고 2막과 3막의 경우에는 일부만 오케스트라 파트를 완성하였고 나머지는 피아노 반주로만 만들어 놓았을 뿐이었다. 그러는 중에 슈트라우스는 건강이 악화되어 이듬해인 1899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전체적인 스케치는 마련해 놓았지만 아무튼 '아센브뢰델'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구스타브와 그레테의 빠 드 두

 

당시 궁정발레단의 단장으로서 작곡가였던 요제프 바이어(Josef Bayer: 1852-1913)는 '아센브뢰델'의 오케스트라 파트가 미완성인 것을 알고 자청해서 오케스트라 파트를 완성하였다. 요제프 바이어는 여러편의 발레곡을 쓰고 오페레타도 6편이나 완성한 재주있는 작곡가였다. 그가 작곡한 발레음악 중에는 '한국에서 온 신부'(Die Braut von Korea)라는 것도 있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요제프 바이어는 '아센브뢰델'풀 스코어를 당시 궁정오페라극장(오늘날의 슈타츠오퍼) 음악감독인 구스타브 말러에게 보여주고 비엔나궁정오페라(오늘날의 슈타츠오퍼)에서 공연할수 있을지를 협의하였다. 말러는 바이어가 완성한 스코어를 평가하지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리지날리티에 대하여 의문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구스타브 말러는 발레곡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오페라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바이어가 완성한 '아센브뢰델'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가하면 당시 말러는 차이코브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The Sleeping Beauty)를 궁정오페라극장에서 공연코자 노력하였지만 재정이 부족하여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발레 작품인 '아센브뢰델'을 무대에 올릴 만한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한다. 아무튼 요한 슈트라우스가 시작하고 요제프 바이어가 완성한 발레곡 '아센브뢰델'의 비엔나 초연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아셴브뢰델 그림

 

1901년에 베를린의 왕립오페라가 '아센브뢰델'의 공연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했다. 왕립오페라는 시나리오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음악에는 관심이 많았다. 왕립오페라의 안무가인 에밀 그래브(Emil Graeb)는 시나리오의 일부를 수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수정작업은 오스트리아의 작가인 하인리히 레겔(Heinrich Regel)에게 맡겨졌다. 그리하여 '아센브뢰델'은 1901년 5월 2일 베를린의 왕립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슈트라우스의 전기작가인 이그나츠 슈니처(Ignatz Schnitzer)는 오케스트레이션이 비엔나의 경쾌한 매력을 표현하지 못했고 시나리오도 지나치게 '청교도적'이었다며 불만을 표시한 일도 있었다. 비엔나 궁정오페라극장(현재의 슈타츠오퍼)에서의 공연은 1908년 10월에야 실현되었다. 말러가 떠나고 펠릭스 봐인가르트너가 신임 음악감독으로 취임하고나서였다. 발레 작품인 '아센브뢰델'은 비엔나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아무래도 세상 떠난 요한 슈트라우스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비엔나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센브뢰델'이 자주 공연되었다. 그후 2차 대전의 와중에서는 전혀 공연되지 못하였고 2차 대전이 끝나고서도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 때문에 역시 무대에 올려지지 못했다. 지난날 말러도 제작비 문제로 난색을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당시에 비엔나의 모든 경제상황은 대단히 어려웠었다. '아센브뢰델'이 비엔나에서 리바이벌 된 것은 1975년 슈타츠오퍼에 전속발레단이 생기고 나서부터였다.

 

그레테의 솔로

 

'아센브뢰델'의 내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아센브뢰델'의 무대는 '4계'(The Four Seasons)라는 백화점이다. 신데렐라는 여성 의류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그레테(Grete)로 설정하였다. 그레테의 계모인 마담 레온티네(레온타인: Leontine)는 백화점의 수퍼바이저이다. 예에 의하여 그레테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계모인 레온티네에게는 두 딸이 있다. 프란숑(Franchon)과 이베트(Yvette)이다.성미가 못되어서 그레테를 못살게 군다. 남자 주인공들은 백화점의 회장인 구스타브(Gustav)와 그의 두 동생들인 프란츠(Franz)와 요제프(Josef)이다. 또 한사람의 중요한 등장인물이 있다. 구스타브 사장의 시종인 피콜로(Piccolo)이다. 바지역할이다. 여자가 남자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등장하는 역할이다. 공연마다 안무가 다르고 연출이 다를수가 있는데 비엔나 공연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가 손풍금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로 등장하도록 했다. 그런가하면 3막에서는 슈트라우스가 사진사로 등장하도록 했다. 피날레에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연주되는 가운데 등장인물 모두의 단체 사진을 슈트라우스가 찍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제 어설프나마 줄거리를 살펴보자. 사실상 발레 작품에서는 줄거리보다도 발레 댄서들이 어떤 춤을 추느냐가 더 관심꺼리이기 때문에 줄거리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아센브뢰델 영화의 한 장면

