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 유괴(The Abduction of Figaro)
피터 쉬켈레(Peter Schickele) aka 피디큐 바흐(P.D.Q. Bach)의 3막 패로디(풍자) 오페라
피터 쉬켈레(1935-)
미국에 피터 쉬켈레(Peter Schickele: 1935-)라는 작곡가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인이다. 그는 P.D.Q. Bach라는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P.D.Q.라는 말은 Pretty Damn Quick 즉,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빨리 빨리'이다. ASAP 즉, As Soon As Possible 이라는 말 보다도 더 강렬한 뜻의 슬랭이다. 그가 왜 P.D.Q. Bach 라는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생략코자 하며 그저 P.D.Q. Bach 라는 이름은 피터 쉬켈레의 펜 네임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될 것이다. 하기야 그의 모습을 은근히 살펴보면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와 비슷한 인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는 바흐의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을 더 좋아한다. 모차르트의 음악 중에서도 오페라를 좋아한다. 하기야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악이 아름답고 우아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 조크와 풍자가 넘쳐 있기 때문이다. 답답하고 어두운 생활에서 삶의 활력소가 되는 기막힌 조크들이다. '돈 조반니'가 그렇고 '피가로의 결혼'이 그러하며 '여자는 다 그래'가 그러하다. 그리고 '후궁에서의 도주'와 '마술 피리'에도 조크와 풍자가 넘쳐 있다. 피터 쉬켈레는 바로 그 조크와 풍자들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풍자전문가인 피터 쉬켈레에게 '피가로 유괴'라는 자못 엉뚱한 내용의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고 의뢰한 것은 미네소타 오페라단이다. 그리하여 P.D.Q. Bach 라는 이름으로 역사상 특유의 풍자오페라라고 할수 있는 '피가로 유괴'가 완성되었고 1984년 4월 27일 미네소타에서 초연되었다.
오페라의 장르로 보면 코믹 오페라에 속하는 피터 쉬켈레의 '피가로 유괴'(The Abduction of Figaro)는 패로디로 넘쳐 있는 작품이다. 그보다도 우선 오리지널 타이틀인 The Abduction of Figaro를 우리 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Abdcution은 유괴, 납치를 말한다. 그런데 '유괴'라고 하면 주로 어린 아이들을 유괴하는 것이 연상되어서 이상하며 그렇다고 '납치'라고 하자니 무슨 큰 범죄조직의 음모에 의한 사건 같아서 또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우리말로 '피가로 유괴'라고 할수도 있고 '피가로 납치'라고도 할수 있다. 어느 표현이 되었든지 상관이 없지만 일단 본 블로그에서는 '유괴'로 표현키로 한다. '피가로 유괴'의 아이디어는 '피가로의 결혼'과 '후궁에서의 도주'(The Abduction from the Seraglio)에서 전적으로 가져왔다. 여기에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 '돈 조반니', '마술 피리', 그리고 심지어는 길버트와 설리반의 사보이 오페라인 '펜잔스의 해적'(The Pirates of Penzance)도 참고로 삼았다. 이밖에도 누구나 잘 아는 노래들을 인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캠프 송인 Found a Peanut, 빌리지 피플이 부른 인기 팝송인 Macho Man 등이다. Found a Peanut 이라는 노래는 주로 아이들이 먼 소풍을 갈때 지루하지 않기 위해 부르는 곡이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사리 집한채'의 클레멘타인 멜로디를 그대로 사용하는 노래이다.
