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307. 존 브라운의 '바베트의 만찬'

정준극 2012. 2. 20. 17:28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

아일랜드 출신인 존 브라운의 어린이 오페라

 

아일랜드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존 브라운

 

오페라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존 브라운(John Browne)이 로열오페라하우스의 위촉을 받아 작곡한 실내오페라이다. 2002년에 런던의 린베리(Linbury)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바베트의 만찬'은 작곡자인 존 브라운이 어린이들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이지만 어른들이 보아도 좋을 작품이다. 어린이 오페라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등장하지만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없다. 오페라 '바베트의 만찬'은 덴마크의 여류작가인 카렌 폰 블릭센 남작부인(Baroness Karen von Blixen: 1885-1962)의 소설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소설의 제목은 덴마크어로 Babettes Gaestebud 라고 했다. 역시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뜻이다. 카렌 폰 블릭센 남작부인의 필명은 이사크 디네센(Isak Dinesen)이다. 간혹 이사크 디네센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소설들도 있다. 카렌 폰 블릭센 남작부인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Out of Africa(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바베트 만찬'은 이미 1987년에 프랑스와 합작으로 덴마크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인 바베트 역할은 프랑스의 인기 여배우인 스테판 오드랑(Stephane Audran)이 맡았다. 그것을 이번에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존 브라운이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1시간 남짓의 실내오페라이기 때문에 원작의 내용이 단축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두 자매인 마르티네(Martine: S)와 필리파(Philippa: Lyric S), 성악가인 아쉴 파팽(Achille Papin: B), 그리고 주인공인 바베트(Babette: S) 등이다. 이밖에 두 자매의 아버지인 시골교회 목사님, 파리의 귀족 장교인 로렌스, 그리고 어린이들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베트가 목사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찬을 준비하겠다고 말한다.

 

오페라 '바베트 만찬'이 처음 공연될 때에 린베리 극장의 무대와 객석은 그야말로 놀라운 마법의 장소로 바뀌었다. 객석은 모두 여러 색을 칠한 나무로 메꾸어졌다. 관중들은 객석이 아니라 무대에 앉도록 했다. 객석을 무대로 올린 것은 대단히 보수적이고 폐쇄된 덴마크의 어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연 중에는 몇가지 놀랄만한 장면이 있었다. 예를 들면 오프닝 신에서 이 오페라의 가장 핵심 파트인 만찬을 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다. 피날레의 장면을 오프닝에 소개한 것이다. 두 자매인 마르틴과 필리파는 아버지의 엄격한 개신교 정신에 따라 무슨 일에나 제약을 받는 생활을 한다. 그때 아쉴 파팽이라는 멋쟁이면서도 바람둥이인 오페라 바리톤이 두 자매의 은둔자와 같은 생활 속에 등장한다. 파팽은 필리파의 음악적 재능을 보고 그에게 즉흥적인 성악 레슨을 한다. 작곡가인 존 브라운의 가장 효과적인 음악이 나오는 장면이다. 한편, 바베트의 등장도 쇼킹하다. 폭발할 것 같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적한 시골에 살고 있으면서 단조로운 색갈의 옷만 입고 지내는 두 자매와 비교가 된다. 나중에는 세 여인의 의상이 빨강, 검정, 핑크로 분류되는 것도 특이하다.

 

다음은 영화 '바베트의 만찬'의 줄거리이다. 오페라와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그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 스토리를 소개하는 것은 오페라보다 비교적 자세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 자매인 마르티네와 필리파는 아직도 유틀란드 반드의 서쪽 해안에 있는 어떤 외딴 마을에서 지내고 있다. 두 자매는 신앙심이 깊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자매의 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했던 목사님이었기 때문이다. 자매의 아버지인 목사님은 무척 보수적이고 신앙적인 사람이었다. 세상적인 일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의 생활은 청교도적인 것이었다. 루터교에 속하여 있으면서도 실은 별개의 종파라고 생각할 정도로 근검과 절제와 참회의 생활을 강조하며 지냈다. 몇 명 되지 않은 마을 사람들도 아마 어쩔수 없이 자매의 아버지의 설교에 순응해야 했다.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쩔수 없이 노쳐녀로서 늙은 자매가 교회를 이끌어 나갈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아버지 목사님이 세상을 떠난 후로부터 새로 등록하는 교인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교인들이라고 해야 모두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 뿐이어서 자매도 서서히 늙어갔다.

 

바베트는 아버지 없이 교회를 이끌어 가는 두 자매를 위해 헌신한다.

