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오페라역사 속성정복

8. 현대의 추세

정준극 2012. 5. 12. 07:15

8. 현대가 뭐길래...뮤지컬의 등장

 

20세기 후반부터 모두가 현대를 외치는 가운데 오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오페라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대스타일의 표현은 무조성(無調性)이다. 영어로는 아토날리티(Atonality)라고 한다. 일정한 조성(調性)에 입각하지 않은 작곡 양식을 말한다. 사실상 전통적인 조성(Tonality)으로부터 벗어난 길을 가기 시작한 사람은 바그너이다. 특히 그의 '트리스탄 코드'라는 것을 들어보면 짐작할수 있다.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사용한 무조성의 코드를 의미한다. 일견 신비스럽기까지 한 코드이다. 그러나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 이후 상당기간 동안 이에 대한 별다른 발전이나 개혁이 없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자코모 푸치니, 파울 힌데미트, 한스 피츠너(Hans Pfitzner)와 같은 작곡가들은 바그너의 파라메터에 순응하고 그 파라메터 내에서 작곡을 하였으나 더 이상 멀리 나가지는 못했다.

 

현대적 연출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1998년 시애틀 오페라단.

                           

오페라에서 진정한 현대주의(모더니즘)는 두명의 비엔나 작곡가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놀트 쇤버그(Arnold Schoenberg)와 그의 복사(服事)라고까지 말할수 있는 알반 베르크(Alban Berg)이다. 두 사람은 무조성의 챔피언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12음기법(Dodecaphony)의 작곡을 주창하였다. 쇤버그의 초기 음악적 드라마틱 작품들, 예를 들면 1909년에 작곡을 하고 1924년에 초연된 '기다림'(Erwartung), 그리고 '행복한 손'(Die Gluckliche Hand)을 보면 일반적으로 크로마틱(반음계의) 하모니와 불협화음을 강하게 사용한 것을 알수 있다. 쇤버그는 또한 간헐적이지만 슈프레흐슈팀메(Sprechstimme)를 사용하였다. 슈프레흐슈팀메라는 것이 어떠한 기법인지를 확실하게 설명할 능력이 되지 못하므로 그저 아는대로 설명하자면 말과 노래의 중간적 성격을 띠는 기법이라고 밖에 말하지 않을수 없다. 다시 말하여 말하듯이 노래한다고나 할까? 이러한 기법은 쇤버그가 그의 '달빛 속의 피에로'(Pierrot Lunaire: 1912)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에 앞서서 엥글베르트 훔퍼딩크의 멜로드라마적 오페라인 '왕의 아이들'(Königskinder: 1897)에도 이 기법이 사용되었음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쇤버그의 '기다림'

                           

쇤버그의 제자인 베르크의 오페라 중에서 '보체크'와 '룰루'(베르크의 서거로 미완성이었음)는 앞에서 언급한 쇤버그 스타일을 많이 참조한 작품들이다. 다만, 쇤버그의 스타일과 조금 차이가 나는 점이 있다면 베르크는 쇤버그의 12음 기법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서 보다 멜로디가 풍부한 전통적인 파사지들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마치 말러의 음악에서 볼수 있는 전통적인 멜로디를 인용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비록 '보체크'와 '룰루'의 스토리가 지나치게 과격하여 문제의 소지가 있으며 음악에 대하여도 선입감을 가질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스탠다드 레퍼토리로 남아 있는 것은 전통적인 멜로디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쇤버그의 음악이론은 실로 여러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후세의 작곡가들이 쇤버그의 이론대로 작곡을 시도했다는 말은 아니다. 쇤버그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로서는 영국의 벤자민 브리튼, 독일의 한스 베르너 헨체, 러시아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필립 글라스는 미니멀리스트라고 간주되고 있지만 간혹 쇤버그의 12음 기법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었다. 미니멀리즘(병렬주의)은 20세기에 발전된 또 다른 현대음악의 양상이라고 볼수 있다. 미니멀리즘과 같은 새로은 양상의 음악이 출현하였지만 현대의 오페라 작곡가들은 대체로 쇤버그의 12음 기법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하지만 미니멀리즘 또는 다른 형태의 현대적 기법에 대한 12음 기법의 대반격이라고 볼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러시아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이다.

