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의 '천지창조'(Die Schöpfung) - The Creation
구약성서 창세기와 존 밀튼의 '실락원'(The Paradise Lost)을 바탕으로 한 오라토리오
요셉 하이든
헨델의 '메시아', 베토벤의 '감람산의 그리스도'(Christus am Ölberge )와 함께 세계 3대 오라토리오로 꼽히는 하이든의 '천지창조'(Die Schöpfung)는 하이든의 작품 중에서 최고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모든 오라토리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요셉 하이든(1732-1809)은 '천지창조'를 64세 때인 1796년에 작곡에 착수하여 2년 후인 1798년에 완성하였다. 베토벤은 '감람산의 그리스도'를 33세 때에 완성하였고 헨델은 '메시아'를 56세에 완성한 것과는 달리 하이든은 '천지창조'를 이들보다 더욱 원숙한 경지인 66세에 완성하였다. '천지창조'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의 이야기와 영국의 존 밀튼(John Milton)이 1667년에 출판한 '실락원'(The Paradise Lost)의 첫 파트에 바탕을 둔 오라토리오이다.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의 솔리스트와 합창단을 위해 스코어가 마련되었으며 내용은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밀튼의 '실락원'에 실린 삽화. '유혹과 이브의 타락'(Temptation and the Fall of Eve).
하이든은 두번에 걸쳐 영국을 방문한 일이 있다. 처음 방문은 1791-92년이었다. 1791년이라고 하면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난 해이다. 하이든은 영국을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두번째 방문은 1794-95년이었다. 하이든은 런던 방문 중에 헨델의 오라토리오들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강력한 메시가 담겨 있는 웅장한 것이었다. 하이든은 헨델의 오라토리오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 새로운 오라토리오를 작곡할 생각을 했다. 하이든은 특히 헨델의 오라토리오인 '이집트의 이스라엘'(Israel in Egypt)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의 '천지창조' 음반 커버. 독일어 국가의 위대한 성악가들이 솔로를 맡았다. 소프라노 군둘라 야노비츠, 테너 프릿츠 분더리히, 테너 베르너 크렌(Werner Krenn),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하이든은 대단히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런 하이든이었기 때문에 노년에 이르러 '천지창조'를 작곡하게 되자 그야말로 깊은 신앙심으로 모든 정성을 들여서 작곡하였다. 그야말로 필생의 작업으로서 작곡에 임하였던 것이다. 하이든은 '천지창조'의 한곡 한곡을 완성할 때마다 악보의 끝에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라고 적어 넣었다. 하이든은 매일 아침 작곡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능력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천지창조'는 과연 하이든의 기도의 힘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이든이 '천지창조'를 작곡한 집은 현재 마리아힐르프의 하이든가쎄에 있는 하이든하우스에서였다. 현재는 하이든기념관이다. 하이든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처럼 오랜 기간동안 집중한 일은 없었다. 연주시간 약 1시간 45분에 이르는 '천지창조'를 거의 2년이라는 기간을 지내면서 완성한 것이다. 하이든은 나중에 '이 작품이 영원히 연주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든 정성을 다 기울였다'고 말했다. 실로 그는 그가 노약하여 기력이 없을 때까지 작곡에 전념하였다. '천지창조'를 완성한 그 해에 초연을 가질 때에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지휘를 하였으나 지나치게 무리하는 바람에 건강이 악화되어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한편, 하이든은 노환으로 고생을 하던 중에도 1801년에 '천지창조미사곡'(Schöpfungsmesse)을 완성하였다.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아이디어를 재사용한 미사곡이었다.
비엔나의 하이든가쎄에 있는 하이든기념관. '천지창조'는 대부분 이 집에서 작곡되었다.
하이든의 '천지창조'의 오리지널 친필 악보는 1803년 실종된 이래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확히 하이든이 어떻게 작곡을 해 놓았는지는 검증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악보는 1800년에 비엔나에서 출판되었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1799년에 출판된 악보도 있다. 비엔나의 음악가연맹(Tonkünstler-Societat)가 출판한 악보로서 하이든이 친필로 코멘트를 적어 놓은 것이 있는 것이다. 1799년의 악보는 비엔나 시청 도서관(Wienbibliotheck im Rathaus)에 보관되어 있다. 이밖에도 '천지창조'의 오리지널 악보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모두 복사본이다.