 

이야기는 현재로부터 49년 전으로 돌아간다. 자매가 아름다운 처녀였던 시기이다. 두 자매에게 여러 남자들이 결혼하겠다고 청혼하였다. 하지만 목사님인 아버지는 그때마다 남자들이 마땅치 않다고 하면서 반대하였다. 아버지로서 보면 모두 죄인이었고 늑대였다. 결국 아버지 때문에 두 딸은 결혼을 하지 못하고 나이만 들어갔다. 돌이켜 보면 자매들이 실제로 결혼할 뻔 했던 일이 있었다. 마르티네에게는 젊고 매력적인 스웨덴 출신의 기병장교가 구혼을 한 것이다. 숙모가 살고 있는 유틀란드의 이 마을에 휴양차 온 청년이었다. 로렌스 뢰웬타임이라는 이 청년 장교는 스톡홀름에서 환락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의 부모가 자중하라는 의미에서 시골에 살고 있는 숙모의 집에 가서 있으라고 보냈던 것이다. 젊은 장교 로렌스는 마르티네에게 '더 풍족한 생활, 더 재미난 생활, 빚쟁이들의 독촉이 없고 목사님의 잔소리 설교가 없는 생활'을 약속하고 함께 떠나자고 한다. 그리고 로렌스는 마르티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청교도적인 예배에 참석한다. 하지만 마르티네는 그런 로렌스의 마음을 알아 주지 않는다. 로렌스는 아무리 노력해도 마르티네가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떠난다. 그리고 스톡홀름에 가서 방탕한 생활을 계속 한다.

 

필리파에게는 파리의 오페라극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바리톤 아쉴 파팽이라는 청년이 구혼을 한다. 휴가차 이 마을까지 온 파팽은 필리파의 음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필리파에게 성악 레슨을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만한 재능이면 파리에 가서 오페라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어 화려한 생활을 할수 있다고 말한다.아무튼 어느덧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파팽은 필리파에게 계속 파리로 가서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필리파는 차마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두 사람이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돈 조반니와 체를리나의 듀엣을 연습할 때에 파팽이 느닷없이 필리파에게 정열적으로 키스를 한다. 당황한 필리파는 죄악이라고 생각하여 파팽으로부터의 레슨을 중지하고 파팽이 말하는 스타덤과 부를 거절한다. 그로부터 파팽의 음성은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묻혀서 잊혀진다.

 

바베트가 이제 갈 곳이 없으니 이 집에서 더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자 자매들이 크게 기뻐한다. 소프라노 클레어 윌드(Claire Wild)와 이베트 본너(Yvette Bonner), 그리고 메조소프라노 앨리슨 쿡.

 

그로부터 35년이 흐른다. 두 자매가 살고 있는 집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베트 에르상(Babette Hersant)이었다. 바베트는 예전에 필리파에거 구혼하였던 파리 오페라극장의 바리톤인 아쉴 파팽이 바베트를 집안 하녀로 추천한다는 편지 한장을 들고 나타난다. 바베트는 파리에서의 피비린내나는 반혁명의 물결을 피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자매는 바베트의 조신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비록 어려운 살림이지만 바베트를 하녀로 쓰기로 한다. 그로부터 바베트는 이 집에서 14년이나 지낸다. 바베트는 겸손하고 부지런했다. 열심히 일을 해서 집안 살림을 전보다 윤택하게 만들었다. 이제 바베트는 자매에게 있어서 가족이나 다름 없게 되었다. 외딴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바베트가 외부와 연락이 닿는 기회는 파리에 있는 친구가 해마다 한번씩 복권을 사서 보내주는 것이다. 그 복권이야 말로 바베트가 옛 생활을 잊지 않도록 해주는 끈이었다. 그렇다고 복권이 당첨되거나 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놀랍게도 바베트는 복권이 당첨되어 1만 프랑의 돈을 받게 된다. 바베트는 그 돈으로 시골 마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에 가서 지낼수 있다. 하지만 바베트는 그런 생각을 접고서 그 돈으로 두 자매와 마을의 교인들을 위해 멋진 만찬을 만들어 주기고 결심한다. 마침 얼마 있으면 목사님의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하는 날이 온다. 바베트는 그 만찬을 단순히 음식이나 대접하는 저녁 식사로 생각하지 않는다. 두 자매에게 대한 감사의 심정을 담은 행사로 생각한다. 바베트는 아무에게도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당첨금을 만찬비용으로 쓴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자매는 바베트가 목사님의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하여 '멋진 진짜 프랑스 만찬'을 준비하겠으며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제안하자 마지못해 끝내 수락한다. 바베트는 파리로 가서 만찬에 쓸 물건들을 사서 유틀란드의 집으로 보낸다. 그릇도 새로 샀고 와인 잔도 샀다. 음식 재료로는 별별 것을 다 사서 보냈다. 마을 사람들로서는 처음 보는 음식재료들이었다. 예를 들면 살아 있는 메추라기들, 커다란 바다 거북, 오래된 포도주 상자, 샴페인, 셰리 주 등이었다. 어떤 날에는 우골만 잔뜩 오는 날도 있었고 송아지 머리가 도착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파리에서 음식 재료들이 배를 통해 배달되어 올 때마다 살펴보면서 환성을 지르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이런 재료들로 어떤 음식을 만들지를 가지고 논란을 벌였다.

