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더 알기/공휴일 탐구

오스트리아 국가축일(Nationalferiertag Österreich)

정준극 2012. 5. 31. 23:34

오스트리아 국가축일(Nationalferiertag Österreich)

The Declaration of Neutrality Day

 

오스트리아 국가축일에 헬덴플라츠(영웅광장)로 행진해 가는 오스트리아 의장대

 

우리나라는 국경일 또는 국가가 정한 공휴일이 다른 나라들보다 많은 것 같다.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이 있는가 하면 어린이날, 석탄절, 현충일, 한글날, 성탄절이 있다. 여기에 새해 첫날 하루도 공휴일이며 설날과 추석에는 사흘씩이나 공휴일이다. 그런데 오스트리아는 국경일(국가축일)이 두개 밖에 없다. 5월 1일 노동절과 10월 26일의 중립국선언일(The Declaration of Neutrality)이다. 다른 공휴일은 기독교와 관련된 축일이다. 하기야 오스트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을 이끌어 갔던 나라이므로 로마 가톨릭과 무관할수가 없으므로 가톨릭 교회가 정한 축일을 국가적으로 성의를 가지고 지키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노동절을 겸한 5월 1일을 슈타츠파이어타그(Staatsferiertag)라고 부르는데 영세중립국임을 선포한 날인 10월 26일은 나치오날파이어타그(Nationalferiertag)라고 부른다. 번역하면 모두 국가축일(국경일)이다. 그래도 차이가 있기는 있을 것 같다. 슈타트(Staat)와 나치온(Nation)이라는 단어는 모두 국가라는 의미이지만 아무래도 차이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헬덴플라츠에서의 오스트리아 국가축일 퍼레이드. 솔직히 별것도 아닌 퍼레이드인데 사람들은 오지게 모였다.

 

오스트리아 의회는 오스트리아가 영세 중립국임을 결정하고 1955년 10월 26일부터 유효하다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바로 그날이 국가축일인 것이다. 왜 10월 26일이냐하면  2차 대전후 오스트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외국군대가 10월 25일에 마지막 한명까지 철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는 1945년부터 1955년까지 10년 동안 미, 영, 불, 소의 통치를 받아왔다. 그런데 소련은 만일 오스트리아가 1955년 5월 15일의 국가조약(State Treaty)에서 영세 중립국임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아마 철군하지 않고 그대로 눌러 앉았을 것이다. 그것은 곧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나 폴란드 등과 마찬가지로 소련의 통치를 받는 공산국가가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리아는 소련군의 철수를 위해 영세 중립국임을 선언하였던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이라는 것을 헌법에 포함시켰다. 국제법상의 중립국에 대한 사항도 모두 반영하고 받아들였다. 물론 나중에 사정이 생기면 중립국이라는 지위를 바꿀수 있지 않느냐는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EU에 가입한 후에도 진정한 중립국으로 존립 할수 있느냐는 문제도 적잖이 논의되었다.


지방에서의 오스트리아 국가축일 퍼레이드. 무슨 퍼레이드던지 앞에는 여인들이 민속의상을 입고 걷는다. 그리고 밴드가 뒤따른다.

 

10월 26일의 중립국선언을 기념하는 국경일에는 여러 행사가 펼쳐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연방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비엔나의 영웅광장(헬덴플라츠)에서 거행되는 경축행사(미사)에 참석한다.

- 연방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영웅광장의 부르크토르(궁성문)에 있는 무명용사 영묘에 조화를 놓고 추모한다.

- 정부 요인들이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경축음악회에 참석한다.

- 오스트리아군에 새로 입대한 병사들의 충성서약이 거행된다.

 

이날 대부분의 박물관은 무료입장이다. 연방 수상 집무실등 정부의 주요 관공서가 오픈 하우스를 갖는다. 전국적으로는 이른바 '체력증강 행진'(Marches of Fitness)을 갖는다. 운동과 체력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행사이다. 세계 각국에 있는 오스트리아대사관은 현지에 있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을 위해 리셉션을 베푼다.

 

중립국 선포일에 헬덴플라츠에 마련된 오스트리아 군사장비 전시. 탱크, 전투기, 헬리콥터 등이 전시된다.

 

참고로 1945년부터 1955년까지 1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누가 어떻게 나누어서 통치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10년이란 기간동안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강대국의 간섭과 오만함에 무던히도 참고 견디었을 것이다. 강대국이란 물론 미, 소, 영, 불을 말한다. 미국은 잘츠부르크와 오버외스터라이히의 대부분인 중남부를 통치하였다. 영국은 슈타이어마르크와 캐른텐을 통치하였다. 프랑스는 티롤과 포아아를버그를 통치하였다. 소련은 자기들이 오스트리아 해방의 주인인양 행세하여 오스트리아의 중심지대인 니더외스터라이히, 그리고 오버외스터라이히의 북부지역을 통치하였다. 비엔나는 이것과는 상관 없이 또 다시 4개 지역으로 갈라져서 통치되었다. 1구는 4개국 공통지역으로 남겨 두었다. 소련이 가장 넓은 지역을 통치했다.  2구 레오폴드슈타트, 4구 뷔덴, 10구 화보리텐, 20구 브리기테나우, 21구 플로리드스도르프, 22구 도나우슈타트를 통치했다. 미국은 7구 노이바우, 8구 요제프슈타트, 9구 알저그룬트, 17구 헤르날스, 18구 배링을 통치했다. 영국은 6구 마리아힐르프, 14구 펜징, 15구 루돌프스하임-휜프하우스, 16구 오타크링을 통치했다. 프랑스는 3구 란트슈트라쎄, 11구 짐머링, 12구 마이들링, 13구 히칭, 23구 리징을 통치했다. 아무튼 복잡하기 그지 없는 통치상황이었다.

 

미, 소, 영, 불 4강이 1945-55의 10년 동안 나누어서 통치한 오스트리아.


1955년 벨베데레에서의 오스트리아 중립국 선포(The 1955 State Treaty and Austrian Neutrality)