 

스트라빈스키는 '페트류슈카'와 '봄의 제전'등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발레작품을 보인 이후 이번에는 작은 규모의 작품들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오페라라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그런 작품들이었다. 예를 들면 1916년의 '르나르'(Renard)와 1918년의 '어느 병사의 이야기'(The Soldier's Tale)이다. '르나르'는 노래와 춤이 나오는 일종의 벌레스크(익살 연극)이다. '어느 병사의 이야기'는 '읽고 연기하고 춤을 추는'이라는 지시사항이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배우는 마치 연설을 하듯 대사를 낭독한다. 다만, 악기 반주에 따라 어떤 특정한 리듬으로 낭독한다. 마치 옛날 독일에서 유행했던 멜로드라마의 장르와 같다.

 

스트라빈스키의 '어느 병사의 이야기'에서

                                                 

그러다가 스트라빈스키는 1920년대에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으로 돌아섰다. 그의 오페라-오라토리오인 '외디푸스 렉스'(Oedipus Rex)는 그러한 그의 새로운 이즘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두개의 작품, 즉 1914년의 '나이팅게일'과 1922년의 '마브라'(Mavra)를 완성한 후에 이번에는 일반적인 장편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바로 '난봉꾼의 행로'(The Rake's Progress)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음렬주의적 기법을 무시하고 오히려 온음계를 이용한 18세기의 넘버 오페라를 도입하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음렬주의에 대한 일종의 반항은 다른 여러 작곡가들에게 인스피레이션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었다.

 

스트라빈스키의 '난봉꾼의 행로'(The Rake's Progress)

                          

한편, 20세기를 통하여 나타난 보편적인 추세는 사이즈를 축소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페라에 있어서나 오케스트라에 있어서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복잡해지다보니 오페라를 후원하는 이른바 파트론들이 줄어 들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스포츠 등 다른 분야를 후원하는 것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하는 경우도 극히 줄어 들었다. 그러다보니 예산절감 차원에서 소규모 오페라를 만들수 밖에 없었다. 실내오페라(Chamber opera)라는 것이 등장했다. 그리고 주로 단막이었다. 예를 들어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를 보면 오케스트라를 고작 10여명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악기의 수를 최대로 줄인 것이다. 마크 아다모의 2막 오페라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의 경우에는 오케스트라가 18명을 넘지 않도록 했다. 그랜드 오페라에서 풀 오케스트라가 참여하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마크 아다모의 '작은 아씨들'의 한 장면

                               

20세기 오페라의 또 다른 양상은 현대역사를 담은 오페라의 등장이다. 존 애덤스의 '클링호퍼의 죽음'이나 '중국에 간 닉슨'(Nixon in China), 또는 제이크 히기(Jake Heggie)의 '사형수 등장'(Dead Man Walking) 따위는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로 삼은 것이다. 다시 말하여 오페라의 주인공들이 이들 오페라가 공연된 시점에서 생존해 있었다는 얘기이다. 과거의 오페라들은 신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는 것이었으며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도 이미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존 애덤스의 '중공에 간 닉슨'(Nixon in China)의 한 장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오페라 파트론의 평균 나이는 60세라는 것이다. 이들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현재의 청소년들이 이들 파트론들을 대신할수 있을 것인가? 모든 오페라단체들이 깊이 생각하는 문제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오페라단이나 오페라극장의 홈페이지를 보면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미래의 사회 주역이기 때문이다. 오페라계가 20세기 후반부터 청소년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에 열심인 것은 앞으로의 오페라를 위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청소년 프로그램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청소년 합창단이 출연한 연주회

 

현대 오페라의 연혁에 있어서 또 하나의 특성은 오페라의 사촌격인 뮤지컬의 등장이다. 뮤지컬은 1930년대부터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 시작한 공연예술의 한 장르이다. 뮤지컬은 여러 특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당시의 음악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포기와 베스'는 당시 재즈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캔다이드'는 당시의 감성적인 노래도 노래지만 오페라의 해학적인 패로디를 중심으로 삼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어 환영을 받았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오페라의 한 장르로서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브로드웨이의 다른 뮤지컬 작품들, 예를 들어서 '쇼 보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브리가둔' '스위니 토드' '에비타' 등은 모두 오페라로서도 인정을 받는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오페라 극장에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다. 1969년 '토미'와 1971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로서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 락 뮤지컬은 오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레시타티브를 음악이 없는 대사로서가 아니라 음악 반주를 곁들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오페라와 뮤지컬의 구분하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뮤지컬만 장려한다면 순수 오페라가 서 있을 장소는 점점 좁아지므로 그것도 참으로 걱정이다.

 

조지 거슈인의 '포기와 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