 

바베트가 자기의 과거를 얘기한다. 메조소프라노 앨리슨 쿡(Allison Cook)

 

드디어 바베트는 음식준비를 시작한다. 자매는 생전 처음 보는 음식재료를 보고 놀라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혹시 너무 육욕적인 사치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교인들 몇 사람도 그런 걱정을 한다. 자매와 교인들은 그 문제를 가지고 의논을 한다. 결국 바베트의 정성을 생각해서 음식은 먹되 먹으면서 즐거움을 표현해서는 안되며 또한 먹는 중에 맛이 좋다느니 어쩌니 하는 코멘트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이윽고 음식이 장만되어 만찬이 시작된다. 아무 장식도 없는 단순한 자매의 집에서 만찬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식탁 위는 화려하다. 아름다운 그릇과 아름다운 음식이 풍성하게 놓여 있다. 단조롭고 어두운 집안과는 묘한 조화를 이루는 분위기이다. 만찬에는 두 자매와 교인 열 명이 참석한다.

 

바베트와 이제는 노년에 접어 든 두 자매(영화에서)

 

예전에 마르티네에게 청혼했었던 로렌스는 이제 유명한 장군이 되어 여왕의 시녀인 귀족과 결혼하여 살고 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바베트의 만찬에 참석한다. 그의 숙모를 만나러 왔다가 자매의 집에서 만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그의 숙모는 자매의 아버지 시절부터 교인이었다. 로렌스는 음식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말자는 다른 사람들의 계획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로렌스야 말로 세상에서 알아주는 미식가이며 더구나 파리 대사관에 무관으로 근무한 일도 있고 바로 얼마전만해도 파리에서 최고의 식당이라고 하는 카페 앙글레(Cafe Anglais)에서 프랑스 정통 요리를 엔조이했기 때문에 유틀란드의 시골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놀라운 프랑스 요리를 보고서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음식을 먹으면서 내내 감탄사와 코멘트를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음식만 먹자고 약속했지만 바베트의 기막힌 솜씨와 그 솜씨에 담겨 있는 정성에 굴복하여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들은 음식을 통하여 과거에 자기들이 얼마나 겉으로만의 절제되고 검약한 생활을 해왔는지 후회하기 시작한다. 한편, 로렌스와 마르티네는 옛 사랑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상기된 모습이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신비스러운 구원의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조용히 만찬을 먹는 교인들(영화에서)

 

만찬이 끝난다. 그제야 바베트가 입을 연다. 놀랍게도 바베트는 파리에서도 가장 유명한 카페 앙글레 식당의 주방장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프랑스 혁명과 반혁명의 와중에서 피해를 보게 되어 덴마크의 이 시골까지 와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두들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로렌스 장군은 그러면 그렇지 라고 말하며 오늘의 음식은 얼마전에 먹었던 카페 앙글레의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찬사를 퍼 붓는다. 자매는 이제 바베트가 파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바베트는 있는 돈을 만찬을 위해 다 썼기 때문에 파리로 돌아갈수 없다고 말하며 이제는 갈곳도 없으니 괜찮다면 이곳에 더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자매는 그 말에 깜짝 놀라며 어찌할줄을 모른다. 자매는 바베트가 복권 당첨금인 1만 프랑을 그릇과 음식 재료를 사는데 다 썼다고 하자 '이제 돈을 다 써서 가난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묻는다. 바베트는 '예술가는 절대로 가난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결혼을 앞둔 두 딸과 아버지(영화에서)

 

참고로 바베트가 만찬을 위해 마련한 음식을 다음과 같다. 메뉘는 아몬틸라도로 시작한다. 스페인산의 고급 셰리주이다. 이어 Portage a la Tortue(자라 수프), Blinis Demidoff au Caviar(캬비아와 사우어 크림을 곁들인 호밀 빵), Caille en Sarcophage avec Sauce Perigourdine(거위 간과 송로 버섯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벨기에산 치코리와 호두를 비네그레트 소스로 무친 살라드, 푸른 치즈, 파파야, 무화과, 포도, 파인애플, 석류를 담은 후식, 그리고 마지막은 Savarin au Rhum avec des Figues et Fruits Glacees(럼을 섞은 스폰지 케익에 무화과와 어름으로 차갑게 한 각종 과일)이었다. 마실 것은 귀중하고 희귀한 각종 포도주와 샴페인을 준비했다. 예를 들면 1845년산 Clos de Vougeot 포도주, 1860년산 Veuve Clicquot 샴페인 등이다. 바베트는 이런 마실 것을 위해 크리스탈 잔들을 모두 새로 샀다. 내프킨까지 최고급으로 마련했다. 파리의 카페 앙글레보다 더 고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