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미주와 아시아

아서 벤자민(Arthur Benjamin)

정준극 2012. 2. 21. 14:55

아서 벤자민(Arthur Benjamin)

시드니 출신: 자마이칸 룸바의 작곡자

 

아서 레슬리 벤자민

 

아서 레슬리 벤자민(Arthur Leslie Benjamin: 1893-1960)은 호주 출신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음악교사였다. 그는 1938년에 작곡한 자마이칸 룸바(Jamaical Rhumba)와 오페라 '두 도시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아서 벤자민은 시드니에서 태어났으며 세살 때에 브리스베인으로 이사갔다. 여섯 살때에는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나가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음악교육은 아홉살 때부터 브리스베인의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인 조지 샘슨으로부터 받았다. 아서 벤자민은 1911년에 브리스베인 고등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 런던의 왕립음악원으로 유학을 갈수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챨스 스탠포드에게서 작곡을, 토마스 던힐로부터 화성학과 대위법을, 프레데릭 클리프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나중에 프레데릭 클리프의 아들인 세드릭 클리프는 아서 벤자민의 오페라에 대본을 제공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서 벤자민은 1914년 1차 대전이 터지자 영국군에 입대하였고 이듬해부터는 중위로서 보병대대에 배속되어 복무했다. 이어 1917년, 1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에는 왕립비해부대에 배속되었다. 이듬해인 1918년 7월 그가 조종하던 비행기가 독일 전투기에 격추되어 그는 포로로 잡혔다. 그의 비행기를 격추한 독일 공군의 조종사는 당시 청년장교였던 헤르만 괴링이었다. 아서 벤자민은 베를린 인근의 룰레벤 전쟁포로 수용소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억류되어 있었다. 이때 수용소에서 호주 출신의 작곡가인 에드가 베인턴(Edgar Bainton)을 만났다. 에드가 베인턴은 전쟁이 끝난 후 시드니 소재의 뉴사우스웨일스주립음악원장으로 활동했다.

 

아서 벤자민은 1919년 호주로 돌아와 에드가 베인턴이 원장으로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립음악원의 피아노 교수가 되었다. 그러다가 2년후인 1921년에 런던으로 가서 왕립음악원의 피아노 교수가 되었다. 그는 1926년에 왕립음악원의 종신교수가 되었으며 이후 13년간 근무했다. 그의 제자 중에는 벤자민 브리튼도 포함되어 있다. 벤자민 브리튼의 솔로 피아노를 위한 조곡인 Holiday Diary는 스승인 아서 벤자민에게 헌정한 곡이다. 그의 대표작인 '자메이카 룸바'는 왕립음악원 시절에 작곡한 것이다. 왕립음악원을 사임한 그는 캐나다 밴쿠버로 갔다. 그는 밴쿠버에서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조용하게 지냈다. 그러는 중에 그는 1941년, 새로 설립된 캐나다방송(CBC)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아서 벤자민은 1946년까지 CBC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약했다. 그는 이 기간동안 수많은 작품의 캐나다 초연을 지휘했다. 그러면서 작곡활동도 계속하였다. 1941년에 작곡한 Elegiac Mazurka는 그해에 세상을 떠난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인 파데레브스키를 추모하기 위한 작품이다.

 

아서 벤자민은 1960년 4월 10일 향년 66세라는 비교적 짧은 나이로 런던의 미들섹스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3년전에 발견되어 치료를 받았던 암이 재발해서였다. 직접적인 사인은 간염(헤파타이티스)이었다. 간염에 걸린 것은 호주의 화가인 도날드 프렌드, 악보출판사를 운영하는 캐나다인인 잭 헨데슨과 함께 세일론(스리랑카)에서 휴가를 지낼 때 얻은 질병이었다.

 

아서 벤자민은 4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첫 오페라인 단막의 The Devil Take Her는 1931년 12월 1일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토마스 비첨 경의 지휘로 처음 공연되었다. 1932년에 완성한 Prima Donna 도 단막이다. 이 오페라는 1949년 2월 23일에 가서야 겨우 공연될수 있었다. 런던의 포춘극장에서였다. 이 오페라의 대본은 아서 벤자민이 왕립음악원에 다닐 때 스승인 프레데릭 클리프의 아들인 세드릭 클리프가 썼다. 이상의 두 작품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세번째 오페라는 1950년에 완성한 A Tale of Two Cities이다. 풀 스케일의 오페라이다. 대본은 역시 세드릭 클리프가 맡았다. 1951년 브리튼 페스티벌 기간 중에 데니스 아룬델에서 초연되었다. 그후 아서 벤자민은 A Tale of Two Cities를 수정하였고 수정된 버전은 1960년 4월 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되었다. 바로 그가 런던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날이었다. 마지막 오페라는 Manana로서 1955년에 완성하였고 1956년 2월 1일 BBC TV에서 공연되었다. 불행하게도 이 작품은 실패여서 이후로 다시는 공연되지 않고 있다. 또 하나의 오페라가 있다. 몰리에르 원작의 Tartuffe이다. 세드릭 클리프가 대본을 쓴 것으로 미완성으로 남긴채 세상을 떠났다. 그후 작곡가인 알란 부스테드(Alan Boustead)가 스코어를 완성하여 1964년 11월 30일 런던의 새들러 웰스에서 부스테드의 지휘로 공연되었다. 그 이후로는 리바이벌 되지 않았다.

 

오페라 '두 도시의 이야기'의 한 장면

 

아서 벤자민은 영화음악도 여러 편을 작곡했다. 첫 영화음악은 1934년의 The Scarlet Pimpernel(진홍의 길로틴)의 음악이었다. 나폴리 시대의 음악을 주로 사용한 것이다. 다음은 역시 1934년에 제작된 알프레드 히치콕의 The Man Who Knew Too Much이다. 아서 벤자민은 이 영화의 음악을 1956년에 대폭 수정하였다. 이밖에도 수많은 영화음악을 만들어 냈다. 피아니스트로서 그는 여러 작품의 세계 초연을 연주했다. 예를 들면, 허버트 하웰스(Herbert Harwell)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1913), 아서 블리쓰(Arthur Bliss)의 솔로 피아노를 위한 조곡 Masks(1926), 콘스탄트 램버트(Constant Lambert)의 파이노 협주곡(1931), 조지 거슈윈의 Raphsody in Blue 영국 초연 등이다.

 

Image Detail

아서 벤자민이 음악을 쓴 The Scarlet Pimpernel(진홍의 길로틴) 포스터

 

여러 작곡가들이 아서 벤자민을 위해 작품을 작곡하였다. 허버트 하웰은 오케스트라 조곡인 The Bs를 작곡하였다. 전 5악장인 이 곡은 1914년 초연되었다. 마지막 파트는 웅장한 행진곡 풍으로서 Benjee 라는 부제가 붙은 것이다. 아서 벤자민을 위해서 붙인 제목이다. 하웰의 오케스트라 작품인 Procession은 아서 벤자민에게 헌정한 것이다. 아서 벤자민은 이에 응답하여 Saxophone Blues(1929)를 허버트 하웰에게 기증하였다. 호주의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이안 문로(Ian Munro)는 아서 벤자민의 피아노 작품들을 레코딩하여 남기는 노력을 하였다. 음악학자인 웬디 히스콕스는 아서 벤자민의 자서전을 썼다. 이 책은 아서 벤자민의 서거 50주년을 기념하여 2010년에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