'피가로 유괴'에는 모차르트의 아리아 중에서 묘하게 패러디로 사용한 노래들이 있다. 예를 들면 '돈 조반니'에서 체를리나가 부르는 Batti, batti(때려 주세요, 때려 주세요)이다. 이것을 Macho, macho, That's How All Men Are(마초 마초, 남자들은 다 그래)로 바꾸었고 이어 '나를 때려주어도 되어요'(You Can Beat Me)라는 노래가 나오게 했다. 또 한가지 기상천외한 것은 '카리비안 발레'라는 것이다. 카리비안의 춤을 마치 '백조의 호수'처럼 추도록 한 것이다. 브라질 출신의 삼바 댄서인 카르멘 미란다에게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를 맡으라고 하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제1막의 장소는 스페인든지 이탈리아든지 상관이 없다. 그저 어느 해안마을에 있는 알마마터(Almamater)백작의 성(궁전)이다. 알마마터라는 단어는 동창생을 말한다. 무슨 동창생인지는 모르겠지만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알마비바(Almaviva)백작을 풍자한 것이리라. 무대는 알마마터 백작의 성에 있는 피가로의 침실이다. 피가로는 몹씨 아파서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찌하여 피가로의 침실이 알마마터 백작의 성에 있는냐하면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통해 알수 있듯이 피가로와 백작과 로지나의 결혼을 성사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백작의 전속 이발사 겸 시종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통해 알수 있듯이 피가로가 백작부인의 하녀인 수잔나와 결혼했기 때문에 백작의 한 가족처럼 성에서 살게 된 것이라고 본다. 아무튼 이제 피가로는 병에 걸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무슨 병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계속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의사인 알 돈폰소(Al Donfonso: B)가 와서 진찰을 하지만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알 돈폰소는 아마 '여자는 다 그래'에 나오는 풍자적 철학자인 '돈 알폰소'를 풍자한 것 같다. 알 돈폰소는 Found a Peanut 이라는 어린이 노래를 부른후 떠난다. (영어에서 Peanut 이라는 단어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다. 물론 땅콩이라는 뜻이 있지만 '형편없는 사람, 하찮은 사람'이라는 뜻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더 저속한 뜻으로도 사용한다.)
의사가 떠나자 피가로를 간호하던 수잔나가 '제 옆에 있어 주세요'(Stand by Me)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흑인들의 노래에 나오는 Doo-wopp 스타일의 노래이다. 페카디요(Pecadillo: T: 경범죄라는 뜻의 스페인어)가 들어와서 도나 돈나(Dona Donna: S)가 도착했다고 알린다. 페카디요는 '후궁에서의 도주'에 나오는 벨몬테의 하인 페드리요(Pedrillo)를 풍자한 것으로 생각된다. 도나 돈나는 '돈 조반니'에 나오는 돈나 안나를 풍자한 듯 하다. 도나 돈나는 들어오자마자 도날드 조반니(Donald Giovanni: B-Bar)를 무조건 비난하는 노래를 한바탕 부르더니 수잔나에게 오늘 밤 블론디(Blondie: S)와 함께 하룻밤을 지낼수 있느냐고 묻는다. 블론디는 도나 돈나의 하녀이지만 아마 '후궁에서의 도주'에 나오는 블론드헨(Blondchen 또는 Blode)을 풍자한 것 같다. 도나 돈나가 부르는 노래가 '배반자, 그대의 이름은 도날드, 사람들은 그대를 짧게 돈이라고 부르지만'(Perfidy, Thy Name is Donald, Although They Call Thee Don for Short)이다. 그날 저녁 늦게 도날드 조반니와 슐로포렐로(Schloporello: 바리톤 비슷한 사람)가 나타난다. 슐로포렐로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돈 조반니'에 나오는 하인 레포렐로(Leporello)를 풍자했다고 본다. 한편, 페카디요는 블론디에게 마음이 있어서 세레나데를 부른다. My Dog Has Fleas(우리 개는 벼룩이 있다)는 아주 간단한 폭송이다. 문제는 도날드 조반니가 수잔나에게 홀딱 반했다는 데에 있다. 수잔나가 도날드 조반니에게 침대에 누워있는 피가로를 가르키며 '이 사람이 우리 남편이어요'(And here is my husband)라고 말하는 통에 도날드 조반니의 적극적인 태도가 조금 수그러진다.
비디오로 출신된 '피가로 유괴'
그러한 차에 일이 더 복작하게 되느라고 캡틴 카드(Captain Kadd: B)가 갑자기 등장한다. 물론 한 쪽 손은 갈고리(후크)로 되어 있다. 캡틴 카드라고 하면 아마도 17-18세기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해적 선장인 윌렴 키드(William Kidd)를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캡틴 카드는 뿔피리를 불면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악한인지를 노래한다. My Name is Captain Kadd, and I am Very Very Very Very Bad 라는 노래이다. 캡틴 카드는 자기의 파묻어 놓은 보물을 찾으로 쿠바로 간다고 말하며 피가로의 침대에서 시트를 잡아 채어 그 안에 침대를 포함한 피가로를 둘둘 싸서 메고 바닷가로 나가 침대 시트로 돛을 만들어 항해한다. 모두들 캡틴 카드가 피가로를 유괴하여 간데 대하여 탄식한다. 피가로 구조대가 구성된다. 도날드, 슐레포렐로, 페카디요가 배를 타고 피가로를 구하러 떠난다. 이들의 배가 바다로 나가자 마자 바다에 침몰한다. 해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바라보기만 할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마 번슈타인의 캔다이드에서 배가 침몰하는 장면도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하여 제1막이 끝난다.