비엔나도서관이 있는 비엔나 시청(라트하우스). 하이든의 1799년도 악보가 보관되어 있다. 슈베르트의 오리지널 악보도 상당수 보관되어 있다.
'천지창조'의 가사에 대하여는 얘기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구약성서 창세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존 밀튼의 '실락원'도 참고로 했다. 여기에 구약성서의 '시편'도 참고를 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이다. 1795년 하이든이 연주회를 위해 두번째로 런던으로 갈 때에 연주회를 주관한 요한 페터 잘로몬(Johann Peter Salomon: 1745-1815)이 하이든에게 '이 세상의 창조'(The Creation of the World)라는 시집을 주면서 혹시 오라토리오를 작곡할 의향이면 참고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하이든이 '천지창조'를 작곡할 때에는 잘로몬이 준 대본을 참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대로 한다면 4시간이 넘는 대곡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이든은 잘로몬이 준 대본을 런던의 드러리 레인극장의 오라토리오 콘서트 감독인 토마스 린리라는 사람을 통해서 잘로몬에게 돌려 주라고 했다. 린리라는 사람이 잘로몬에게 오리지널 대본을 돌려 주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하이든이 나중에 '천지창조'를 작곡할 때에 바탕으로 삼은 가사는 혹시 토마스 린리가 쓴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있다. 토마스 린리가 영어 가사를 쓴 것을 누군가 독일어 가사로 번역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별로 할 일도 없던 음악학자들은 '천지창조'를 연구하면서 '천지창조'의 오리지널 가사는 성명미상의 사람이 썼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아직도 '천지창조'의 오리지널 영어 가사를 쓴 사람은 익명의 인물로 되어 있다.
가싱턴오페라의 '천지창조' 공연. 현대적 연출의 오라토리오 연주
런던에서 비엔나로 돌아온 하이든은 영어 대본을 고트프리트 반 슈비텐 남작에게 주어 번역케 했다. 슈비텐 남작은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을 후원했던 사람으로서 외교관, 아마추어 음악가, 도서관장 등을 지낸 명사였다. 슈비텐 남작은 영어로 된 The Creation을 독일어인 Die Schöpfung으로 번역하여 하이든이 곧바로 작곡에 들어갈수 있도록 했다. 슈비텐 남작은 하이든에게 '천지창조'의 넘버링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등도 자문했다. '천지창조'가 공식적으로 출판된 것은 1800년이라고 할수 있다. 영어, 독일어의 두 언어로 출판되었다. 하이든은 영어 가사가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한 일이 있다. 슈비텐 남작은 물론 영어 원어민이 아니었다. 그래서 영어를 독일어로 번역할 때에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여러군데 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여러 사람들이 오리지널 영어 대본으로 독일어를 다시 번역하는 수고를 했다. 그렇더라도 처음에 슈비텐 남작이 독일어로 번역했던 기본은 최대로 살렸다고 한다.
'천지창조'의 독일어 가사를 마련한 고트프리트 반 슈비텐 남작
'천지창조'는 1798년 비엔나의 팔레 슈봐르첸버그에서 초연되었다. 노이어 마르크트의 한 편에 있는 건물이었다. 지금은 철거되어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다. (슈봐르첸버그 궁전이라고 하니까 소련 적군 병사가 서 있는 슈봐르첸버그 궁전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곳은 아니다. 슈비텐 남작을 비롯한 일단의 귀족들이 연주회를 후원하였다. 이들은 또한 하이든에게 자기들이 '천지창조'를 공연할수 있는 권리금 조로 섭섭치 않을 만큼의 액수를 전달하였다. 하이든의 런던 연주회를 주선하였던 잘로몬은 '천지창조'가 성공하자 그것은 자기의 대본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영어 가사가 불법적으로 독일어로 번역되었다고 주장하며 고소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그 일은 사실여부를 떠나서 존경받는 하이든의 명예에 관한 일이었으므로 누구도 문제로 삼지 않고 흐지브지 되었다. 초연은 3월말이나 4월초의 부활절에 앞서서 공연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파트의 작곡이 늦어지는 바람에 4월 하순까지 지연되었다. 결국 4월 하순의 성금요일에 완성되어 4월 29일에 최종 리허설을 할수 있었다. 팔레 슈봐르첸버그에서의 최종 리허설에는 너도 나도 참석하고 싶다고 하며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연주회장은 입추의 여지도 없게 되었다. 그날 리허설을 보았던 사람들은 '천지창조'에 대하여 너무나 감동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그 감동을 전하느라고 정신들이 없었다.