 

스토리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신년 무도회를 준비하느라고 부산하기 이를데 없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마담 레오티네의 버릇없는 말괄량이 두 딸은 백화점 회장인 구스타브의 두 동생들인 프랑숑과 요제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을 한다. 이때에 두 딸들이 추는 춤이 '프로메나데 어드벤쳐'(Promenade Adventure)이다. 이어 피콜로가 그레테에게 무도회 초대장을 전달하기 위해 나타난다. 피콜로와 그레테의 춤이 '비둘기의 왈츠'(Waltz of the Doves)이다. 1막의 마지막에서 슈트라우스가 거리의 악사로 등장하여 손풍금을 연주한다. 그 소리를 듣고 그레테가 나타나서 슈트라우스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러자 슈트라우스는 누더기 겉옷을 벗어 던지고 실제의 모습을 보인다. 슈트라우스는 화려한 무도회 의상을 입고 있다. 그레테가 짐짓 두려운 모습을 보이자 슈트라우스는 그레테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선물한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무슨 신이라고 함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2막은 무슈 아르노의 저택에서 열리는 무도회이다. 초청을 받아 온 사람들은 자기들의 왈츠 솜씨를 자랑하기에 바쁘다. 아름답고 화려한 장면이다. '가면 게임'(Masked Game)이라는 춤 등이 소개된다. 그레테가 등장하여 매혹적인 이집트 춤을 춘다. '푸른 도미노'(Blue Domino)라는 춤이다. 회장인 구스타브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끌린다. 무도회의 하일라이트는 아마도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발레 댄서들인듯한 댄서들이 등장하여 화려한 춤을 추는 것이다. '콘펙션 왈츠'(Confections Waltz)이다. 이러한 장면이 끝나자 사람들은 그레테를 '무도회의 여왕'으로 선정하고 상으로 멋진 구두를 준다. 그레테의 춤이 '신데렐라 왈츠'(Cinderella Waltz)이다. 구스타브가 마스크를 벗고 자기의 본모습을 보이려고 할 때에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슈트라우스가 그레테를 구름 위로 올려보내 집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그때 그레타는 신고 있는 구두의 한짝이 벗겨진다. 그레테는 그대로 사라진다.

 

그레테

 

3막은 그레테가 무도회에 참석했던 즐거움을 되새겨 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모레텐 폴카'(Amoretten polka)이다. 남자들은 모두 상체를 벗고서 춤을 추기 때문에 상당히 섹시한 장면이 연출된다. 무대 위에는 가발을 쓴 어린 천사들이 날개를 파닥이며 돌아다닌다. 마치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레테를 위한 브라이달 트레져 왈츠'이다. 이어 웅장한 '플라워토치 폴로네이스'(Flowertorch Polonaise)가 무대를 장식한다. 그러한 분위기는 마담 레온티네가 두 딸을 데리고 무도회에서 돌아옴으로서 현실로 바뀐다. 이들은 무도회에서 어떤 젊은 여자 때문에 자기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주눅이 든채 집으로 돌아왔다면서 불평을 한다. 한편, 구스타브는 무도회에서 함께 춤을 추던 아가씨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슈트라우스의 마법으로 그 아가씨가 그레테인 것이 밝혀진다. 그리하여 구스타브는 마침내 무도회의 아가씨에게 청혼을 한다. 마담 레온티네는 비록 계모이지만 그레타와 구스타브의 결혼을 승낙한다. 레온티네는 나아가서 구스타브의 동생들인 프랑숑과 요제프를 장래의 사위로서 환영한다. 피콜로의 춤이 '보석의 왈츠'(Jewels Waltz)이다. 마지막 장면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연주되는 가운에 슈트라우스가 모두를 위해 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장식한다.

  

아센브뢰델의 무대라고 알려진 독일의 모리츠부르크성(Schloss Moritzburg)

 

참고로 지금까지 나와 있는 '신데렐라' 발레작품은 다음과 같다.

- 신데렐라(Cinderella). 1893. Boris Vietinghoff-Scheel 남작

- 아셴브뢰델(Aschenbrödel). 1901. 요한 슈트라우스2세. 요제프 바이어가 완성.

- 아셴브뢰델 이야기(Das Marchen vom Aschenbrödel). 1941. 프랑크 마르틴(Frank Martin: 1890-1974)

- 솔루슈카(Soluschka) 또는 신데렐라(Cinderella). 1945.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 신데렐라. 1980. 폴 리드(Paul Reade)

- 신데렐라. 2010. 데이빗 빈틀리(David Bintley)

- 신데렐라 - 비극적 이야기(Cinderella - A Tragic Tale). 2011. 레라 아우어바흐(Lera Auerbach)

 

프로코피에프의 '솔류스카'(센드리용) 무대. 검은 옷은 악을, 흰 옷은 선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