제2막은 터키제국의 모처이다. 세명의 사람이 파도에 실려서 해안에 밀려온다. 정신을 차린 이들은 마침내 구사일생으로 육지에 도달한 것을 축하하며 긴 노래를 부른다. God be praised 이다. 장면은 바뀌어 파샤(Pasha: B)의 궁전이다. 파샤는 '후궁에서의 도주'에서도 파샤(총독)으로서 이름은 셀림 바싸(Selim Bassa)이다. 오펙(Opec: 카운터 테너)이 정원에서 과일을 따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펙은 '후궁에서의 도주'에 나오는 파샤의 노예 감독관인 오스민(Osmin)을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피가로 유괴'의 초연에서는 작곡자인 피터 쉬켈레의 오랜 친구이며 뛰어난 카운터 네터인 존 페란트(John Ferrante)가 오펙의 역할을 맡아 갈채를 받았다. 존 페란트는 피터 쉬켈레의 작품인 '브루클린의 이피제니'(Iphegenia in Brooklyn) 등에서 출연했었다. '피가로 유괴'에서 오펙은 카운터 테너이지만 '후궁에서의 도주'에서 오스민은 베이스이다. 잠시후 파샤가 등장하고 이어 하렘의 매력적인 여인들이 '일곱 양동이의 춤'(Dance of the Seven Pails)를 춘다. 이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에서 살로메가 '일곱 베일의 춤'(Dance of the Seven Vails)을 춘 것을 풍자한 것이다.
도날드와 슐레포렐로는 어찌된 영문인지 도나 돈나와 블로디가 이미 파샤의 하렘에 와서 있는 것을 알고 놀란다. 도나 돈나와 블로디는 도날드와 슐레포렐로가 하렘에 접근하자 대단히 성가시게 생각한다. 캡틴 카드가 지나간다. 도나 돈나와 블로디는 남장을 했다. 두 사람이 부르는 듀엣이 Macho, macho이다. '돈 조반니'에서 체를리나가 부르는 Batti, batti 의 노래이다. 슐레포렐로가 블론디에게 세레나데를 부른다. '나를 때려도 좋아요'(You Can Beat Me)이다. '돈 조반니'에서는 체를리나가 마제토에게 때려 달라고 말하는데 여기서는 슐레포렐로가 오히려 블론디에게 때려도 좋다고 말한다. 슐레포렐로는 이 노래를 부를 때 철사줄로 만든 기타를 연주한다. 아마 현대의 청중들로부터 관심을 끌기 위해서인것 같다. 도날드가 도나 돈나에게 다시금 접근한다. 도나 돈나는 도날드를 원수처럼 여겼지만 도날드가 또 다시 접근하자 은근히 마음을 주는 듯한 모습이다.
제3막은 열대수가 우거져 있는 쿠바이다. 캡틴 카드를 비롯해서 도날드 조반니, 슐레포렐로, 페카디요가 도착하여 일단은 무대 뒤로 사라진다. 이어 정말 어이없는 발레가 공연된다. 카르멘 미란다가 '백조의 호수'를 추는 형태이다. 네명의 남자가 다시 돌아와 파파 제노(Papa Geno)와 마마 제노와 이들의 돼지들을 만난다. 캡틴 카드가 피가로가 누워있던 침대를 들고 나타난다. 침대에는 블로디와 도나 돈나, 그리고 아직도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피가로가 담겨 있다. 캡틴 카드는 파파 제노로부터 보물섬 지도를 받는다.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 본 캡틴 카드는 보물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피가로가 누워 있던 침대에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누워 있어야 할 피가로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타의 활콘(Maltase Falcon)도 사라진 상태이다. 누가 이미 집어갔다. 말타의 활콘은 귀중한 보석이다. 슐레포렐로가 가져간 것 같지만 확증은 없다. 캡틴 카드가 허탈해 있는데 슐레폴레는 만일 아리아를 부르게 해주면 약탈한 보석을 내 놓겠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행복한 가운데 막이 내린다. 그런데 도대체 발키리들은 모두 갑자기 어디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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