비엔나 시내 중심지역의 노이어 마르크트 한쪽에 있었던 팔레 슈봐르첸버그. 천지창조가 처음 연주된 장소이다. 당시에는 돈너 분수가 없었다.
'천지창조'가 초연을 가졌던 팔레 슈봐르첸버그가 있던 노이어 마르크트의 그 자리에는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다.
다음날인 4월 30일의 첫 공연은 실상 초청받은 사람만이 입장할수 있는 개인적인 연주회였다. 소문을 듣고 연주회를 보러 온 수백명의 사람들은 연주회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릴수 밖에 없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이든의 연주회를 후원한 귀족들, 정부의 고관들, 저명한 음악인들, 궁정의 귀족들 등이었다. 연주회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경찰 30여명이 동원되어 질서를 유지해야 했다. 참으로 행운으로 연주회장에 들어갈수 있었던 사람들은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도 흥분과 감격을 가라앉히지 못하여 집으로 돌아갈줄을 몰랐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그날의 어떤 참석자가 노이에 도이체 메르쿠르(Neue Deutsche Merkur)라는 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면 '이미 3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감동이 마음 속 깊이 남아 있어서 떠날 줄을 모른다. 그 때의 그 놀랍도록 감동적인 음악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고 썼다.
바티칸 시스틴 교회의 천정화인 '천지창조'중에서 아담의 창조
일반인을 위한 첫 연주회는 이듬해인 1799년 3월 19일 비엔나의 부르크테아터에서였다. 입장권은 오래 전에 매진되었다.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를수 밖에 없었다. 부르크테아터의 연주회는 그야말로 대성황이었다. 이후 '천지창조'는 하이든의 생존 중에 40여회나 공연되었고 그때마다 무한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런던 초연은 1780년에 코벤트 가든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영어 가사로 연주되었다. 비엔나에서 하이든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참석한 연주회는 1808년 3월 27일 과학아카데미에서였다. 하이든의 76화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연주회였다. 현재의 1구 독트로 이그나즈 자이펠 플라츠에 있는 건물이다. 노약한 하이든은 세단과 같은 안락의자에 앉아 연주를 지켜보았다. 청중들은 이 노작곡가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냈다. 청중들은 특히 '빛이 있어라'라는 대목이 연주될 때에 '파파 하이든'이라고 연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그러자 하이든은 기운이 없는 중에도 손을 들어 하늘을 가르키며 '모든 것은 나에게서가 아니라 저 높은 곳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하이든은 그 다음해인 1809년에 5월 31일 마리아힐르프(당시는 굼펜도르프)에서 세상을 떠났다.
하이든의 생전에 마지막으로 연주된 '천지창조'. 현오스트리아학술원 강당에서. 앞줄 가운제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사람이 하이든이다. 1808년 3월 27일이었다. 하이든의 76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마련된 연주회였다.
'천지창조'는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서곡을 포함하여 34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곡은 혼돈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파트 1은 태초에 빛이 창조되고 땅과 하늘의 별들, 물과 계절 그리고 온갖 식물이 창조된 내용이다. 파트 2는 하나님께서 바다의 생물들과 새와 땅위의 동물들과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내용이다. 파트 3은 에덴 동산에서 일어나는 일을 표현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표현한 내용이다. 다른 오라토리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천지창조'에서도 중요한 아리아나 합창이 나오기 전에 간단한 레시타티브가 나온다. 레시타티브는 창세기의 말씀을 낭독하는 형태이다.
미하엘러플라츠, 호프부르크의 옆에 있었던 구 부르크테아터. 말을 타고 지나가는 병사들의 뒷편에 있는 건물이다. 여기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천지창조' 초연이 있었다. 그전에는 '피가로의 결혼' 등 모차르트의 오페라들도 초연된 장소이다. 지금은 구 부르크테아터가 철거되어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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